갈뫼 호수별 보기

43호2013년 [ 수필 - 노금희 - 굿모닝,라디오 ]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241회 작성일 14-01-17 11:28

본문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제일 처음 하는 일은 라디오를 켜는 일이었다 . 적 어도 요 몇 년 전 까지는 . 하지만 어느 날 무슨 강한 주파수를 받은 탓인 지 내가 즐겨듣는 FM채널이 경로를 잊어버려 지지직거리기 시작했다 .

 

라디오를 즐겨듣기 시작한 건 중학교 2학년 때 , 기말고사를 막 끝낸 1 학기를 눈앞에 두고였다 . 어떤 이유였는지 모르게 몸에 이상신호가 왔다 . 아버지가 강릉의 작은 의원에 나를 데리고 가서 받은 진단결과는 신장염 이었다 . 의사선생님은 나를 보고 많이 움직이지 말고 음식 짜지 않게 , 맵 지 않은 것으로 먹으라고 주문을 했다 . 80년도 초라 지금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는 처방이었다 . ‘ 많이 움직이지 말라 ’ 니 , 결국 좀 쉬어야한다는 판단에 일곱 살에 학교를 들어간 나는 한 학기를 휴학하게 되어 제 나이 대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

 

많은 움직임이 좋지 않다고 하여 나는 작은 골방에 누워 지내기만 했다 . 지금처럼 여러 자료를 인터넷으로 찾아보지 못하는 시절엔 병원에서 하는 말을 백번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 그때 내가 할 일은 누워서 지내며 무료 한 나를 달래준 것은 라디오를 듣는 일이었다 . 많은 주파수가 잡히는 것 도 아닌 오로지 KBS채널고정이었다 . 아주 작은 몸체에 가죽케이스가 있 고 , 자기보다 몸집이 더 큰 배터리를 뒤에 매단 라디오였다 . 어느 날 우연 히 알게 된 - 소설극장 - 성우들의 배역에 나도 모르게 같이 호흡하고 , 웃 고 울고 애절하게 가슴 졸이고 다른 프로그램의 음악을 들으면서 나의 휴 학시절이 지나갔다 .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아버지는 교과서와 책을 멀리 하게 했으니 무료한 시간은 라디오만이 내 친구가 되어 주었다 .

 

초등학교 다닐 때 동네친구 중에 집에 TV가 없어 매일 저녁 라디오를 듣는다면서 아주 재미있다는 얘기를 할 때마다 난 라디오보다 TV가 더 재 미있다고 항변했다 . 하지만 막상 휴학생이 되어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보니 시각으로 자극되는 것 보다 청각으로 온 감각을 집중할 수 있는 라 디오가 참 매력있다 싶어 그 친구의 말이 백번 공감이 되었다 .

 

초등학교 3학년 즈음일까? 아버지가 노래를 좋아하셔서 쉐이코 카세트 라디오를 사 오셔서 마이크 연결을 하며 노래를 부르고 , 아침이면 이미자 나훈아 노래를 큰소리로 틀어 놓으셔서 우리의 기상음악이 되었다 . 하지 만 사온지 몇 주 지나지 않아 도둑이 들어 그 귀한 카세트라디오를 훔쳐 가면서 아버지의 노래 소리는 잠깐 멈췄다 .

 

그렇게 지내다 다시 카세트를 장만하였고 언니가 중학교를 들어가고 수 학여행을 다녀오면서 사온 팝송 테이프를 듣고 팝송에 매료되기 시작했 다 . 중학교 3학년 때 친구와 함께 마이클잭슨과 듀란듀란 , 에어 서플라이 를 얘기하면서 친구와 급속도로 친하게 지내게 된 계기도 음악이었다 . 그 렇게 시작된 나의 라디오 듣기는 여전히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지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계속 이어졌다 .

 

직장까지 두 번 차를 갈아타는 불편함으로 읍내에서 자취생활을 하면서 이사를 몇 번 할 때마다 그 집에 들어가서 제일 처음 하는 일은 라디오 FM 주파수를 찾는 일이었다 . 집의 방향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주파 수가 연결되는 곳에 전축을 두고 그 다음 짐들을 옮기는 작업이 이어졌다 . 이 별스런 행동은 결혼 후에도 이사를 한번 하면서 그 법칙은 여전히 적 용되었다 .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갖고 싶었던 것은 오디오 시스템이었다 . 양쪽 에 커다란 스피커가 달린 오디오가 유행이었던 그 즈음 월급을 타서 장만 한 롯데매니아 오디오는 지금도 내 안방 차지를 하고 있다 . 자리만 차지 하고 있다고 타박하는 남편의 잔소리가 가끔 들리지만 여전히 맑은 소리 를 내고 있는 친구를 어찌 소홀히하겠는가 .

 

또 하나는 휴대용 카세트였다 . 소니사의 워크맨으로 통칭되던 , S전자의 마이마이 , D사의 요요 등이 지금의 휴대폰을 소유하는 것처럼 젊은이들 의 희망사항이었다 . 허리춤에 휴대하고 헤드폰이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휴대용재생기는 여행을 하거나 자투리시간을 이용해서 음악 을 듣는 애호가의 1위 애장품이었다 .

 

이렇게 음악도구의 역사도 아주 빠르게 바뀌고 있다 . 오디오 전축을 통 해 LP로 듣던 음악은 꿈의 레이저 방식이라는 CD에 담아 재생되고 MP3에 이어 지금은 스마트폰에 저장하여 손쉽게 재생되고 있다 . 1980 - 90년대 소 니의 음악재생기 워크맨은 젊은이들의 폭발적인 인기몰이 상품으로 1979 년 세상에 나왔던 작품은 3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

 

하지만 아날로그적 감성을 기억하는 세대는 다시 음악다방에서 옛 LP 음반의 추억을 감상하는 지금이 되었다 . 음악은 10대에 가장 많이 몰입하 는 시기라고 한다 . 그때 들었던 음악은 가슴에 남아 어른이 되어서도 우 연히 그 음악을 듣는다면 과거를 연결하는 통로가 되어 다시 한 번 과거 의 추억으로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 . 내가 10대 , 20대에 듣던 음악을 지 금 딸애가 공감하면서 같이 듣고 , 조용필 , 이문세 , 김광석의 노래는 내 감 성뿐만 아니라 시간을 초월해 딸애와의 공감대를 만들어줬다 .

 

아버지에 이어 나와 딸에 이르기까지 무의식중에 들었었던 음악은 감성 을 자극하고 , 그때의 추억을 회상하게 된다 . 노래 가사가 나의 심정에 맞 추어 만들어진 곡처럼 더러는 착각을 하면서 빠져들고 , 음악이 주는 감동 은 라디오를 통해 연결되어 그 긴 여로는 계속 될 것이다 . 누군가에겐 음 악이 때론 소음이 될지라도 시 한 줄에 위로 받고 , 소설 한 줄에 내 삶을 투영해 보듯 한 곡의 음악과 라디오는 내 삶의 달달하고 소중한 추억임을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