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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2013년 [ 시 - 박대성 - 비누의 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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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028회 작성일 14-01-20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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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입 중에는 몸 전체가 입인 , 입이 몸의 전부인 것이 있다 .

그들이 말문을 열기만 하면 세상은 순식간에 혼돈에 덮일 것이다 .

그러나

저 얇디얇은 박사(薄紗)같은 저 입은 어찌 저리 무거운지

저 풍선 같이 부푼 입들이 말문을 연다면 세상은 미끌미끌 얼음 판이 될 것이다 .

그러나

저 묵묵한 입들은 자신들의 소중한 일에 몰두하고 있는데

오직 그 일에만 몰두하는데 …

 

하루의 노동에서 돌아오는 녹초들을 씻어 내리는

그들을 홀랑 벗겨 씻어 내리는

말이 손이 되어 , 말이 팔이 되어 그들이 지고 온 노동을 윤이 나 도록 닦는

그래서 저 , 터질 듯 다문 입이 눈부신

 

지친 몸들이 끌고 온 오욕(汚辱)을 씻고 문지를 뿐인 저 입들

그래서 눈부신 …

안으로 가득하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아 매끄럽고 어여쁜

눈부신거품들

 

비누의 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