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호2013년 [ 시 - 최명선 - 피어라, 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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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을 따라 아이비 올라간다
제일 먼저 올라가던 녀석 무슨 심사인지
곡예 하듯 줄을 빠져나와 허공에 건들거린다
하지 말라는 것은 꼭 해보고야 말던
가지 말라는 곳엔 꼭 가보고야 말던
모자를 옆으로 눌러 쓰고 가방을 옆구리에 낀 채
한쪽 발을 흔들어대던 동창생 건들이다
혼자 놀기가 시들해졌던지
아니면 볼 것 다 보았다는 것인지
뒤따라 올라오던 다른 친구 팔을 끌며
함께 벽을 오르는 구척장신 건들이
칠 년 만에 만난 친구를 보고
자주 좀 만나자며 너스레를 떨더니
오늘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했던 걸까
세상이 다 내 것 같던 초록빛 언덕을
건들건들 어깨걸이를 한 채 오르고 있다
봄날은 간다 , 봄날은 간다
이미 가버린 봄날 뒤에서 흰 머리 아이들 둘이
넌출넌출 소리를 감으며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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