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호2013년 [ 시 - 최명선 - 피지 않는 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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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두 해를 산 집 ,
그 집이 지난 폭설에 무너졌다
너무 낡아 리모델링도 안 된다며
의사는 퇴원을 권유했는데
고장 난 기둥에 마음을 묶은 채
그믐 쪽으로 등을 누이는 오래된 집 한 채
가파른 봄 기어오른 병실 밖 꽃들이
창틈으로 꽃 향을 날려도 보고
햇볕이 집 안팎을 말려보는데
꺾어도 자꾸 피는 우울을 배경으로
나지막이 흐르는 회색빛 적요
젖지 않게 젖어드는 눅눅함처럼
서서히 녹아가는 빛바랜 초심에
무릎 세워 불효 다시 닦아보지만
집 밖에만 화사하게 피어나는 꽃
돌아오기엔 아무래도 먼 봄인 것 같다
다시 오기엔 아무래도 먼 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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