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호2013년 [ 시 - 장은선 - 마중물 ]
페이지 정보
본문
변두리 산등성이 동네는 언제나 물이 귀했다
아랫동네로 내려가야 공동펌프가 있었다
그 펌프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따금 심술을 피워
먼저 한바가지의 물을 넣어주어야
답례하듯 물을 뿜어 내었다
별빛을 따라 물지게를 지고
산등성이 집에 올라야
그 물은 밥물이 되고
고양이 세수하듯 얼굴을 적셨다
누이는 생리천을 빨 물이 없어서
노을처럼 물든 광목을
방구석에 비밀로 간직했지만
가끔씩 비릿한 냄새가 방을 떠돌았다
어느날 수도가 들어오고 나서
늙은 펌프는 숨을 멈쳤으나
우리는 언제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고 살았다
- 이전글[ 시 - 장은선 - 눈사람은 심장이 없다 ] 14.01.20
- 다음글[ 시 - 장은선 - 봄-병아리 날다 ] 14.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