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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2004년 [희곡-최재도] 화려한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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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갈뫼
댓글 0건 조회 4,036회 작성일 05-03-24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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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朴읍장 : 男. [나진군 청진읍] 읍장.
尹여사 : 女. [청진서점] 대표.
閔원장 : 女. [청진산부인과] 원장.
姜목사 : 男. [청진교회] 목사.
金부장 : 男. [청진백화점] 판매부장.
車여사 : 女. [청진화원] 대표.
대변인 : 男. 청와대 대변인.

<무 대>
마을회관이다. 임시로만든회의장, 등장인물들이자연스럽게배치되어있다.
무대한쪽엔별도의공간, 곧청와대대변인실이마련되어있다.
<막이 열리고, 대변인실에 핀(pin) 조명 들어오면, 근엄한 표정의 대변인이발표문을낭독하고있다.>
대변인: 대통령께서는, 금번사고에대해깊은애도의뜻을표하셨습니다. 탁월한방송진행자인최상갑선생과사회사업가로명성이높은장혜림씨가불의의교통사고로사망한것은, ‘회복할수없는국가적손실’이며‘치유할 수 없는 사회적 아픔’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통령께서는슬픔에잠겨고인의명복을기원하신후(→off).

<대변인낭독중점점조명약해지더니, 어느순간완전히사라지고무대조명과 전환된다. 무대 밝아지면, 박읍장이 주재(主宰)하는 토론장. 이미 열띤 토론이진행중이다.>
윤여사: (흥분하여) 그건말도안돼요!
박읍장: (제지하며) 아, 아, 윤여사님. 차분히, 끝까지, 제말씀을들으신후에.
차여사: 들을말이뭐가더있겠어요? 읍장님께서는우리가뭐, 생각도없고, 자존심도없는사람으로아시는모양이죠?
윤여사: ‘그런추악하고뻔뻔스런사람들을어떻게우리마을에받아들일수있겠느냐!’우리 모두 이렇게 이구동성으로 반대했던 것이 불과 반년전의 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처럼 갑자기 상황이 바뀐 겁니까?
사회장(社會葬)으로 해야 한다고요? 우리보고 장례위원이 되라고요? 이게말이나되는겁니까? 왜우리가저들의장례를치러야한다는말입니까. 왜저들이우리의영웅이되어야하는겁니까? 그사람들은단지바람둥이일뿐이에요. 그래서이마을까지쫓겨왔던거고,그래서이사회에서매장되었던겁니다. 그런데도-.
박읍장: 아, 아. 윤여사님, 윤여사님. 그렇게흥분하지만마시고, 여기는어디까지나‘토론의장’이니만큼, 다른분들의의견도들으시면서.
윤여사: 좋습니다. 읍장님께서그렇게말씀하시니, 다른분들의의견을들어가면서얘기하겠습니다. 제의견에분명한찬반의사를밝혀주세요.
차여사: (촐삭거리며) 예, 그래주세요.
윤여사: 반년전, 그사람들이이마을에처음들어올무렵, 그때를여러분은분명히 기억하실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 마을에 들어와 함께 살게 된다면, 자녀 교육은 어떻게 되겠으며, 남편들 바람기는 무슨 명분으로 잠재우겠느냐!”우리 모두가 그렇게 목청을 높였습니다, 그최재도 랬었죠?
장목사: 그랬죠. 정의가무너지고윤리가파괴될것을우려해서그랬던것아니겠소!
윤여사 : 그렇습니다, 목사님. 실제로 지난 반년간 그들로 인해 우리 마을은 정의가무너지고윤리가파괴되는현상을경험했습니다.
차여사: 애당초그사람들은우리마을에발을디뎌서는안될사람들이었어요.
윤여사: 방송사회자로명성을떨치던최상갑, 그알량한인기를이용해온갖부도덕한 행위를 자행하던 인물임은 이미 소문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재벌기업대표의젊은부인이었던장혜림, 그여자도이혼전부터잦은스캔들로3류잡지의가십난을메웠던사람이에요.
차여사 : 그럼요. 아, 아들 유전자를 감식해 보았더니 본 남편 아이가 아니더라는것아녜요. 그때문에이혼을당한여자인데, 그런사람과어떻게같은하늘아래서살수있겠어요?
박읍장: 아, 아. 물론, 그때는그랬었습니다. 마을이미지가흐려질것을우려해서, 저를포함한마을사람대부분이입주를반대했었습니다. 하지만이미 반년동안 우리 지역 주민으로서 우리와 고락을 같이 했고, 또고인이된이마당에그분들을더이상미워할이유가없지않겠습니까?
김부장: 저는읍장님의견에찬성입니다. 저들의장례를우리읍내사회단체와주민들이합동으로치르자는읍장님의견은대단히타당성이있습니다.
박읍장: 아, 예. 김부장께서도의견을말씀해보시죠.
김부장: 저는저들이이마을에들어올때부터저들을환영하고옹호했던사람입니다. 모름지기‘사랑’이라고하는것은‘인간의법’이전에‘하늘로부터부여받은고유한권한’입니다. 사랑에있어가장중요한것은본인의자유의지입니다.

장목사: 그건그렇지.
김부장: 그럼에도단지사회의법을어겼다고그렇게따돌리는것은대단히부당한일입니다. 그래서저는저들을따뜻하게맞아들이는것이, 우리마을의이미지를오히려높일수있다고주장했었습니다. 그소신은현재까지도변함이없습니다. 저들의장례식을온읍민이함께거행한다면, 우리마을이야말로이땅에서가장따뜻한마음을가진사람들만이모여사는곳이라는인식을전국민에게심어줄수있지않겠습니까?
박읍장: 그렇습니다. 바로그겁니다.
윤여사: 그때김부장께서찬성하셨던이유는, 그게전부가아니라고알고있는데요.
차여사: 맞아요. 다른속셈이있어그랬던거아녜요?
김부장: 속셈? 무슨?
윤여사: 제가다른경로를통해들은얘기인데, 그때김부장께서는판매촉진전략의일환으로저들의입주를적극찬성하신거라면서요? 아닌가요?
김부장: 판매전략이라뇨?
윤여사: 저들이이마을에들어오면이청진읍주민들의소비심리를크게부추길수있을것이라고기대한거죠. 그래서청진백화점에서는경영전략의일환으로당시의‘입주반대운동’을저지했던거아니겠어요?
김부장: 무슨말씀을하시는겁니까? 저들하고판매량하고무슨상관이있다는말씀이십니까? 설령그렇다하더라도, 매사우리백화점매출액과연결해생각하시면곤란합니다.
윤여사 : 지난 반년동안 우리는 청진백화점측의 교활한 상술을 지켜보았어요.
계절이시작되기전에장혜림이에게고급옷몇벌을선물하는것도그전략의하나였어요. 그래서장혜림이가그옷을입고거리에나서면즉시이를대대적으로홍보해순식간에유행시켰죠. 숫제장혜림이를동원해서싸인회까지열지않았던가요? 그게다청진백화점판매부김부장님머리에서나온전략이었죠?
김부장: 아, 아니. 무슨그런말씀을.
민원장: 이것보세요, 윤여사님. 우리는지금백화점판매전략을논하고있는게아니라, 최상갑과장혜림의장례식문제를의논하고있는중이란말이에요. 왜자꾸본말을전도시키는거죠?
윤여사: 오호. 원장님드디어입을여셨군요. 원장님이야말로켕기는것이있어그러시죠?
민원장: 캥겨?
윤여사: 드리기좀거북한말씀이지만, 원장님은이읍내사람들이윤리적으로혼탁해지기를은근히바라시는거죠?
민원장: 뭐라구? 이것보세요, 윤여사! 말씀을그렇게함부로하셔도되는거예요?
윤여사: 아닌가요, 그럼?
민원장: 지난번망발에도내가참고있었더니, 정말더못봐주겠군요.
윤여사: 망발이라니, 내가뭔망발을했다는거예요?
민원장: 윤여사께서낙태수술반대론자라는것잘알고있지만, 자기주장을펼치는것과, 다른생각을가진사람들에대한인신공격은구별해주기바래요.
윤여사: 인신공격?
민원장 :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렇게 자신이 교양없음을 함부로 드러내는 일은본인에게도도움이안될걸요.
윤여사: 교양이없다고요, 내가?
민원장: 지난번지방방송에출현했을때말예요. 우리산부인과를일컬어“살인을하고벌어들이는수입“운운하지않았나요?
윤여사: 아닌가요, 그럼?

민원장: 인격적으로대꾸할가치가없어그냥꾹참았어요. 오늘이자리에서분명히말씀드리죠. 우리산부인과야말로이읍내의도덕과가정을지키는 마지막 보루예요. 어쩌다 저지른 실수도 감쪽같이 지울 수 있고, 말못할고민도말끔히해결할수있는곳이죠. 우리병원덕분에가정의질서가유지되고화평이깨지지않은사례가얼마나되는지아시고하시는말씀이세요?
윤여사 : 그렇겠죠. 원장님이 입만 벙긋하면‘깨져야 할 가정’이 얼마나 많겠어요? 입을다물어준공로로우리마을최고의‘유지’가되신것아니겠어요.
박읍장: 자, 자. 여기는개인감정을앞세우는데가아닙니다. 어디까지나공적인, 마을을 위한,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한, 그런 고견을 내기 위해모인자리입니다. (민원장에게) 그러니까원장님께서도마을주민모두의이름으로장례를치르자는데찬성이시란말씀이시죠?
민원장: 그래요.
박읍장 : 좋습니다. 청진산부인과 원장님하고, 청진백화점 김부장님하고는 일단동의를하신겁니다.
민원장, 김부장: 예.
박읍장: 그럼차여사님의견을들어보겠습니다.
차여사: 물론반대죠, 저야.
박읍장: 구체적인이유를말씀해주시죠.
차여사: 평생바람이라곤모르고살던우리마을남편들에게얼마나큰낭패감을 주었습니까. 최상갑이는 나이 육십이 다 되어도 서른을 갓 넘긴미모의재벌마누라와놀아났어요. 그런사람이어느날갑자기이웃이되었구요. 그러니우리네남편들이얼마나큰박탈감을느꼈겠어요? 부러움반, 시기반으로호시탐탐자기들도바람피울궁리나하게되고.

박읍장: 거너무비약이심하십니다.
차여사: 그게현실인걸요.
박읍장: 목사님의견도들어보겠습니다. 장목사님!
장목사: 예.
박읍장: 이문제를어떻게생각하십니까?
장목사: 흠. 도덕적인측면에서본다면, 저들의죽음을그렇게까지성대하게애도할 이유가 없지 않겠소? 마치 불륜을 미화하고 찬양하는 듯한 인상을주지않겠습니까?
박읍장: 언뜻그렇게생각하기가쉽지요. 하지만, 목사님. 이거, 잘생각하셔야됩니다. 지금이시점에서우리는역(逆)으로생각해볼필요가있습니다. 거꾸로들여다보면, 우리마을로서는아주좋은기회를얻었다는걸알수있습니다.
장목사: 거꾸로들여다본다?
박읍장: 그렇습니다. 생각을조금만바꾸면우리는큰이득을얻을수가있습니다.
차여사: 이득?
박읍장: 지금, 세상이목이우리마을에집중해있습니다. 최상갑씨와장혜림씨가우리마을에은둔하던중사망했다는것, 이거대단한행운입니다요, 우리로서는.
민원장: 행운이라뇨? 저들이죽은게행운이라고요?
박읍장: 아, 아. 죽은게행운이라는뜻이아니라, 그러니까.
윤여사: 그렇죠, 행운이죠, 우리마을로선. 쓰레기를치워준셈이니까요.
장목사: 인간의존엄성을해치는말씀을그렇게함부로하시면곤란합니다, 윤여사.
박읍장: 제얘긴, 최상갑씨와장혜림씨가사망한것이지역경제활성화에큰도움이된다는것이죠.
민원장: 그러니까읍장님께서는지역경제가두사람의생명보다우선한다는뜻인가요?
박읍장: 아, 그게아니라, 어차피두사람이야사고로죽은거고요, 우리는이상황을맞이하여여기에서얻을수있는실리나최대한챙겨보자이말씀입니다.
민원장: 실리? 구체적으로어떤-?
박읍장: 이사고로인해우리마을은엄청난경제적효과를얻게됩니다. 상상할수도없을만큼많은이익이발생할겁니다.
김부장: 어떤이익을말씀하시는거죠?
박읍장 : 굳이 말씀드린다면 장례산업이라고나 할까요. 혹은 장례산업을 통한관광산업도가능해질수있습니다.
장목사: 장례산업?
<무대조명순식간에사라지고, 대변인실의핀조명들어온다. 청와대대변인의낭독이이어진다.>
대변인: 대통령께서는, 최상갑선생과장혜림씨의죽음을애도하는국민적감정이지극한데다, 두분이우리사회에미친영향이지대함을고려하여, 영결식에직접참석하시기로하였습니다. 지금까지비서관을보내문상을대신하던것이관례였음에비추어, 이는무척이례적이라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번 사고에 대한 애도의 뜻이 얼마나 깊은 지대통령의마음을헤아릴수있는대목이라할것입니다. 실제로대통령께서는 이“두 분의 업적과 인품을 기리기 위해 최소한의 예의를표시하는것”이라고말씀하셨습니다. 이에따라, 대통령께서는빈소가설치된나진군청진읍에직접방문하시어(→off).

<대변인낭독중점점조명약해지더니, 어느순간완전히사라지고무대조명과전환된다.
박읍장: 자, 제말씀을잘듣고냉철하게판단해주시기바랍니다. 최상갑선생과장혜림씨가바로어제불의의교통사고로사망했습니다. 청풍지하터널을과속으로질주하다벽을들이받는사고를낸겁니다. 지난반년동안이두사람은은둔중이었지만, 세간의이목은이들에게여전히집중되어있었습니다. 아까어느분도말씀하셨듯, 3류주간지에서부터시사월간지에이르기까지이사람들의일거수일투족이실리지않은적이거의없었습니다. 그렇기에이들을인터뷰하려는언론사 사람들과, 몰래 관찰해 사진도 찍고 비화도 파헤치려는, ‘파파로치?’, 하여튼 그런 사람들이 늘 그들 주변에 들끓었습니다. 바로어제도그들을피하려다사고를당한것아니겠습니까?
윤여사 : 다 아는 얘기는 그만 두시고요, 대체 뭐가 이익이라는 건 지 분명하게설명해주셨으면하는데요.
박읍장 : 아, 그래야죠. 물론 우리가 실리를 챙기려면 약간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전략을세워야하는거죠. 그래서우리가이자리에모인것아니겠습니까?
김부장: 뭐죠, 그게?
박읍장 : 제 계획은 이렇습니다. 처음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최상갑과 장혜림의장례식을마을주민모두가함께치르는겁니다. 말하자면사회장(社會葬)이되는셈이죠.
차여사: 거기까지는아까도말씀하신거아녜요.
박읍장: 이해를돕기위해다시말씀드린겁니다. 자, 제계획은이렇습니다. 고인들은각기자기집에서쫓겨난처지로, 해당가족들은저들의장례식을 치를 의사가 없다고 우리 읍에 통보해 왔습니다. 그래서 결국 행려병자의 사체 처리에 준해서 저들의 장례식을 치를 수밖에 없는상황입니다. 저는여기에서착상을얻은겁니다. 어차피우리읍에서
저들의장례를치르는것이불가피하다면, 오히려이상황을적극이용하자는데생각이미친겁니다.
김부장: 오호!
박읍장: 대대적인장례식을벌이는겁니다. 장례기간을1주일로잡고, 그기간동안주민모두가애통해하는겁니다. 그러다보면저절로전국적인시선이 모이게 됩니다. 애도의 물결이 온 나라에 퍼질 겁니다. 그렇게되면전국에서문상객들이구름처럼몰려와장례행렬에참가하게되지않겠습니까.
김부장: 그렇게될까요?
박읍장 : 그렇게 만드는 겁니다, 우리가. 장지에는 문상객들로 붐비고, 따라서우리 지역경제는 일거에 활성화됩니다. 문상객들을 모두 관광객이라고생각해보십시오. 이들로인해발생할수있는이득을구체적으로나열해볼까요?
차여사: 말도 안돼요. 그런 부도덕한 사람들을 온 국민이 애도할 거라고요? 어떻게그런무모한발상이가능하죠?
윤여사 : 애도는커녕, 조롱의 물결이 온 나라에 넘치겠죠. 그건 마을 사람 모두를세상의웃음거리로만들자는발상이에요.
박읍장: 그래서약간의기술이필요하다고말씀드리지않았습니까.
차여사: 남의비웃음을무릅쓰고?
박읍장: 만약제생각대로만된다면우리마을에서가장큰이득을얻을사람은바로차여사입니다.
차여사: 제가요?
박읍장: 문상객들이빈손으로장지에가겠습니까? 하다못해국화한송이라도들고 갈 겁니다. 우리 읍내의 유일한 꽃집인 청진화원, 유일한 화훼전문가인차여사님. 화원은일약문전성시를이룰것이고, 차여사께서는우리마을의유력인사로다시한번진면목을발휘하게될겁니다.
차여사: 흠.
박읍장: 재작년이었던가요? 육군참모총장을역임했던김동식장군께서고향땅에 묻히기 위해 시체로 돌아오던 날, 이웃 나진읍은 뜻하지 않던 장례식특수를누렸습니다. 그기간동안나진읍내화원들의매출액이,평소1년매출액과거의맞먹었습니다.
차여사: 흠.
박읍장: 바로그겁니다. 우리라고못할게없습니다. 그영화(榮華)를우리도재현해보자는겁니다. 장례식의규모가커지면그만큼소비도늘어납니다.
장목사: 하지만경제적이득을위해서도덕적정의를포기할수는없는일아니겠소?
박읍장: 교회에이득을주는일이어찌도덕적으로부당하다고말씀하십니까?
장목사: 교회에이득이라니?
박읍장: 목사님도한번생각해보십시오. 목사님께서목숨보다더아끼는그교회, 우리 마을에서제일 큰 하나님의 성전‘청진교회’. 하지만 그 운영상태는어떻습니까? 교회가살아야복음도전할수있거늘, 이상태로는곧문을닫아야할판이라면서요?
장목사: 흠.
박읍장: 그건곧목사님의무능을의미합니다. 한마디로이런사태는목사님의경영마인드부족에서비롯된겁니다. 이위기를벗어나는방법은단하나, 청진교회의나아갈방향을확고히정하는겁니다.
장목사: 확고히?
박읍장 : 목사님, 제 생각에는 말입니다, 앞으로 교회가 이 사회에서 같이 살아남는방법은–.
장목사: 방법은?
박읍장: 장제업쪽으로나가야한다는겁니다.
장목사: 장제업이라니?
박읍장: 장례식, 장례식을대행해주는거죠. 서양에서야이미오래전부터그래왔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그런 추세가 강하게 나타나지 않습니까? 전통적인방법으로제례나장례를치르는사람들은점차줄어들고 있습니다. 그 일을 교회나 사찰에서 대행하고 있는 것이죠.
까놓고말씀드려서앞으로종교단체가살아갈방도는이것뿐입니다.
장례식을 대행해주고 얻는 소득. 앞으로 장례산업이야말로 교회 매출액을높일수있는유일한방도입니다. 헌금에만의존하기에는이제한계에달했다는말씀입니다.
장목사: 흠.
박읍장 : 따라서 저는 우리 지역을 장례산업 단지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지역경제활성화에도움이된다고믿는바입니다.
윤여사: 그럼, 온주민이다죽어야된다는말씀인가요?
박읍장: 죽다니요?
윤여사 : 장례산업을 주력산업으로 만들려면 그만큼 사람이 많이 죽어야 하지않겠어요? 죽지않은사람을장사지낼수는없잖아요?
박읍장 : 아, 아. 오해이십니다. 제 설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 주장은우리지역에대단위묘역을조성하자는이야기입니다. 성직자묘지,교직자묘지, 연예인묘지등등으로전문화해대규모묘역을조성하는 거죠. 그러면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나라의유명한종교인사들, 학자들, 연예인들 이런 사람들이 다투어 이곳에 묻히게 됩니다. 그거창한장례식이연일이곳에서열리고, 그유명세만큼이나많은조문객이우리지역을방문하게될겁니다. 우리는이들을상대로여러분야에서매출액을높일수있습니다. 굴뚝없는산업, 암, 이것처럼훌륭한사업이어디있겠습니까? 서울동작구에서는국립묘지로인해현충일특수(特需)를영구히누리고있고, 광주에서는5·18묘역을성역화해관광산업의주요한자원으로삼고있습니다. 우리도이제 눈을 떠야 합니다! 묘지는 더 이상 혐오시설이 아닙니다! 묘지의산업자원화! 죽은자와산자가공생하는방법은오직이것뿐입니다!
<무대조명순식간에사라지고, 대변인실의핀조명들어온다. 청와대대변인의낭독이이어진다.>
대변인 : 대통령께서는, 방송인 최상갑 선생과 사회사업가 장혜림씨의 죽음을애도하는의미에서그들의장지인나진군청진읍의공동묘지를국가차원에서관리하라고보건복지부장관에게지시하셨습니다. 이에따라 정부에서는 3억원의 예산을 긴급 편성해 나진군에 하달했으며,현재 나진군 청진읍 공동묘지 성역화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 중임을아울러알려드립니다(→off).
<대변인낭독중점점조명약해지더니, 어느순간완전히사라지고무대조명과전환된다.
김부장: 하지만.
박읍장: 예, 김부장님. 김부장도의견을말씀하시죠.
김부장: 곰곰생각해보니읍장님의제안에문제가있습니다.
박읍장: (당황하여) 예, 문제라뇨? 문제라고하셨습니까, 방금?
김부장: 그렇습니다.
박읍장: 아까분명찬성한다고하지않았습니까?
김부장: 깊이생각해보지않고한얘깁니다.
박읍장: 아니, 대체?
김부장: 장례분위기가심화되거나일상화되면-.
박읍장: 되면?
김부장: 소비심리를위축시켜우리백화점매상을현저히줄게할우려가있습니다.
박읍장: 아니, 그게무슨말씀이십니까?
김부장: 소비가얼어붙는다이말씀입니다. 애도하는분위기속에서호화음식을먹고호화스런옷을사 입을사람이어디있습니까? 어떻게마시고 어떻게춤추겠습니까? 우리백화점으로서는이 문제에신경쓰지않을수없습니다.
민원장: ‘절대적사랑’을보호하는일이더우선한다고하지않았던가요?
김부장: 물론그것도중요합니다, 그러나.
박읍장: 이해(理解)가다소부족한것같습니다. 제가, 장례산업의경제적가치에대해부연설명해드리겠습니다. 우선묘지를가꾸는과정에서대규모토목공사가벌어집니다. 요즘같은불황기에이런큰공사를유치한다는거, 이거얼마나중요한일인지여러분아십니까? 각지역마다 요즘 이런 사업 유치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당장 이사업이시행되면올겨울우리지역저소득가구의생계가간단하게해결되고맙니다.
장목사: 하지만그래봐야일시적이지않소?
박읍장: 그렇지않습니다. 장례산업이야말로항구적이며안정적인사업입니다.
지속적인수입이가능합니다.
장목사: 어떻게?
박읍장: 매년기일이면제사를지내야합니다. 그때마다사람들은몰려오게되어 있습니다. 현충일 날 국립묘지 가는 길이 얼마나 붐비고, 한식날망우리 가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바로 우리 지역도 그렇게 되는 겁니다.
장목사: 그게뭐좋은일이오?
박읍장: 아무렴요. 그때마다주유소에서는엄청난양의휘발유가팔릴것이고,화원에서도수많은꽃송이를준비해놓아야할것입니다. 무덤가젯상에올릴과일도, 무덤잡풀제거를위한제초제도모두모두소비가급증할것이므로, 여하간여러분야에서급속한매출신장을경험하게될것입니다.
민원장: 백화점매상이줄것을우려한다는건, 그야말로기우(杞憂)겠군요.
박읍장 : 그렇습니다. 그뿐인 줄 아십니까?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 택시를 비롯한 운수업계는 또 얼마나 분주해 질 것이며, 여관을 비롯한숙박업소는 또 얼마나 호황을 누리겠습니다. 식당을 비롯한 요식업소도덩달아.
민원장: 여관에서제사를지내게하면더욱효과가있겠는데요, 김부장님.
김부장: 여관에서?
박읍장: 맞습니다. 우리지역에도관광명소가제법있습니다. 따라서추석이나한식또는설같은명절연휴때각숙박업소에서제수용품을공급하고제사를대행해주는겁니다. 설날에관광지콘도미니엄에서투숙객들을 위해 합동으로 제사를 지내준다는 얘기는 들으신 적이 있지요? 바로 그겁니다. 관광 휴양도 즐기고, 제사와 성묘도 해결할 수있으니, 이거야말로일거양득아니겠습니까? 그렇게되면우리지역은연휴때마다관광객들로붐빌테니그야말로장례산업의관광자원화가가능해지는거지요.
민원장: 그렇게된다면백화점매출액도크게늘어나겠네요?
박읍장: 아, 그렇다마다요.
김부장: 그렇다면다행이군요. 제가생각이짧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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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읍장: 윤여사님네서점도크게붐비게될겁니다.
윤여사: 우리서점이붐빌일이뭐가있어요?
박읍장: 최상갑과장혜림사건만해도그렇습니다. 우리가이운동을펼치는데성공해저들이영웅시된다면덩달아저들에관한일대기라든지관련책자에대한수요가크게늘어날수밖에없습니다. 새로운베스트셀러가양산될테니, 서점으로서는얼마나다행스런일입니까?
김부장: 정작민원장께는별실익이없네요.
박읍장: 그렇지가않습니다. 근본적으로이번최상갑장혜림사건은‘사랑의자율의지’를존중하는사회적분위기조성에기여하게됩니다.
윤여사: 한마디로낙태수술이급증하게될것이라이말이죠?
박읍장: 윤여사께서낙태수술을상당히비관적으로보시는거야, 뭐, 좋습니다,본인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존중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아직도산부인과 병원이 낙태수술로 돈 버는 줄 아십니까? 그리고 말이야바른 말이지, 낙태수술이 산부인과 의사를 위해 하는 수술입니까? 윤여사께서도뭔가의식전환을하셔야합니다.
민원장: 옳아요.
차여사: 그건, 그래요. 윤여사도생각을 전향적으로.
윤여사: 아니, 차여사!
차여사: 우리가너무편견에사로잡히는건아닌지가끔자기자신을돌아볼필요가 있어요. 우리 읍장님같은 분들은 저게 오직 마을의 발전, 주
민의번영을위해서불철주야애를쓰시는데, 우리는늘개인적이해(利害)에만얽매어있었잖아요?
박읍장: 흠, 흠.
윤여사: 차여사까지도!
김부장: 그건그래요. 우리가반성해야할것이바로그겁니다. 우리는늘편견에사로잡혀있기일쑤죠.

윤여사 : 읍장님이야말로 편견에 사로잡혀 있어요. 읍장님께서는 우리 마을이순식간에 부유해 질 것처럼 말씀하시지만, 잘 생각해보면 허황되다는것이금방드러납니다. 우선장제업은생산적이지못해요. 사회적인 손실이 오히려 더 클 거예요. 조문객을 맞느라 생업에 전념할 수조차없게될겁니다.
민원장 : 그렇지 않아요. 이 사업처럼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 어디 있겠어요.읍장님의착상에찬사를드려요.
윤여사: 공자어머니는아들의교육을위해집을세번이나옮겼대요. 공자어머니가기피한두곳이, 바로시장하고- .
박읍장: 아, 아. 윤여사님. 무슨말씀을하시려는지알겠는데요, 물론부정적인면이없는것은아닙니다. 저도인정을합니다.
윤여사: 우리아이들을묘지기로키울수는없지않겠어요?
박읍장: 물론다소의부작용도있겠죠. 하지만이번행사로얻을수있는이득이그보다몇배나더크다이겁니다.
차여사: 아무렴요.
박읍장 : 아마 대단할 겁니다. 제 생각에는 이번 장례식에 줄잡아 20만명은 참여하지않겠습니까?
장목사: 장례기간중문상을사람들까지합하면30만명은될거요.
김부장: 그럼적어도장례식날운구행렬이10km는늘어지지않겠습니까?
박읍장: 우리읍이생긴이래로이렇게많은사람이한꺼번에몰리는것은일찍이유래가없었을겁니다.
윤여사 : 만약 그렇게 사람들이 몰린다면, 진짜 여러 문제가 발생할 거예요. 전국에서 모여든 차량들로 극심한 교통혼잡은 물론 엄청난 사고도 발생할것이죠. 또한소매치기나강도사건에각종여행성범죄가기승을부리게될거예요.
박읍장: 윤여사님. 이번장례축제로우리지역에직접적으로떨어질소득이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20만명의 방문객이 우리 지역에서 단 돈 2만원씩만소비한다고해도, 약40억원이됩니다.
차여사: 와. 40억원.
박읍장 : 단순히 그것만이 아닙니다. 관광승수효과라는 게 있습니다. 관광객이뿌리고간돈이지역에서회전하면서또다른소득효과를유발시키게됩니다. 보통 세 배 내지 네 배로 성장한다고 보아 최대 200억원의소득개발효과를볼수있습니다.
김부장: 엄청나네요.
박읍장: 그런데도, 포기하시겠습니까?
차여사: 포기라뇨?
박읍장: 그럼요. 수십만다발의꽃이온청진읍내를뒤덮는정경을상상해보십시오. 그향내가진동하지않습니까?
장목사: 아마더이상조화를받을수없다고장례위원회측에서거절하는사태까지이를겁니다.
김부장: 얼마나될까요, 돈으로치면, 꽃값이?
차여사: 글쎄요, 줄잡아한 5억원?
김부장: 그정도나?
차여사 : 아마 어버이날 전국적으로 팔리는 카네이션 매출액과 맞먹지 않을까요.
박읍장: 이때문에꽃값이오르지않을까요?
차여사: 당연히오르겠죠. 모르긴해도25% 이상뛸거예요.
윤여사: 도덕성의상실은대체어떻게 할거죠? 사회규범에서벗어나는행위를 칭송하는것이 온당한 일인가요, 대체?
장목사: 그런오해를씻기위해 보완책이있어야할겁니다.
박읍장: 어떤?
장목사 :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겁니다. 최상갑 선생이 장혜림씨에게 사랑의헌시를써서, 이를은판에새겨침대머리맡에간직하고있더라고널리알리는겁니다.
민원장 : 좋은 생각이네요. 이들의 사랑을 불륜이라고 매도했던 사람들도 아마수긍할거예요.
김부장: 좋습니다. 장례식전날, 유해가있는청진의료원앞에서촛불추도식을할 때 그걸 공개하는 겁니다. 아마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가 될 겁니다.
박읍장: 여러분께서그렇게적극적으로나와주시니한말씀더드리겠습니다.
우리 마을은 유구한 역사와 수려한 풍광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웃나진읍에비해크게낙후되어있습니다.
차여사: 맞아요.
박읍장 : 나진읍에서는 국회의원도 배출되는데, 우리는 군의원 한 명이 고작입니다. 나진읍에서박사를열명이나키워내는사이, 우리청진읍에서는이제겨우이번에농학박사학위를받은김부장조카한사람뿐입니다. 제가 오죽하면 읍사무소 입구에 환영 현수막까지 걸었겠습니까.
김부장: 흠흠.
박읍장: 우리청진은일본강점시절에이미읍으로승격된곳입니다. 그런데도해방 10년 후에 겨우 읍이 된 나진에 군청마저 빼앗겼습니다. 제가중학교들어갈때만해도, 학교에호적등본을제출하는데, 거기에는요, 제출생지가분명히‘청진군청진읍’이라고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제가고등학교를갈때가되니까, 글쎄‘나진군청진읍’이되어있더라 이겁니다. 이름마저 빼앗긴 겁니다, 우리는! 마을이 발전을못하고정체되어있던사이, 이웃나진읍에지명마저빼앗기고만겁니다. 이얼마나가슴아픈일입니까, 여러분!
차여사: 옳소.
박읍장: 우리마을이이렇게낙후된이유가뭐겠습니까? 인물이없기때문입니다. 이렇다할 인물을 배출하지 못해 아직도 이렇게 낙후되어 있다,이말입니다.
장목사: 그거야, 어쩔수없는일아니겠소?
박읍장: 그렇기에우리도인물을키울필요가있습니다.
김부장: 암그래야죠. 사실우리조카가, 정치에도조금관심은있는데, 그게.
박읍장: 최상갑이와장혜림이도그대안중의하나입니다.
민원장: 그사람들은우리마을사람이아니잖아요.
박읍장: 아무려면어떻습니까? 어차피우리마을에묻힐사람이잖습니까. 그래서제가이번에그들을애도하는운동을대대적으로펴기로한겁니다. 사실 그 사람들 충분히 그만한 부가가치를 지닌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이부도덕하다고요? 김부장말씀대로사랑은절대적인겁니다. 인간으로서의 고유 권한입니다. 누구도 간섭할 수 없어요. 어
찌인간의잣대로, 이사회로잣대로, 함부로재려고하시는겁니까?
장목사 : 그렇습니다. 사랑은 신의 영역입니다. 인간의 뜻으로 간섭할 수 없는게사랑입니다.
윤여사: 하지만장목사님도저들의부도덕성을나무랐잖아요.
장목사: 설령저들의도덕성이문제가된다해도, 저들은이미사망하였습니다.
죽었다는말씀입니다. 죽음. 죽음은모든죄를사합니다. 로마서6장23절에이르기를, ‘죄의값은사망이라’하셨나니, 예수도죽음으로우리 원죄를 사하셨습니다. ‘누구든 죽음으로써 죄값을 치르노니,이제 죽은 자는 더이상 죄인이 아니노라.’우리는 저들을 용서해야합니다. 사랑으로 감싸 안아야 합니다. 저들을 심판할 이는 오직 하
나님뿐입니다, 아멘.
민원장: 최상갑씨가비록바람을좀피운건사실이지만, 그사람만큼유능한방송진행자가또어디있겠어요. 100년에한사람나올까말까한천부적인재능을지녔다는평가를받던사람이예요.
김부장: 아무렴요. 특히토크쇼는그양반을따를자가없죠.
민원장: 그사람브라운관에서사라진건, 사실정치적인음모때문이래요.
김부장: 오호, 그래요?
민원장: 지난번대통령선거때토론사회를봤었잖아요.
김부장: 그랬죠.
민원장: 당시야당후보였던현대통령한테좀불리한질문을집요하게물고늘어지다가미운털이박혔다는거예요, 글쎄.
김부장: 오호.
장목사: 그런데다사랑을위해명예와권세를포기한사람아닙니까, 참으로대단한사람입니다.
김부장: 그럼요, 목사님.
차여사: 아, 남자치고그만큼바람안피우는사람있으면나와보라고해. 그정도도이해못하는마누라가문제지. 안그래요?
김부장 : 그럼요, 차여사님. 모든 여자들이 그 정도만 이해해 주신다면 우리 사회가훨씬밝아질수있죠.
윤여사: 사회질서를파괴하는사람을, 이해하라고요?
민원장: 질서를파괴한게아니라, 단지조금진보적인행동을했을뿐이죠.
차여사 : 장혜림씨도 그래. 그 여자, 사회사업꽤 많이 했어요, 내가 알기로. 그여자고아원이다, 양로원이다, 얼마나돌아다녔는데요.
윤여사: 그건자발적봉사와다른거예요. 그여자가고아원과양로원에다닌것은운전면허불법취득으로사회봉사명령을받았기때문이잖아요.
김부장: 잡지에서보니까, 한때는대중목욕탕에가서다른사람들등도밀어주고그랬다던데요. 천성이아주봉사체질이라니까.
장목사: 오호, 그랬단말입니까? 예수께서도제자들의발을손수씻기셨지요.
윤여사: 그거야자기남편이선거에출마했으니까하는수없이한짓아니예요.재벌이권력까지쥐려한다는세간의비판을무마하려고요.
박읍장: 윤여사께서는매사그렇게부정적이십니다. 그렇게만볼게아니예요.제 생각에는 나진읍이 자랑하는 김수인 수녀. ‘한국의 테레사’라는 별명을가진그여자와비교해도전혀손색이없습니다. 김수인수녀가 가난한 이의 어머니라면, 장혜림씨는 소외된 이들의 벗이었습니다.
차여사 : 맞아요. 나진의 김수인, 청진의 장혜림. 두 사람은 우리나라 사회사업의쌍벽을이루는인물들이에요.
윤여사: 아니장혜림이를김수인수녀와비교한다고요, 감히? 헌신적인사회봉사로온국민의추앙을받는김수인수녀와?
차여사: 장혜림이김수인보다못한건뭐예요? 우리청진읍에서는그런인물을가지면안된다는뜻인가요?
윤여사: 김수인수녀와장혜림은근본적으로질이다른여자예요. 김수녀의숭고한사랑은노벨평화상후보로추천해야할정도지만,차여사: 장혜림의사랑도숭고해요.
윤여사: 세상에.
장목사 : 김수인 수녀와 장혜림은 동급의 자선사업가임에 분명합니다. 선행에있어 경중을 따지는 건 있을 수 없으며, 드러난 실적만으로 선행의무게를재려는짓은지극히세속적인시각일따름입니다.
윤여사: 오, 세상에! 뭐하는짓이죠, 이게? 김수인수녀와장혜림이세간의주목을 받는 유명인들인 것은 사실이지만, 김수인이 헌신적인 사랑으로소외된이웃들을보살피고있을때, 장혜림은외간남자와놀아나며자기삶을즐기고있었어요. 김수인은자기희생적인데다인간생명의 고귀함에 특별한 애착과 헌신을 보여준 인물로 전세계의 칭송
을 받았어요. 하지만 장혜림은 3류 주간지에 표지인물로 등장하며끊임없이 염문을 퍼뜨리던 사람이었어요. 김수인과 동급이라고요?

장혜림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김수인 수녀와 어깨를 나란히 겨루는성자로돌변할수있죠?
장목사: 흠. 장혜림이여기와사는동안김수인수녀와몇번만난후가까운관계를유지했다고들었습니다만-.
차여사: 맞아요, 두사람은절친한사이였다고요. 아주아주절친한사이였다니까요.
<무대조명순식간에사라지고, 대변인실의핀조명들어온다. 청와대대변인의낭독이이어진다.>
대변인: 아울러대통령께서는, 방송인최상갑선생과사회사업가장혜림씨에게훈장을 추서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이 두 사람은건국이래가장많은대중적사랑을받은분이니만큼, 국민의이름으로그공적을치하하는것이마땅하다고대통령께서는말씀하셨습니다. 행정부의수반이아닌, 국가대표로서의대통령권한을사용하여최상갑 선생과 장혜림 씨의 생전 행적을 영구히 기리자는 것이(→off).
<대변인낭독중점점조명약해지더니, 어느순간완전히사라지고무대조명과전환된다.>박읍장: 우리모두최상갑선생과장혜림씨가온국민의영웅이라는사실에대해서는 동의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구체적으로 이번 장례식을 어떻게 범국민적 행사로 승화시키느냐 하는 방안에 대해 모색해 보도록하겠습니다.
장목사 : 장례식이라는 것은 이미 사회적으로 확립된 기본틀이 있기 때문에 그범위안에서집행하는것이마땅할것입니다. 주민모두가검은양복을착용하고1주일간엄숙한자숙시간을보내도록해야할것입니다.
차여사: 그렇게해서야어디축제분위기가조성되겠어요?
장목사: 축제라뇨? 우리가치르는것은장례식입니다, 축제가아니라.
김부장 : 그런 발상 가지고 어떻게 이 행사를 준비하겠습니까. 축제라는 건요,축전과 제전을 합친 개념입니다. 그러니까 가령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축전행사니 당연히 흥청거리며 즐겨야 하겠지만, 반대로브라질의삼바카니벌은예수의죽음을애도하는제전행사임에도거의광란상태에이르지않습니까.
장목사: 그러니까, 광란의상태로몰고가자, 이말씀이십니까?
김부장: 최소한소비분위기를늘리는쪽으로는가야죠. 검은양복을입을게아니라, 저들을추모하는의미에서장혜림의상과최상갑모자를보급하는것이바람직하다이말입니다.
장목사: 오호.
민원장: 장례기간을1주일로하자고하셨나요?
박읍장: 예, 민원장님.
민원장: 그기간동안관공서와학교는휴무하도록하죠.
박읍장: 왜요?
민원장: 모든공무원과학생들이앞장서장례준비를해야할거아녜요. 촛불행진을위한청사초롱도만들고, 전시가지에조등도매달아야하지않겠어요.
차여사: 좋아요. 온읍민이꽃한송이씩들고시가행진을하는거예요.
김부장: 집집마다조기(弔旗)를게양하도록하죠.
장목사: 조가(弔歌)도제정합시다. 온읍민이함께부를수있도록.
박읍장: 좋은생각입니다.
장목사: 각종교단체별로추모행사도가져야하겠죠. 추모미사, 추모법회가마을곳곳에서열리도록해야합니다.
차여사: 저들의숭고한사랑을기리기위해동상도세워야해요.
김부장: 1주일내로동상제작이가능할까요?
박읍장: 동상제막식은또다른이벤트로활용되어야합니다.
김부장: 아예, 기념관을만듭시다. 최상갑과장혜림의애절한사랑을영원히기리기위해서는이게절대필요할것같습니다.
박읍장: 아주좋은생각입니다. 내년예산에반영될수있도록군수님과지사님께강력건의하겠습니다.
민원장 : ‘이벤트’말씀을 하시니 생각나는데, 최상갑과 장혜림은 이 지상에서정식결혼식을올리고살지못했어요. 그러니그불쌍한영혼을위해영혼결혼을시키는것은어떨까요?
박읍장: 좋습니다. 그건장례하루전날시행하도록하겠습니다.
김부장: 그들이등장했던잡지기사를모아전시회도하는겁니다. 전시장은저희백화점화이트홀을무상으로사용하도록하십시오.
민원장: 장례식과정을텔리비젼생중계로내보내는방법을모색해보세요, 읍장님.
박읍장 : 언론보도가 되려면 우리가 좀더 치밀하고 진취적인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언론에서야보도가치가높은뉴스만을취급하려할테니우리는행사규모를키워서그들의시선을끌수있어야합니다.
민원장: 세계화 시대니 만큼 스케일을 키워야겠죠. 범국민적, 나아가 전세계에애도분위기를확산할수있는방법을찾아보도록해요.
김부장: 대통령의문상을요구하는게어떨까요?
박읍장: 대통령?
김부장: 직접문상을오도록제안하는겁니다.
박읍장: 글쎄요.
민원장: 만약응하지않으면다음선거때국물도없다고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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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읍장: 알겠습니다.
민원장: 청진읍공동묘지를성역화시켜달라고요구해보세요.
장목사 : 훈장 추서도 요구해 보시오. 훈장을 받을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저들은.
차여사: 아무렴요.
김부장: 이렇게되면엄청난조문객들이몰려올텐데요, 숙박교통위생대책도세워야되지않겠습니까.
<장중한장송곡이낮게깔리며, 무대조명점차어두워진다.>
민원장: 내가알기로최상갑씨와장혜림씨는평소쟁반막국수를즐겨먹었다고해요. 그러니이막국수를조문객들에게소개하는게어떨까요. 향토식품으로지정하고집중적으로보급하는겁니다.
김부장: 숙박난해결을위해전가구를민박가옥으로지정하고, 민박안내소를시내광장에설치하도록해야할겁니다.
박읍장: 모두좋은의견입니다. 여러분의고견을행정에적극반영하도록하겠습니다.
<마을사람들, 점차흥에겨워여러제안을앞다투어하고있는사이, 조명완전히 사라진다. 대변인실의 핀 조명 들어온다. 청와대 대변인의 낭독이 이어진다.>
대변인 : (마을 사람들의 소란과 겹치며) 대통령께서는, 방송인 최상갑 선생과사회사업가장혜림씨의공적을영원히기리고자나진군청진읍광장에기념관을건립하라고지시하셨습니다. 이에따라곧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가구성되어전국민을대상으로모금활동을펼치게되며-(off).
<어느덧핀조명완전히사라진다. 무대, 어둠에잠긴상태에서, 장송곡점점커져환호하는마을사람들소리를덮는다. 다시점등되었을땐, 이미막이내려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