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호2013년 [ 시 - 권정남 - 누수 ]
페이지 정보
본문
평생을 벽속에 갇혀 있던
무리들이 야밤을 틈타 반란을 시작했다
은빛 실뱀 같은 군상들이
길 없는 벽속에서 길을 내며 천천히
자객이 되어 옹벽에 스며든다 .
번뜩이는 재치와 바늘 같이 날렵한 몸짓으로
선전포고도 없이 욕실 타이루 틈을
기웃되며 염탐하다가
거실 바닥을 뚫고 돌진하기 시작한다
참았던 얘기가 많은 모양이다 .
죄명도 모른 채 갇혀 있던
눅눅한 어둠의 자식들이
옹벽에 제 머리를 찧어가며
결백을 주장하는 그 속사정을 누가 알까마는
이미 , 베란다까지 하얀 맨발을 내려놓고 있다
투신할 모양이다
환한 빛 속으로
- 이전글[ 시 - 권정남 - 미시령은 염색 중이다 ] 14.01.20
- 다음글[ 시 - 권정남 - 시린 날의 자작 ] 14.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