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호2013년 [ 시 - 권정남 - 미시령은 염색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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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 물감이 뚝뚝 어깨에 떨어진다
가을 햇볕에 물들어 가고 있는
치렁치렁한 긴 머리카락들
한때 내 색깔을 고집하며
세상 앞에 물들지 못해 힘들었던
날들이 있었다
슬픔이 기쁨에게 물들어가듯
물들어 간다는 건
자신을 속속들이 삭혀내며
강물처럼 세상과 깊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푸른 하늘이 석양에 물들어 가듯
허공에 몸을 맡기고 섰는 정상의 나무들이
선명했던 자신의 빛깔을
정수리부터 하나씩 지워가고 있다
이마 위 , 흘러내린 몇 가닥 머리카락 까지
브릿지를 넣고 섰는
미시령은 지금 염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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