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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2013년 [ 테마수필 - 박성희 - 바다는 내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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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918회 작성일 14-01-20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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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는 아들이 희망이었다 . 아들만 챙기는 아버지를 보며 난 바다에 의지했고 , 바다 너머 세계를 동경하며 사춘기를 보냈다 . 바다는 내면 갈등으로 괴로워하던 나에게 희망을 줬다 .

 

초등학교 졸업할 때 겨우 구구단 암기하고 글만 읽는 수준이었다 . 학 교는 놀러 다니는 곳으로 여겼는데 , 6학년 때 혼자 남아 구구단 암기하 면서 공부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했다 . 아버지는 나를 초등학교만 졸업 시키겠다고 . 중학교는 갈 수 없다고 . 아버지 말에 담임선생님이 찾아오 셨고 . 학교에서 장학금을 주겠다고 해서 간신히 입학했다 .

 

내가 중학교에 입학한 그 해 봄 , 속초로 이사했다 . 넓은 들이 내 세상 이었던 성대리와 달리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속초에서 생활은 나를 주눅 들게 했고 , 거침없이 말하는 속초 아이들이 무섭기까지 했다 . 속초 는 아이들이 많았다 . 시골에서 친구 없이 지낸 나는 아이들을 만나면 숨 고 싶었다 . 그런데 골목만 나가면 또래들이 눈에 띄니 마음은 자꾸 구겨 지고 작아질 수밖에 . 학교 가기 위해 버스를 타면 같은 학년생들이 열 명 씩은 탔다 . 또래들 얼굴조차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나 . 그들은 버스 타 면 내릴 때까지 재잘거렸는데 그 속에서 난 이방인이었다 . 가끔 내게 말 을 걸어오는 아이도 있었지만 , 시선을 피해 창밖만 바라보았다 .

 

낯선 곳에서 생활과 중학교 공부는 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 아는 게 너무 없었다 . 사회 시간에는 모르는 어휘로 인해 내용 이해하기 힘들었고 , 바다생물에 대해 수업할 때 미역 외에는 아는 것 이 없었다 . 아이들이 잘 아는 파래 , 다시마 . 우뭇가사리 , 불가사리 등은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 용기 내어 모르는 어휘를 질문하면 처음에는 자세히 설명해 주시던 선생님도 계속되는 내 질문으로 수업할 수 없게 되자 , 너는 어디에 사느냐고 . 그 후부터 질문하지 못 했다 .

 

학교에서는 조용히 자리만 지키다 집으로 돌아왔다 . 그러면서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암담했다 .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앞날 . 중 학교는 운이 좋아 다니지만 고등학교는 보낼 수 없다는 아버지 말에 더 절망했고 , 깊은 절망으로 마음을 닫기 시작했다 . 교실에 있어도 나만 다 른 세계에서 온 아이 같았다 .

 

누구에게도 답답한 마음을 말하지 못 해서 , 그늘이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할 때 찾은 곳이 바다였다 . 드넓은 푸른 바다가 마음에 들어와 자리 했다 . 말 없는 아이가 되어갈 때 , 바다는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기도 하 며 용기를 내라고 슬쩍슬쩍 말을 걸어왔다 . 그러더니 어느 날 부터는 많 은 말을 나누었다

 

“ 넌 뭘 두려워하니? ”

 

“ 나도 계속 공부하고 싶은데 ,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아 ”

 

“ 공부 안 하고 고민한다고 해결되지는 않잖아 . 이런저런 생각하지 말 고 공부에 집중해 .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밖에 없잖아 . ”

 

“ 아버지는 내가 공부하는 것을 젤 싫어해 . 공부하는 모습만 봐도 화내 고 , 불을 꺼 버리는데 . ”

 

“ 그럼 , 소설책이라도 읽어 . ”

 

용기 내어 책이 많은 친구와 어울리기 시작했고 , 책을 빌려 읽으면서 친구와 함께 하는 즐거움도 알아갔다 .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한국단편 과 세계문학에 빠져들었다 . 수학은 좋아했지만 국어 공부는 어떻게 해 야 하는지도 몰랐고 내용 이해도 힘들었던 내가 지금 글을 쓰게 된 것은 그때 읽은 책 덕분이다 . 바닷가에 앉아 바다를 향해 책 내용에 대해 이야 기 하면서 더 깊이 생각하고 곱씹었다 . 그때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 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공부는 계속해야 한다는 다짐을 했다 .

 

매일매일 찾은 바다는 변화무쌍했다 . 바다를 찾으면 자애롭게 바라보 기도 했고 , 몹시 들까불 때도 있었다 . 언제 보았느냐는 듯이 데면데면하 기도 했다 . 바람이라도 부는 날은 몰강스럽게 굴기도 했지만 그런 모든 바다가 좋았다 . 내 키보다 더 높은 거품을 물고 다가올 때는 강인한 힘을 느꼈다 . 나도 그렇게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가리라 다짐하며 어둠이 지 배한 청소년기를 이겨냈다 .

 

여름바다는 등불 같은 역할을 했다 . 오징어 배가 여름밤을 밝히며 수 평선에서 반짝이는 것을 보며 수평선 너머 세계를 꿈꾸었고 , 한줄기 희 망을 가슴에 품었다 . 언젠가는 더 큰 세상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 꿈을 이룰 수 있다며 버텼다 . 바다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말들을 나누다 보면 내 고민도 해결되었고 , 분노로 들끓었던 마음도 가라앉았다 .

 

6 · 25 때 월남하여 혈혈단신으로 산 아버지는 친척이 없다 . 왕래할 친척이 없다 보니 속초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 뉴스에는 온통 서울 소식 으로 가득한 그 시절 . 내게는 서울이 동경의 대상이었다 . 바다보다 더 넓은 곳이 서울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으니 . 내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이 서울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

 

이제는 속초로 돌아가는 것이 소망이다 . 이곳은 마음을 함께 해줄 바 다가 없으니 , 속초에 빨리 돌아가지 못하는 걸까 . 속초 바다가 그립다 . 바다를 하루도 보지 않고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시절 . 내 간절한 마 음을 함께 했던 곳 . 청소년기 고뇌를 잠재워 주었던 곳 . 언제나 그 자리 에서 어머니처럼 친구처럼 기다려 줄 것을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