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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2013년 [ 테마수필 - 이은자 - 양미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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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951회 작성일 14-01-20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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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미리도 생선 축에 들어가나?

 

그 무슨 불경스런 말이람 . 지난 12월 한 달 동안 양미리 축제까지 벌 이지 않았나 .

 

그렇다 . 금년 겨울 속초항에선 양미리 축제를 벌였다 . 양미리 소금구 이 , 양미리 음식 만들기 , 양미리 엮기 대회 등등 … .

 

날로 한산해 가는 어항(魚港)에 활기를 , 어부들에겐 팔아주기 , 또 관 광객들에겐 추억거리를 선사하고자 시작한 이벤트임엔 별 이견(異見) 이 없다 . 그 축제의 성공여부나 평가는 입장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으 리라 본다 .

 

축제라면 선뜻 흥이 나야 할 일이건만 그 대상이 양미리라니 어쩐지 서운한 감이 들었다 . 나만 그럴까? 거진항은 명태요 , 울진 강구는 오징 어 , 영덕엔 영덕게인데 어쩌다가 속초항에선 겨우 양미리 축제인가?

 

‘ 물고기엔 본래 값이 없다 ’ 는 말이 있다 .

 

바다가 밭이고 - 특별히 양식장 말고는 개인 소유가 아니다 - 물고기는 저절로 낳고 자라고 떼 지어 다니다가 잡혀온다 . 값을 매기자면 배와 어 구와 기름 그리고 사람의 수고비를 얹은 것이리라 .

 

어쨌거나 값으로 따지자면 양미리 만치 싼 생선도 없다 . 명태는 망선 태건 주낙태건 마리당 4 , 5천원 , 도루묵은 한 두름에 3만원도 받는다 . 배불뚝이 심퉁이(도치)조차 한 마리에 6천원 이상 받는다 . 그런데 양미 리는 한두름(20마리)에 3천원을 넘어본 날이 없다 . 생물로 팔거나 무청 우거지마냥 엮어서 팔거나 값은 거기서 거기다 . 제철에 팔지 못하면 승 산이 없는 생선이다 . 냉동보관 했을 때 그 비용을 능가할 만한 값어치가 없기 때문이다 .

 

축제가 끝나고 며칠 뒤에 나는 수복탑 앞 선창가에 나가 보았다 . 양미 리 배들은 새벽 6시경에 부두를 떠나고 있었다 . 몇 안 되는 배들만이 아 직 다른 목적 출어 준비를 하고 있었다 . 나는 양미리 배들이 돌아 올 때 까지 기다려 보기로 마음 먹고 시외버스 터미널 쪽 큰 길을 건넜다 . 건널 목에서 부터 막무가내 내 뒤를 따라오는 흰 강아지 한 마리 , 그냥 묵인한 채 나는 속초감리교회당 마당에 올라갔다 .

 

그 곳에 서면 시원하게 펼쳐진 동해가 있다 . 북쪽으로 천진 앞 바다 , 남쪽으로 낙산 곶까지 … .

 

등대 앞 바다 저만치에 점점이 배들이 떠 있다 . 7시 30분경 구름사이 로 일출이 보였다 . 앞발을 울타리 턱에 올려놓고 나를 따라 바다를 보고 있는 강아지가 황금색 강아지로 변해 있었다 . 둘러보니 내 옷도 황금색 이다 . 눈이 부셨다 .

 

우리의 아버지들이 잡아오던 그 옛날 양미리가 생각난다 . 한다하는 뱃사공들은 그까짓 ‘ 양미리 ’ 바리는 하지 않았다 . 그것도 고기바리냐 고 .

 

평퍼짐한 목선을 여나믄 명 되는 중늙은이들이 노를 저어 나갔다 . 이 물에 앉은 도사공 좌상 영감이 고기떼를 발견하면 추임새 같은 손짓을 한다 . 일제히 그물을 내린다 . 소위 ‘ 후리 ’ 로 양미리를 퍼 올렸다 .

 

그물이 뱃전에 당도할 즈음 눈치 빠른 갈매기들이 배를 감돈다 . 그물 의 출렁임에 따라 높게 또 낮게 날며 잽싼 놈은 그물코에 걸린 양미리를 낚아 채 갔다 .

 

어떤 녀석들은 배 위에 정지비행 하다가 어부가 버리는 잡어를 공중에 서 받아 물고 날아간다 . 그 때도 이 언덕에 서면 갈매기 떼를 보아 양미 리 배 위치를 알 수 있었다 . 퇴역 어부의 어눌한 솜씨로도 양미리 배는 자주 만선이었다 . 짚으로 한 두름 씩 엮어서 지금처럼 시장에서 팔았지 만 아주 소량이고 , 대대적으로 소비되는 곳은 따로 있었다 .

 

명태 주낙 미끼로 쓰기 위해 염장을 했다 . 그때는 겨울철 명태 잡이가 으뜸인 때여서 항구엔 데구리 배(저인망)는 몇 척 안 되고 주낙 어선이 빼곡하게 드나들었다 . 명태 낚시의 미끼로 양미리 외에 고등어 , 새치(이 면수)가 있긴 했지만 그것들은 염장을 해도 몸이 물러서 적당치가 않았 다 . 낚시 사공이 함지에 담긴 낚시를 바다로 뿌릴 때 쉽사리 떨어져 나가 기 때문이다 . 양미리는 염장을 하면 살이 단단하다 . 아무리 세찬 바람을 맞서 낚시를 뿌려도 끄떡 없이 낚시 끝을 감싸고 물속 깊이 내려앉아 명 태가 물게 한다 . 집집마다 양미리를 여러개의 독에다 염장해 놓고 긴 겨 울 내내 낚시를 찍는다 . 이듬해 춘태바리까지 .

 

그래도 남는 것은 춘궁기에 염분을 우려내면 반찬이 된다 . 엮은 양미 리는 겨우내 얼다 녹다 꾸덕꾸덕 적당하게 마른다 . 가난한 술꾼들에겐 안주로도 만문하다 . 성탄절을 준비하는 아이들이 밤마다 예배당에 모여 연극 , 노래 , 무용 등 연습할 적에 무쇠 난로 위에 구워먹던 군것질 감이 다 . 세월이 지나는 동안 변한 것이 어디 바다 사정뿐이랴마는 , 그 많던 명태는 어느 길로 다 가버리고 낚시 미끼 외엔 보잘 것 없는 취급받던 양 미리를 축제란 이름에 부쳐 띄우고 있는가 .

 

내가 긴 상념에 젖어 있다 보니 황금 강아지는 본래의 흰 강아지로 오 돌오돌 떨고 있었다 .

 

‘ 너 땜에 안 되겠다 . ’

 

나는 다시 그 선창으로 내려갔다 . 큰 길을 건너기 직전 , 녀석이 내게 따라붙던 그 지점에서 나는 단호하게 그 녀석을 따돌려 버렸다 . 배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

 

6 ~ 11톤급 유자망 동력선 , 선원 3 ~ 4명 승선 .

 

황덕불 지피고 있던 아낙들이 지금 막 정박한 배에서 그물을 당겨 사 린다 . 아낙들은 3 ~ 6인조로 그물코에 걸린 양미리를 벗겨서 광주리에 담 는다 . 한 광주리에 1만원 씩 수고비를 받는다 . 끝물이라 하지만 거의 빈 그물이다 . 이삭 줍듯 듬성듬성 꽂혀있는 양미리 .

 

내가 어릴 적에 본 어부의 형편이나 지금의 형편이 조금도 나아진 구 석이 없어 보인다 .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경제가 몇 번째 순위라고 하는데 양미리를 잡 아서 살아가는 우리네 어촌은 무관한 숫자에 불과하다 . 관광 속초를 내 세우고 있지만 생선이 없는 속초를 사람들은 여전히 와 줄까? 어부들이 모두 떠난 속초가 속초일 수 있을까?

 

시(市)에서는 조만간 양미리 저장 시설에 관해 논의 중이라는 소식이 있다 . 그렇게 되면 정말 좋으련만 ….

 

싸늘한 새벽에 출어한 어부들 . 쓸쓸한 아침으로 입항했다 . 그럼에도 서로에게 농담과 덕담을 주고받는다 .

 

옛날보다 따스하게 입은 어부의 입성하며 , 아낙들의 산듯하게 화장한 얼굴 , 머리카락 곱게 빗어 올린 단정함 , 그들의 웃는 얼굴에서 속초의 건 강한 미래를 보았다 . 나는 그 아낙들이 건네는 따끈한 커피 한잔을 받아 마시며 조금은 아픈 마음을 가라 앉혔다 .

 

내년 이맘때 풍어로 맞을 양미리 축제를 기대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