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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2014년 [ 수필 - 최월순 - 예술가의 삶과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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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983회 작성일 15-01-08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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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삶과 사랑 시인 아폴리네르와 화가 로랑생

 

에펠탑, 센강, 미라보다리, 몽마르트르, 상젤리제, 파리를 생각하면 떠 오르는 단어들이다. 그중에 파리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꼭 가보고싶어하 는 곳은 에펠탑과 미라보 다리라고 한다. 많은 작가들이 에펠탑과 센강에 대해 묘사하고 미라보다리의 연인들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미라보다리 는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로 인해 더욱 유명해졌다.

기욤 아폴리네르는 프랑스의 시인이며 평론가로서 로마에서 출생하였 고 파리에서 사망하였다. 『알코올』(1913), 『칼리그람』(1918) 등의 시집 으로 널리 알려졌고, 20세기초 전위미술이론가로도 큰 역할을 하였다. 피카소의 친구이기도 한 아폴리네르의 연인은 화가 마리 로랑생이었다.

그는 로랑생을 “이보다 더 사랑할 수 없는 사랑”이라고 불렀다.

아폴리네르는 피카소의 소개로 마리 로랑생을 만나 폭풍과도 같은 열 정적인 사랑에 빠져들었다. 더구나 서로의 예술에 있어 떼려야 뗄 수 없 는 서로의 뮤즈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둘은 ‘예술가다운’ 격한 성품으 로 많은 다툼 속에서 5년을 넘기지 못하고 헤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미라보다리

 


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이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르는데
나는 기억해야 하는가
기쁨은 늘 괴로움 뒤에 온다는 것을

 

밤이 오고 종은 울리고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있네

 


서로의 손을 잡고 얼굴을 마주하고
우리들의 팔이 만든
다리 아래로
영원한 눈길에 지친 물결들 저리 흘러가는데
밤이 오고 종은 울리고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있네

 


사랑이 가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이 떠나가네
삶처럼 저리 느리게
희망처럼 저리 격렬하게
밤이 오고 종은 울리고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있네

 


하루하루가 지나고 또 한 주일이 지나고
지나간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네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은 흐르고

 

밤이 오고 종은 울리고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있네

 

그러나 아폴리네르도 로랑생도 평생 그 이별의 아픔을 벗어나지는 못 했다고 전해진다. 서로를 원망하며 이별을 한 이듬해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아폴리네르는 자진 참전하였고, 로랑생은 만난 지 일 년밖에 안 된 독일인 귀족과 결혼을 한다. 그러나 그 후 아폴리네르는 어느 날 전쟁 에서 얻은 상처와 독감으로 갑자기 사망하였다. 아폴리네르의 사망 소식 을 들은 로랑생은 한동안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후에 로랑생은 이혼을 하였고 여러 애인을 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오직 자신의 삶에만 열정을 다했다. 다만 아폴리네르만 생각하면서.

열정적인만큼 서로에게 가혹했던 예술가의 사랑, 그리워하면서도 만나 기만 하면 어긋나는 다툼, 사소한 것에도 눈물의 줄기를 건드리는 대화.

두 사람 모두 뛰어난 예술가였기에 피할 수 없었던 격한 감정들로 인해 서로는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의 그림을 보면 격정적이고 열정이 넘치는 사랑의 아픔을 겪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녀의 그림에 나오는 소녀들은 늘 부드럽고 유려한 색채로 묘사되어 있어 꿈처럼 곱고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그녀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이렇게 고운 그림을 그린 그녀의 아픈 사랑 이 안타까울 뿐이다.

 

 

 

김명원의 시와 신윤복의 그림

 

조선 선조 때 문신인 김명원은 학문이 깊어 이름난 문장가이기도 하고 활쏘기와 말타기, 병법에도 두루 능해 임진왜란 때 팔도도원수로 큰 공을 세운 무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도 젊었을 땐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착으로 자신의 감정을 어찌할 수 없어 한 밤중에 여자를 찾아간 적이있습니다.

한 소설 속의 이야기는 이렇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김명원이 젊은 시절에 한 기생을 사랑했다지…

그 기생이 권문세가의 첩이 되어 떠나자 그는 애틋한 정을 가누지 못하고

연인을 만나기 위해 그 집 담을 넘었다지…”

사랑에 빠진 김명원이 지은 시는 이렇게 전해집니다.

 

창밖에 비 내리는 삼경 (窓外三更細雨時)

두 사람 마음은 두 사람만 알겠지 (兩人心事兩人知)

보내는 정 아쉽기만 한데 하늘은 밝아오네 (歡情未洽天將曉)

다시금 옷자락 붙잡고 뒷날의 기약을 묻네 (更把羅衫向後期)

 

그러나 그는 그 집의 종자들에게 붙잡혀 주인에게 끌려가 무릎을 꿇는 신세가 됩니다. 마침 그의 형이 그 소식을 듣고 찾아가 하찮은 계집의 일 로 장차 큰 인물이 될 아우의 몸을 상하게 할 수 없다고 간곡히 부탁하여 풀려나오게 됩니다.

사랑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 그는 그의 형이 말한 대로 그의 사랑을 ‘하찮은 계집의 일’로 여겼을까요? 역사에 두루 이름이 남은 문신이며 무 신이었던 그의 여자에 대한 이야기는 찾을 수가 없으니 그 대답은 미궁일 수밖에요.

 

조선 영·정조시대의 풍속화가이며 김홍도, 장승업과 함께 삼원(三園) 으로 불린 신윤복의 그림 가운데 ‘월하정인月下情人’이라 불리는 그림이 있습니다.

이 그림은 간송미술관에 보관돼 있는 국보 135호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에 수록돼 있습니다. 그림에는 달이 떠 있고 담장 옆에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서 있습니다. 발길을 돌려야 하나 몸은 사랑하 는 정인을 향해 서 있습니다.

이 그림에는 다음과 같은 화제가 적혀있습니다.

 

月深深夜三更(달빛 어두운 삼경)

兩人心事兩人知(두 사람 마음은 두 사람만 알겠지)

 

같은 삼경의 마음을 그렸지만 김명원의 마음에는 비가 내리고, 신윤복 의 마음엔 달빛이 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