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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2014년 [ 수필 - 박성희 - 수능 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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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563회 작성일 15-01-08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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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을 만났다. 그녀들이 백일기도 다닌다고 한다. 고3인 아이들을 위해 아는 사람 따라가게 되었단다. 절은 지나가다 둘러본 게 고작이라는 그녀들이 매일 백팔 번씩 절을 하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무릎과 팔목 이 아파서 파스를 붙였는데 요령이 생겼단다. 아이들이 재수하지 않고 대 학에 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는 그녀들이 아 름답다.

 

평소 운동을 싫어하는 그녀들이 두 손 모아 앉았다 일어서기를 매일 백 팔 번 한다니 짠하다. 절을 하다 보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데, 너무 힘들어서 수능시험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도 아이들이 공 부할 시간을 더 갖는다면서 백 일은 더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오십 일 기도하니 뱃살이 들어갔는데 아이들 성적은 오르지 않는 다고 안타까워한다.

 

그녀들은 올 초만 해도 유명하다는 철학관이 있다고 하면 한걸음에 달 려갔다.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거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데, 입학해도 만 족하지 못하고 재수할 거라는 소리만 한다고 낙담했다. 기도를 시작하더 니 공부하는 아이들보다 더 열심이다. 추석에도 절에 다녀왔다. 아이를 위해 기도밖에 해 줄 게 없다는 말에 몇 년 전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온다.

 

나도 큰 아이가 고3이 되자 무조건 교회를 찾았다. 한 번도 교회에 간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간절함이 나의 발걸음을 이끌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았다.

 

기도하세요라는 말은 기도하면 하느님이 들어준다는 말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아들이 수능시험 잘 보게 해달라는 오로지 한 가지를 주문 외우듯 반복했다. 들어줄 것 같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한 달 두 달 지나면서 기도 내용은 달라졌다. 아이가 노력한 만 큼 성과가 나오기를, 적성에 맞는 공부를 하길, 최고의 대학이 아니라도 아이만 만족하면 된다고, 어떠한 결과에도 아이가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기를.

 

아들은 고3 때도 집에서는 책을 펴지 않아 내 속만 바짝 타들어 갔는데, 기도 덕분에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집에서는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라고 여기며 묵묵히 지켜봤다. 일 년 동안 주일 예배를 빠지지 않 고 다녔지만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 오히려 수능 시험을 평상시보다 못 봤다. 그렇다고 내 기도가 부족했다거나 신이 없어서라고 여기지 않는다. 수능시험이 어려웠더라면 집중하여 잘 봤겠지만 쉬운 문제에서 자만하는 아이 성격 탓으로 여긴다.

 

둘째가 고3인 다음 해도 주일마다 교회 문을 두드렸다. 수능 보는 당일 에는 수능기도에도 참여했다. 언어, 수리, 외국어, 과학탐구, 제2외국어 시간에 맞춰 저녁 여섯 시까지 어머니들과 함께 기도실에 있었다. 기도가 아이에게 에너지를 보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둘째는 수능시험에서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하지만 기도 의 힘보다는 큰 시험일수록 집중 잘하는 둘째의 특성으로 본다.

 

두 해를 아이들 수능 공부하는 것 지켜보면서 불안이나 초조함 없이 지냈다. 교회에 가기 전까지는 기도해 본 적이 없었고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기도를 통해 겸손을 배웠고 원하는 것을 말하기 보다 아이의 마음을 보려고 노력했다. 고3에게 공부하라는 말은 독이 된 다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 기도하는 시간은 내 욕망과 욕심보다는 아이의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나를 내려놓고 오로지 아이의 마음에 집 중하는 시간이었다.

 

기도가 소원을 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음이 바뀔 수 있다. 내 면이 평온해지며 과욕을 부리지 않고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아이를 위한 기도의 문은 아이에게 열려있다. 그러기에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전해진다. 아이와 엄마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엄마가 아이에게 집중 하고 있을 때는 엄마와 아이의 마음은 하나로 연결돼 있다. 그런 의미에 서 아이를 위한 기도는 효과가 크다. 엄마의 간절한 마음은 아이에게 긍 정의 에너지로 전해지는 것이다.

 

기도하는 마음은 여유가 생긴다. 여유가 있을 때 하는 말은 부드러워서 듣는 사람도 편안하다. 또한,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킨다. 마음을 정화하 고 비우는 작업이다. 그 순간은 무엇보다 순수한 영혼을 만날 수 있다. 진정한 기도는 바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해야겠다고 말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기도는 종교를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않다. 그냥 마음을 비우며 간절한 마음이면 된다. ‘시크릿’이란 책은 말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우주로 계속 보내면 그 에너지가 다시 우주에서 보내진다고. 그래서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언젠가 이루어진다고. 기도의 원리가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녀들도 기도를 통해 곧 마음을 비우고 평온을 찾으리라. 그녀들의 아이들도 마음의 평온을 찾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