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뫼 호수별 보기

44호2014년 [ 수필 - 노금희 - 낙산 올레 ]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574회 작성일 15-01-08 17:11

본문

아주 오랜만에 지인들과 만나 저녁을 먹기 전에 낙산사로 향했다. 자동 차로 5분 거리인데 가까이 두고도 자주 찾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 기도 하다. 관동팔경의 하나이고, 관음성지라고 불리는 대중적인 소개를 뒤로하더라도 낙산사는 내 학창시절과 딸아이 어렸을 때는 소풍1번지였다.

 

낙산사로 가는 길은 바닷가 길과 홍예문을 정문으로 가는 두 가지 방향 이 있는데, 우리는 오랜만에 정문 쪽으로 향했다. 산불이후 낙산사는 계속 변하고 있다. 홍예문으로 오르는 소나무 숲길을 올라가자 다시 주차장 으로 길을 내어 차를 세워놓고 걸어갈 수 있도록 바뀌었다. 낙산배나무 과수원을 지나 솔숲사이로 걸어갔다.

 

낙산배는 양양 명품배로 그 맛이 뛰어나 나라에 진상되면서 낙산배라 고 명명되었다고 한다. 낙산배는 기온의 일교차가 심하여 당도가 높고 과 즙이 많아 지금도 가을철이 되면 양양송이와 함께 미식가들의 입을 즐겁게 하고 있다. 오래전엔 일부 과수농가가 사하촌으로 있었지만 지금은 과 수원만 남아 낙산배 이야기를 담고 그 자리에 있다.

 

어디든 산사는 산속 깊숙이 있어 찾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또한 고즈넉이 접어들어 가다보면 자연과 하나 됨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낙산사는 작은 봉우리들이 있는 산을 굽이굽이 넘나들며 푸른 동해바다와 함께 그 자리를 지켜왔다. 나는 특정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사찰여행을 좋아해서 여러 곳을 다녀보았는데 일주문을 지나 사찰에 이르기까지의 자연숲을 좋아한다.

 

내소사와 월정사의 전나무 숲, 그리고 개심사의 계곡 물소리와 소나무 숲길도 좋았다. 산 능선을 타고 올라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기대감으로 오솔길을 걸었던 보리암을 기억하는 일도 즐거웠다. 자연의 소리와 수목 의 내음이 세르토닌을 한층 올려주는 기분 좋은 산책이 된다.

 

더불어 사찰마다 다른 가람배치를 보고 오래된 건축물과 문화재를 함 께 볼 수 있는 곳이 사찰여행이 아닌가 한다.

 

 

 

내가 낙산사를 가까이 두고 살았으니 참으로 인연이 많다. 누구나 문학 소녀였던 고교시절 낙산사 경내에서 진행된 의상백일장을 통해 문학과의 만남이 시작 되었다. 고교 때는 친구와 의상대 일출을 보기위해 가을 새 벽에 자전거를 내달려 의상대에 올랐던 기억도 새롭다. 그때는 학생들의 교통수단이 자전거였던지라 여학생들은 남자 동기들의 자전거를 빌려 타 고 어둑한 코스모스 길을 달려 의상대에 올랐다. 그때는 새해 첫날이라고 일출 보려는 인파가 지금처럼 몰려들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에겐 의상대 일출구경이 대세였고 고교시절 추억의 한 자락으로 남아있다.

 

뚫어져라 수평선을 응시하던 눈을 지루함에 잠시 딴 곳으로 돌렸을 때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졌다.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수평선에서 바다의 문을 열고 나온 손톱만큼의 황금덩어리는 금세 여기저기 일그러지는 듯 타원형을 만들었다. 서서히 빛을 내더니 거대한 황금알을 바다 위로 토해 내었다. 일출의 설레임과 멋진 광경을 가슴에 품고 아스팔트 도로변을 휘 젓고 돌아왔다.

 

원통보전과 해수관음상 사이의 오솔길은<꿈이 이루어지는 길>로 이름 을 붙였다. 자비의 화신으로 관세음보살은 동해, 서해, 남해에서 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동해안의 낙산사 홍련암, 남해의 보리암, 서해 강화의 보 문사인데 기도하면서 마음을 모으면 이루어지는 곳이라 하여 많은 불자들이 찾는 이유 있는 사찰인 것이다. 홍련암 마루바닥의 작은 유리창을 내려다보며 절벽으로 드나드는 파도에 힘든 일상을 날려 보냈다.

 

해수관음상이 처음 세워졌을 때 커다란 불상을 보기위해 부모님을 따 라 낙산사를 찾았었다. 어린 시절의 그 조그만 몸짓으로 돌아가 다시금 해수관음상의 미소를 바라보며 탁 트인 바다를 굽어 보았다. 의상대와 해 수관음상에서 보는 조망, 남쪽으로 해수욕장의 긴 백사장과 남대천 하구 까지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바다를 향해 놓여진 작은 벤치에 앉아 있는 부부의 뒷모습에 그들의 삶이 엿보인다. 바쁘게 달려온 이들이 한적한 바닷가 산사에서 드넓은 푸른 동해바다를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소소한 일상이 내 귀에 들려오는 듯 했다.

 

 

 

2005년 봄날의 산불이후 많은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조금씩 회복되어 푸르름 속에 있는 낙산사. 벌써 10년의 시간이 되어간다. 화마를 아슬하 게 비껴간 홍련암과 의상대를 함께 지켜가는 외로운 노송이 푸른 바다와 함께 넘실거린다. 복원을 시작하면서 낙산사를 찾는 관광객에게 따뜻함을 제공하는 무료 국수공양을 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잔치국수의 따뜻함으로 허기를 채워주는 일은 자원봉사 하시는 분들의 노고가 있기 때문이다.

 

가까이에 좋은 것을 두고 있으면 중요함을 느끼지 못하고, 아름다움도, 감동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가까이 있는 바다가 그렇고, 설악산이 품고 있는 모든 자연이 그렇다. 또한 가까이 있는 낙산사도 그렇다. 연암 박지원이 양양 부사로 있다가 한양으로 돌아갔을 때 재임 시 녹봉을 이야 기 하면서 ‘3000냥은 돈으로 받았고 1만 냥은 양양 땅의 경관으로 받았 다’고 하였다. 이미 그 시절 이곳의 경관을 높이 산 연암의 안목과 여유 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가까이 있는 낙산사, 나는 마을이라고 하고 싶다. 누구나 편하게 들러보는 관세음의 마을. 올레 길처럼 관세음의 마을을 골 목골목 다니면서 연암의 그 여유를 찾아보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