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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2014년 [ 시 - 정영애 - 창신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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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114회 작성일 15-01-12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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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무 살의 빈한했던 과거가 드디어 사라졌다
오래된 가방을 정리하듯
거꾸로 시간을 털어내면 축축한 창신동이 쏟아져 나온다
가난의 원단 같은 원단들을 쉴 새 없이 재단하고
봉제공장 소녀들이 삼삼오오 미싱 소리로
출퇴근하던 해쓱한 골목길
해가 지면 짙은 화장을 하고 어디론가 출근하던
문간방 언니
옷 갈아입듯 남자를 바꾸던 캬바레의 늙은 여자
창신동은 불량한 언니처럼 내게 늘 가출을 부추겼다


라일락이 피었던가
첫사랑은 치통처럼 찾아왔고
나는 재빨리 창신동을 다물었다
그와 헤어지는 시간이면
언제나 집보다 몇 정류장 지나 버스에서 내렸다
카바이드 불빛 아래
테이프 파는 리어카에선 ‘우리들의 이야기’가
수수꽃다리처럼 떨어지고
첫사랑은 끝내 창신동을 모른 채 나를 떠나갔다
나도 생니를 앓듯 몇 번의 봄을 앓았다


올해 지봉로 5길 도로명 주소 속으로 사라진 창신동
미싱 소리 여전히 창신동을 박고
내 스무 살도 아직 욱신거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