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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2014년 [ 시 - 정영애 - 나는 뒤통수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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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477회 작성일 15-01-12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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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에 어머니를 모셔다 놓고 나오는 날
영금정 앞바다 파도가 몇 차례 바위의 뺨을 후려쳤다
누워만 있다는 이유로
똥오줌을 받아내야 한다는 이유로
충분히 모실 수 있었지만
충분히 모실 수 없는 이유를 백가지쯤 만들어
헌 보따리처럼 요양병원에 맡겨놓았다
맡겨놓는다는 것은 언젠가 찾을 일이지만
생의 마지막이 아니고서야 찾지 않을 것임을
혼자만 아는 비밀처럼 꼬깃꼬깃 쥐고
매달 어머니의 보관비를 카드로 긁었다
같잖게 가끔 마음 아파서 들여다보는 병문안이
살아 계신지, 돌아가셨는지 확인하는 것 같아
화들짝 부끄러워 아기가 된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아본다
항문에 똥 한 덩어리 달고서도
내 손을 놓지 않는 천진난만한 어머니를 재우고
요양병원 나서는데
바람이 자꾸 내 뒤통수에 불어대
아예 뒤통수를 버렸더니
병상에 누운 어머니
오늘은 내 뒤통수를 쓰다듬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