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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2014년 [ 시 - 신민걸 - 환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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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868회 작성일 15-01-1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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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눅이 들었던 거야, 새파랗게 젊은 아버지, 술도 담배도 친구도 없이, 만만찮게 고요한 분홍이 되려고 했지만, 엄두도 내지 못했던 거야, 높은 담벼락 위로는 몹쓸 하늘이 두려워 보였고, 낮은 담장으 로는 흐드러진 꽃이 꾸역꾸역 흘러내렸던 거야

제라늄을 샀어, 비가 오지 않아, 바람이 불어, 제라늄 향을 잊기 로 해, 비 온다는 말도 잊어, 비가 소리로만 와, 환청이 아닐 거야, 자고 나면 알겠지, 벌레처럼 굴을 파는 막장이라 아침이 오지 않을 수도 있어, 제라늄이 없어

딱 서른까지만 살고 싶을 때가 있었지, 일월과 이월과 삼월이 한 꺼번에 떠나간 날 아침이고, 건성의 시간이었어, 꽃을 꽃으로 볼 것 인가, 꽃이 아니라 볼 것인가, 매화가 피고, 앵두꽃이 피고, 참꽃이 피고, 벚꽃이 피고, 꽃 핀 자리마다 꽃 핀 기억을 말끔히 지우던 때 였지

나무는 해를 바라고, 꽃잎은 너를 바라고, 나는 무엇을 바라나, 사월아, 바람이 차다, 자전거라도 태워줄까, 아침마다 기지개가 필 요한 날들이었어, 바싹 마른 서른, 넌 다 알고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