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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2004년 [시-박명자]소문을 밀어 올리는 겨울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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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갈뫼
댓글 0건 조회 2,995회 작성일 05-03-26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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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겨울 나무들은 꼭 한밤중에
몸을 흔들었다

참다 참다 더는 참지 못하는 상한선에서
가지마다 일제히 눈꽃을 피워 올렸다

그리하여 혼신의 힘으로 세상의 소문들을 밀어 올렸다
마을 사람들은 떨어지는 눈꽃을 보며
너무 말을 낭비한다고 중얼거렸다

사라짐과 나타남을 반복하는 눈꽃들
찢기고 찢긴 누더기 같은 세상의 말
천상의 눈물 같이 순수한 말
지붕 위에 한 장 한 장 떨리웠다

그것들은 다시 낙화보다 고운 지폐가 되어
공중에서 반원을 그으며 선회하다가
이윽고 조용한 자결을 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