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호2014년 [ 시 - 김춘만 - 녹조를 닦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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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항 속의 녹조를 닦는다.
푸른 막은 얇은 속옷처럼 벗겨져 내리고
투명해진 어항 속에 알몸 물고기 두어 마리 헤엄친다.
바깥세상을 내다보지 못하던 물고기와
어항 속을 들여다보지 못하던 나는
오랜만에 두 눈을 마주한다.
내 눈 점차 눈이 흐려짐은 모르고
세상 탓만 했구나.
당신과의 사이가 뜸해지는 것도
누구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내 마음에 녹조가 자라고 있었구나.
어항 속의 녹조를 닦으며 안다.
바깥에 봄이 와도 맞이하지 못하는 가슴에는
겨울의 두터운 자락이 깔려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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