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뫼 호수별 보기

44호2014년 [ 초대시 - 고형렬 - 꼭 속초 모래기 우체국 같은 ]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645회 작성일 15-01-13 14:06

본문

* 자신에게
강제로 외부 공기를 안으로 밟아 넣는다
바람이 빠진 타이어는
몇 번 펌프질에 말랑말랑해진다


벌어지다 닫히고 벌어지다 닫힌다 입술처럼
압력을 가할 때만 숨 가쁜 구멍은 열린다


그 앞에서 가을을 본 적 있니?
채울 수 있는 공기는 얼마든지 있단다
네가 서 있는 주변을 둘러보아라


해돋이 쪽으로 내려가려니 의복이 간소해진다
손발에 붙는 것이 없다
자전거와 나 하나, 그리고 물결
새살림 차리는 사람은 과거를 버려야 한다


* 타자에게
사람을 만나는 일처럼 즐거운 것이 없다
사람과 함께 사는 일보다 큰 고난이 없다
얇은 고무입술 사이로 가을과 시간이 이중주를
시작한다


삶을 소비하는 것은 삶을 즐기는 일이다
등짝에 떨어지는 번갯빛도
슬픔이 될 때까지의 삶의 시작
액정화면 밖에서 하나의 언어로만 조립되려는
한 남자의 생에게
서슬 푸른 문자는 날아오지 않는다


모두가 자신에게 돌아가고 있는 시간이다
자전거 한 대가 가을볕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