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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2014년 [ 추모특집 - 독후감 - 박성희 - 함께 하는 삶 - <갈매기 집>을 읽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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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701회 작성일 15-01-13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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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 집>은 속초를 떠올리게 한다. 바다는 날씨에 따라 돌변한다. 약간의 바람에도 요동친다. 세찬 바람이 부는 날은 두려워서 바다 가까이 갈수 없다. 멀리서 달려오는 파도는 두려움을 넘어서는 공포를 안겨준다. '할머니의 치맛자락처럼 조용하고 어머니의 품속처럼 안온하기만 하던바다가 천둥이 치듯 바람이 쏟아지면 산더미 같은 파도 밭이 되고 육중한 배라도 선풍기 앞의 파리처럼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장면에서 생각에 잠겼다. 겨울에 바람까지 분다면 한길태가 탄 명태잡이 배는 돌아오기 힘들겠다는 안타까운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자정쯤 한길태가 큰
동태 두 마리를 가지고 최 여인의 갈매기 집을 찾은 것이다. 산더미 같은 파도를 이겨내고 살아왔다. 구사일생이다. 그런데도 명태를 챙겨온 그 모습을 통해 최 여인에게 향하는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따뜻하다. 이런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일 것이다. 작은 것을 챙기고 걱정해 주는 마음. 명태를 내미는 한길태에게 오히려 최 여인은 낭비한다고 핀잔을 준다. 한길태가 돌아오지 않자 걱정하며 안절부절못했던 최 여인. 해장국도 팔지 않고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렸던 그녀다. 그런 마음을 내색하지 않고 핀잔이라니. 하지만 한길태를 걱정하는 깊은 마음에서 한 말이다. 한길태와 최 여인은 속초에 정착한 피란민들의 삶이었을 것이다. 한 마리갈매기로 떠돌다가 부두에 정착하여 의지하며 살아가는 갈매기들처럼 그렇게 정붙여 살아냈을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아버지도 그렇게 살아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 가족이 속초에 둥지를 틀게 된 것은 내가 중1 때였다. 아버지 친구분들은 서울에 정착했지만, 북에 남은 가족이 그리워 차마 떠나지 못했다. 혼자 바다를 배회하는 갈매기처럼 처량했다. 월남한 사람들이나 피란민들과 어울려 살았더라면 덜 외로웠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아버지는 함께 사는걸 원치 않았다. 그래서 현재의 삶에 충실하며 더불어 살아가려는 최 여인과 한길태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시골에서는 넓디넓은 집 두 채에서 살았다. 그런데 속초에서는 집부터 소우리였다. 성냥갑을 나열하여 붙여 놓은 것 같은 새마을 집으로 이사했을때, 처음에는 답답했다. 그래서 난 바다에 매일 나갔다. 모르면 약이요 알면 병이라고 했다. 태풍으로 침수되어 국가에서 재해주택을 지어준 곳이라는 소리를 들은 후부터는 불안한 마음으로 살았다. 어린 마음에 태풍이 불면 바닷물이 마을까지 덮칠까 두려웠고, 논 천 평을 팔아 마련한 집이 바다에 잠겨 없어질까 걱정이었다. 태풍이나 폭우가 쏟아지는 날은 깊은 잠을이루지 못했다. 산더미 같은 파도가 덮칠까 조바심을 냈다.


속초는 해일로 청호동과 대포동까지 바닷물이 잠긴 곳이다. 잔잔하던 바다가 표범처럼 변하는 것을 자주 봤다. 바람이 불면 바다는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쳐다볼 수도 없다.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그런 바다 주변에서 최 여인과 한길태는 서로 의지하며 거친 파도를 이겨냈으리라.


부둣가의 뱃사람들이 새벽이면 모이를 찾는 갈매기 떼처럼 몰려나갔다가 갈매기 집으로 몰려든다는 부분에서 한 마리의 외로운 갈매기를 떠올렸다. 이 책에 갈매기들은 의지하며 사는 부둣가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