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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2014년 [ 추모특집 - 단편소설 - 윤흥렬 - 갈매기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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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890회 작성일 15-01-13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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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하루 종일 몰아붙이는 바람은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전 시내의 간판이란 간판은 그리고 함석지붕이란 지붕은 모조리 날려 가는지 와당탕 쾅 쿠르릉 거리는 소리에 뒤섞여 전선을 스치는 바람소리는 살을 에일 듯 매섭다. 하늘이 무너진들 내게 무슨 상관이랴는 듯 언제나처럼 최 여인은 소의 사골을 도끼로 짓이겨 가마솥에 털어 넣고는 양동이에 가득히 응결된 쇠선지를 국자로 숭덩 숭덩 떠서 역시 가마솥에다 잽싸게 넣는다. 그러고 나서는 또 다른 양은함지에 헹궈 놓은 시래기를 역시 같은 가마솥에 쏟아 넣는다. 펄펄 끓던 국물이 피시식 소리와 함께 총소리에 놀란 참새떼처럼 이내 잠잠해진다. 또한 천정을 밀어 올릴 듯이 솟아오르던 김이 사그라지면서 백열전구가 선명하게 빛나기 시작한다.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올제의 일기를 점쳐 본다. 유리 빈지문이 여전히 덜커덩거리고 옆집 진주옥의 간판이 기어코 떨어져 나가는지 우르르 콰광쾅 하는 소리가 사뭇 살기를 머금었다. 전선에서도 여전히 고장 난 사이렌 소리처럼 불규칙적으로 그러나 예리한 칼날을 허공에 휘두르는 듯 소름이 끼치는 소리가 난다. 경험으로 보아 이런 풍세로는 올제 새벽엔 도저히 명태잡이 배들이 못 나갈 것 같다. 그렇다면 해장국을 서둘러 끓일 필요가 없겠다. 망설이다가 아궁이의 연탄 통기구멍을 거의 막았다. 그러면서 아까부터 궁금한 것은 한태길의 소식이다. 손목시계를 보았다. 자정이 넘어서고 있다. 마침 통금사이렌이 거센 바람에 기가 꺾였음인지 가냘프게 들려온다. 이렇게 되면 한 태길이 오지 못하리라고 단념이라기보다는 이해를 하면서도 허전하다. 그리고 궁금하다.

(왜 안 왔을까)
그리다가 문득 불길한 생각이 최 여인의 머리를 스쳤다.
(설마... 그럴리야 없겠지만... 배가 여직것 안 들어 왔다면... 별일 없 겠지만... 그러나 이상하다.)
짐짓 그런 요사스런 생각은 안 하기로 했다.
할머니의 치맛자락처럼 조용하고 어머니의 품속처럼 안온하기만 하던 바다에 그야말로 지동 치듯 바람이 쏟아지면 산더미 같은 파도밭이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는 판이면 아무리 육중한 배라도 선풍기 앞의 파리처럼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러다간 2, 3년에 한번 씩은 떼초상이 나고 떼과부가 생긴다. 이러한 참상을50 가까운 생애에 최 여인은 여러 번 보아 왔고 자신이 당하기도 하였다.

이웃 마을에 제법 큰 목선을 가지고 있는 어부에게 시집을 간 것이 열일곱 살 그리고 2년이 지나가던 해 겨울에 과부가 되었다. 그 해에는 명태가 유난히도 많이 났었다. 운명의 그날도 이렇듯 바람이 휘몰아쳤었고 물 묻은 손가락이 문고리에 쩍쩍 들러붙는 이런 겨울밤이었다고 최 여인은 생생하게 회상을 한다. 이른 저녁을 먹고 남편은 두 탕 째 명태잡이를 갈 참이었다. 첫돌을 며칠 앞에 둔 갑식이를 들쳐 업고 남편의 밥을 차려 주고는 선창가에 부려 놓은 명태를 시부모와 함께 이고 지고하여 집으로 끌어 들이는어중간에서 남편을 만났다. 시부모들에게 민망스러워 그만 두라는데도 남편은 최 여인이 무겁게 이고 있는 명태 함지를 덥석 들어 내려놓고는 포대기를 비집고 갑식이의 손목을 끌어내 제 볼에 비비며 (이 손목은 딱 제미 <제어미>손목을 닮아 포동포동 하구나) 하였을 때 최 여인은 부끄럽고 흐뭇하고 즐거웠었다. 자기도 뭔가 응수를 하고 싶었다. 오가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그러나 우뚝한 코, 너무죽한 입은 당신을 그대로 판에 찍어 놓은 것 같으지비)했을 때의 화끈하던 얼굴의 감각은 지금도 생생하다.그날 밤 돌풍이 불어 닥쳤다. 서너 시간의 돌풍은 큰 바윗돌로 짓찧듯이 수 많은 배들을 짓 부숴 놓았고 숱한 어부들을 바닷물 속에다 쑤셔 넣었다. 최여인은 남편의 시체도 뱃조각도 건지지 못하였다. 최 여인의 많은 친구들은 아직 시집도 안 가고 있는데 최 여인은 한 아들의 어머니이며 과부가 된 것이었다. 근 2년 가까운 결혼 생활이 즐거웠었다. 건강한 남편이 철철이 생선을 많이 잡아 들였다.큰 부자는 아닐망정 남에게 아쉬운 소리하러 갈 처지도 아니었다. 남편의 애무를 받을 때 한없는 희열을 느꼈고 남편의 옷을 빨 때엔 콧노래가 흘렀다.
갑식이에게 젖을 먹일 때 갑식이를 가운데 눕히고 부부가 마주 누워 널 닮았느니 날 닮았느니 할 때는 온 세상을 독차지 한 듯한 즐거움이었었다. 그렇게 때문에 결혼생활 2년이 불과 한 두 달처럼 꿈결처럼 획 지나 갔는지도 모른다.
오늘 이 바람은 아침 먹고 나서부터 그러니까 명태잡이 배들이 나간 지대여섯 시간이 지난 다음부터 몰아치기 시작하였다. 대부분의 배들이 들어 온 것 같다. 최소한도 이 갈매깃집의 단골손님들은거의 다들 다녀갔다. 그리고 보니 한 태길이가 타는 배의 선원들만 안다녀갔다. 그렇다면 그 배가 안 들어 온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최 여인은 다시 한 번 불길한 생각을 털어 버리기라도 하는 듯이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부엌의 전등을 끄고 목로청으로 나섰다. 방에서 자는 줄만 알았던 복남이가 드럼통 화덕에 엎드려 골아 떨어졌다. 한 손엔 행주를 쥔 채로였다. 측 은한 생각이 들었다.
<복남아>
행주를 뽑아내며 등을 흔들었다.
<..........>
<복남아 일어나라 방안에 들어가 자라... 에이?>
복남이는 실눈을 뜨고 최 여인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방에 들어가라는 독촉을 받고는 일어서서 기지개를 키는데 가슴이 눈에 띠게 불룩하다. 최여인의 눈에도 새삼스러웠다. 복남이의 나이가 열일곱 자신이 시집가던 나이라고 생각하니 앞가슴이 불룩한 게 당연하다고 생각 되었다.

방으로 비척 저리며 들어가는 복남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최 여인은 대견한 듯하였다.목로청에는 다섯 개의 드럼통 화덕이 있다. 최 여인은 그 하나하나의 통기구멍을 살펴보았다.
(?)
유리 빈지문을 요란하게 두드리는 소린데 아무래도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는 아닌 것 같다.
<문좀 열어!>
(쳇, 헝, 갈라 새끼로구나)
최 여인은 첫마디에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았다. 그러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 하면서 큰소리로 물었다.
<뉘기요?>
<나야 나, 춰 죽겠어. 빨리 문 좀 열어줘>
두었다 보아도 건방진 갈라 새끼라고 생각하였지만 그래도 장사의 방편상 광목 커튼을 제치고 내다보았다. 차 금철이가 외형을 분간키 어려울 정도로 오버와 목도리와 마스크와 방한모로 휘 감긴 채 서 있다. 골목 건너 외 등 언저리엔 함박 눈송이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보니 길에도 발이 묻힐 정도의 눈이 쌓여 있었다.
<최마담, 나야 빨리 문 좀 열어줘 어이춰>
(헝, 갈라아 새끼 두고 두고 봐도 반말이로구나)
하고 내뱉고 싶은 것을 참았다.
<뉘기요?>
차 금철이 마스크를 턱 아래로 끌어 내린다.
<냐야 차 금철이야>
<차씨오?> 짐짓 물었다.
<춰 죽겠어 빨리 문 좀 열어>
<으찌 그리오?>
<어째 그러긴 뭘 어째 그래 술파는 집에서 술 좀 먹자는 거지>
<시가이 몇 신데 수르 먹자는 기오. 오나존(오늘 저녁엔) 그냥 갑세>
<배가 안 들어 와서 그래. 업조합(어업조합)사무실에서 여지껏 기다리다가 하두 출출해서 왔어>
(종 갈래새끼 그러믄 말씨나 곱게 씨부릴 것이지비)
그러면서 생각하여보니 또한 금철호 선원들도 다녀간 사람이 없다.
<아이 들어온 배가 많소?>
<두 척이 안 들어 왔어, 우리 배하고 승파호하고>
(역시나 그렇구나. 한 씨가 탄 배가 안 들어 왔구나. 어찌 되었을까?)
일시에 불안이 엄습해 온다. 아무리 좋게 너그럽게 생각을 할래도 안 되겠다. 풍세로 보아 파도가 어떠리하는 것은 환하게 안다. 게다가 이렇게 함박눈이 퍼 붓듯이 쏟아지면 바다에서도 낮에도 지척을 알아보기 힘들다는데 여지껏 안 들어 왔다면 무사한 배라고 생각할 수가 없다. 최 여인은 이 늦은 밤에 그리고 이 차가에게 술을 팔 생각은 애당초 없었지만 이제는 가슴이 뭉클하여 지면서 콧마루가 숨벅거린다.
<시간이 늦어서 아이 되오.>
최 여인은 차 금철의 대꾸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휘장을 힘없이 여미며 돌아 섰다.
<아니 이 추위에 온 손님을 이렇게 괄시 하기야?>
<..................>
<흥, 뱃때기에 기름깨나 낀 모양이지? 어디 두고 보자>
<...............>
최 여인은 드럼통 화덕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물이 흘렀다. 생각을 말자면서도 최악의 사고 장면이 연신 머리를 스친다. 산더미 같이 밀려닥치는 파도에 배가 휘 말려 쓰러진다. 어부들이 물 위에서 잠간은 허우적거리겠지. 그러다간..... 최 여인은 합장을 하였다.

<관세음보살>
50평생에 두 번째 외어 보는 <관세음보살>이다.
그러니까 꼭 30년 만에 다시 외어보는 관세음보살이다.
남편의 사망이 확인 되었을 때 시체나마 찾게 해달라고 발원하며 관세음보살을 외었었는데, 이제 남편도 아니고 애인이랄 수도 없는 한 태길의 기적적인 생환을 걸고 관세음보살을 외우는 것이다. 최 여인이 베풀 수 있는최대의 정성과 열의로써 관세음보살을 외우는 것이다. (부디 한 씨를 살려주오. 부서진 뱃조각에라도 매달려 살게 하여 주오.)
몇 번인가를 되풀이하며 발원을 하였다.한씨가 진정 불쌍하게 여겨졌다. 쉰둘인지 셋인지 똑똑히는 모르지만 항상 보아도 의젓하고 든든해 보였다.
상처한지도 5년이 넘어가는데 단 하나 있는 아들을 대학에 진학시켜 놓고는 그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어서 재혼도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한문도 많이 알고 문장도 잘 쓴다는 소문을 들었고 또한 남의 편지를 써주기도 읽어 주기도 하는 것을 가끔 보았다.말도 잘한다. 선주들이 어부들의 이득금을 알겨먹으려는 눈치가 보이면 거침없이 대들었다. 그의 언변에는 누구도 당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평소에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뱃사람들끼리 둘러앉아 술을
마실 때에도 다른 사람들이 온 바다를 휩쓸고 전 속초거리를 휘 더듬는 이야기로 왁자지껄하여도 우둥퉁한 몸매에 구레나룻이 뿌듯이 돋은 얼굴이 빙그레 웃으며 듣고만 있다간 불쑥 한마디 하기만 하면 전 좌중에 폭소를 일으키곤 하는 말솜씨를 최 여인은 좋아했다.최 여인이 간판도 없이 판자집에서 대포 장사를 하면서 한밑천 잡아 가지고 3년 전에 지금 이 집으로 이사 왔을 때에도 상호를 무어라 지을까로 망설이고 있었을 때 <갈매기집>이라고 지어 준 것도 한 태길이었다.
(어째서 여지껏 못 들어 왔을까?)
최 여인은 한 태길의 안위가 몸부림이라도 치고 싶을 정도로 궁금하고 초조하다. 자신에게 날개가 돋쳤다면 폭풍에 날개가 찢겨나가는 한이 있어도 한 태길이 탄 배를 찾아 나가 보고 싶다.
(?)
어느덧 바람은 약해졌다. 유리빈지문 앞에 인기척이 났다. 문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고 열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도둑인가?)
또 한 번 열려고 하다가 열리지 않으니 무어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났는데 한태길임을 확신했다. 최 여인은 벌떡 일어섰다.
<한씨오?>
<그렇소 호루에 불이 켜졌길래 밤은 늦었지만 들러 봤소>
추위에 덜덜 떠는 음성이었다. 최 여인을 와락 달려가 문고리를 트는데 눈물이 줄줄 쏟아진다. (관세음보살) (당신이 안 왔는데 내가 어찌 잘 수 있겠소) 라고 응수하고 싶었다. 두터운 방한복차림으로 들어서는 한 태길의 전신은 눈으로 또 한 겹이 싸인 듯하였다. 길에는 정강이까지 묻힐 정도의 눈이 쌓인 위에 계속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최 여인은 한 태길의 벙어리장갑 낀 손을 덥석 쥐었다.
<으찌 이리 늦었소>
목이 메었다
<금철이네 배를 끌고 오느라고....>
한 태길은 추어서인지 말끝을 흐린다.
<무시기 그런 짓을 했소, 바람이 그렇게 억세게 불었는데>
최 여인은 한태길을 화덕 옆으로 인도 하면서 원하기 어린 시선으로 쳐다 보았다.
<금철호가 기관으 고장으로 산더미 같은 멀기(파도)에 휘말려 금시 넘어갈 듯 넘어 갈 듯 하능기라>
<무시기 소리오, 금철호가 위태위태 하다믄 아바이네 배두 그렇겠지비?)
최 여인은 화덕의 통기 구멍을 활짝 열어 제치며 책망조로 쏘아붙였다.
<그런 멀기 속에서는 기관이 멎으믄 사람으 손과 발에 신경통이 난거나 한가지라, 우리가 아이 봐 주믄 꼼짝 없이 죽능긴데 으찌겠소 우리가 함 께 죽는 하이 있어두 몽 본체는 몽하는기라... 자 이 고기나 받읍세>
그리고 보니 한 태길은 대구어 만큼씩이나 큰 동태 두 마리를 들고 있었다.
<으찐기요?>
최 여인은 한 태길이 자신의 집으로 가져 갈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빈 밥그릇을 들고 온 것으로 보아 방학 중이라 와 있는 아들을 부두에서 만났거나 아니면 집엘 다녀 온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 동태는 자기에게 줄려고 가져 온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니 최 여인은 기뻤다.

<아바이 끊여 무그라고 개 왔소?>
한 태길은 동태를 꿴 고리를 최 여인에게 건넨다. 최 여인의 두 팔이 휘청한다.
<아바이 정신이 있소 없소?>
싹싹 비비며 연탄불에 두 손을 녹이는 한 태길은 흐뭇한 표정으로 최 여인을 쳐다본다.
<으찌 그리오?>
<아이 대태(큰동태)가 두 마리믄 돈이 을만데이 걸 날 묵으라는 기오>
<하도 크기에 아마이 묵으라고 개왔소>
물론 최 여인이 남에게서 선물을 받아본 경험은 별로 없다. 그러나 몇 천번의 선물을 받아 보았다기로서니 이렇듯 기쁘지는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덩실 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한 태길이 낭비 하는 것은 싫었다. 평소에 해장국을 먹어도 술을 마셔도 분수를 차리면서 먹던 사람이다. 아마 한 태길의 그러한 점에 최 여인의 마음이 이끌렸는지도 모른다.그런데 지금 한 태길이 가져온 정도의 대토 두 마리면 웬만한 동태 한 두름과도 바꿀 수 있으리라. 물론 한 태길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는 한다.그러나 해장국과 병술을 많이 팔아야 먹고 사는 최 여인이지만 낭비하는 사람은 내심으로 경멸 하였다. 그런데 최여인 자신이 좋아하는 아마 사랑하는 상대일는지도 모르는 아니 앞으로 같이 살게 될는지도 모르는 태길의 낭비가 용인될 리가 없다.
<이거는 내가 사겠소. 나는 술안주 찌개를 끊일라믄 어차피 이렁거르 사야 하니까.>
찬바람이 스르르 몰려들어 왔다. 그리고 보니 한 태길이를 맞이해 들이고 는 빈지문을 닫지 않았다. 최 여인은 빈지문을 닫으러 가는데
<그러면 내 성의는 으찌 되오>
어안이 벙벙하던 한 태길의 반문이다. 빈지문 고리를 돌려 잠그며 최 여인이 대꾸를 한다.
<오새(지각)없는 소리 자그마치 합세. 참말로 아바이가 나를 생각하고 준다믄 훗날 쬐만 것(조그마한 것)한 마리 가져 옵새. 그리고 방안에 들어 갑세나 좀. 아바이가 목숨이 왔다 갔다하는 고비르 넘기고 왔기 땜세 내 가 음식으 대접 하겠소>
한 태길의 마음은 흐뭇하였다. 최 여인이 자신을 극진히 아껴 준다는 것은 느낀 지가 오래고 그렇기 때문에 벼르고 별러서 또 아무도 없는 기회가 좋아서 대태를 선사 했는데 최 여인이 펄쩍 뛰니 평소에도 성격이 깔끔하기로 소문난 최 여인인지라 동태 선물을 거부하는 심정을 이해는 한다. 또한 한 태길 자신을 지극히 아껴 주는 최 여인의 배려임도 안다. 그러나 아무리 크기로서니 동태 두 마린데 그것을 아끼지 않는다고 책망하는 것은 지나친 것 같다. 최 여인은 방으로 들어갔다 나오면서 한 태길에게

<방 안에 들어 갑세. 내 상 차려 가지고 들어 가겠읍매. 방을 치워놨으니날래 들어 갑세>
<봄세. 아마이는 나에게 음식을 주어도 되고 나는 아마이에게 벨것도 아인대대 두 마리르 주믄 아이됨매?>
한 태길은 부드러운 항의를 했다.
<씨끄럽소. 나는 뜨듯한 집안에서 찾아오는 손님에게서 벌은 음식이지만 아바이는 아 추븐 겨울을 바다에 나가 그야말로 죽을 둥 살 둥 하면서 콧 구멍으로 고드름으 뽑으면서 잡은 명태가 아이겠소? 그런 명태르 어디다 함부르 준단 말이오. 날래 방에나 들어가오>
최 여인은 동태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한 태길은 부엌에다 대고 대꾸를 한다.
<그렇다믄 아마이는 아까운 청춘으 희생시켜 가면서 번 돈이 아이오? 그런 돈으 함부르 쓰문 되겠음매?>
한 마딘들 질세라 최 여인의 대꾸가 울려나온다. <그런 오꼬째진(심술궂은)소리 맙세. 날래 방안에나 들어가기요. 나는 또 청춘으 희생한 것도 없으매. 갑식이르 키워서 사람으 맨들어지비 왜 내가희생했소?>
이렇게 대꾸를 하다가 최 여인의 머리를 번득 스치는 것이 있다.(이 기회에 의견을 던져 놓을까?)
그런데 망설여졌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 갈매깃집에 드나드는 남자들과 별에 별 농담을 주고받아 왔고, 같지
않은 것들이 지분덕거릴 때는 아는 정 보던 정 없이 쏘아 붙이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한 태길 앞에서는 언사를 조심하게 되었고, 옷깃을 여몄고, 머리를 쓰다듬어 올리는 습관이 생겼으며 거울을 자주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우리같이 삽시다)라는 말을 할 것을 생각만 하면 얼굴이 후끈 거렸다.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래서 한 때 누구든지 다른 사람을 통하여 말을 건네 볼까...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것은 더욱 쑥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직접 건네기는건네야겠는데 그 말이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았었다.
(왜 이럴까. 한 여자가 시집을 가겠다는 말은 어려서나 늙어서나 부끄러운 것인가?......워낙이 중대한 일이라 조심스러워서일까. 아니면... 너무 즐거워서일까... 우리들의 풍속이 수줍고 부끄러워하도록 되어 있는 것일까.)
<술 좀 먹읍시다.>
깜짝 놀랐다. 최 여인은 화가 났다.
차 금철이가 또 온 것이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고 몇 사람이 함께 왔나보다. 기침 소리와 웅성거리는 소리가 난다. 한 태길이 문을 열러 주려고 흠칫거린다. 한 여인은 한 태길에게 말리는 표정으로 머리를 흔든다.
<놔 두오>
빈지문께로 간다.
<뉘기요?>
<나야. 금철호 선주야>
(헝, 갈래새끼. 선주라믄 누가 설설 기는 줄 아는 모양이지비?)
그러나 입 밖에는 내지 못했다. 배 설거지를 이제야 마치고 한잔을 하려고 어부들을 데리고 온 모양인데 지금은 절대로 안 된다고 마음에 다짐을 하였다. 최 여인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이 되오>
차 금철이의 발끈하는 소리가 울려왔다. 다시 온 둥기 자체가 시비를 걸으려는 게 주목적인 듯한 어조다.
<뭐. 어째?>
커튼을 조금 젖힐까 하다가 그만둔 최 여인은 여전히 조용하게 응수한다.

<시가이 늦어서 아이되오.>
<아니 이게 사람을 어떻게 보고하는 소리야>
(이 헝 갈래새끼가? 또 한바탕 싸워 볼려나?)
참기로 했다. 한 태길이가 지켜보는 것이다. 조용히 돌려보내기로 했다.

<금철호 선주답지 않게 으찌 그런 말을 했쌌소. 시가이 늦었는데 장사하는 내 입장도 좀 생각해 주어야지비. 만일에 경과이 오믄 어찌겠소>
평소의 최 여인에게서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의젓한 언사였다. 그렇건만차 금철의 노기는 조금도 사그러지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 사람을 바지저고리로 알고 데리고 놀자는 거야? 경관이 온들 그만한 편리쯤 안 봐줄 것 같애? 더더군다나 배가 이제 들어 왔는데 뭐 이따 위소릴 하고 있어. 문 안 열겠어?>
<양해하고 오나존 갑세>
최 여인은 보채는 어린아이 달래듯이 차 금철을 구슬렸다.
<흥, 갈매깃집 최 마담이 뱃대기에만 기름이 낀 줄 알았더니 눈깔에는 백태가 끼었구나. 사람을 못 알아보는 걸 보니까>
오장이 뒤 틀리듯 불끈 솟아오르는 감정을 꾹 참으며 여전히 참았다.
<미안하오. 올제 옵세. 자. 어서 갑세>
돌아서는 기세가 보이는 듯하던 차 금철이가 한층 더 발끈한 모양이다.
<아니 이게 누구를 오너라 가너라하고 자빠졌어엉? 야. 문 좀 열어라. 좀 따져보라. 내가 뭐 네 문전에 밥 얻어먹으러 온 거지야? 네 까짓 게 뭔데 날 오너라 가너라 하는 거야 엉?>
사뭇 독기가 오른 차 금철은 빈지문을 요란스레 흔든다. 알만한 음석이차 금철을 말리는 모양 이다.
최 여인은 살며시 돌아섰다. 대꾸하기도 싫으려니와 차 금철이 더 거칠게 나오면 자칫하다간 한 바탕 맞부딪칠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오늘 저녁의 한 태길과 타결을 해야 하는 모처럼의 기회가 깨진다. 차 금철의 거침없는 욕설이 날아온다. 한 태길은 담배만 뻐끔거리며 턱을 받치고 천정만 쳐다본다. 차 금철이의 발악에 무관심한 듯한 표정이 좀 야속하였지만 돌려 생각하면 든든하기도 한 표정이다. 최 여인은 새삼스레 생각 난 듯 부엌으로 들어갔다.
(한씨가 시장 하겠는데 어서 상을 차리자. 찌개를 맛있게 끓이자. 밥을 새로 짓자. 아니... 국수를 삶자. 국수를 한 그릇에 담아서 둘이먹자. 그 러면서...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한 씨를 지켜보자. 그러다가 적 적한 틈을 봐서 말을 꺼내자. 우리 둘이 같이 살면 어떻겠느냐고 그러면 한씨는 무어라고 말할까? 안된다고 할까? 그럴리야 없겠지... 싫다고 할 까? 그럴 것같이 않다. 왜 그러느냐고 물을까? 그러면 무어라고 말 할 까? 떨려서 말을 못하게 되면 어쩌나.... 그래 갈매깃집으로 들어가고 싶 다고 말하면 알아들겠지? 이 부둣거리의 많은 뱃사람들이 새벽이면 모이 를 찾는 갈매기 떼처럼 몰려 나갔다가 저녁이면 우르르 이 갈매깃집으로 몰려드는 것처럼 그동안 갑식이를 키우느라고 소 갈 데 말 갈 데 해매이 던 한 마리의 늙어 가는..... 암 갈매기?..... 우습다... 하여튼... 이제 는 갑식이도 서울에서 아들딸 낳고 동대문 시장에서 생선 장수를 하면 서... 집도 사고 잘 살게 마련해준... 어미 갈매기가... 근심 걱정 없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며느리나 손자들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허전한 마 음을... 든든한 숫갈매기(?)에게 의지하고 살고 싶어졌다고 말하면 알아 듣겠지비 참 어서 상을 차려야지. 갈매깃집... 갈매깃집. 참 좋은 이름이 다... 아니 나 혼자만이 갈매기이고 한씨가 진짜 갈매기집인지도 모른다.참 어서 상을 차려야지 . 바깥에는 눈이 수북히 쌓였겠지비? 펑펑 쏟아져
라. 며칠이고 쏟아져 배가 나가지 못하게 쏟아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