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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호2015년 수필 - 아름다운 미완성권(작가 윤홍렬 장편 소설에 부쳐) / 권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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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994회 작성일 16-02-1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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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남]


고(故) 윤홍렬 회장님 미완의 장편 『쭉정이』와
『역풍은 불어도 강물은 흐른다』 두 편의 소설을
단숨에 읽었다. 완성 보다 아름다운 미완의 작품들이다.
드라마틱한 사건과 배경,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에 사정없이
끌려 들어갔다. 어떤 대하소설이 이보다 더 진지하랴.
고(故) 윤홍렬 회장님께서는 천국에서도 소설 속
주인공 홍기봉과 여선규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시며 미완의 소설을
마무리하시고 계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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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미완성
― 작가 윤홍렬 장편 소설에 부쳐



대부분의 작가들은 치열한 고독과 맞서서 자신의 창작 혼을 불태우고 있다. 때론 그 과정이 고통스러울지라도 스스로 존재에 대한 확인으로 그들은 자부를 하고 있다. 창작에 몰입하는 순간만은 접신(接神)을 하듯 최고의 절정, 희열의 순간이며 자신과 만남의 순간인 것이다.
 지난 7월 11일 故 윤홍렬 회장님의 1주년 추모 행사와 함께 두 권의 유고집 출간기념 행사를 속초 교육청에서 가졌다. 전쟁이 쓸고 간 폐허의 땅에 속초예술의 초석을 다지시고 40여 년 동안 『갈뫼』 동인지를 발간하시며 속초 문학의 텃밭을 일구어 오신 분이다. 영상을 통하여 보는 회장님의 발자취가 다시 한 번 우리를 숙연하게 했다. 윤회장님께서는 2014년 작고하실 때까지 작품집을 한 권도 발간하시지 않으셨다. 항상 내 작품은 아직 수정 할 곳이 많아 출간할 때가 아니라고 하시며 후배 문인들에게 겸허하신 모습을 보여주시곤 했다.
 故 윤홍렬 회장님 소설은 중편과 단편이 16편, 오페라 대본 1편과 장편 2편 등 총 19편을 집필하셨다. 중, 단편 소설 대부분 작가의 삶과 체험에서 얻은 소재를 작품의 모티브로 쓰셨으며 피난민들의 삶이나 분단의 아픔을 주로 다루셨다. 작가가 교육자이셨으므로 등장인물들을 대신하여 따뜻한 인간성 회복과 휴머니즘을 작품의 주제로 제시하셨다. 그런데 장편 소설 『쭉정이』와 『역풍은 불어도 강물은 흐른다』는 민족의 수난사를 소재로 한 대하소설에 가까운 작품들이다. 두 편 모두 미완의 작품으로 남아 있어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고 윤홍렬 회장님의 많은 소설이 있지만 『쭉정이』와 『역풍은 불어도 강물은 흐른다』 작품이야 말로 작가적인 역량을 발휘하신 작품이 아니신가 싶다. 이 두 장편을 읽으면서 자석처럼 소설 속에 빠져 들었던 것 같다. 일제의 만행 앞에 한 민족, 한 피를 나눈 변절자들의 잔혹성을 다룬 작품들이다. 굴절된 민족의 역사 즉 일제시대와 남북이 둘로 나누어진 현실 속에서 시련을 겪으며 살아가는 민초들의 아픈 삶이 송곳으로 가슴을 후비는 듯 다가왔다. 사모님께서 작고하신 후 많은 세월 홀로 지내시면서 소설 속 등장인물들과 함께 울고 웃으시며 적적하신 생활을 달래셨으리라.
 작품 『쭉정이』에서 주인공 홍기봉의 외아들 영선이를 징병에 안 내보 내려고 학생 신분인데도 불구하고 일찍 결혼을 시킨다. 하지만 변절자인 변칠성의 농간때문에 불과 몇 개월 만에 일본 천왕을 추대하는 위대한 영웅 칭호를 받으며 영선은 가미가제 특공대에 출전하여 태평양 한가운데서 산화하게 된다. 외아들을 잃은 슬픔 가운데도 홍기봉은 농사 지은 곡식을 모조리 일본 관청으로 바쳐야 했다. 이윽고 해방이 되자 집에서 일하던 머슴들이 공산당에 합류하여 활개를 치며 농지개혁법을 운운하며 주인인 홍기봉의 집과 땅을 뺏으려고 서로를 감시하며 좌익과 우익의 갈등이 증폭된다.
 『역풍은 불어도 강물은 흐른다』 주인공 여선규는 일본 경찰에 쫓기는 처남 김남철의 행방을 추궁 당하다가 구속이 된다. 조선인이면서 이웃에 사는 일제 앞잡이 지천만에게 폭행과 모진 고문을 당하고 우리말과 글도 못쓰게 하는 고통을 받게 된다. 급기야 해방을 맞이하지만 혈육같이 지내던 이웃들이 좌우익으로 나누어 살벌하게 서로를 감시하는 숨막히는 순간의 연속이다. 급기야 여선규는 가족들을 이끌고 야밤에 고향을 떠나 만주로 이동한다. 이 소설의 특이할 점은 이북에 있는 함경도 무산 지방이 배경 무대가 된다. 북한에 있으므로 윤홍렬 작가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무산지방을 나무 한그루, 동네의 집과, 우물 등 그 외 풍경을 상상력을 동원하여 세밀하게 묘사를 하였다. 인물, 배경 및 사건 묘사가 너무나 치밀하고 탄탄했으며 등장인물들의 함경도 사투리와 긴장된 눈빛, 숨소리조차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두 편의 장편 소설을 통하여 나라를 빼앗긴 암울한 시대의 사회, 정치, 문화를 비롯하여 피폐했던 민초들의 삶을 읽을 수가 있었다. 특히 소설 『쭉정이』 주인공 홍기봉의 신분 상승을 위한 야누스적인 행동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그와 반대로 『역풍은 불어도 강물은 흐른다』에서 주인공 여선규는 공직에 종사하며 도덕적이고 지적인 면모를 갖춘 지역사회에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윤홍렬 작가와 동일시되는 인물로 암울한 현실을 괴로워하는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인물로 설정이 되어 있다. 등장인물들을 통하여 일제 만행과 해방 후 좌익과 우익이 분열되어 가던 시대적 상황을 역력히 고발했으며 그런 혼란했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힘든 삶을 재현했다고 볼 수가 있다. 오늘날 우리가 윤택한 삶을 누리며 살아 가는 것도 그런 선대들의 아픈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두 편의 소설이야 말로 비록 미완성 작품이지만 완성본 못지않게 구성이 탄탄하고 주제가 뚜렷하여 장편 소설로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완의 예술 작품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작품으로는 15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4년에 걸쳐서 그린 그림 <모나리자>와 화가 고야의 <유다의 입맞춤> 등 작가 사후에 유명세를 탄 작품들이다. 음악으로는 많이 알려진 슈배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 있다. 또한 오펜바하가 작곡한 서정이 넘치는 아름다운 미완의 음악 <쟈클린의 눈물>도 작곡가 사후에 후세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지고 연주되는 감동적인 곡이다. 모두 박제가 된 천제들의 미완의 유고 작품들이 아니었던가.
 이렇듯 故윤홍렬 작가의 두 장편 소설 『쭉정이』와 『역풍은 불어도 강물은 흐른다』를 미완의 작품으로 미루어 두고 서가에만 꽂아 두기에는 아쉽고 미련이 많다. 비록 미완의 작품 이지만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홍보해야 한다. 그리고 민족의 아픔과 수난의 역사를 되새기는 의미에서 포럼이나 세미나 주제로도 발표가 되고 작가의 문학세계를 재조명 연구되어져야 한다. 또한 다른 대하소설 못지않은 두 소설을 극본으로 제작한 후 연극이나 영화로 공연하여 관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 시켜야 한다.
특히 금년에는 독립을 주제로 한 영화 <암살> 또한 천만 관객 돌파 흥행을 거두지 않았던가. 광복 칠십 년 되는 해에 일제 만행을 고발하는 고 윤홍렬 회장님의 두 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하게 되어 더욱 의미가 깊은 것같다. 후배 문인들이 꼭 해야만 하는 미루었던 일을 한 것 같아 기쁘다.
 넓고도 깊은 회장님의 작품세계와 역사적 가치관에 관하여 생존해 계실 때 많은 질문을 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깊이 소설을 읽을수록 궁금한 점이 많아져서 때늦은 후회를 해본다. 늦었지만 회장님께서 집필하신 장편, 미완의 소설을 한마디로 ‘완성보다 더 아름다운 미완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윤회장님 허락을 받지 않고 유고집 두 권을 출간했는데 뭐라고 하실지 걱정이 된다. 아마 천국에서도 『쭉정이』와 『역풍은 불어도 강물은 흐른다』에서 살붙이 같던 주인공 홍기봉과 여선규와 다정히 얘기를 나누시며 소설을 마무리하시고 계시리라. 그러다가 평소에 사랑하시던 저희를 내려다 보시고는 빙그레 웃으시고 계시리라 하고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