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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호2015년 시 - '깃발' 외 / 장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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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3,004회 작성일 16-02-15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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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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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옥탑방에 빨래들이 걸려 있다
구둣발에 채이고
지하철에서 납작하게 부딪히던
일상에서 돌아온 분신들이여
다시 땡볕에 오징어처럼
바람에 날리고 있다
그것은 내일을 기대하는 깃발
하이얀 와이셔츠와
주름 잡힌 바지들이여
해바라기같이 맹목적으로
태양을 바라보아야만 하는가
뚜벅뚜벅 소처럼 때로는
말끔한 제비처럼 일터로 간다
비록 오늘은 세찬 비를 맞더라도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옷매무새를 고친다
가슴에 아내와 아이들을 품은
뜨거운 깃발이 나부끼기에
심호흡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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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선원에 가고싶다


겨우내 가득 넘실거렸던 욕망들이
봄바람 불어
목련꽃 벚꽃들이 하르르 수작 거는 날들이면
무심선원에 가고 싶다
마음이 비었는데 어찌 계절들이 있냐고
새들마저도 상좌인양 소리를 멈춘 곳
청첩도 부고도 없이
잠시 머물다 가는 곳
얼음 녹은 강물따라 물오리들이 때를 벗기듯
송이버섯 같은 굴뚝이 온갖 시련들을
잿빛 연기로 날려 보내는 곳
노스님이 맨발로 뛰어나와
설악산 내려온 물 한바가지 건네주니
환장하게 봄바람 부는 날이면
어김없이 무심선원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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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유황숲 차안에서
젊은 스님과 발바리가
무르익은 춘정을 나누고 있다
나는 못 볼걸 본 듯
얼굴을 붉혔지만
게슴츠레 풀어졌던 발바리
삭이지 못한 분으로 침입자를 짖어댄다
하늘거리는 미풍이
버들가지를 휘감고 속삭인다
연애가 뭐 별거냐고
그리움으로 힘껏 부등켜안으면 사랑이라고
봄날의 성스런 방사를 엿본 죄
가슴은 소년처럼 콩닥거리고
겨드랑이털이 스물거리는 봄날아 떠나지 말라고
김오르는 흙에 뚫어져라 오줌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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