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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호2015년 시 - '죽어도 여한이 없다' 외 / 김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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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768회 작성일 16-02-1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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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섭]


계수나무 노란 잎들이 뚜벅뚜벅
달빛에 젖어 떨어진다.
오호라 그대도 정년 ?
하늬바람에 공중제비 돌다
시궁창에 떨어지지 않기를
구월 서리에 세수하고
주막도 들려 단장하고
샛강으로 두둥실 떠 오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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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여한이 없다

속곳 까 비비며 달포쯤
삼일포에서
궁글러 볼 것을


수크령 나붓한
금강산길


서리 메뚜기
뒷다리만
톡 톡


이승에 풀어 놓은
마지막 눈물 강


죽어도 여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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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은 없어도 좋았다


낭랑하게 숙성된
장독소래 여닫는 소리와


애배추국에 멸치 국물
우려내는 후각이었으면 했다.


묵은지 고등어조림 타는
하얀 연향이거나


담 넘어와 익은 홍시처럼
밤고기를 뜨러 가자 조르는
아이 닮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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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파기


회장님 살아 계실 적 교동 옛집에 들르면 책 냄새와 타자기 소리
는 패러디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술을 위하여 안주를 남은 안주를
비우기 위하여 술을,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시는 무엇입니까? “땅
집고 헤엄치기지, 이 사람아.” 갈뫼 21집 출판 기념일 다음 날 휘발
유 같은 여자 허영자 시인을 모신 설악 나들이에 詩盲이 따라나선
적이 있었지요. 사미인곡, 관동별곡, 오우가 그리고 청산별곡 같은
雅歌 구절들을 주거니 받거니 꿰며 상고대 서린 눈밭 올랐는데요.
회장님 미끄러져 넘어지시고 지나던 승용차 앞뒤 바퀴 사이로 한
쪽 다리 쑤욱 들어갔는데 아뿔싸 눈 깜짝 할 사이 책상다리 하시며
툭툭 털고 일어나셨지요? 멧돼지 정식 집에서 술잔을 건네주시며
“자네는 대기만성형이야. 오늘의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저는 이제 그 약속을 파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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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의 향기가 난다


아물었다 치더라도
새 이불에서 처녀 적
향기가 난다.


원앙문 이끼
납작 엎드린 사리탑의
빗물 흐르는 쪽으로


사는 건 국밥
등골 식으면 개밥


喪妻도 꿈인 양
향기 하나 갖고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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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댕이


떠나면 돌아오지 못 할 거야
피칭과 롤링의 빙하는
갑판을 쪼개 패고 있다.


물방울별에서의 하루
별들은 차가웠으나
알맹이 튼실한 꼬투리는
아직 따듯하다.


구름의 눈물을 달래다 바람이 성나면
자작나무 흰 껍질 조각의 뼈들이
세평 잔디밭 쓸며
마당을 서성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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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먼 자들의 국가*


대륙의 엉덩이에 붙어
미세먼지 휘파람 부는
중금속의 굴뚝에서
삼겹살에 소주를 빨다.


큰 집에 들러 코쟁이 달래며
고장 난 장난감을 구걸하는 처녀야
버선코 헤어져 발가락이 아프겠다.


탯줄 끊으면 빚쟁이 혹은 신용 불량자
간 빼 줘도 백수인 시급 총각과
흔들리는 촛불에도 눈물짓는 처녀에게
아이를 낳으란 말이냐?


자유 시장에서 얻은 낡고 큰 군화를 줄이고 꿰매고 땜방하며
방충망에 붙어 아우성치는 파리의 빨간 눈으로
갑질이 방어기제인 눈 먼 자들의 코끼리 만지기 놀음에 시달리던
전후세대의 뜰에 엔젤트럼펫이 피었건만
낙엽처럼 이력서 뭉치들이
겨울비에 찢겨 뭉개지고 있구나.


* 박민규 「눈먼자들의국가」. 『문학동네』 2014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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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성 동물


소들이 풀을 먹는 게 아니라
소에게 선형계획법으로 기계가 풀을 먹이고
DNA 합성 공장 생산 라인에서
마블링 침착된 등심이 사출된다.


뜨거운 물에의 초대는 선정적이다.
밥풀같이 달라붙는 열매는 절대 따먹지 말라.
마르면 저절로 떨어진다.
오방색의 송편을 지어
우주의 섭리를 먹어라.


삐죽이 나온 다슬기를 끓는 된장국에 털어 넣는다.
바늘귀가 어둠을 관통하여 목구멍으로 하강하는데
울리는 핸드폰에게
모라토리움을 선포하고 싶다.


달구어진 프라이팬 조약돌 위로 벌거벗은 새우가 지느러미를 톡
톡 튀기며 목구멍으로 사라지고 양철 지붕을 관통하지 못하고 아
궁이에 굴러 떨어진 날밤에 날 일자 새기어 굽기도 하는데 보이
던 산과 안보이던 바다가 보이는 질긴 힘줄을 지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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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가장 기쁜 날


지하 1.5m 오르락내리락
지온의 경락을 진맥하면서
불행해 질수도 있는 도전적 가치와
투자의 혁신이 꼬리치는데
배팅하지 않을 놈 있나?


밤꽃에 취해 춤추는 도시를 꿈틀거리다
태양의 혓바닥에 말라죽는 거지


뼈들을 긁어내고 피부를 옮겨 심은
토양단백질은 미용에 유효한가?


국민을 머리에 이고 가겠다는 정권은
복지 놀이와 여론의 비빔밥 짓다가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그려.


내 인생의 가장 기쁜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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