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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호2015년 시 - '겨울눈 1' 외 / 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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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711회 작성일 16-02-1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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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희]


겨울이 삭막하다고 우리는 말한다.
알몸으로 하늘을 실처럼 쪼개고 있는
그들의 안간힘을 보고
아름답기도, 쓸쓸하다고는 하지만
요즘엔 나를 읽어낸다.
겨울눈을 품고 있기에
겨울나무는 희망이다.
내가 겨울나무임을 요즘 깨닫고 있다.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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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눈 1
― 그녀는 그렇게 내게로 오고 있었다


한밤중이었다.
무서움을 이기려고
어금니를 딱 붙이고 어둠을 똑바로 바라볼 때
담장 너머 오동나무는
커다란 잎을 내게로 하나씩 던지며
잃어버린 언어로 울었다
보랏빛 꽃을 한 움큼씩 내보일 때마다
어머니의 반다지에 매달린 헐거워진 꽃장식을
바람개비처럼 힘차게 돌리곤 했는데
손끝에서 쏟아지던 그 많은 꽃들
어디로 갔을까


담장도 허물어졌다
오동나무도 세월에 잘려 나갔다
눈을 크게 뜨고 기다리면
어둠은 서서히 사라진다는 걸 알기에
어둠을 이기려고 이젠 서 있지도 않는다


이 봄, 밤도 아닌데
내가 없는 마당가에 서성이며 마른 잎을 던질
잃어버렸던 언어가 그립다
그립다 소리 내니
겨울눈을 그리움처럼 주렁주렁 달고
울음 끝에 오동나무 한 그루 걸어 나온다

그래, 그녀는 그렇게 내게로 왔다
손끝으로 피워내던 꽃들을 단단히 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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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눈 2


이미 자유로웠다
먼 기억에서 불어오는 숨결
겹쳐진 언어들 사이로 흐르는 잃어버린 잎들
단단한 경계를 넘나드는
반짝이는 물소리


이미 잎이다 꽃이다


이미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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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눈 3
― 꽃놀이하기


벚꽃 놀이, 놀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냥 걷는데
내리는 꽃비 그늘을 점점이 맞고 있는
내가 보였어


너는 고흐빛 노랑이니
나야
너는 고갱의 빨강빛이니
나야
그럼 모딜니아니의 슬프고 깊은 눈빛이니
그랬으면 좋겠어
맨발로 뛰고 싶을 때 맘껏 뛰어
더 이상 내가 아니고 싶을 때
심장 어딘가 든 멍빛이 그런 빛이었으면 좋겠어
가능하다면 조금은 신비스런


오늘처럼
가벼운 숨결에도 꽃비가 마구 내릴 때면
떠나보내고 싶어
움켜쥐고 있는 빛들을
나로부터


그렇게 한 번 꽃비가 되어보는 거야
가볍게 내가 되어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