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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2016년 [수필] 냉정과 열정 사이 외 / 박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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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713회 작성일 16-12-21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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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박성희


올해는 많은 일이 있었다.

다른 사람 말에 아프기도 했다.

그런데 최명선 선생님 시집을 읽고 마음을 추슬렀다.

'말랑한 경문'

글을 쓰는 사람들 속에 내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한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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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


“너희들이 먹는 채소가 씨 뿌리면 그냥 크는 줄 아니? 잡초는 돌아서면 자라니 여름 내내 뽑아야 하고 벌레는 얼마나 극성인 줄 아니? 너희들 입에 들어가니 될 수 있으면 약을 안 치려고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단다. 손으로 하나하나 잡는 데는 한계가 있어. 그러니 너희들에게 먹이기 위해 밭에서 살다시피 하지. 가만히 있는 식물을 키우는데도 이러한데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은 자식을 키우는 일인데 이 식물보다 정성을 덜 들이면서 크기를 바란다면 제대로 성장하겠니?”

첫아이를 키울 때, 호기심이 많아 물건을 고장 내는 것도, 몇 번씩 119 구급차에 실려 가는 것도 힘들었다. 재미로 슈퍼에서 껌과 과자를 훔치다 들켰다는 연락이 왔을 때는 다리가 떨려서 일어서지도 못하고 직장에 있는 남편에게 연락했다. 그때 아이는 꼼짝 못하고 슈퍼에 두 시간을 잡혀 있었다. 탁구공처럼 이리저리 잘 튕겨 나가는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할때면 어떻게 대처하고 해결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대하기도 했다. 때론 부모이기를 포기 선언하고 싶었다. ‘국가는 결혼하는 사람들에게 부모 교육을 의무로 시킬 것이지.’ 원망도 생겼다. 이런 내 마음을 비쳤더니 시어머니는 식물에 비유하여 자식에게 정성을 들이라고 했다. 그때서야 자식을 키우는 일에도 인내와 정성이 있어야제대로 성장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말 한 번 한다고 아이가 척척 받아

들이는 게 아니라는 것을.

올해 과일나무를 키우겠다고 했을 때 모두가 말렸다. 나무를 심으면 손가는 일이 없을 거라며 굽히지 않았다.

“잡초는 식물보다 더 빨리 자라고, 두 발 달린 아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아서 힘들지만, 잡초는 나무만큼 자라지도 않고 심어 놓으면 그 자리에 있으니 과일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돼요.”

때론 문외한이 전문가를 이기는 법이다. 내가 그랬다. 평생 식물을 키운 어머니가 그냥 지켜보시기에 내 말에 수긍했다고 좋아했다.

나무를 심기도 전에 꿈에 부풀었다. ‘오 년 후, 사계절 내내 내가 키운 과일을 먹을 수 있겠구나!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과일을 평생 먹이고, 아이들이 결혼하면 그 아이들에게 사계절 내내 과일을 줄 수 있겠구나! 아이들이 놀러 오면 과일 나무에서 추억을 쌓을 수 있겠지. 아이들이 과일을 먹고 가져가기 위해서라도 자주 찾아올 거야. 약을 치지도 않을 거고, 친환경 과일나무로 가꿀 것이니까. 과일을 좋아하는 큰아들은 더 자주 찾아올 게 분명해. 보고 싶다고 말하기 전에 아들들과 손주들이 오겠지’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며 절로 신 났다. 아이들과의 미래 모습이 과일나무 아래에서 펼쳐졌다. 마음은 부풀어 두둥실 구름 위를 걷고 있었다. 그것도 내가 설계한 미래에 아들과 손주들까지 함께할 수 있다는 꿈에 젖에 흥분했다. 큰아들에게는 빨리 결혼하라고 재촉했다. 아이들은 내가 키워주겠다고 말하며. 아들은 여자 친구도 없는데 결혼은 너무 앞서는 것 아니냐고 했다.

어릴 때 친정아버지가 계절마다 먹을 수 있는 과일나무를 심어 풍족하게 먹었다. 그것이 좋았다. 앵두부터 먹기 시작하여 딸기, 자두, 복숭아, 여름에는 포도 넝쿨 아래에서 햇빛에 투명하게 보이는 청포도를 골라서 따 먹는 재미에 빠지기도 했다. 사과, 배, 호도, 밤 등 많은 과일나무가 있었다. 내 아들과 손주들에게도 내가 키운 과일을 실컷 먹이고 싶었다. 단지 그것만 생각했다.

그런데 밭에서 두 번 일 하고 나서야 잡초를 뽑지 않고서는 나무가 제대로 자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첫 번째는 한 시간, 두 번째는 삼십 분, 일하고서야 후회했다. 과일을 평생 사 먹이면 될 걸. 일할 때마다 어지럼을 호소하고 차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혀를 찼다. 그 후부터 밭에 가겠다고 하면 남편은 혼자 부리나케 나가버린다.

시어머니는 당신 아들 얼굴이 까맣게 탔다며 가슴 아파한다. 어머니의 탄식이 매일 들리는 것 같아 미안하다. 나무는 저 혼자 크는 것으로 착각하지 않았다면, 이 세상에 정성 들이지 않으면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이치를 알면서도 또 어리석었다. 모든 것은 정성을 들여야 제대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잊었다. 아니 내가 펼쳐 놓은 미래에 내가 속고 말았다. 내가 나를 속인 것이다. 믿고 싶은 것만 마음에 새기고 다른 말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성숙한 인간이 된다는 섣부른 판단은 내 오만이다. 여전히 내가 옳다고 여기는 나에게 속아 한 치 앞도 못 보고 있다. 산다는 것은 여전히 실수투성이다. 울 아들이 어릴 때 겪은 시행착오를 난 어른이 되어서도 되풀이하고 있다. 알면서 하는 것은 나쁘다고 아들에게 내가 했던 말인데. 난 여전히 알면서도 틀에 갇혀 산다. 중용이 부족하다. 한 곳에 빠지면 그곳에 몰두하여 다른 것을 보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사는 것은 냉정과 열정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참으로 힘들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냉정과 열정을 유지할 수 있는 객관적이면서 주관적인, 이성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나무를 심으며 마음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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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교사


내가 독서논술을 시작한 지도 벌써 이십 년이다. 그동안 많은 아이와 만나고 헤어졌다. 짧게는 한 달 만에 그만두고, 길게는 십이 년을 함께한 아이들도 여러 명이다. 유치원 때 만나서 대학 면접까지 도왔던 아이들은 지금도 만난다. 카이스트 대학, SKY도 여러 명 입학했다. 지금 육 학년인 명호는 그 중 학습 면에서 가장 뛰어나다.

기억력과 수학적 사고력이 비범하다. 세 번은 생각해야 풀 수 있는 수학 문제들을 단번에 해결한다. 어휘력 또한 놀라울 뿐 아니라 언어 구사 능력이 나를 능가할 정도다. 논술 시간마다 스물다섯 개의 어휘 학습지를 주면 가끔 한두 개 틀린다. 국어사전 한 번 읽었다는데 놀라운 기억력이다. 항상 웃는 모습이나 맑은 목소리는 주변을 환하게 한다. 명호의 인사 소리는 우중충한 교실 분위기를 금세 바꾼다. 처음 만났을 때는 다른 아이에게 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이제는 실수해야 사람 냄새가 난다는 말을 이해했는지 일부러 실수하기도 한다.

사고력과 기억력을 놓고 본다면, 이 아이에게 많은 재능이 있는 것 같아 신은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신은 공평하다. 아직은 어리기 때문이겠지만, 이 아이는 타인을 화나게 하는 재주가 있다.

사람 중에 아홉 가지 잘하고 한 가지 실수하여 신뢰를 무너뜨리는 사람이 있다. 바로 명호가 그렇다. 오늘 논술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삼십 분을 남겨 두고 글쓰기를 하려는데 피자가 배달되었다. 두 판이었다. 명호 엄마가 갖다 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여덟 조각씩 두 판이니 수학 교실 세 명에게 한 조각씩 나눠줬다. 그리고는 아이들이 오는 시간이라 논술 교실 문을 닫았다.

남은 열세 조각으로 논술하는 네 명이 나눠 먹었다. 그중 명호가 다섯 조각은 먹었다. 피자를 먹고 글을 쓰다 보니 이십 분이나 늦었다. 다음 수업을 하려고 아이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초조했지만, 글을 빨리 쓰라고 재촉할 수는 없었다. 그때 명호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피자는 잘 먹었느냐고 묻는 것으로 보아 엄마 같았다. 그런데 명호 대답이

“선생님이 수학 교실에 다 줘서 별로 못 먹었어요.”

난 어이가 없었다. 엄마가 오해하겠구나 싶었다. 명호 논술 팀은 이 년 전 여름에 다른 엄마가 팀을 짜서 지금까지 하고 있다. 엄마들끼리 친하다 보니 아이들 간식도 신경을 쓴다. 명호 말만 듣고 내가 아이들 먹으라고 보낸 것을 엉뚱한 아이들에게 나눠 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걱정됐다. 명호 엄마 들으라고 세 조각밖에 안 줬어라고 말했더니 명호는 밖으로 나가서 통화하고 들어왔다. 난 명호에게 쓴소리했다.

“다음부터 수업 중에 피자 보내지 말라고 해. 피자 보낸다는 말도 없이 보내서 뒤 수업해야 하는 아이들이 이십 분 기다리고, 피자 세 조각 나눠 준 게 아까워서 선생님 때문에 못 먹었다고 말하면 선생님은 뭐가 되니? 넌 엄마가 베푼 공을 말로 무너뜨리는구나!”

명호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런데도 난 화가 풀리지 않아 한마디 더 했다.

“사람은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는데, 네 혀에는 도끼 들었구나!”

명호는 세 조각이 아까워서 그렇게 말했을 텐데, 나도 불쾌함을 참지 못하고 속을 드러내고 말았다.

말로 상대에게 덤터기를 씌우길 잘하는 명호를 보면서 몇 번 조용히 면담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직은 어린 탓에 고쳐지지 않는다. 사람이 모든것을 다 갖추기는 쉽지 않구나! 그래서 신은 공평하다는 말을 하는구나! 명호는 명석한 두뇌를 가졌지만 말에 덕이 부족하다. 명석한 사람과 덕 있는 사람 중 어떤 사람이 되겠냐고 한다면 덕 있는 사람이 낫지 않을까?

어린 명호를 상대로 뱉은 내 말은 더 부끄럽다. 맹자는 덕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면 진심으로 따른다고 했다. 그 아이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즉각적인 반응은 피했어야 한다. 나중에 조용히 말하면 되는데 거침없이 아이의 잘못을 탓했다. 어린아이들은 몰라서 그런다지만, 어른인 나는 참을성이 부족하여 불편한 마음을 드러냈다. 결국은 비난밖에 되지 않았으니, 내 말은 명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람은 무엇보다 말로 덕을 쌓을 수 있다. 그런 간단한 진리를 알면서도 여전히 감정이 앞선다.

아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겠다. 아이는 실수를 많이 한다. 그렇다고 큰 허물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른은 다르다. 경거망동은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한다. 그래서 나이 들수록 관조적 자세가 필요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