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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2016년 [수필] 루이비통과 샤넬 외 / 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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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931회 작성일 16-12-2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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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서미숙


살아가면서 명품을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나도 명품을 가질 기회가 있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좋아해 주니 나도 좋았다.

그렇게 나도 명품에 물들어 가며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살았다.

그러나 결코 마음은 행복하지가 않았다.

혼자 있을 때 밀려오는 쓸쓸함이라든지

씁쓸한 마음은 더 커지고 말았다.

그래서 다시 명품을 버리기도 했다.

요번 가을은 더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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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과 샤넬


동생이 시계를 두 개 주었다. 생각 없이 그냥 유행하는 거니까 갖고 싶었지만 막상 내 돈 주고 사고 싶지는 않은 그런 마음이었는데, 동생이 “언니 이거 가져” 하면서 주니 뜻밖의 선물이라 좋았다. 그러나 내가 산 것이아니고 너무 갖고 싶었던 것도 아니라서 쓸 때 아니면 좀 무심했다.

액세서리 서랍에 넣었다 빼다 하는 것이 귀찮아 식탁 위에도 던져두고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가끔 한번은 끼고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동생이 준 시계를 꺼내보니 ‘이를 어째’ 시계 줄이 덜렁거리고 시계도 멈추었다.

얼른 가서 고쳐야지 하는 마음에 시계방에 가져가 고쳐 달라 하니 이거고치는데 돈이 많이 들겠다는 것이다. 암튼 물 건너 온 거라 고치고 싶은 마음이 급해 맡기고 며칠 후 찾으러 갔더니 세상에 뭐가 그리 비싼지 나사 하나에 만 원, 나사가 8개가 없어졌으니 8만 원에 인건비 2만 원 해서

합이 10만 원이 된다고 한다.

헉 십만 원이면 요즘 걍 유행하는 예쁜 시계 하나 사겠다 싶어 “뭐라 이리 비싸요.” 했더니 “이거 명품시계잖아요.” 그래서 “그래요? 예 명품? 난 그냥 동생이 싸게 샀다고 준건데 이게 얼마나 하는 건데요”, “이거 살려면 백만 원이 넘어요.”

오 마이 갓…… 세상에 하긴 5~6년 전에 몇 십만 원 주고 샀다니 물가가 올라 그런가 보다 했다. 아니라 했다. 원래 비싼 그 사넬이라는 것. 끙, 그 비싼 샤넬을 난 막 굴렸는데, 후회가 막심했다. 비싼 것을 막 굴린 것이후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고치는 값이 십만 원이 넘으니 버리지도 고치지도 못하고 망설여졌다.

나에게는 동생이 셋이 있다. 자매들마다 다 특성이 있겠지만 옷 입는 성향과 디자인 가격을 고려하는 차이도 각자 나름들의 방법들이 있으나 그중 둘은 옷을 사더라도 비싼 것을 사 입고 그중 둘은 그저 싸구려든 뭐든 디자인이 내 맘에 들면 그냥 사 입고는 했다. 특히 셋째는 유명 메이커 보다는 명품을 사는 위주이고, 둘째는 메이커를 선호하는 입장이다. 나는 겉옷은 계절별 좋은 옷을 사 입지만 그 외 나머지는 거의 싼 것을 사 입는 편이다.

살아가면서 명품 메이커를 그리 따지지 않고 살아왔기에 명품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저 동생들이 들고 다니다 서울에 너무 유행이 심해 너도나도 다 들고 다녀 못 들겠다고 보내준다. 그래 들고 다니면 “어, 이 가방 어디서 샀어요? 좋은 거 들고 다니시네요.” 하고는 자기들끼리 뭐라 뭐라 한다. 그제서야 나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이것 명품이니?” 하고 물으면 동생은 그저 “응, 비싼 거야”할 뿐 그것이 루이비통이라든지, 샤넬이라든지 알려주지는 않는다. 언니의 성향이 그리 명품이나 메이커를 선호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저 옷 박스에 보내와서 입고 들고 다니면 그것이 루이비통, 사넬, 버버리, 프라다, 비엔엑스 등이 끼워서 와도 난 그저 들고 다닐 뿐 “와, 이것이 버버리야, 이것이 샤넬이야” 하지 않았다. 더구나 나는 내가 남대문시장 가서 옷을 사 입고 동대문시장 가서 옷을 사 입어도 그저 내 멋에 내 맘에 들면 그만인 것이었다.

그렇게 살면서 옷이나 가방 신발에 거금을 투자 해 본 적은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러나 남편이나 아이들한테는 명품까지는 아니지만 소위 메이커라는 것을 사 입혔었다. 그래 남편의 직장에서도 그의 옷을 보면 어디서 샀느냐, 예쁘다, 멋있다 라는 호평을 많이 들었기에 그저 내 코디가 좋았을 것이라는 평을 스스로 내리고 흐믓해 했었다. 그렇게 나의 코디에 호평을 주는 것은 내가 아무리 싸구려 옷을 입고 다녀도 그 옷이 뭐냐 라는 소리보다는 “아우 예뻐요, 어디서 샀어요.” 하는 소리를 더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난 아무리 디자인이 맘에 들다 하더라고 내가 생각했던 가격 이상이면 사지를 않았었다. 늘 그렇게 녹록치 않은 형편도 있었으나 원래 메이커라도 해도 계절이 지난 특가 상품이라던지 서울을 본사 직영점에서 철 지난 옷을 잘 골라 사 입었기 때문에 나에게도 메이커는 몇 벌 있기는 있다. 그렇게 할인하지 않으면 절대 사지 않았고 무엇이든지 정가를 주고는 거의 사지 않았다. 그래 친구들 말로는 너 상대로 장사하면 다 망한다고 농담을 했었다. 난 세상에 가장 아까운 것이 옷값을 비싸게 지불하는 거였다.

그러나 먹는 것에는 가장 많이 치중을 두었기에 늘 지인들이나 동생들은 우리 집에 와서 먹는 음식들을 제일 맛있어 했다. 난 먹는 것만은 세일하는 것이라든지 조금 신선도가 떨어지는 것은 절대 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는 옷의 비중보다는 먹는 것에, 다른 동생은 먹는 것에는 가장 아끼고 집ㆍ옷의 메이커에, 그 다른 동생은 옷ㆍ교육비에, 그에 다른 동생은 액세사리에 등등 사람마다 사는 방식이 다르다.

그중 나는 먹는 것에 치중했다. 가끔 식사를 대접한다고 하면서도 싸구려라든지 할인 티켓으로 사는 곳에서 산다고 하면 나는 거절을 하곤 했다. 흐흐흐 아이들을 레슨하고 하면 가끔 학부모들이 “밥 한번 대접하고 싶어요.” 하면 우선 “아, 감사해요.” 하면서 그냥 따라가기 일수인데 난 “어디서 먹을 건데요?” 하고 먼저 음식점을 물어본다. 그리고는 내가 아는 고급스런 음식점이면 간다 하고,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는 거절하곤 했다. 그것은 유난히 어릴 적부터 입이 짧은 것도 있지만 음식으로 인한 알레르기 반응이 심해 어릴 적부터 습관 되어온 내 음식 문화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다 사준다고 먹지 않는 습성 때문에 저 선생은 고급음식대접 아니면 안 드셔 하는 소문도 있었거나 말거나, 암튼 싸구려 음식은 절대 사절했다. 그만큼 나는 음식만큼은 싸구려로 먹고 싶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약해 빠진 나는 음식을 조금만 잘못 먹어 탈 나기 일쑤였기에 내 몸이 음식으로 고단한 것이 싫었다. 좋아하는 돼지 갈비도 먹고 나면 바로 설사를 하고 힘겨워 헥헥거리면서도 입에 맛있으니 먹고 며칠 고생을 하고는 ‘다신 밖의 음식 안 먹어’ 하곤 했다. 더구나 큰아이가 아토피가 심하다 보니 이래저래 음식을 여간 가리는 게 아니였다. (그런데 그건 사정을 일일이 다 모르는 이들은 뭣이래, 것이래 이래 말도 많이 하고 시시콜콜 내 사정을 다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옷들과 내 몸치장하는 것은 고급을 못 쓰겠으니 이율배반적일 수도 있다. 살면서 그렇게 명품을 중요시하지 않았고 살림살이들도 중요한 것들 외는 명품 따위는 모르고 살았다. 그러나 여러 여자들이 모이면 흔히 이야기하는 가방 자랑, 살림 자랑, 특히 자신이 하고 있는 장신구 자랑들로 이야기 거리가 소소하다.

나는 모임에 나가서도 그런 소소한 이야기 거리가 없어 늘 구탱이에 조용히 앉아 풀이 죽어 있는 적도 있고 조금 마음이 언짢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부럽거나 갖고 싶다거나 거금을 주면서 사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렇게 삼삼오오 말하는 그녀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면서 내 눈치를 본다. 내가 주눅들까 봐, 주눅 들으라고? 그 이유는 나는 모르겠지만 자기들끼리 소곤소곤한다. 그리고 또 나는 못들은 척 하고 “그래 이게 그렇게 비싸? 예쁘네, 음음”하며 끼어들기도 하곤 한다. 그런데 나도 요즘은 이야깃거리가 생겼다.

서울 동생들이 들다 만 명품 가방들, 신발들, 옷가지들이 내게 꽤 내려와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그것을 들고 입고, 신고 다니면서도 명품인지 메이커인지도 잘 모르고 다녔다. 그런데 가끔 지나다 보거나 그녀들의

모임에 가방을 들고 나가면 그녀들이 눈이 왕방울만큼 커진다. 그리고 그녀들의 시선은 내 가방, 또는 신발 그리고 이제는 나의 명품 사넬 시계로 멈춘다. 그리고는 씨익 미소를 짓는다.

그러면 나는 “음,…… 동생이 줬어. 동생이 좀 살아 서울에서 55평……” 다들 침묵이 흐른다. 서울과 여기 속초의 집값이 차이를 너무도 잘 아는 그녀들이기 때문이다. 이게 좋은 건지 그렇게 모임하고 나오는 난 어깨가 조금 올라가 있다. 으쓱. 휴.

집에 돌아와 그 명품 가방을 휙 던져버리고는 “내가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하고는 사넬 시계도 침대 위에 휙 던져버렸다. 다시는 그 모임에 나가지 말자. 그리고 다시는 그녀들과 어울리지 말자 다짐을 하고는 던져놓은 침대 위의 시계를 쓱쓱 문지른다. 그리고 요리조리 흠집이 나지 않았는지 본다. 그리고 내던져진 루이비통 가방도 쓱 닦아 놓는다. 그리고 그 가방을 보면서 내가 내던진 말, “오늘 하루 수고했다.” 그리고 난 지금도 그냥 그 명품 가방과 시계를 그냥 고맙게 잘 들고, 차고 다닌다.

미소를 보내면서 그것이 내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시기에서 시작되었다. 그런 오십을 넘고 싶지는 않았다. 곧 언젠가 구석에 처박힐 루이비통 가방을 쳐다보며 난 어떤 방법으로 사는 것이 옳은지 나도 알 수 없다고 되물어 보았다. 과연 우리가 살아가면서 명품이란 것이 얼마나 영향을 받을까 생각해보았다. 물론 많이 받는다. 그 사람의 가치가 때론 가방이나 신발 옷으로 평가될 때가 많으니 말이다. 특히 학부모 모임에 가는 날이면 무슨 명품자랑들을 하러 왔는지 너도나도 명품에 치장을 하고 온다는 서울 동생의 말이다. 서울 동생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다들 기본으로 차가 벤츠이고 거의 외제차이고 가장 후진차가 체어맨(?)이란다. 듣고도 잊어버린 비싼 차였는데 그 차가 제일 후진 차라니 기암을 하며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하긴 우리 아이도 서울에서 학교를 다닐 때 생각 없이 사준 프라라 가방을 들고 다니니 친구들이 “야, 속초 촌년 프라라가 뭐니? 프라다야” 하면서 킥킥거리며 놀려서, 나한테 대뜸 한다는 말이 “엄마 나도 프라다 가방 사줘” 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그게 뭔지 인터넷을 뒤져보니 가격이 어마어마한 가방들로 가득 차 또 기함을 한 적이 있었다.

한번은 학교를 방문하니 아이들 구두가 다들 샤넬을 신고 있었다. 또 한 번은 조카가 너무 추워하기에 미싱에 빠진 내가 무릎 담요를 하나 예쁘게 만들어 보냈는데 별 반응이 신통치가 않았다. 그래서 왜 그런지 물어보니 “언니 여긴 애들이 무릎 담요도 다 버버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버버리 하나 사주려고 인터넷 뒤지는 중이란다. 그때 나는 화가 좀 났었다. 없는 시간 쪼개서 예쁜 천 고르고 밤새 미싱질 하면서 조카 따뜻해질 마음에 기뻐서 만들어 보냈건만. 그러나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니 내가 그냥 맘을 비우기로 했으나 잠깐 섭섭한 것은 사실이었다.

세계 사람들 치고 명품을 싫어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2015년 기준으로 볼 때 루이비통이라는 명품 가방은 우리나라에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는 명품이며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이다. 더구나 세계 시장 선호도 6위이다. 그에 반해 짝퉁도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지만 너도나도 다들 그 루이비통을 짝퉁이든 진품이던 한번 안 들어 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또 프라다의 고객층 선호는 4위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엄청난 판매율을 차지하는 정도로 선호하는 명품 3위를 차지하는 명품 중에 명품이다. 이렇듯 명품이 우리나라에 가장 잘 팔리는 나라로 상품권 매출 1위를 달리며 매스컴에서 시끄러운 적도 있었다.

과거에 비해 요즘은 명품보다는 자신만이 선호하는 개성의 디자인으로 많은 사람들의 취향이 바뀌고 있지만 아직도 명품 백화점은 가장 잘 팔리는 시장세계이다.

재산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람의 가치는 아직도 차별되어 있다. 자신보다 조금 없이 사는 것 같으면 일단은 무시하고 보는 세상. 아이들조차 아파트 평수에 자신의 높고 낮음을 평가하는 시대는 아직 가시지 않았다.

언제까지 명품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고 재산의 가치로 사람을 판단하는 이 시대가 끝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의 가치는 명품과 명품이 아닌 사람들이 한눈에도 구별할 줄 아는 내가 되었다. 명품 가방을 들고 있어서 그 사람의 값어치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가는 세상을 사는 사람,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 머리가 있는 사람이 아닌 가슴이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야 말로 명품인 것을 가끔 사람들은 놓치고 만다. 진정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명품인가 아닌가를 판가름 하는 기준은 알고 있는지……

점점 빈부의 차가 벌어지고 있는 우리나라, 살기 좋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어지러운 나라, 그리고 갑질들이 난무하는 나라, 점점 범죄가 늘어나는 나라, 정치군들이 만나기만 하면 싸움질을 하는 나라 국민을 개돼지라고 표현하는 망언들이 날뛰는 나라 그리고 세계에서 자살이 1위인 나라, 그런 나라 살고 있으면서도 난 결론은 아직도 모르겠다. 과연 나도 명품을 정말 싫어하는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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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용기


나는 살아가면서 과연 어떤 거짓말을 했을까, 또는 누구에게 거짓말을 했을까?

우리는 인생에 있어 작고 사소한 거짓말들을 하면서 살아간다. 때로는 그 거짓말로 인해 한 사람의 인생이 슬프게 혹은 기쁘게 바뀌기도 하고, 하얀 거짓말일 때는 한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난 거짓말을 안 한다고 나 자신을 믿고 살아왔다. 신앙으로 자라서인지 난 내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상당한 자부심과 나름 정직하고 바르게 자랐다고 자부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가끔은 혼자 정말 우리 부모님은 참 날 잘 키우셨어, 그래 참 잘 자랐어, 혼자 자신을 칭찬하며 거울을 보면서 매우 흡족하게 바라보기 일쑤였다.

그런데 결혼을 해서 살다 보니 남편이 왜 그리 거짓말을 잘하는지 그것을 어린 딸조차 닮아가고 있었다. 그로 인해 남자가 여자보다 거짓말을 더 잘한다고 확신을 갖게 되었다.

살아생전 우리 아버지 늘 하시던 말씀도 “남자는 도둑놈이다, 백 프로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삼십 프로만 믿어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난 남자를 잘 믿지 못한다. 그런데 아이들 딸 하나, 아들하나 키우는데 왜 그렇게 딸아이는 거짓말을 요리조리 잘하는지…… 둘러대기 명수라고 남편과 딸을 묶어서 잔머리의 대명사들이라고 별명까지 지었었다. 거짓말도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니 약 오르기도 하지만 기가 막히게 둘러치기 대장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피식피식 그 거짓말들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암튼 거짓말대회에 부녀가 나가보라고 할 정도였으니 거짓말하는 수법도 누가 부녀 아니랄까 똑같았다.

그런데 늘 아버지가 하신 말씀대로라면 딸아이는 아빠를 닮아서 그렇다 치자. 아들 녀석은 거짓말의 명수 아들이니 거짓말을 해대어야 하는데 너무도 정직하고 믿음직스럽다. 어릴 때부터 별명이 속에 영감이 들어 있다고 할 만큼 든든했다. 바보스러울 만치 정직한 모습이 답답하기도 했다. ‘아마도 나를 닮은 게야. 못되고 보기 싫은 것은 애비를 닮고 잘나가고 좋은 것은 나를 닮아서 그런다’고 나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기도 했을 만큼 틈 없이 이쁜 짓을 하는 아들 녀석이었다.(-이래야만 거짓말에 속은 부녀에 대한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소한 거짓말을 늘상 하면서 살아간다. 선의의 거짓말, 때론 악의의 거짓말을 해대며 위선과 계략을 일삼아 인생을 즐기며 살고 있다.

그럼 왜 우리는 거짓말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가끔 사소한 거짓말을 하며 살아가는 나도 반성하며 생각해보았다.

‘리플리’ 언젠가 숨을 죽이며 보았던 연속극 <미스 리플리증후군>을 보면서, ‘아, 사람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자신만의 계략으로 자신을 방어해야 한 무언가를 쟁취할 수 있나’ 고민해 보았다. 수없이 거짓을 하고 수없이 되풀이되는 우리들의 일상에서 양심을 죽여 가며 거짓을 해대는 자신들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 본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생각해본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회가 주는 억압과 인생의 고단한 힘겨운 싸움에서 그 거짓말은 내게 가끔 약이 되기도 하는데 정직하게 살기를 고집하고 정의를 꿈꾸던 나도 가끔은 하얀 거짓말을 한다.

그래 어린아이도 뻔한 거짓을 한다. 눈앞에서도 말이다. 맛있는 사탕을 먹고 있으면서도 “이거 맛없어. 맛없어 써써~” 하면서 주지 않으려고 자기의 사탕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며 경악을 한 적이 있다. 그렇게 사람은 자신의 것을 뺏기지 않으려고 또는 자신을 것을 남에게 주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그래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는 마음에서 그 거짓말들을 눈감아 주자 했지만 아직도 나는 불의를 참지 못해 많은 손해를 보며 산다. 이 나이쯤 되면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을 꼭 꼬집어 이야기하고 상대에게 따지기도 한다. 그래 몇 해 전 그것 때문에 나는 커다란 아픔을 겪기도 했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 무수히 많은 비리들이 수없이 펼쳐지고 있는 요즘의 세상에 입이 쩌억 벌어질 듯한 사건들이 난무하면서 사회는 돌아가고 있다. 강자가 약자를 상대로 하는 갑질이란 말이 유행어로 번질 만큼 이제 우리는 그 갑질에 대해서 익숙하다.

[불합리한 걸 알면서도 절대적인 권리 앞에 무릎을 꿇느냐, 모든 것을 잃으면서까지 개인의 존엄성을 지키느냐, 여러분의 선택은 어떠하십니까?]라는 주제로 SBS 뉴 스토리(대한항공) 땅콩회항 이야기가 나왔었다.

저런 상황에 어찌할 것인가에 대해 아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내 현실이 처자식이 있는 상황이라면 난 어찌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망설여졌다는 아들의 대답에 나도 ‘어느 쪽이 옳다’라고 말하지 못하고 서로 한참 한숨만 쉬다가 “그래도 용감해야죠” 하면서 씁쓸한 미소를 띄운 적이 있다. 그리고는 서로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하였다.

진정한 정의 앞에서 왜 요즘은 나는 망설여지는가? 그리고 왜 아들에게 다짐, 다짐을 하며 나서지 말라고 하는가? 나도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들어 엄청 힘들어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 물질에 관련된 먹고 살고자 하는 그 대항과 견주어 볼 때 비열함은 먹고 사는데 빠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수없이 비리를 저지르고 수없이 남의 것을 해하고 수없이 남을 모략하고 중략과 이간질을 일삼으면서 남보다 위에 서고 싶은 사람들, 결국 그것은 자신의 욕심이다. 지금 현재에 갖고 있는 것에 대한 더한 만족하지 못하는 질투 그리고 과욕이다. 인생은 왕복 차비 없는 외길이란 것을 나의 인생 지침으로 살며 수없이 되새기면서도 나도 요즘 비굴하게라도 욕심을 부리며 남들보다 잘살고 싶은 마음이 마구, 마구 솟구친다. 나를 해한 사람도 미워할 줄도 알고 원망할 줄도 알며 짓누르고 오르고 싶다. 절대적 자존심을 내세우며 까짓것하던 나의 어린 시절을 버리고 난 지금도 비열하게 사바사바로 손을 비비면서라도 이 세상에서 풍족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요즘 간절해진다. 그동안 나는 바보같이 나를 해하고 모략하고 해도 꾹꾹 가슴속에 쌓아두며 참아가며 살아왔다. 그저 이해하자라는 마음으로 늘 손해 보며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다 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요즘은 절대 손해 보고싶지 않고 양보하고 싶지 않아졌다. 상대 때문에 억울하다거나 슬퍼지면나도 그대로 되갚아 주고 싶고 그 억울함을 온 사방에 다 알리고 그를 벌

하고 싶어졌다. 슬슬 나도 이제 거짓말을 배우며 남을 짓누르고 싶어지는 악마의 모습을 한 번쯤 닮아보고만 싶어진다. 잘 살 수 있다면야 하면서……

그러나 난 이 글을 쓰고 나서는 결국 나에게는 없을 일, 그냥 글이니까한번 객기를 부려 보는 게다. 난 나대로 살아가자, 힘들어도 거짓말하지말고, 비굴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내 모습대로 살아가자. 그대들도뻔한 거짓말을 하는 용기는 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