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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2016년 [시] 홀아비 외 / 이장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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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706회 작성일 16-12-2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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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장근


나무

매일 그곳에 서 있었다

내가 어딜 갈 때도

다시 돌아 올 때도

해가 떳든

달이 떳든

언제나 그곳은

그로 인해 푸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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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아비


동근 보름달

처마 위 아롱아롱

홀로되신 아비는

떠나신 엄니 생각에

달빛 소근 잠든

마루에 걸터앉아

탁주 한 사발……

어느덧

고목 삭정이 되어가신다


철없는 자식은

냇 건너

풍객의 가서린

웃음소리를 듣고 있다


밤에 홀로 지는 별똥별은

외론 홀아비 마음인가 보다

저리도 서러워

저리도 외로워

자정에야 경새가 슬피 우는가 보다

살아생전 사람이 되라신

엄닌가 보다


스쳐가는 바람에

홀아비 짚신 한 짝 걸쳐

마당을 지나치시고


무르익는 밤늦게

옥수수 누렇게 익어가듯

철없는 자식 또한

누렇게 철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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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는 길


사랑은 그대 자신 안에 충만한 것

사랑을 그리워한 사랑을 애태워 한

그대에 마음은 오랜 세월

태곳적부터 사랑의 불씨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

나 한때 사랑을 찾아

길 잃은 방랑자 마냥

엄마 잃은 아이 마냥

날개 잃은 새 마냥

그대의 가슴 속 사랑을 따오고자

쟁취하고자 그대의 마음속에

나에게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은빛 별과 금빛 달을 닮은

내 자존심마저 던져 버렸으나 못내

그대의 자존심과 이기심은

그것마저 불살라 버렸다네

사랑을 그리워한 사랑을 애태워 한

그대의 마음은 그대 자신 안에

존재하며 자리 잡은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는

자그마한 모퉁이 속 사랑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대를 행복에 다다르게 하는

유일한 사랑을 찾아 누리는 일

다시 말해

사랑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닌

자기 안에서 찾아내는 자

그는 길 잃은 총총한 별이

은하수를 찾음과 같이 행복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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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 보면 생각나겠지요


잊힐까

잊혀질까

걱정 말아요

꽃잎 보면 생각나겠지요


삽상한 봄바람 불어와

골짜기 흐르는 물 따라

간다던

가신다던

임일랑 울지 말아요

흐르고

흐르는 게

세월인걸요

그 언젠가 만날 날이 있겠지요


아침 이슬 머금다 간

촉촉한 목련

꽃잎이

꽃잎새가

임의 얼굴인걸요


그리워

그리울까

자꾸만 바라볼래요

꽃잎만 보며 살아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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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쁜 꽃


그냥 건드리지 말아주세요

그 꽃은

당신이 사랑하지 말아야 할 꽃입니다

제가

하루도 쉬지 않고

마음 졸이며 정성을 다해 키운

어여쁜 꽃이거든요


찰나의 아름다움에

꽃을 꺽지 말아주세요

그 꽃을

보면서 매일을

행복해했었답니다


건드리지 말아주세요

그냥 눈으로만 이뻐해 주시겠어요

그 꽃은

당신이 사랑하지 말아야 할 꽃입니다

제가

매일 매일을

창가에 햇볕을 쬐여 주고

신선한 바람을 맞이하도록 정성을 다해 키운

어여쁜 꽃이거든요


그냥 그대로를

눈으로만 사랑해 주시겠어요

그냥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 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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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하나의 형상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곳,

지금 우리가 살고 있고

발을 내딛은 이곳입니다

국경이 존재하고 민족이 존재하며

서로 다른 신 또한 존재합니다

세계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존재하며

인간은 하나의 형상을 이루고 있습니다

모두 같은 형상이지만 그 안의

세계, 곧 마음은 각양각색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우주를 향하고

세계는 지구에 머물러 있습니다

국가는 국가마다

민족은 민족마다

선을 긋고, 그곳

울타리 안에서 안주하고 있습니다

타민족, 타국가를 경계하며

이념을 만들어 정의라는 이름으로

적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국경마다 하나 둘 늘어나는

미사일과 군인들은

제각각 평화를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제는

세계와는 다른 인간들의 여념이

우주를 향해 내달려야 할 때입니다


모든 분리, 그로부터의 분리

곧, 공유

이것을 실천할 때입니다

국경과 국경 사이에 선을 없애고

그곳에 길을 내어

우주로의 첫발을 내딛어야 합니다

바다와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고

민족이 하나가 되어

서로가 손을 맞잡고

야생동물들이 노니는

언덕에서 함께 뛰어노는

유토피아를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선과 선, 분리와 분리

전쟁과 전쟁, 승리와 승리


이것들은 욕심입니다

넓은, 더 넓은

우주로의 향함


그곳에 평화가 잠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