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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2016년 [시] 세탁기가 나를 씻다 외 / 김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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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3,048회 작성일 16-12-21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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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김향숙

늘 가슴이 뛰는 것은 아니지만
늘 웃음만 호호 나는 것은 아니지만
은혜로 넘쳐흐르는 감사함은
이 순간
서로를 느낄 수 있다는 것
사람들, 계절, 바람. . .

그리고
찬란한 영혼의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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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가 나를 씻다

세탁기 안쪽
거름망 배수구 틈새마다 때가 끼었다
소독제를 풀어 칫솔로 닦는데
그 더러움에 화가 났다
빨래를 깨끗하게 하는 세탁기가
정작 자기 자신은 깨끗하게 하지 못했는지

뜨거운 물 가득 받아
마지막 헹굼으로 돌리는데
찡그리고 들여다보는 내 얼굴을
소용돌이 물살이 씻어주며 말했다

너는 누구의 눈물을 씻어준 적 있었는가
너는 깨끗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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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주의보

정상에 가까울수록
신음 비명 고함이 되는
산이 있었다

해변에 닿을수록
흐느낌 울음 통곡이 되는
바다가 있었다

오래전
내 안 깊이 숨겨 둔
그 산과 바다
가는 길 잊어

상처들 침묵으로 덧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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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치명적 약점을 겨누고
모든 화살이
달려드는 순간에도

우리의 허물과 짐이
서로에게 노래가 되기를

바람을 타지 않는 별자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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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잠

마른 나뭇가지에 달린
고치 속
호랑나비 애벌레의 잠처럼

영원한 하늘나라
하나님 은혜로 들어서는 길

삶의 기운 다 소진하고 누운
우리의 마지막 잠이 평화롭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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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바다에서는 달도 해처럼 뜬다

버스를 온종일 타고 가던
어릴 적 서울을
두 시간 남짓으로 들어선다
참 서울 많이 예뻐졌다
푸른 숲 사이사이 멋진 빌딩들과
한강을 건너는 늘씬한 다리들

나이 들어 생각해보니
젊었을 때 내 차마 바다를 두고 오지 못해
서울 사람 되지 못했다는 것은 감성적 핑계였고
무엇이든 늦었던 내가
도시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었다

서울 풍경도 향수가 되는가 보다
커피숍 거리 디저트 카페의 폴딩도어 밖으로
반짝이며 흐르는 사람들과 차량의 물결

이제는 정작 속도가 아닌
고샅마다의 역한 입김에
사흘을 못 넘기고 돌아서는 도시 멀미

속초 바다에서는 달도 해처럼 뜨는데
서울은 해도 달처럼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