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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2016년 [시] 병실의 냄새 외 / 이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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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087회 작성일 16-12-2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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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국화

연일 35도 ~ 38도의 혹서에
베트남에 사는 아들네 가족이 방학으로 한국에 왔다.
열대지방 베트남보다 한국이 더 덥다고 한다.

더위 타는 나는 금년을 못 넘기나 했는데
살아남아 <갈뫼>에 글을 낸다. 고마운 일이다.
지구 온난화로 갈수록 뜨거워지는 지구!

나는 세상 살 만큼 살았지만 후세들이 걱정이다.
우리 스스로 초래한 이 재앙을 어찌할 것인가.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 누구라 막을 수 있으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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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의 냄새

PM 7시 47분 Sun set
80kg 76세 뇌출혈 노 할머니
화장실 못 가고 침상에서 똥 누실 때면
간호사 4명이 달려오고

냉방 돌아가니 잠그라는 창문
간호사님이 슬쩍 열어 놓는다
고혈압 콜레스테롤 뇌경색 내 머리엔
커피 덜 좋다는데 뜨건 물 받아오라 하여
커피 타 마시며 똥냄새 비켜가려고
커피 잔에 코 박는다

가만가만 회복된 좌반신 마비
평생 처음 누워 본 병실 침대
시간 맞춰 밥 날라다 주고
옷 갈아입히고 청소해 주니 호강이다

간호사들 교대로 와서 건강 체크하고
식구들은 병상 침대 주위로 둘러서서
어찌 그리 큰 관심과 사랑 보여주나
진즉에 그랬으면 혈압 안 올랐지

숨 막혀 헤엄쳐 온 세상 나가고 싶지 않은데
간호사 4명 달려들어 시중드는
노 할머니 똥냄새가
나를 병원 밖으로 자꾸 몰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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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의 전화벨은 세 번만 울리세요

세상에 나와서 이룬 일 없이 병실에 갇히니
잘못한 일만 생각나요
그럴 때 전화벨은 세 번만 울리세요
심장이 놀라 멈추려 하거든요

아니면 지금 막 잠든 중이거나 죽을 먹는 중이거나
링거병 꽂고 화장실 갔거나 CT, MRI 찍으러 갔거나
병세 조금 나아 라운지에 앉아
‘허준’을 만나는 중일 거예요

그도 아니면 전화 받을 팔의 힘이 없거나
말할 의욕도 힘도 없는 거예요
옆 침대 사람도 마찬가지거든요
세 번 울려도 안 받으면 그냥 끊으세요

세상과의 연결고리 헐렁해져서
사랑이 담겼다 해도 시효가 지난 거예요
시효 지난 호명은 고문입니다

누구나 침묵하고 싶은 때 있답니다
그리고 침묵한답니다
남의 목숨 간섭하지 말고요
병실의 전화벨은 세 번만 울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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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병동

꺼꺼부정한 걸음걸이 어기적거리는 동작
덜 죽은 죽음이 움직인다
덜 죽은 죽음이 죽을 먹고
죽이 안 넘어가면
목구멍에 구멍을 내어 들이붓는다

눈 뜨고 천장 보고, 보지 않고
덜 죽은 죽음 보려고 구경꾼들 모여 오고
죽음이 전염되어
무거운 걸음걸이로 되돌아 나간다

죽음이 상주하는 병동에도 환한 불이 켜지고
텔레비전 돌아가 수십억 인구 출몰한다
수돗물이 흐르고 걸레를 빨고
빨래하는 아침은 활기차다

활기찬 아침에 죽음은 없다
변화된 모습이 있을 뿐이다
단지 그것을 희망이라
이름 부를 수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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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의 독서

병실에서 읽는 책은
구절마다 아파 아파하는 것 같다
사랑합니다 소리도 아픕니다로 들린다

희망은 절망으로 읽힌다
죽음을 긍정하면 잠은 꿀보다 달고
모든 활자들이 튀어나와 춤을 추지만

저무는 것들 속에 앉은 자에겐 꿈이 없다
유쾌한 빈혈
오래 앓고 난 사람의 깊은 눈빛 보았는가

망각만이 쌓여 가는 생의 여분
더 이상 밀려갈 수 없는 곳에서
생각하는 갈대가 마른기침 쿨럭인다

체온이나 혈압이나 제어장치 망가져
제멋대로 오르내리는
자유가 그리웠나 보다

구름 낀 사념 속에서 빠져나오노라면
다 핀 목련꽃 큰 잎이
수직으로 땅에 투욱 떨어진다

작은 꽃잎들은 팔랑팔랑
나비 춤추듯 날아간다
해체되는 육신들 모양새도 개성이 최고다

상하수도 뚫으며 내부수리 중
기울어 가는 집에 기대 서 있는
승자와 패자를 한꺼번에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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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 병실

4인이 누운 병실을
밤낮없이
사자(死者)가 기웃거린다

누구부터 불러 갈까
센 머리털 많은 사람?
주름살 많은 사람?

뱃가죽 늘어진 사람?
목발로 움직이는 사람?
탐욕으로 내장이 불어터진 사람?

사자가 고민에 빠졌는지
사자가 피곤에 지쳤는지
아직 행동개시 보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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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병 

내가 나를 안다고 생각했을 때
MRI가 아니라면서
내 몸속을 훑어갔다

살다가 열 받쳐 혈압 좀 올렸기로서니
모세 혈관 터진 정도야 보통이고
뇌혈관에 꽈리가 붙었다니 이건 또 뭐야

낯선 친구가 언제 내 몸에 들어와 있지?
그냥 놔두면 그 꽈리 자폭한다나…….
열심히 세상 산 왕년의 선수에게
이상한 경고장이 발부된다

알면 병 모르면 약
욕심 많은 나 뇌혈관에 꽈리까지 붙이고
그렇다고 안 살 수도 없고
그래 나 지금 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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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 자고 싶은 발

피는 못 속인다고
아담 하와의 유전의 피
잘 흐르다 반역하네
원죄 생각하네

피를 바꾸는 수밖에
도리가 없어
투명 링거 항응고액으로
피를 바꾸는 중

휴식에 들어간 230mm 내 발
환자복 밖으로 나온
뼈와 힘줄뿐인 발
발이 쉬면 온몸 따라 쉬고

발이 달리면
따라 달리며 살아온 삶
지금 내 발은 늦잠 조금
더 자고 싶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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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 새벽 5시

세상 다 산 이들 인생 별거 아니라지만
그때쯤엔 나도
그런 소리 할 줄 알 거라면서
목숨 많이 걸었었다

옳다 그르다에 사랑한다 미워한다에
한 개 목숨 많이도 걸었었다
그 목숨 거덜 날 때 되었는가
갇힌 병실 새벽 5시

창밖엔 6월의 숲 밤꽃 향기
그 냄새 왜 죽음의 냄새로 맡아지는가
죽음은 삶과 다른 줄 알았던
생각의 잘못

죽음 속에서도 아침은 오고
새벽차는 달리고
조깅하는 사나이 신문 우유 배달부
옥상 위에서 체조하는 이

죽음의 모습이 삶과 다르지 않은
종이 한 장 차이인 것
부산하게 일어서는
병실 새벽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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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을수록 좋아

300이요 저쪽 당뇨 환자
200이요 이쪽 내 혈압
체온 39.6도 옆 침대 환자
간 수치 얼마 칼로리 얼마
병실에선 숫자가 판을 친다

한 치의 오차 없는 수치와 시간 사이
박치기하고 싶은 일 많았지만
참고 참았는데
머릿속에서 피가 먼저 터져버렸다
시시하게 터지다 말았단다

뇌출혈로 가다가 도중하차 하여
뇌경색이 나를 볼모 잡고 있는 동안
애가 태어나고 사람이 죽고
김대중은 김정일과 악수하여
역사의 페이지 새로 쓰여질 차례

혹시나 하다가 역시나 하며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살아온 삶
헌 바가지 기워 쓰며 살 마음 없으니
터지던지 깨지던지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은 짧을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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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

항구를 벗어나 70년 넘게 노 저어온
낡은 선박이 며칠째 표류 중이다
육지를 떠나와 암초로 변할지 모를
섬기슭에 발이 묶여 있다
솟지도 잠기지도 못하는 경계에서
무엇을 생각는지 눈 감고 숨만 쉰다

실보다 가느다란 숨줄기는 질기다
살려고 버둥거리지 않으면서
틀어쥔 숨줄기 놓지도 않는다
여러 날째 아직 미해결의 문제 남았나
이승에서 저승에서 서로 밀고 당기나
망망대해 표류 중인 배를 노을도 비껴간다

꿈도 펼쳐 놓고 살았을 그녀
뜨거운 연애도 해보고 싶었을 그녀
도루 쓸어 담느라 시간 걸리나
발 동동 구르며 바라보던 사람들이
하나 둘 먼저 익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