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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2016년 [시] 자업자득 외 / 이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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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894회 작성일 16-12-22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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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충희

시상이 떠오를 때마다
적어둔 몇 줄에 기대
詩로 세우는 일이
점점 버거워짐은
비켜갈 수 없는 노년을 사는 염치다

그래도
내 詩
곰삭아 부드럽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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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업자득(自業自得)

토굴에 가끔 든다는
눈빛 맑은 스님

한적한 철길따라 핀 코스모스 한 컷
고향역입니다
카톡으로 온 고향역 너무나 편안해

예서 내리면 스님 고향 집에 가실 수 있는가요

앗차, 광속으로 날아간 화살

예, 10분이면요

그 10분 거리가 되돌아와
며칠째 목에 걸려 욱신거린다

自業自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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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보로 여우비

북해도 신궁에서 일본 귀신을 곁눈질하는 내내
태풍 여파로 소낙비 오락가락 사이로
고양이를 주신으로 모신 절에 이르러 아연

시음한 한 모금 비루 탓인가
헛디딘 발치에 놓인 셀부르의 우산
치기와 치기의 기하학을 푸는 사이
곡예하듯 빠져나간 삿보로 여우비

그래, 그런 거리쯤의 안부
가끔 아련하다면 더러 위안이라면
여우비 햇살 사이로 흠씬 쏟아져도

늘 거기 당신 젖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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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수(妙手)

왕산골 능경봉 화폭으로 걸리는 낮은 집
통유리에 비친 하늘 날으다 혼절한 물총새
지극정성으로 돌봐 살려놓기를 여러 해
안주인 안쓰러운 수고를 덜 신의 묘수

컵박물관 통유리에 주인장 화가
큰 새 서너 마리 그려 넣었더니
이후 착각의 불상사 없다 했다

오호라 가짜가 실체처럼 유익해
이런 예방 효과라니요
세상 건너다보면
이런저런 부대끼는 관계들
이 한 수로 깨끗이 치유되듯
그런 묘수 있을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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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에 들다

연두가 초록으로

건너가는 산록에 들어

싱그러움 고스란히 묻어난

푸르른 잎새로

말끔히 등목하고

먼 길 타박타박 건너 온

측은한 나를 다독여 뉘어 놓고

오냐, 오냐 그런 녹음에 잠시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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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길 차곡차곡 일군 시인을 위한 시나위
― 권정남 시인 관동문학상 수상 청축드리며

詩의 솟대 곧추세우고 1987년 ‘시와 의식’으로 등단
첫 시집 ‘속초 바람’ 둘째 시집 ‘서랍 속의 사진 한 장’
셋째 시집 ‘물푸레나무 사랑법’에 이어
2014년 ‘연초록 물음표’ 등의 단단한 시집을 상재한
보기 드문 역량 있는 시인임을 시집을 완독한 문우들은
이심전심으로 훤히 알고 있습니다

속초문인협회장, 설악문우회 『갈뫼』 회장, 강원여류시 산까치 회장 등의 중책을 여축없이 치룬 글동네 심부름꾼입니다
낯설고 물선 속초 땅에 떡하니 자리 잡은 영주 처녀
아이들 학부모회의 회장이며 그 잡다한 일을 깔끔히
소화해 마당발 애칭을 달고 다니는 시인 흔치 않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속초사람보다 더 속초 사람 같다는
속초의 권길동 이 호칭이 내비치는 속내엔 우애로운
십이 남매의 맏이 아닌 맏며느님의 대소사 가히 전설입니다

그의 사랑법은 만학도의 근면이 이룬 보기 드문
인간 승리며 부럽기 그지없는 타고난 성품 또한
어찌나 부드럽던지요 그래요 빛깔로 치면 연초록이지 싶습니다
모두를 끌어안는 그의 폭넓은 긍정의 힘이며
단호할 땐 정법으로 상대를 끌어안는 친화력이며
칭찬의 명수임을 가톨릭관동대 평생교육원 문창반 수강생 모두가 감탄하는 십 년여의 강의가 입증합니다
첫 시집 ‘속초 바람’에서 ― 무슨 용서 받을 일 있다고
출항 어선 밧줄 끊어 놓는, 죄명도 모른 채 당하고만 사는
어부들의 삶, 그 비참을 안타까워하는 어진 시인 계심이며
둘째 시집 ‘서랍 속의 사진 한 장’ ― 한 번도 불러 본 적 없는
눈이 맑은 아버지 계시는 서랍 속과 밖의 따뜻한 사연이
풀어놓은 인간적인 편린을 승화시킨 연민의 시인 계심이며

세 번째 시집 ‘물푸레나무 사랑법’ ― 속엔 중년으로 접어든
넉넉한 시인의 자연 예찬법 설악산 비선대 옆 오래된
물푸레나무가 새벽마다 물을 푸르게 키우고 있다고 믿는
사랑하는 이 가슴에 푸른 잎사귀를 달아주는 이치를
사랑법을 넌짓 일깨워주는 무르익은 경계의 시인 계심이며

네 번째 시집 ‘연초록 물음표’를 ― 관통하는 하심 달관이
오월 고사리가 연초록 물음표로 환치되어 살래살래 고개 젓는
生 者 必 滅
그 엄준한 순리를 깨닫게 하는 詩의 典範인 시인 계심은
관동문학상의 위상을 드높이는 신명이라 적습니다

오늘 영광스러운 제25회 관동문학상 수상은
가문의 광영이며 관동문학사에 길이 빛날 기록이며
시인 권정남의 그간의 노고를 위무하는 무등 태우는
문우들의 아름다운 격려며 문운 번창을 위한 부추김이며
이 상을 디딤돌로 더 멀리 더 높이 비상하시라는
당부며 응원이라는 거 깊이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상서로운 화기애애를 담은 꽃묶음 축하로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