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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2016년 [시] 4월 햇살 Service 외 / 박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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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914회 작성일 16-12-2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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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박명자

수복지구 속초. 화약 냄새 가득한 황무지 속초 땅에
갈뫼 씨앗 뿌려놓고 47년이라는 긴 시간 엎드려
감사하며 생의 고삐를 팽팽하게 당기며 달려왔느니
회원여러분 우리 이제 머나먼 이데아의 정점을 향하여
더 높이 솟구치며 더 멀리 뛰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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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햇살 Service

아침 햇살이 나의 뜨락을 새것처럼
활짝 열어 더욱 신선한 4월 !

The man의 볼록한 사이트에
푸른 파일 하나 선뜻 쏘아 보냈다

겨우내 집필 작업에 깊이 빠져
눈썹이 하얗게 세었다는 The man
그대는
호모 솔리타리우스(Homo solitarius)

거친 파도에 은빛 낚싯대 던지듯이
온몸의 피톨 깨워 일으키자고

얼음 궁에 엎드린 110억 개의 뇌세포가
교감 서로 나누는 추상의 선까지
만남의 축배를 들어야 한다고……

씨줄 날줄이 회색이던 침묵의 회랑 속에서
꿈도 접고 오선지도 접고 허공다리도 접어
단순한 박제가 된 듯 하얗게 멈추어 있는 그 사람

고로쇠나무가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출렁출렁 리듬 타는 4월의 악보가
3.1 만세 소리처럼 솟구치며 열리는 계절

4월 햇살 Service
푸른 파일 한쪽 선뜻 쏘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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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바다의 기수들

바다에 허파가 없다고
죽은 것이 결코 아니다

바다 표면을 한 꺼풀 두 꺼풀 열어 보면
감당할 길 없는 무녀의 광기가 번뜩인다

강릉 단옷날 굿당에서 칼춤 추던
박수무당의 기침 소리 들린다

해저 2만 리 시퍼런 갈기 세워 몸부림치던
순도 100프로 4월의 함성도 숨어 있다

바다에 딸꾹질이 그쳤다고
죽은 것이 결코 아니다

바다에는 규칙적으로 정맥이 뛰고
오늘도 7월의 숲처럼 솟구치고 싶은
젊은 기수들이

줄줄이 비릿한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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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 Premium

촘촘한 아침 시간
헐렁한 무명옷을 걸치고
싱그러운 아침 숲을 건너다보면
침엽수림 사이사이로
음이온이 꼬리 치며 돌아다닌다

숲은 청어 비늘 같은 눈을 가늘게 뜨고
피톤치드 한 컵을 내 삶의 덤으로 얹어 주려는데
또 다른 녹색 커튼 속에서
그린레이저들이 초록 지느러미를 흔들며
보석 상자에 입질하는 모습이 보인다

활시위를 떠나가는 화살촉처럼
이파리들의 환희가 일제히 빛으로 터져
하늘 꼭두로 치솟아 오르는

5월 아침 한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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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의 흰 뼈

영하의 아침 호수 산책길에서

호면에 비추이는 나무들의 흰 뼈를 만났다.
비틀거리며 흔들거리며 구비구비 나무가 밟아 온
아픔의 자국을 똑똑하게 바라보았다.

돌아보면 아쉬움도 그리움도 털어버린 앙상한
솔바람……

새들도 둥지를 틀지 못하는 뾰족한 갈증
호숫가를 어슬렁거리는 그들 옹이 속에서
반짝 빛나는 나무의 눈물방울을 보았다

겨울나무들 흰 뼈의 조용한 신열을 짚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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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아침 표정

아침 해가 동산 위에 집게발을
가볍게 올릴 즈음

나무는 더 높이 솟구치고 싶어
젖은 나래를 펄럭거린다

발꿈치를 약간씩 들어 올린다

나무가 쳐다보는 이상의 정점은
하늘에 떠 있는 좁다란 샛길일 수 있지만

잎새들은 도레미 송으로
계속 페달을 밟으며

지구 아닌 다른 행성 쪽으로
연둣빛 춤사위들을 시시각각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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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송 한 그루

노송 한 그루 뒷짐 지고
먼 하늘 바라보며 명상에 잠겨 있다

세파를 초월한 듯 허공의 여유와
은유의 곡선을 하늘에 그리며……

오랜 세월 수행한
고승의 뒷모습이다

소나무는 첫걸음부터 일생 동안
우주의 신비와 거룩함을 향하여
한걸음 한걸음 세파를 헤치고
쉬임 없이 걷고 걸어 나의 고독을 찾아왔을까

솔잎 사이사이 달빛이 은실가락을
굽이굽이 풀어내리는 으스름 깊은 밤

노송은 가슴에서 피리 하나 꺼내 들고
강물 같은 속살을 굽이굽이 풀어헤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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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나무들의 Wedding 행진

4월 아침 하늘은 처음 열리고
경포 호반 벚나무들은
wedding 행진을 드디어 시작하였다

걷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행진이 아니면 행복을 잡지 못한다고

연분홍 드레스에
연분홍 너울을 가득히 치장하고
둥근 호반을 천천히 행진하고 있다

호면을 45° 솟구치는 숭어의 주둥이가
뾰족한 꿈의 궁전을 앞서 열어 보이고

수초들은 알몸으로 일어나
꽃잎들은 하르르 하르르르

굳은살 박힌 앞길을
반쯤 밀고 당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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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의 DNA

허우대 좋고 입성 훤하던 소나무들이
어느 날 우리 시야에서 사라지려고 한다

푸른 줄무늬 제복의 그들이 일렬횡대로
어깨에 견장 번쩍거리며 행진하던 4박자의
리듬이 요즘 들리지 않는다

촘촘한 요설 흐르던 대관령 휴양림쯤
60년 전만 하여도 7월 찰진 햇살 아래
출렁출렁 온몸 흔들던 청산 !

지난 D-day 갑자기 그들은 산문 박차고
끼리끼리 손잡고 우우우우 하늘에라도
솟구쳐 올라갔을까
가볍게 스치는 상상조차 두려워지네

건장한 체구 당당히 나이테 휘감고
귀족처럼 준수하게 빼어났던
금강송. 적송. 해송. 리기다소나무……
지구 어느 편에 꼭 꼭 몸을 숨겼을까

소나무들이 도망갔다면 모르스부호 같은 발자국을
점 점 점 지구 위에 떨구고 갔겠지

「 포클레인이 실눈 뜨고 지나갔다더라
도벌꾼들이 전기톱 들고 건너갔다더라 」

소나무는 제자리에 뿌리 굳게 내리고
강토를 지키려 하였지만
서녘 바람 크게 불어오고 천둥 번개 계속 치고
지하로 지하로 흐르는 젖줄은
천 리를 앞서 가며 비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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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들

처서 지나자
잡초들 눈치가 한층 영글어
날카로워졌다

늘 가까이 보며
만만하게 여겼던 이름표 없는 그네들

밭두렁 논두렁 돌 발길
깨금발로 건너가던 풀들의 뒷꼭지가
오늘 탱글탱글 하지만

일제히 뒤돌아 비상처럼 푸른 눈으로
누구의 오만을 째려볼거니?

< 여귀. 바랭이. 방동사니. 개기장 >

좀 더 삶의 심연 속으로
한 발 딛으려고 머뭇거리다 보면

착한 대지의 아가들이
새 윗저고리를 벗어 흔들며

이기의 땟국물을 저만큼
밀어내고 있지 않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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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새의 Two step

째깍째깍
나의 온몸의 볼트를 조여 주는 5월 아침

빗쭁 비비쭁 빗쭁 빗쭁
구름의 눈꺼풀 속에서
종달새는 거꾸로 떨어지다가 다시
투우스텝으로 하늘 계단을 칸칸이 올려 딛는다

숲길에서 만나는 엉겅퀴꽃
촘촘히 솟은 꽃술에 미소가 가만히 어리우지만

지난 계절 어둠 속에 꼼짝없이
갇혀 누었던 묵정밭 이랑마다
행간의 속내를 풀어보는
마른 입술이 파르르르 떨리 우는데

농부의 고봉밥 그릇처럼 부풀어 오르는
들찔레 넝쿨과 넝쿨 가지는
테러리스트처럼 성난 손톱을 세우며
촘촘한 생의 가운데로 새순을 뻗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