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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2003년 [수필-서미숙]마흔살 엄마의 변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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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갈뫼
댓글 0건 조회 2,750회 작성일 05-03-2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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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때론 버겁다.
그 버거움이 반복되면 나는 슬퍼진다.
아침에 눈을 뜨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나를 짜증스럽게 만들고, 거울
에 비친 내 모습이 초라해 보일 때 나이를 먹는 다는 두려움과 산다는 것
에 대한 압박감이 나를 더욱 힘들게 만든다.
그런 날은 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도 다른 날처럼 나의 지적 감성을 도
와주는 정겨운 가락아니라 왜 저리도 구슬프게 들려 오는지, 아침부터 고
래고래 소리를 질러 일어나라며 학교가야지 하고 잠에서 덜 깬 아이들을
차에 태워 가면서도 나는 혼자 계속 궁시렁댄다.
‘지겨워, 사는 게 지겨워.’
‘힘들어, 너희들 때문에 너무 힘들어, 오늘도 또 지각이야’
‘너희는 도대체 뭐가 될 거야 ?’
달리는 차 속에서도 잔소리를 늘어놓는 내 모습에 아이들은 익숙해 진
양, 말없이 조는 척 하고 있다. 지들이 무엇을 잘못 했는지조차도 모르는
듯 그렇게...
겨우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오는 길에 괜한 한숨이 나왔다. 집에 오니
여기저기 흩어진 옷가지와 목욕탕에 널려진 어지러움들, 오늘은 강아지조
차 엉뚱한 곳에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정말 왜 너까지 속 썩이냐며 말 못하는 짐승에게도 애꿎은 화풀이를 하
고 나니 시간은 후딱 9시가 넘어가 있었다.

그림 그리러 가야 할 시간인데 망가진 아침 기분과 밖에 내리는 엄청
난 빗소리 때문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순간을 갈팡질팡한다.
결국은 빗소리 때문이 아닌 자신의 게으름 때문에 꼼지락거리다 놓쳐버
린 시간의 흐름을 원망하며 치워도 끝이 보이지 않는 대청소라는 이름으
로 아침을 보내 버렸다.
아침부터 자신에게의 징징거림으로 보낸 시간 때문에 하루 종일 마음이
찜찜하여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억지로 이젤 앞에 앉았다. 붓 가는 대로 마
음가는 대로 그림 한 장을 후딱 그리고 나니 그제서야 마음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하루하루 아침마다 전쟁 같은 날들로 보내는 것도 힘든데 아이들은 방
학을 맞았다.
아침마다 차 속에서 싸움을 하는 일은 없겠지만 하루종일 아이들과 씨
름을 할 생각을 하니 숨이 탁탁 막혀 왔다.
그렇게 이쁘고 너무 이뻐서 내 새끼 내 새끼 하면서 옥이야 금이야 키
웠던 어린 시절을 다 잊어버리고 어서 어서 커서 시집장가 가버렸음 좋겠
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조화일까? 산다는 것이 힘이 들어서 이젠 자
식도 포기하고 싶어지는 엄청난 무서운 생각이 아닐까하는 섬짓한 마음에
덜커덕 겁이 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수다를 떨다보니 그것이 바로 늙
는다는 것이라는데....
세상에 그럼 난 이런 일들이‘내가 조금씩 늙어 가는 것이 아닌가?’라
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것도 아니고 이미 늙어 버렸단 말인가 ?
정말 요즘 같아선 혼자서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그전 어릴 적에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기억이 잘나지 않지만 가
끔 아버지께서
‘에고 힘들다. 절에 들어갔으면 좋겠다.’하시던 푸념소리가 기억난다.
지금은 내가 그런 소리를 하고 싶다.

사실 절이라도 있어 나를 오라고 하면 가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산다는 것이 이렇게 다 늘 비슷하게 거기서 거기인가 하는 포기 반 생
각에 좋아하는 빗소리나 들으려고 현관을 빠져 나와 복도에 턱을 기대고
바라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아파트 경비실 입구를 보면서 한숨을 짓고
있는데 우체부 아저씨가 그 빗속에도 열심히 우편물을 나르는 모습에‘그
래 열심히 사는구나’하면서 생각 없이 우편물을 가지러 내려갔다.
깨알 같이 쓰여진 아들 녀석의 글이 담긴 봉투 하나가 눈에 띄었다.
웬일인가 싶어 이 녀석이 엄마한테 뭔 편지를 썼나 하는 기대감을 안고
뜯어본 봉투 안에는 아들녀석의 성적표가 날아왔다.
‘전교 2등...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좋다.’라는 내용과 체육 실기 점수
때문에 아이가 1등을 놓쳐 다며 방학 동안에 운동을 좀 시키면 좋겠다 라
는 담임선생님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중학교를 입학하면서 전
교 1등으로 엄마 손에 장학금을 쥐어주고 1등을 안 놓치려고 노력하여 2
등이라도 꾸준히 지키고 있는 작은 녀석의 통지표가 내 어지럽던 마음을
어느새 달래고 있었다.
큰 녀석은 초등학교 졸업을 하면서 우등상으로 장학금을 쥐어주더니 그
래도 이 두 녀석의 공부하는 모습이 이 엄마를 즐겁게 해준다는 생각에
혼자만의 미소를 지으면서 아까 까지 중얼거리던 절 소리가 나 자신에게
부끄럽게 느껴졌다.
산다는 게 지겨워 죽겠다는 엄마의 짜증소리를 아침, 저녁 자장가 소리
처럼 반복적으로 들어야 했던 우리 아이들이 산다는 것을 더 지겨워하지
는 않았을까 하는 짧은 순간의 생각이 나를 번쩍 정신을 들게 했다.
구겨진 자신을 회복하는데 한 장의 종이로 해결이 되어지는 모순적인
나의 모습이 더 없이 부끄러웠다. 그 부끄러움이 오후 내내 내 맘속에 자
리잡고 있어 모처럼 집안이 조용했다.

아이들이 잠자리에 든 뒤 나는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에 아이들 방에 들
어갔다.
나름대로 자기 할 일들을 잘 해나가고 있는 녀석들의 자는 모습을 바라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역시 내 새끼들이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너희들을 위해서라도 열
심히 살아야지.’
라는 생각으로 녀석들의 두 손을 꼭 쥐어봤다.
이미 기억 속에서 엄마의 잔소리를 지워버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잔
소리를 지워버릴 수 있는 노력이라도 하는 엄마의 모습을 다시 보여준다
면 아이들은 더 힘을 가지고 이 엄마에게 더 큰 기쁨을 가져다주지는 않
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들의 방을 나서며 머리 속은 엄마라는 단어로 만감이 교차된다.
엄마라는 이름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
또 엄마라는 짐은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 ?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엄마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나 자신에게도 보여줘야 하지는 않을까 ?
순간의 힘겨움에 쉽게 짜증내고 그것을 밖으로 있는 그대로 뱉어내는
변덕쟁이 엄마보다는 마음 속에 담아두고 절제하며 아이들에게 사려 깊은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
그리고 깊어 가는 이 밤에 아직까지 내리고 있는 저 빗소리가 더욱 정
겹게 느껴지도록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