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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2017년 [수필] 월광백(月光白)을 마시며 외 1편 / 권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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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3,180회 작성일 17-12-13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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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서 못다 쓴 얘기들을 달빛처럼

풀어서 긴 글로 쓰고 싶다.

한 편의ㅐ 수필을 탈고 하고 나면

가슴 속 덩어리가 쑤욱 빠져나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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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백(月光白)을 마시며


초겨울 열아흐레 달빛이 창밖에 걸려 있다. 겨울바람이 창을 두드리며 지나가고 남편과 모처럼 마주 앉아 ‘월광백’ 차를 마신다. 겨자 빛 은은한 달빛이 찻잔에 어리는 듯하다.
몇 해 전부터 차(茶)를 좋아하는 남편은 취미로 다양한 차를 모으기 시작 했다. 예쁘고 앙증맞은 다기도 가끔 인터넷에서 주문하기도 하고 지인들을 집에 불러 손수 차를 끓여서 대접하는 걸 좋아했다.
퇴근 후면 TV 앞에만 앉아 있는 남편을 위해 아이들이 쓰던 방을 정리하여 남편만의 공간을 마련했다. 30년이 넘도록 가족들을 위해 힘들게 일하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혼자만이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 방에 있던 피아노를 정리하며 책이나 앨범, 음반 같은 것들을 빼내서 일부는 버리고 일부는 다른 방으로 옮겼다. 그리고 이 구석 저 구석에 쌓여 있던 보이차를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차들을 끄집어내서 책을 빼낸 책꽂이에 깨끗하게 정리를 했다. 바닥은 문살로 된 사각 나무식탁을 놓고 원목 진열대에 예쁜 찻잔들과 다구를 얹어 진열했다. 그리고 도포를 입고 붓글씨를 쓰고 계시는 시아버님 사진과 여행지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가족사진들을 액자에 넣어 벽에 걸었더니 아기자기한 차방(茶房)으로 손색이 없었다. 더욱 운치 있는 건 창을 열면 영랑호가 초대하지 않아도 객이 되어 들어와 창틀에 턱 걸쳐 앉는 느낌이 너무 좋다.


보이차 중에 ‘월광백’ 차는 찻잎을 흙더미에 넣고 달빛에 자연 발효시킨 후 바람에 건조한다고 해서 ‘월광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또 하나는 밤에 채엽 한 찻잎을 햇볕에 노출되지 않도록 한 후 달빛 아래 서서히 건조시킨 연잎 차를 말하며, 완성된 연잎 차는 아래 잎은 검고 위의 싹은 희어서 마치 검은 밤에 흰 달빛을 연상하게 하는 것 같다고 해서 ‘월광백’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이렇듯 달을 연상하게 하는 차 이름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남편이 수집해놓은 차들을 보니 보이차 증에서 월광백을 비롯하여 대홍포(大紅袍), 일기일회(一期一會),   동방미인(東方美人), 서호용정(西湖龍井), 경전(經典) 등 운치 있고 재미있는  이름의 차들이 많았다. 내가 시(詩)를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 차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차의 맛보다는 차 이름에 매료가 되어 그 뜻을 알아 가며 차 맛을 음미하는 것이 새롭고 재미있었다.
전문 다실(茶室)처럼 잘 갖추어지지는 않았지만 남편과 나는 만족했다. 차방에 첫 입소하는 날 우리는 ‘월광백’을 마셨다. 두어 모금 마시고 나니 몸에 땀이 촉촉이 배어났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맞선 볼 때처럼 앉은 부부는 약간은 어색한 듯했지만 따뜻한 차향이 금방 분위기를 아늑하게 해주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평소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은은한 ‘월광백’ 앞에서는 달빛처럼 속마음을 풀어 놓게 된다. 마음 같아선 대금 소리나 쇼팽의 ‘월광곡’ 같은 잔잔한 음악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러니깐 작년 음력 구월 열엿새 날 저녁 낙산사 뜨락에서 산사음악회가 열렸다. 휘영청 밝은 달 아래 갓을 쓰고 옥색 도포를 입은 이생강 어르신이 날갯짓하는 학처럼 어깨 들썩이며 대금을 불던 모습이 떠올랐다. 문득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데 일지 춘심을 자규야 알랴 마는/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 이뤄 하노라’ 창백한 듯 흰 달빛의 정한에 못 이겨서 쓴 이조연의 시조도 생각이 났다. 그러나 차 이름이 ‘월광백’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월광곡(月光曲)’이 떠올랐다. 달빛을 따라 숲길을 산책하다가 어느 눈먼 소녀를 위해 작곡했다는 ‘월광곡’ 고요한 호수 위 달빛 아래 흔들리는 조각배를 연상하게 하는 곡으로  베토벤이 그의 영원한 여인 줄리에타 키차르다에게 바치는 음악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마시는 차의 맛이 담백하고 깨끗했다. 남편이 평주가 되어 차를 우려주고 잔에 따라줘서 그런지 혀끝에 와 닿는 맛이 일품이었다. 어쩌면 월광(月光)이라는 이름 때문에 더 좋았는지도 모른다.
7년 전 음력 구월 보름 집 뒤에 있는 영랑 호수에 저녁 산책을 나갔다. 하늘 한가운데 걸려 있는 연등 같은 달이 기름을 칠한 듯 반지르르 윤이 났다. 7.5km 호수 위에 비친 오로라 빛 달이 미끄러질 듯 호수는 흰 얼음판 같았다. 달의 정기(精氣) 때문인지 전율이 일었고 순간 나도 모르게 객지에서 재수를 하며 입시 공부하고 있던 아들이 생각나 달을 보며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한 적이 있다. 또 한 가지는 20년 전 속초에 처음 왔을 때 강원도 여성가족부에서 실시하는 강원 여성백일장 대회에서 시제가 ‘달’이었다. 그때 속초 지역은 영랑호 잔디밭에서 실시했는데 잔디에 앉아서 글을 쓰는 동안 달빛이 내 혈관을 따라 요동치는 것 같은 영감(靈感)을 얻어 단숨에 써내려갔다. 그 결과 장원을 했다. 그때 ‘달’을 쓴 계기가 되어 나는 수필이 좋아졌고 어떤 사물이나 세상일이 가슴에 와 닿을 때면 달빛을 풀어내듯 긴 글로 풀어내 쓰는 것이 좋아졌다.


현대인들은 현란한 조명 때문에 달을 자주 보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한다. 그러나 달빛을 싫어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사람들과 만남에 있어서도 맥주잔을 앞에 놓고 대화를 나누다가 보면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격정적인 감정이 앞설 때도 있다. 하지만 커피잔을 앞에 놓고 이야기를 하다가 날면 긴장이 풀어지고 편안함 같은 어색했던 공간이 금방 친숙해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어떤 잔을 앞에 놓고 담소를 하느냐에 따라 대화의 분위기나 그 느낌이 달라진다. 그러나 백옥 같은 찻잔에 차향(茶香) 가 득한 은은한 차를 마시며 나누는 담소는 상대방에게 예우를 갖추게 되고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한다. 차를 우려내듯 먼저 마음을 우려낸 후 담소를 시작하면 마음의 찌꺼기는 앙금처럼 가라앉고 맑게 걸러진 정화된 마음으로 담소를 나누게 된다.
매일 같이 세상과 부대끼며 살아온 남편이 당신만의 공간인 차방에서 조용히 책을 읽으며 자신과 마주 앉아 삶을 재구성 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가끔은 좋아하는 지인들을 초대하여 마음 나누는 아늑하고도 소박한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고 보니 아직 차방 이름을 짓지 못했다. 무엇으로 지을까? 갑자기 골몰해진다. 어스름한 달빛이 창가에 스미는 초겨울 저녁 남편과 ‘월광백’ 차를 마시며 묵었던 마음을 달빛처럼 풀어내고 나니 좋은 글을 한 편 쓴 것 같아 마음이 환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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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난 길과 남아 있는 길


가는 여름이 아쉬운 듯 먼 산 중턱에 산안개가 유유히 떠가고 있다. 건너편 옥수수밭 아래로 은구슬 같은 내린천 맑은 물이 곤두박질치며 흐르고 있다. 인제, 원통을 지나오면서 바라보는 풍경이 흡사한 폭의 수채화가 허공에 걸려 있는 모습이다. 십여 년 넘게 서울을 오르내리며 그저 무심히 봐 온 풍경들이 오늘만은 처음 본 듯 눈을 뗄 수가 없다.


현대 사회는 속도가 관건인 시대다. 전 국토가 일일생활권에 들어 있어 장거리 운행 시에는 시간이 많이 절약되고 편리해졌다. 지난 6월 30일 홍천, 양양 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서울까지 90분 거리라고 언론마다 연일 홍보를 하고 새로 난 고속도로에는 많은 차량들이 시샘하듯 몰려온다. 속초에서 경기도나 서울 쪽으로 가던 시외버스가 기존 44번 국도 길을 두고 양양 고속도로 방향으로 일제히 노선을 변경했다.
나는 새로 난 고속도로로 버스를 타고 여러 번 서울을 다녀왔다. 백두대간 높은 준령을 뚫어 터널을 만들고 계곡과 계곡 사이 허공을 가로질러 다리를 놓는 건축 공법에 연신 감탄을 했다. 다시 놀란 건 상·하행선이 공유할 수 있는 허공에 지어진 내린천 휴게소다. 상상력을 발휘한 다양한 형상의 예술적 공법은 관광 효과는 물론 시각적인 흥미까지 자아내게 하는 곳이다. 또한 11km 되는 국내 최장 터널이 다양한 조명 시설로 특이할 만하다. 하지만 차들이 정체되었을 경우 서울까지 63개나 되는 터널이 너무 많아 답답하다. 만약 터널 안에서 사고라도 난다면 비상구가 여러 군데 설치되어 있지만 위험해 보였다. 새로 난 길을 다니면서 나름대로 느낀 건 서울서 양양까지는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지만 속초까지는 44번 국도 길로 오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오늘은 수원서 오느라고 기존에 다니던 미시령 즉 44번 국도 길로 속초를 왔다. 서울 갈 때 늘 다니던 이 길이 잃어버렸던 옛 친구를 만난 듯 어찌나 반가운지 새로 난 길에 밀려 조금은 쓸쓸한 듯 남아 있는 국도 길 몇 군데를 추억처럼 돌이켜보았다.
서울서 속초 올 때면 동서울 터미널을 빠져나오면서 한강 물줄기 따라 구리 지나서 오다가 보면 남양주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확 트인 풍경을 만나게 된다. 다산 정약용이 바라보던 은빛 강물 위에 노을이 내려앉으면 저만치 수종사 종소리가 들여오는 듯 마음이 차분해진다. 홍천 즈음 오면 들판 가득 출렁이는 옥수수밭과 가을이면 황금빛 들판이 햇살에 익어가는 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화양강랜드 휴게소까지 오게 되면 휴게소 뒤편 S자로 굽이쳐 흐르는 화양강 푸른 물결을 내려다보며 혼자 커피를 마시는 짧은 시간이 최고 힐링의 순간이다. 나는 여행을 하거나 버스를 타고 서울 갈 때면 평소에 바빠서 읽지 못했던 책들을 가지고 간다. 아름다운 바깥 풍경을 내다보며 책을 읽으면 잔잔한 행복을 덤으로 얻곤 한다.
인제 쪽으로 오다가 보면 내린천변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길과 검푸른 소양강을 가로지르는 38대교를 바라보노라면 분단의 아픈 현실에 가슴이 저민다. 또한 겨울이면 흰 광목을 펼쳐 놓은 듯 꽁꽁 얼어 있는 강 위에서 겨울 낚시를 하고 있는 빙어 축제장 풍경은 보는 사람을 신나게 한다. 원통을 지나 용대리 즈음 오다가 보면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줄에 매달려 있는 수많은 황태들이 바다로 돌려보내 달라고 시위를 하듯 일제히 스크럼을 짜고 돌진하는 풍경이 이색적이다.
또한 내설악으로 접어들어 기암 절묘한 바위를 끼고 미시령 터널을 빠져나오면 날씨에 따라 다양한 형상을 보여주는 강원도의 수호신 울산바위를 만나게 된다. 맑은 날엔 커다란 독수리가 날개를 펼치고 허공을 비상하는 풍경이다. 또한 긴 겨울 폭설이라도 내리면 거대한 백목련이 허공에서 꽃봉오리를 벙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한결같이 변함없는 근엄한 표정은 영락없는 나다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이다. 그런 울산 바위를 나는 숨겨둔 애인이라도 되는 것 마냥 미시령을 넘을 때마다 설레며 바라보고 사진을 찍는다. 어쩌다 심야 버스를 타고 올 때면 밤 미시령 정상 아래 별 밭처럼 반짝이는 속초 야경은 또 어떤가.
수많은 길이 있지만 사계절 풍광이 변화무쌍한 강원도만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속초, 서울 간 44번 국도 미시령 길을 나는 사랑한다. 물론 그 길이 완만한 곡선으로 속도를 내지 못하거나 정체되었을 경우에는 힘들 때도 있지만 기존에 남아 있는 길 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정취와 낭만을 나는 즐긴다. 오늘 몇 달 만에 그 길을 버스를 타고 오면서 잃어버렸던 친구나 옛 지인을 만난 듯 감회에 젖어 몇해 전에 읽었던 피에르 상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했다.
초등학교 시절 십리 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봄이면 소쩍새 우는 소리를 들으며 진달래 핀 산과 들을 바라보고 여름이면 소낙비를 맞으며 개울 건너 우거진 녹음 길을 걸었다. 가을이면 붉은 사과가 열린 과수원 길 지나 낙엽을 밟으며 겨울에는 눈에 미끄러지며 시린 발로 등교를 했다. 길옆에 있던 공동묘지들이 타박타박 걸어가는 나를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고 난 그런 묘지가 따뜻하게 느껴졌었다. 어릴 적 가슴에 남아 있던 그 길이 중년이 지났는데도 어제 다녀온 길처럼 내 가슴에 푸르게 남아있다.
지금까지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그 길 위에서 무수히 만났던 자연의 눈빛과 꿈틀거리는 생명체들이 내 상상력을 자극했기 때문이리라. 그 길을 떠난 후 많은 세월이 지났는데도 가슴에 남아있는 그 길은 지금까지 내 문학의 모태가 되고 힘들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워 주는 힘이 되었다.
중년이 지나 노년으로 접어든 이즈음 내 삶의 길을 돌아본다. 때론 내가 절실히 원했던 길로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때도 있었지만 살아온 길이 숨이 차듯 발이 부르틀 정도로 힘들게 돌아왔던 길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있다. 흑백 사진 속 같은 오래 묵은 시련 속 길 위에서 만났던 사람 냄새가 나던 사람들과 자연들이 시간이 갈수록 짙은 향기가 되어 내 가슴에 여운으로 남아 있다.


양양 고속도로 진입과 동서고속전철 개통 발표로 속초, 양양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고층아파트와 건물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고 외지인들 투자로 땅값은 하늘로 치솟고 있다. 급변하는 현실 속에 어리둥절할 뿐이다. 사람들은 강원도다운 속초다운 맛과 멋 슬로시티(slow city)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속도를 중요시하는 현실 앞에서 조금은 촌스러우면서 비린내 풍기던 어촌 마을들이 때깔을 벗고 물질문명 도시화에 물들어 가고 있다. 속초가 속초다움의 냄새와 향기를 품고 있을 때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것 같다. 이렇듯 갑작스런 변화는 속초를 어설픈 도시화로 만들고 그저 속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조금 느리면 어떠랴, 돌아가면 어떠랴, 강원도의 하늘과 눈부신 자연 속에서 떠나고 만나는 길 위에서 어제의 나를 반추하며 내일의 나를 설계해보자. 사람 냄새 풍기는 길 위에서 천천히 가면 어떠랴, 쉬었다가 가면 어떠랴, 한 번쯤 주변을 돌아보고 자신을 살펴보는 지그시 느림의 미학 같은 여유를 가지며 살아보면 어떠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