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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2017년 [수필] 고성 통일전망대 외 1편 / 박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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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3,214회 작성일 17-12-13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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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다. 그것도 회오리바람이다.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인내가 필요하다.

이제야 고향을 마음에서 내려놓는다.

고향에 집착하면 누군가는 힘들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몸담고 있는 곳을 고향으로 여기며 살련다.


당산나무가 사라진 공허함이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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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통일전망대
─ 마음의 소리



명절이면 늘 정갈하게 한복을 입고 정성을 다해 차례를 지내시던 아버지. 부모 형제 없는 그 하루는 그리움으로 한 잔, 죄책감으로 한 잔, 자식의 도리를 못 한 송구스러움으로 한 잔, 동생들에게 미안하여 또 한 잔, 서글픔과 애통함이 뒤섞인 술잔을 따르고 따르면 어둠은 아버지를 삼키기 시작한다. 어둠이 집까지 삼키면 아버지의 통곡과 함께 휘발유 통이 마당에 놓인다. 북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 죄책감과 책임져야 하는 이곳 가족들 사이에서 생을 놓고 싶었으리라. 차라리 불 속에서 함께 재가 되고 싶었으리라.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죄스러움에 온몸으로 한을 폭발하는 순간이 아버지의 명절이었다.
이제는 아련한 추억으로 느껴진다. 추석 이틀 후는 아버지 생신이다. 가족과 즐거웠던 유일한 시간. 또한 아버지를 위한 시간이기도 하다. 막내 사위까지 함께했던 고성 통일전망대. 올 추석 연휴 중 하루만이라도 아버지와 함께하고 싶다.


통일전망대 출입 신고서에서 인원 기록하여 제출하고 십 분 안보 교육이다. 분단 과정, 6.25 전쟁이 일어난 과정, 현재 남·북 간 문제를 지루하지 않게 제작한 영상을 보고 일어난다. 강제성은 없다. 교육이 끝나면 승용차에 오를 수 있다. 십 분 더 가면 검문소다. 탑승 인원을 파악하고 앞 승용차는 트렁크까지 확인한다. 짐이 많은 우리 차 트렁크는 생략한다. 다행이다. 가족이 탑승했기에 꼼꼼히 확인하지 않았다고 추측한다. 곧 도착한 통일전망대.


칠십칠 세 아버지가 둔덕 위를 오르고 있다. 홀로 걷기는 힘들다. 키다리 아버지 다리에 힘이 없다. 둘째 아들과 제부가 양쪽에서 부축하여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여래불상이 아버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소망을 말해 보라고 하기에 한참을 공손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마음속 말을 들어 줄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눈을 감는다. 죽기 전에 고향에 한 번만 갈 수 있기를. 부모님 무덤만이라도 찾을 수 있기를. 사촌들 소식이라도. 그것도 아니면 고향 소식을 들을 수 있기를. 점점 작아지는 소망을 말한다.
6.25가 일어난 해에 스물여섯 청년이 남으로 왔다. 오십육 년 동안 통일의 그 날을 기다리며 속초를 떠나지 못했다. 이승을 떠나기 오 년 전에 간 고성 통일전망대. 그것이 북녘땅을 본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이야.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북쪽 바다. 잔잔한 듯 무심한 듯 인간의 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짙은 푸른빛을 띠기도 하고 연초록빛을 띠기도 하며 잔디밭처럼 펼쳐져 있다. 해안선 철조망이다. 바다에 접근할 수 없다는 표시다. 이제는 속초에서도 볼 수 없다. 철조망을 보니 실감 난다. 이곳이 최북단이구나!
해안선 몇 발자국만 옮기면 닿을 듯한, 송도를 따라 왼쪽 산맥으로 군사분계선이 있다. 한국군 초소와 북한군 초소가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다. 간절한 마음은 통한다고 했는데, 이곳에서는 부질없다. 오십 년 이상을 고향에 갈 수 있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살아왔지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눈빛은 무심한 듯 바다를 또 산맥을 쫓고 있지만 목까지 차오르는 울음을 삼키니 눈의 실핏줄이 붉게 차오른다. 조용히 눈을 감는다.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가 떠오른다. 미역을 따기 위해 넓죽한 바위 위에 섰을 때 바위는 조각배처럼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연오랑을 왜까지 데리고 갔다. 연오랑을 찾아 나선 세오녀 또한 바위가 움직여 연오랑에게 데려다주었다.
한 발자국만 옮기면, 해금강에 솟아 있는 현종암, 복선암, 부처바위, 사공바위, 외추도가 고향으로 싣고 갈 것 같다. 차라리 저 바위라도 되어 고향을 바라만 볼 수 있었으면. 평안남도 순천군 신창면 신사리, 마음으로만 읊조리는 주소. 이산가족 상봉이 있을 때마다 사촌들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싶어서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했건만. 고향 소식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다. 무심한 세월이 이제는 걷기도 쇠잔한 몸만 남겨 놓았다. 죽기 전에 부모님 묘라도 찾아야 할 텐데. 이제 소원이 있다면 그것뿐이다. 부모님 산소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만 있어도 좋겠다. 그런데 방법이 없다. 친인척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해서 몇 번이나 이산가족 상봉 신청도 했고, 생사 여부를 수소문했지만, 알 수 없다는 연락만 받았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무기력하다니.


파도 한 점 없는 바다를 바라보던 아버지는 한마디 말도 없이 이제 가자고 한다. 눈 속에 울음을 감추고. 내려올 때는 두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계단을 밟는다. 돌아서지 않는 마음이 고개를 돌린다. 여래불상을 올려다본다. 늘 북녘을 향하고 있는 저 여래불상이 될 수 있었으면.


아버지가 떠난 지 십이 년이 지났다. 난 이제야 아버지를 보내드릴 준비를 한다. 오랜 애증의 시간을 놓으려 한다. 이제 아버지를 오롯이 이해해볼까 한다.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했던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고성 통일전망대는 그 첫걸음이다. 그곳에서 아버지를 많이 사랑한 딸의 모습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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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점칠 수 있다면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랑과 연민이다.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미래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이다. 톨스토이 단편 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미하엘은 하느님의 명령을 어긴 죄로 지상에 내려온다. 구두 만드는 일을 하던 미하엘은 세 가지를 깨닫게 되어 하늘로 간다.


불안한 고3 수험생과 부모들은 주어지지 않은 미래를 알고 싶어 한다. 사람이 자신의 앞일을 예측하지 못하는 것은 축복이다. 내일의 희망이 있어 오늘의 괴로움을 견디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수험생들은 불안이 극에 달해 있으면서도 이 순간을 참아내고 있다. 그 모습 또한 아름답다. 내일을 위해 몰두하는 모습. 현재 노력으로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이겨내는 사람도 있다.
수능 한 달 남겨두고 대형 학원에서 파이널 특강을 한다. 오백만 원에서 천만 원 넘는 강의료를 내며 수강 신청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족집게 강의를 들어야 오답을 줄일 수 있다는 불안 심리로 돈을 아끼지 않는가 보다. 스스로 하지 않으면 자신의 공부가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액 강의를 듣는다.
족집게 강의로는 부족하다. 여기저기 족집게 철학관을 물색한다.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예언가들 덕분이다. 점집과 철학관은 문전성시다.

나 또한 미래를 알고 싶어 안달한 적이 있다. 두 아들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다니기 시작한 사주보기는 둘째 대학입시가 끝나고서야 그만두었다. 육칠 년은 다닌 셈이다. 말을 믿기보다는 상담하러 간다는 핑계를 그럴듯하게 대면서. 결정하기 힘든 아이들 입시 문제에서 어느 선택이 옳은지 판단하기 힘들 때마다 집을 나섰다.


큰아들 고3 때였다. 수능 한 달 남겨 두고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리기 위해 또 찾았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말을 했다. 아들이 수능날 수학을 망친다는 것이다. 고3 모의고사 때마다 고른 성적을 냈고, 더군다나 아들은 과목 중에서 수학을 잘했다. 문제가 어려울수록 성적이 잘 나왔다. 오히려 국어가 1, 2등급 선을 넘나들었다. 수능 때 국어만 잘 보면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런데 수학을 망친다니. 그분은 왜 수학을 망치는지 설명했지만 억지말로 들렸다. 서울대를 꼭 보내고 싶으면 수능 보는 주 일요일에 비방을 써 줄 테니 오라고 했다. 그러면서 말끝에
“꼭 서울대 보내려고 하지 마. 아들은 고대가 잘 맞아. 고대 가면 삼십 살 넘어서 인생이 활짝 펼 거야. 물론 삼십 살까지는 고생 좀 하겠지만. 일요일은 쉬지만 특별히 비방을 써줄 테니 수능 보기 전 일요일에 와. 그래야 부정 타지 않아. 오기 전에 전화하고.”
그분의 말을 나오면서 흘렸다. 국어 성적을 올릴 수 있는 비방을 써 주겠다고 했다면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수능 한 과목이 끝날 때마다 뉴스를 확인하고 아들이 어느 정도 성적이 나올 것인가 예상하고 있었다. 둘째는 2교시 수학이 끝나고 인터넷에 올라온 문제를 풀면서 형이 다 맞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수능을 마친 아들은 차에 타자마자 차마 부모로서 들을 수 없는 울분을 토하며 말문도 열지 못했다. 놀란 우리는 아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친구들과 막걸릿집에 내려놓았다. 싫다는 아들을 친구 둘이서 억지로 끌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돌아왔다.
아들은 2교시 수학에서 한 문제가 풀리지 않았다. 정답이 17 나오는 순간 종이 울려서 옮겨 적지 못했고, 그 해에 문제가 쉬워서 계산 실수까지 했다. 문제가 쉬우면 집중을 덜 하는 아들의 성격이 수능에서도 똑같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얼른 옮겨 적지?”
“감독관은 이해하겠지만 주위에 있는 아이들이 문제 삼으면 영점 처리할 수밖에 없어요.”
철학관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수학을 망쳐. 국어는 잘 봐.”
수능에서 평상시 국어와 수학 성적이 바뀌었다. 국어는 한 문제 틀렸고 수학은 네 문제 틀렸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날이 있다고 했던가. 자신만만하던 수학에서 그랬다. 이과생에게는 수학이 중요한지라 충격이 컸다.


철학관에서 들은 말이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다. 남의 돈 공짜로 먹지 않는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다고 여겼다. 그래서 몇몇 친구들에게 말했더니, 용한 점집이 필요하면 그곳 전화번호를 묻는다. 잘 맞느냐고 물으면 맞는다는 친구도 있고, 모르겠다는 친구도 있다. 올해도 친구 아들 중 수험생이 있다. 그것도 재수생이다. 평상시 모의고사는 잘 보는데, 큰 시험에 약하다며 어디 용한 데 있으면 알려달라고 한다. 차마 가지 말라는 말을 할 수 없다. 절박함 마음을 알기에. 또한 현재는 위로가 되기에.


둘째도 서울대와는 인연이 없다기에 수시 때 연고대만 썼다. 그런데 수능에서 시험을 잘 볼 줄이야.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어리석음이다.

내가 찾을 때는 항상 아이들 입시 문제였다. 많은 정보를 남겨서 그분은 나보다 우리 아들의 성격이나 학교 성적에 대해 더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있었을 것이다. 답답한 내가 별생각 없이 말한 것도 기억했을 것이다.


항간에서는 사람의 성격을 혈액형별로 구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설검증 바이어스를 통해 혈액형 성격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한다.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무시해 버린다는 가설검증 바이어스. 나 또한 듣고 싶은 것만 기억했구나. 아들이 서울대 가기를 바란 적이 없다. 담임 선생님들은 꼭 서울대 보내라고 했지만, 고대 가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들이 영어로 밥 벌어먹지 않겠다며 영어를 거부하기에, 학원을 보내지 않았다. 그런 내 생각을 말했을 것이다.
살면서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아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믿었더라면 점집에 다니지 않았을 것이고, 둘째 때 어리석은 원서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나와 아들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 가능성을 듣고 싶어서, 소문에 이끌려서, 어디 용한 점집이 있다는 말에, 용한 소리를 듣고 싶어서, 마음속에서 원하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킬 말을 듣고 싶어서, 찾아 헤매지 않았을까? 살면서 소신이 중요하다는 것을 점집을 다니며 알게 될 줄이야.


내일을 모르기에 오늘이 값진 것이다. 겨울을 모르기에 베짱이는 한여름에 노래를 부를 수 있고, 하루살이는 하루를 힘차게 날갯짓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