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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2003년 [수필-서미숙]일상 속의 슬픈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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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갈뫼
댓글 0건 조회 2,984회 작성일 05-03-26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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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빛이 그윽하게 거리를 메꾸는 것 같더니 변덕의 날씨 탓인지 황사 바
람이 눈앞을 가렸다.
오늘이 친정 아버지 돌아가신 삼오제다.
새벽에 서울행 고속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도착해서 시내버스와 택
시를 갈아타고
용미리에 도착했다.
동생이 너무 멀어 힘들다고 마중 나온다는 것도 마다하고 그 길을 그냥
난 혼자 걷고 싶었다.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그 먼길을 걸었다고 자책감
이 소멸되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걷고 싶었다. 발뒤꿈치가 서서히 아
파 오기 시작했다.
아버지께 국화꽃을 사드리고 싶어서 고속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상가를
다 뒤져서 대국 5송이를 샀다. 버스 안에서 매달려 이리저리 사람들에 치
이고, 봄볕에 오래 걸어서인지 벌써 국화는 시들어 져 가고 있었다.
아버지의 뼈 가루가 묻힌 용미리 납골당에 찾아가서 만져진 것은 네모
난 상자의 차가운 대리석 대국 다섯 송이를 드릴 곳도 없어 옆에 좁은
난간에 겨우 꽂아 놓았다,
‘아버지 좋은 세상 가세요!’
엎드려 절하고 나니 온 몸에 기운이 다 빠지는 듯 했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떠나가야 할 이 세상 아버지께서 먼저 가야 할 길
을 가셨다지만 이렇게 쓸쓸함이 도는 건 무슨 이유일까

만물이 소생하는 이 화창한 봄날에 먼길을 가셨기 때문일까 ?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묘지들은 초록으로 가득 차 있었고 눈부
신 봄빛에 어지러움이 하늘을 찌르며 슬픔이 가슴 속 위통처럼 아려 왔다.
돌아가시기 전날 꿈속에서 그렇게 보고 싶다고 야단을 치셨는데도 난
임종을 못 뵈었다.
살아 생전 딸의 모습을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하는 아버지의 그 소원
도 못 들어 드리고 이곳에서 목 메인 울음으로 아무리 아버지를 불러보아
야 슬픔만 가득 찰 뿐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돌아 가셨어, 정말 아버진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혼자만의 되새김으로 슬픔을 억누르며 한참을 혼자 서성이다 보니 아파
오는 다리 때문에 서서히 짜증이 날 즈음 멀리서 식구들이 도착했다.
지친 몸과 오래 기다림 때문에 내가 일찍 나온 생각은 안하고 왜 이렇
게 늦었냐고 늦게 온 동생들에게 괜한 투정을 부렸다.
차가 생각보다 많이 밀려 늦었다고 미안해하는 동생과 눈을 마주치니
아버지가 더 보고 싶고 수척해진 식구들을 보고 나도 모르게 울음이 나왔
다.
덩달아 어린 조카 녀석들도 울고 그저 이곳은 눈물, 눈물 뿐이었다.
우리도 다른 이들처럼 제를 지내고 한바탕 곡소리들로 또 한번 아버지
의 죽음을 실감나게 하며 눈물로 가슴속 서러움을 토해냈다.
한참을 울고 나 마음을 추스리고 둘러보니 온통 사람들은 검정색의 옷
을 입고 벅적거리는 울음소리와 다른 한곳에선 울음을 잠재운 침묵들, 헝
크러진 머리칼과, 허여멀건 색의 얼굴들만 가득 차 있었다.
그 들 속에 내 모양새도 같을 것 같아서 옷매무새라도 고쳐보려고 얼른
화장실로 가 내 모습을 보았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밤새 잠 못 이뤄 눈은 퉁퉁 부어 있었고 몰골은 핏
기어림이 다 빠져 멍해 보였다.

그들이나 나나 그 속에 나도 뒤엉킨 모습이다 그래 누구에게 잘 보이려
고 이 와중에 하지만 자신의 추한 모습이 싫어 머리에 물기를 묻혀 겨우
만지고 나오니 살 것은 같았다.
그렇게 제를 지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식구들과 저녁을 먹으러 갔
다.
다들 지친 몸이라 집으로 돌아가 뭘 해먹기도 귀찮을 테고 해서 아예
저녁들을 먹고 헤어지자는 의견 에 가까운 음식점으로 가서 자리들을 잡
았다. 무얼 먹을까 메뉴를 정하기도 전에 다 다들 고기를 먹자고 했다.
쇠고기로 허기진 배를 채우느라 울음을 토해내던 시간도 잊고 먹기 바쁜
내가 위선자 같기도 했다. 이 배고픔은 슬픔조차도 잊게 하고 있었다.
엄마가 무서우니 하루 더 자고 가라는 애원에도 불구하고 애들 때문에
안 된다고 내 자식 걱정을 하면서 발목을 잡는 엄마를 뿌리치고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에 도착해 버스시간을 기다리다 문득 온 김에 아이들 옷을 사가
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상가를 한 시간 이상 헤매고 다녔다.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이 옷이 좋을까 저 옷이 이쁠까 고르고 또 고르
면서 가슴 한구석에는 그냥 두고 온 엄마 때문에 마음이 아파 왔다 . 돌아
가신 아버지와 정을 떼시려는 엄마의 무서움을 외면한 채 딸년이란 것은
자신의 자식들을 위해서 예쁜 옷들로 둘러 쌓여 눈요기에 정신을 잃고 있
다. 결국 아이들 것은 하나도 못 고르고 내 신발과 치마 하나를 샀다.
이 이기스러움 결국 나를 위한 쇼핑이었나?
자꾸 밀려오는 아버지에 대한 슬픔 때문에 무언가 넋이 나간 모양인가?
이 상황에 쇼핑이라니 시간을 보니 버스도 놓칠 뻔했다.
막상 버스에 올라 타 자리를 잡고 나니 엄마에 대한 죄스러움이 목구멍
까지 치밀어 올라 왔지만 마음과 달리 지친 몸뚱아리는 나를 깊은 잠 속
으로 빠져들게 하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 하루를 못 치운 집을 대강 치우고 산더미 같이 밀린 빨래
들을 정리하고서야 전화를 드렸다.
“엄마 나 집이야.”
‘엄마 죄송해요.’소리가 목젖까지 올라 왔지만 힘들고 말이 길어 질까
봐서 얼른 전화를 끊었다.
벌써 다른 친구들이 친정부모 돌아가셨다고 했을 때 난 그저 그렇구나
했었는데
‘나도 이젠 정말 아버지가 안 계신다. 아버지란 그리운 이름도 다시는
부를 수가 없구나.’
밀려오는 슬픔이 다시 가슴 한구석을 저리게 했다.
오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엄마에 대한 죄스러움 때문에 잠은 오지
않을 것 같아 베란다 밖을 내다보았다,
환히 비추는 달님도 내 마음을 아는지 오늘따라 유난히 밝다.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진 너무도 점잖으시고 깔끔하신 모습으
로 동네의 멋쟁이로 불리셨다. 우리를 키우시는 동안 소리 한번 지르지 않
고 매 한번 들지 않으셨다. 언제나 조용하시고 인자하신 모습으로 우릴 대
해주시던 아버지......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의 비중
도 작아 질 거고 산사람의 삶은 어째 건 지속되어 질 테고, 엄마는 뭐 다
음에 가서 좋아하시는 청국장 끓여 드리면 되고 하면서 자신에 대한 죄스
러움을 애써 합리화 시켜버리고 나는 또 바쁜 내일을 핑계삼아 잠을 청
했다
그렇게 돌아오는 일상들을 위해서 우리의 시간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