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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2017년 [시] 울역 외 2편 / 장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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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3,116회 작성일 17-12-18 14:13

본문

가을 나무들 곁에서

나도 한 그루 뼈다귀 나무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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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역*



서울역 한 귀퉁이 따스함을 찾아
주소를 잃은 사람들이 서성대고 있다
지나가는 승객들이
세속의 바람을 한 줌씩 흩뿌리고 가도
그들은 이제 바람의 냄새를 맡으려 하지 않는다
튼실한 아들도 낳았음직한 건장했던 몸들이
물처럼 허물어져 내려
이곳에선 눈물들을 촛농처럼 떨군다
보고 싶고 말하고 싶어도
점점 멀어져가는 희미한 의식의 가장자리
소주에 몽롱한 상태로
때 절은 이불과 스티로폼을 돌돌 말고서
고치의 부활을 꿈꾸지만
부고도 없이 사라져가는 이웃들
떠난 이는 귀향해 울울한 나무들이 반기는
마을의 수호천사가 될까


* 울역 : 노숙인들은 서울역을 ‘서’자를 빼고 ‘울역’이라 부른다.
‘서울역에 오면 한번은 우는 역’이라는 그들만의 줄임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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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국에서 온 나타샤와 남국에서 온 후엉들이
조롱 속에 서로 어울려서 꽃웃음을 판다
사내들이 가슴에다 양주를 쏟아붓는
짓궂은 의식에도 점차 익숙해진다
몽롱한 상태에서
그녀들은 고국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백야의 밤들이 잠 못 하거나
한낮의 스콜이 더위를 씻어 줄 때
어머니 팔베개를 하던 곳
숫처녀로서 스쿠터를 타고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미래를 달리던 곳
사내들이 탁자에 재떨이를 내리치자
언뜻 잠에서 깨어난다
사내들의 손이 꽃잎 한가운데에 이르자
놀란 꽃들이 진저리를 친다
그녀들의 서식지는 이제 슬픔이 가득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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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창문으로 손짓하자
그녀들은 이제 조롱 밖으로의 탈출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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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진 것 불알 두 쪽밖에 없으니
라면을 먹더라도
불알보험에 들어야겠다
어떤 이는 불알 두 쪽으로
건물을 세웠고
다른 이는 쪽박을 차고
폐지 수집꾼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불알 때문에 허무했고
불알 때문에 충만했다
쪼그라드는 불알이라도
사랑하는 여자가 있을 것이다
물푸레나무 같은 여자가
거기에다 물을 길어 올릴 것이다
나는 날마다 부활하여
새로운 하루를 열 것이다
희망이 탱자처럼 탱탱이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