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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2017년 [시] 旣示心 외 9편 / 김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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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3,227회 작성일 17-12-18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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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은 가난하여 따듯했지만

노년은 쓸쓸하고 고독하다.


살아 낸다는 매듭이 고혹하기 그지없으나

때로는 새털 같은 낙엽의 노을에 실려

샛강의 낮은 여백에 기대고 있다.


물안개 피는 굽이에 머물러

길을 묻는 물방을로

스미고 싶어진다.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부를 노래도 없었을 시어들이

옹알이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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旣示心



森林에 목욕하는 열목어를 보았더냐?
바라만 보아도 서늘타.


지그시 임을 품어야 정이 솟더냐?
눈 감아도 불쑥 아련타.


창가에 기대기 만 하여도
동행인 『갈뫼』의 불혹.


영랑이여, 束草여! 병풍 같은 울산바위여!
청봉이여!


눈 감아도
뮤즈와 춤추는
고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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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影



처녀 적 수줍은 달빛이더라.


모내기 끝낸 뒤 자잘한 논배미
그림자로 따라오던 아낙이
반영의 달빛에 걸터앉아
투정을 부린다.


살강대는 고샅은
아직 추워
별 밭에
잠든


저 달은 내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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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



다람쥐가 남기고 간 도토리 깍정이에
엽주
한 잔


나그네도
반주
한 잔


꽃신 남기고 떠난 첫사랑의
임자여
한 잔


무화과 농밀하게 익은 만찬의 청대밭
가창오리여
진하게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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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맘



엄마가 아니라
작두날입니다.


시부모, 남친, 이웃집 아저씨 아줌마, 선생님도
피의자 신분일 뿐입니다.


유교 불교 이슬람 신전도 아닙니다.
야생의 세상사에 변신했을 뿐입니다.


아이는 클레오파트라의 감시 아래서도
악어 게임에 빠져 중간 치기 합니다.


외계인 반열의 사내가 까치집을 짓고
거미줄을 타며 끼니를 거릅니다.


평등사회학은 밤일 때만이구요
나머지는 똥개 훈련입니다.


시부모가 “내 나이가 어때서” 하면
“사망하기 딱 좋은 나인데”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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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악산 터널



출구에는 늘 영화처럼 봄비가 내린다.
첫사랑의 레일은 불꽃 튕기고


침목을 베고 혼곤히 잠들었던
산성의 또아리굴


아무도 거길 오르는 인적은 없지만
풍화하여 동공이 넓어진다.


새로 난 터널 입구에서 고속 전철은
기적을 울리지 않는다.


청순의 꽃잎들은
불완전 변태


날개 달린 곤충과 새들은
젖은 눈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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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별



귀는 퇴화하고 입은 벌레 먹고 코는 헐었다.
팔다리도 없이 눈만 진화한 유령이
배꼽을 핥고 어딘가로 사라진다.


더 이상 버티기 힘겨워
별에게 전보를 친다.


우주의 수혈에도
물방울별은
숨쉬기 운동이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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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웅박벌



칠팔월이 호시절이다.
계수나무 부드러운 새잎을 잘라서
통나무 구멍에
잎을 말아 삭히고 진흙을 발라
알을 낳는다.


제4종 꿀벌에 속하며
홀로서기로 지내며
꿀과 화분을 저장하지 않는다.
정처 없는 여행을 즐긴다.


유유자적하다가 가을 말미
처마나 나뭇가지 아래
진흙 항아리 빚어
번데기 유충으로
월동한다.


나는 뒤웅박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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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선생을 다스리기 위해 교장은 매일 운동장 조회를 명합니다. 학생들의 기강을 세우기 위해서 소지품, 신체검사를 실시합니다. 장설 훈시로 1교시 까먹지요.
국민체조의 전주곡은 흐르는데 긴 낭하 양쪽 끝에만 있는 신발장에서 내 신발은 사라지고 없었죠. “동작 그만”을 외치고 집합이 완료되지 못한 학생은 따로 모아 운동장을 돌리죠. 맨발의 청춘은 귀 잡고 오리걸음에 똥꼬차기 당하죠.


  차라리 숨자. 주번교사는 순찰을 돕니다. 사냥꾼 똥개들이 개코를 벌름거리며 똥간을 뒤지고 교탁 안을 두리번거립니다. 담치기로 도망친 굴비들이 포복 당하고 “정신통일”, “정신통일” 악다구니합니다. 출석부를 든 담임이 멸치를 셉니다. 선배들이 저학년 신발을 꿰어 차고 있다가 귀싸대기에 나동그라집니다. 신발은 찾았으나 귀가할 길이 막혔습니다. 바닥인 쌀독에서 두 되를 훔쳐 팔아 선배의 검정 고무신을 사다 바치고 X-동생의 우울한 나날 끝에 6학년이 되어 잠시 해방을 맛보았습니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의 개꿈에는 그 옛날 확성기 사이렌 소리가 운동장 조회를 알립니다. 새 운동화를 젖가슴에 품고 마루 교실 바닥에 들기름 먹이며 배 아프다는 핑계로 자꾸만 쓰다듬어 줍니다.


  저학년 제식 훈련 시간에 발이 꼬이는 바람에 무쇠 호각을 치받아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하나, 둘, 셋, 넷” 제식 훈련받던 일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훈장 달린 정수리를 안고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졸업식장에서 한없이 울었습니다.
  “잘 가세요, 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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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묘지



봉분 위에 봉분
신분은 무너진다.


빌딩 숲에서
시루떡을 나누어 먹으며


출렁이며 감돌아 흐르는 한강을
굽어살핍니다.


점에서 선으로 네모에서 육각형으로
타원형으로 자꾸만 낮아집니다.


묘비명이 누워 있다가
그마저도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
나무뿌리에 잠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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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나리



물방울 속에 꽃이 피고
물방울 속에 화전을 굽고
물방울 속에 물방울이 회오리친다.
물방울 속에 철새들이 보인다.
물방울 속에 비눗방울들이 미끄러진다.
물방울 속에 세월 닮은 배가 떠올라 줌인 된다.
물방울 속에 애비의 딸이 똥줄 탄다.
물방울 속에 총알이 날아간다.
물방울 속에 메나리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