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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2017년 [추모특집] 박명자 작품 해설 - 박명자 詩에 나타난 고독(孤獨)과 나무의 생명력(生命力) / 권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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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1,822회 작성일 17-12-1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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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와 문학(文學)의 태동기(胎動期)


평생 동안 詩에 대한 열정으로 삶을 살아온 박명자 시인(1939년)이 2017년 3월 14일 밤 열 시 사십오 분 심장질환으로 갑자기 유명을 달리했다. 마치 詩를 향해 돌던 초침이 만물이 깨어나고 소생하는 새봄에 갑자기 멈추어버린 것 같았다. 동료 문인들은 물론 그를 아껴주던 주변의 많은 분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으며 강릉 청솔공원에 안장했다.
박명자 시인은 허난설헌을 비롯하여 몇 해 전 타계하신 강릉 출신 함혜련 시인과 강릉에서 문학 활동을 하던 구영주 시인의 시정신(詩精神)과 맥(脈)이 닿아있다고 볼 수가 있다. 그들은 모두 다작(多作) 한 시인으로 한결같이 삶이 힘들고 고독했으며 오로지 시를 쓰면서 삶의 위로를 받고 한평생 시를 위해 몸과 영혼을 바쳐온 시인들이다.
지금 이 순간도 박명자 시인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면서 이 글을 쓴다. 박명자 시인과 나와의 인연은 25년 전 내가 처음 속초에 왔을 때 딸아이 담임과 학부형 사이로 만났다. 약 일 년 동안 서랍으로 하나 가득 될 정도로 많은 손편지를 서로 주고받았다. 그 무렵 박명자 시인은 언니처럼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며 ‘설악문우회’를 비롯하여 ‘강원여류시 산까치회’에 입회를 시켜 주었다. 그 후 속초를 비롯하여 강원도에서 문학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나를 이끌어 주신 멘토 같으신 분이셨기에 이 글을 쓰면서 더욱 마음이 저리고 아프다.
고인은 강릉 홍제동에서 태어났으며 강릉사범학교를 졸업 후 경포초등학교에서 첫 교직 생활을 시작으로 39년 동안 속초와 강릉에서 후세 양성을 위해 교직에 몸담아 왔다. 박명자 시인은 사범학교 2학년 시절 이화여자대학교 주최 전국 여고생 문예경연대회에서 장원을 하였으며 문학적 재능을 이미 그때 인정을 받은 바 있다. 그 후 1973년 『현대문학』지에  이원섭 시인님의 추천으로 시 「목련  이미지」로 등단한 후 첫 시집 『아흔 아홉의 손을 가진 4월』을 비롯하여 『빛의 시내』 『바람의 생명율』 『나무의 은유법』 『자유의 날개 짓』 『매일 다시 일어서는 나무』 『시간의 강하』 『혼자 산에 오는 이유』 『시간의 흔적들을 지우다』 『잎새들은 톱니바퀴를 굴리며 간다』 『2시 15분의 청보리 밭』 『떠도는 나무』 『낯선 기호들』 같은 13권의 시집을 출간하였다. 금년 봄 ‘나무’를 주제로 하는 14번째 시집 『아픈 나무를 위하여』를 준비하다가 안타깝게 별세하였다.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비롯하여 조연현문학상, 난설헌시문학상, 관동문학상, 공무원문학상, 강원문학상, 강원도문화상, 속초시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 교직에 재직시에는 국민훈장모란장과 문교부장관(모범교사)상을 수상하였다.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한국본부회원, 한국여성문인회, 한국시인협회, 강원도문인협회, 관동문학회, 강릉문인협회, 강릉여성문학인회, 강원여류시 산까치회, 속초문인협회, 설악문우회 회원으로 최근까지 중책을 맡으며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박명자 시인은 2014년도에 작고한 고 윤홍렬 속초예총 초대 회장님과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수복지구 속초에서 1969년 ‘설악문우회’를 창립했다. 이성선, 최명길, 강호삼, 김종영 등 몇몇 창립 회원들과 주축이 되어 이듬해인 1970년도에 동인지 『갈뫼』 창간호를 발간했다. <갈뫼> 제호는 박명자 시인의 제의로 결정을 했다. 박 시인은 다년간 ‘설악문우회’에서 중책을 맡아 활동을 해왔으며 『갈뫼』 46집이 발간될 때까지 반세기동안 열정을 다해 속초지역의 대표 문예지인 『갈뫼』를 키워왔다. 그런 이유로 ‘설악문우회’와 <갈뫼>는 박명자 시인의 문학의 산실(産室)이고 태(胎)를 묻은 곳으로 평생 동안 『갈뫼』를 사랑했다. 박명자 시인은 『갈뫼』 40집 시작 노트에 ‘<갈뫼>는 나의 경우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갈뫼>는 내 문학의 텃밭, 때가 와서 가는 날까지 <갈뫼>를 사랑하며 <갈뫼> 그늘에 나의 영육을 쉬게 하리라’라고 썼으며 45집 시작 노트에도 ‘<갈뫼>, 때때로 삶의 고비 길에서 휘청거릴 적이면 <갈뫼>는 어김없이 손을 내밀어 내 혼과 비틀거림을 안아주고 부추겨 주었다. <갈뫼>는 내 문학의 고향, <갈뫼>는 내 시의 어머니’라고 썼다. 즉 속초 <갈뫼>는 박명자 시인의 정신적 지주(支柱)이며 분신과도 같은 의미로 해석이 된다.
살붙이처럼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갈뫼>를 사랑한 박명자 시인은 1973년 속초에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을 한 후 육 년 뒤인 1979년 첫 시집 『아흔 아홉의 손을 가진 4월』을 발간했다. 이 시기를 두고 박명자 시인의 문학의 입문과 함께 태동기라고 할 수가 있다.
박명자 시인은 인간적이면서 순수하고도 선한 심성으로 문학과 사람을 사랑했으며 혼신을 다해 시를 쓰며 살아왔다. 박명자 시인의 13권 시집 중에서 고독을 형상화시킨 ‘신발’에 관한 시와 시인의 삶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어준 ‘나무’를 주제로 쓴 시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2. 生에 드리운 고독과 허무의 굴헝


‘시는 고향이나 사랑에 대한 열병 같은, 목구멍 속에 있는 어떤 덩어리에서 시작한다. 그것은 표현을 향한 내뻗침이며, 성취를 찾으려는 진력이다.’라고 한 로버트 프로스트의 말이 생각이 난다. 박명자 시인은 목구멍속까지 꽉 차있던 쓸쓸한 고독과 허무의 덩어리를 시로 토해낸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정화되고 후련해지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1980년대 후반기부터 1990년대 전반기에 쓴 대부분의 시들은 굴헝 같은 고독과 허무가 자리 잡고 있다. 애이불비(哀而不悲)하듯 슬픔을 겉으로 노출하기보다는 안으로 삼키며 운명에 순응하듯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다가 내면 깊숙이 깊게 파인 상처를 제 살 깎아 먹듯이 직시하며 생에 드리운 고독을 극복하기 위해 창작에만 몰두하게 된다. 시 「굴헝에 대한 안부」는 마음 한 자락에 그늘처럼 웃자라고 있는 처절한 고독의 순을 형상화시킨 그 대표적인 시이다.


우리 집 어딘가에 굴헝이 있다


아가리 크게 벌리고
구석에 엎드려 있다


계절이 가끔 발가락 들이미는 언저리
굴헝이 긴 시간 눈 뜨고 있다


굴헝에는 때때로 초록별 내리고
꽃잎 몰고 가는 바람 스쳐 가지만


굴헝에 발 헛딛고 캄캄한 어둠이 된 그 사람
여직 돌아오지 않는다


껍질처럼 삶을 벗어두고 한 줄기 무지개로
사라진 남자


우리 집 어딘가에 굴헝이
긴 시간 나를 내다보고 있다.


— 「굴헝에 대한 안부」 중에서


언제 부터인가 / 千길 깊은 굴헝 하나 / 내 안에 있읍네 / 어둠을 향하여 / 입쩍 벌린 굴헝 // 언덕 위에 사랑스런 꽃송이 / 꺾어보니 香이 아니고 어둠이 되네 // (중략) // 사랑하는 이여 / 언덕에 있을 때만 당신은 / 꽃이 되네 // 당신이 내 안에 들면 / 캄캄한 어둠 송이가 / 되는 것을
— 「꽃잎 굴헝에 지다」 중에서


삶의 절정기인 사십 대에 남편과 사별을 하고 외롭고 어두운 굴헝 같은 집에서 박 시인은 누에고치처럼 웅크리고 있다. ‘굴헝에 발 헛딛고 캄캄한 어둠이 된 그 사람 / 여직 돌아오지 않는다 껍질처럼 삶을 벗어두고 한 줄기 무지개로 / 사라진 남자’ ‘사랑하는 이여 / 언덕에 있을 때만 당신은 / 꽃이 되네 // 당신이 내 안에 들면 / 캄캄한 어둠 송이가 / 되는 것을’ 이렇듯 굴헝 속 어둠을 노래하고 있다. 박명자 시인의 삶 앞에 춥고 외로운 굴헝의 계절이 발가락을 들이밀다가 초록별이 내리고 꽃잎을 몰고 가는 쓸쓸한 바람만이 스치며 지나가 버린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버리고 무지개처럼 사라진 그 남자는 돌아오지 않고 캄캄한 어둠 송이가 된 당신을 그리워하며 냉기 가득한 빈 둥지에서 시인은 홀로 가슴을 뜯고 있다.


신발 한 짝 잃어버렸다
나는 한 신발로 굽이굽이 험한 산길
차가운 강을 건너 왔다

허허한 눈벌을 한발로 걸으며
중심 잃고 절룩거리며
아득한 원점의 설원을 건너다 본다


이미 나는 바르게 걷는 법을 잃어 버렸다
앞으로 앞으로 시작이 어딘지 끝이 어딘지
술취한 사람처럼 허공 다리로 걷는다


때로는 길 아닌 길 밟기도 하고
때로는 바람의 고리를 밟기도 한다


오랜 시간 한 발로 왔음으로
한 발이 두 발인 양 대강의 중심을 잡고
언뜻 언뜻 지나간 세월
허기진 혼 비틀 거리며
다만 시퍼런 오기 하나로 버티며 걸어가는
중심 잃은 내 신발


— 「짝잃은 신발」 전문


내 신발 한 짝 강에 떠내려갔다 / 그는 뒤도 안보고 멀리멀리 가 버렸다 // 그는 옷도 안 벗고 / 사유의 깊은 곳에 몸을 던졌다 // 중략 // 굽이쳐 흐르는 시간의 강하에 내 신발 저 혼자 떠내려갔다
— 「시간의 강하에 떠가는 신발」 중에서


시 「굴헝에 대한 안부」와 「짝 잃은 신발」 「시간의 강하에 떠가는 신발」 「두고 떠난 신발」은 모두 같은 맥락으로 읽혀지는 작품들이다. 삶의 지지대가 무너지듯 젊은 나이에 먼저 떠나보낸 사랑하는 남편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을 신발에 비유하여 그 허망한 자리를 곱씹으며 홀로 아픔을 되새김질하고 있다. 즉 어둠 속에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나이팅게일처럼 시인은 참았던 울음을 목소리를 낮추어 시로 노래를 한다. 그러고 나면 영혼 한 자락이 맑아지는 것을 느끼며 훌훌 털며 일어선다.


신발장에 여직 남은 / 주인 잃은 신발 한 켤래 // 굽이굽이 돌아보면 아득히 사라지는 / 이승의 화안한 웃음 소리 // 오동잎 지는 이 밤 뚜걱뚜걱 …… / 낯익은 발자국이 내 가슴 한 쪽을 / 밟아 오고 있다.
— 「두고 떠난 신발」 중에서


시인은 아내를 두고 혼자 떠내려간 ‘신발’을 질책하기보다는 상실감에 젖어 이승의 환한 웃음소리를 환청으로 들으며 피울음 섞인 시를 써놓고 홀로 정한(情恨)의 아픔을 달랜다. 질식할 것 같은 고독과 허무의 굴헝에 갇혀 있던 박명자 시인은 「시인의 신발」을 비롯하여 ‘신발’을 테마로 쓴 시 18편을 써서 제 7시집 『시간의 강하』에 발표를 하였다. 쫓기듯 삶을 살아오면서 홀로 아이들을 키우며 한 가정을 이끌어온 작품 속 화자(話者)인 박 시인은 다양한 신발에 자신의 모습을 대입시켜서 시로 형상화 시켰다.
‘신발’이란 주제로 장호 시인과 화답시를 주고받으며 삶의 아픔을 서로 교류했다. 장호 시인은 『시간의 강하』 7시집 작품 해설에서 ‘박명자 시인의 신발 시에는 끊임없이 채찍질 당한 그 자신의 살갗에서 배어난 피가 얼룩져 있다.’라고 썼다.
작품 속 신발은 주인공 화자의 삶에 자리하고 있는 견디기 힘든 고독과 동일시 되고 있으며 한편 자신의 심연을 응시하는 성찰의 의미로도 해석할 수가 있다. 시 「짝잃은 신발」에서 신발은 유일하게 삼인칭으로 표현이 되었으며 나머지 17편의 ‘신발’은 시인 스스로 화자가 되어 아픈 삶을 고해성사하듯 속울음을 쏟아내고 있다.


내 신발은 자주 밟힌다 // 사람 많은 거리에서 / 또는 b지하도 입구 층계에서 / 사람들에게 밟히기 일쑤이다 // (중략) // 많이 가진 자의 발밑에서 / 코가 찌브러져 형편없는 몰골이 되어 / 밟히고 있다.
— 「밟히는 신발」 중에서


저들은 손에 손에 몽둥이를 들고 / 신발의 꼬리를 겨냥하며 달려온다 // (중략) // 그리움의 세계도 땡볕 더위에 엿가락처럼 녹아 버리는데 // 쫓기고 쫓기어 막다른 벼랑에 선 내 신발
— 「쫓기는 신발」 중에서


댓잎 소리 우수수 산 그리매를 몰고 지나가고 / 버려진 신발 / 반쯤 죽어 있는 눈썹 위에 / 흰 눈의 옷자락이 길게 엎드려 있다 // 내가 산다는 것은 저렇게 버려진 / 한 짝 신발의 허기진 모습일는지 모른다
— 「버려진 신발」 중에서


시인은 홀로 있거나 떠난 남편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이 치밀어 오를 때면 ‘신발’ 시를 써놓고 잠시 가슴앓이를 해소한다. 그러나 세상 밖으로 나오면 시인은 가진 者와 높은 者 앞에서 밟히고, 쫓기고, 버려지는 신발이 되어 차가운 현실 앞에서 주눅이 들고 의기소침해진다. 그러한 고통은 박시인 존재에 대한 의미와 삶의 가치를 발견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즉 아픔과 모멸의 긴 세월을 견뎌온 시인은 겨울밤 산사 처마 끝에 매달린 채 푸른 밤 눈뜨고 있는 목어처럼 시인의 의식은 시퍼렇게 깨어난다. 그럴때마다 신발을 통해서 무당이 사설을 풀어 놓듯이 소외된 현실 앞에 자신의 한(恨)을 풀어 놓는다. 삶 앞에 놓인 캄캄한 언덕이듯 다양한 신발 앞에서 운명처럼 가슴을 뜯다가 삼라만상이 잠든 푸른 밤이면 시인은 반짝 정신을 차리고 이성을 찾게 된다. 그러고 난 후 시인은 자신을 채찍질하던 지리멸렬한 고독과 허망 앞에서 눈물을 닦고 생명이 요동치는 4월 들판으로 나설 채비를 한다.



3. 삶의 생채기에 4월을 충전하다.


4월 아침 비로소 / 나무의 맨발은 발광체처럼 한껏 빛이 났다 // 오늘 따라 알싸한 맨살의 향기 / 신비로운 빛 목피 스치는 4월 / 중략 / 나무 앞에 손을 가만히 내어 민다.
— 「벼랑 끝 몸을 세우는 나무」 중에서


그러나 오늘은 4월이예요! / 이제 4월이 씀바귀처럼 여린 고개를 쳐들고 / 온갖 땅벌레들을 불러 모아 비릿한 벌판으로 / (중략) / 4월의 들판을 곧장 가로질러 갈 거예요.
— 「4월 푸른 반점의 노크」 중에서


화창하게 개인 4월 아침 / 숲을 가만히 응시하면 사뭇 시끌시끌한 나무들의 수화를 들을 수 있다.
— 「시끌시끌한 4월의 숲」 중에서


언 땅을 뚫고 생명이 소생하는 4월을 시인은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시에도 4월이 많이 등장한다. 첫 시집 제목 역시 『아흔 아홉 손을 가진 4월』이므로 박명자 시인한테 4월은 더욱 의미가 있는 달이다. 몸에 장식처럼 걸치고 있던 고독과 허무의 굴헝을 털어버리고 삶의 생채기가 덕지덕지 묻어 있던 남루한 신발도 벗어 던지고 순금빛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시끌시끌한 4월 숲에서 나무들의 수화를 들으러 간다. 숲속에서 나무들의 정기를 받으며 피곤하고 지쳐있던 몸과 마음을 충전한 후 시인은 4월과 함께 힘찬 약진을 시작한다.


지난 겨울 모멸의 긴 아픔 열고
4월 아침
빛의 화살이 고목 가슴에 꽂히었다.
 
그제서야 호명 받은 장병들처럼
일제히 일어서는 나무들.


눈 내리던 깊은 겨울밤 불면의 긴 긴 이야기
검은 시름은 이제 접어두자.


지난 겨울 고독의 아픈 잔을 마신 나무만이
4월 아침 연둣빛 금이 가슴에 곧게 그이는가.


지금 막 일어난 나무들은
사관생도처럼 가슴 가득 빛부신 단추를 달고
4월의 거리를 가볍게 행진한다.
— 「행진을 시작하는 4월의 나무들」 전문


4월에 죽은 내 아우야 / 너는 결코 죽은 것이 아니었구나 // 푸른 수액으로 다시 살아나 굳은 나무 등걸 마다 눈꺼풀을 열어 / 펜촉 같은 싹을 쏘옥 내밀었구나 / (중략) / 4월에 죽은 내 아우야 / 4월 들에 네가 가득히 살아있구나
— 「4월에 죽은 내 아우야」 중에서


4월의 숨소리와 눈빛을 사랑했던 시인은 긴 터널 같은 시간의 늪을 빠져나와 비로소 4월의 숲과 나무들한테 눈맞춤 하며 다시 원점에선 듯 삶의 걸음마를 새롭게 시작한다. 4월이야말로 얼어있던 들판의 생명을 소생시키고 죽은 아우까지 환생시켜내는 기적의 달이다. 죽은 영혼들을 일깨워서 자유를 꿈꾸게 하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가는 신비의 달 4월은 한줄기 번뜩이는 빛이 되어 시인에게 새로운 삶을 창조하게 한다.


싱그러운 4월 아침 / 더 맨(The man)의 사이트에 한없이 깊은 푸른 파일 한 아름을 띄운다 // (중략) / 4월 햇살 서비스 파일을 선뜻 띄운다.
— 「4월 햇살의 서비스」 중에서


4월 뜨락에 서서 세상을 내다보면 / 마구 누구에게나 윙크를 하고 싶다 (중략) / 두더지들도 새 일터로 나아가는 // 4월 아침 / 바쁘다 / 바빠!
— 「4월의 리듬」 중에서


이렇듯 박명자 시인한테 4월은 지열(地熱)의 불꽃으로 죽은 생명을 살려내는 충만과 환희의 달이다. 시인은 아픈 삶의 생채기에 바쁘고도 분주한 4월을 충전한다. 그리고 싱그러운 4월의 에너지를 충전 받은 후 문득 싱그러운 봄 아침 더 맨에게 4월 햇살 서비스 파일을 보낸다. 감미로운 4월 뜨락에서 시인은 누구에게나 마구 윙크를 보내고 싶어 하며 역동적인 봄기운을 받아 당당하게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4. 나무를 통한 구원과 生의 외경(畏敬)


박명자 시인은 나무 시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릉 초당동에 살면서 이른 아침 경포 호수를 걸으며 수많은 나무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 이유로 시 속에는 많은 나무들이 등장을 하고 그 나무들과 시인의 영혼은 합일을 이루게 된다. 즉 나무가 시인이고 시인이 나무가 되어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이르는 에코토피아(Ecotopia)적인 삶을 스스로 체험하게 된다. 아침 산책길에 만나는 나무들의 눈빛에서 지쳐 있던 삶을 구원 받고 나무의 생명력(生命力)을 통해 우주와의 교감을 한다. 그러면서 시인은 나무를 우러르고 경배하며 生에 대한 외경(畏敬)을 가슴에 품게 된다.
문학의 소재 발견이나 창작 기법에 있어서 시각(視覺), 청각(聽覺), 후각(嗅覺), 미각(味覺), 촉각(觸覺) 등 5감각 기능을 이미지로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보는 것과 듣는 것은 글을 쓰고 싶은 동기를 제공하고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중요한 정보 역할을 한다. 세상을 살아가며 문학을 하는 것은, 보는 법과 들을 줄 아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18세기 독일의 시인 노발리스는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 접촉되어 있고 들리는 것은 들리지 않는 것에 접촉되어 있다. 그렇다면 생각되는 것은 생각되지 않는 것에 접촉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어떤 사물을 볼 때나 들을 때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가 있다. 그렇듯이 박명자 시인은 오감각의 촉수를 세운 후 나무와 자신과의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는 세계와 들리지 않는 저쪽의 세계까지 날카로운 촉수로 감지해 내고 있다. 박명자 시인은 나무를 주제로 한 134편의 시 중에서 나무의 학명이나 이름이 붙여진 시는 거의 없다. 마지막까지 몸담고 있던 초당동 경포호수 ‘소나무’와 과거 속초에서 만났던 설악산 ‘단풍나무’와 ‘비탈에선 대나무’에만 유일하게 나무 이름이 붙여져 있다. 그리고 DMZ 근처의 나무들을 특별히 기억하며 애정어린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1) 경배(敬拜)하는 소나무와 에코토피아(Ecotopia)


18세기의 사상가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자연 속에 진리가 있다는 것이다. ‘풀과 나무와 모든 동물이 평등한 것처럼 인종, 국경, 성별 그 어느 것으로도 차별받지 않는 사회, 필요한 모든 것을 자연에서 얻고 다시 자연에게 베풀 줄 아는 삶… 그것이 바로 에코토피아가 추구하는 참모습이다’라고 했다.
박명자 시인은 경포호수와 아침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 소나무를 보면서 나무와 숲과 하나 되는 삶을 추구하게 된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제일 먼저 만나는 소나무를 통해 삶의 요동치는 에너지와 긍정의 힘을 얻게 된다. 그렇게 매일 아침 우러르며 만나는 소나무는 시인의 마음속에 성자(聖者)로 자리 잡고 경배(敬拜)의 대상이 된다. 즉 자연과 동화된 생명을 중시 여기는 에코토피아(Ecotopia)적인 삶에 시인은 이미 근접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해뜰 무렵 소나무 그늘에 갔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오직 오래오래 시간을 건너온
소나무 한 그루
나는 생각을 비워 버리고
빈 그릇처럼 그 곁에 갔다


소나무는 깊은 명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내 마음도 이상한 에너지의 조화 속으로 빠져 잠겼다


육체는 에고를 껍질처럼 벗어두고
자유의 날개를 달고
소나무와 텅 빈 마음은 하나가 되었다
조선 소나무 깊은 옹이마다 깨달음의 문을

삐긋이 열어 보이고
가까운 곳에 일어선 풀들이 경배하는 몸짓


아 일상의 근심 걱정 선뜻 놓아 버리고
완전한 자유, 무아의 기쁨
가벼운 나래 천천히 파문지으며
소나무 그늘에 깊숙이 잠겼다.


— 「명상하는 소나무」 전문


노송 한 그루 뒷짐 지고 / 먼 하늘 바라보며 명상에 잠겨 있다 // 세파를 초월한 듯 허공의 여유와 / (중략) / 오랜 세월 수행한 / 고승의 뒷모습이다 // (중략) / 한 걸음 한 걸음 세파를 헤치고 / 쉬임 없이 걷고 걸어 나의 고독을 찾아왔을까 // 솔잎 사이사이 달빛이 은실가락을 / 굽이굽이 풀어내리는 으스름 깊은 밤 // 노송은 가슴에서 피리 하나 꺼내 들고 / 강물 같은 속살을 굽이굽이 풀어헤칠까
— 「노송 한 그루」 중에서


작품 「명상하는 소나무」와 「노송 한 그루」에서 뒷짐 지고 먼 하늘 바라보며 명상하는 소나무는 철인이 되고 고승이 되어 사유의 세계로 들어간다. 즉 소나무 옹이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근심 걱정도 놓아 버리는 완전한 자유와 무아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문득 가슴에서 피리 하나 꺼내어 속살을 풀어헤치며 관조하고 섰는 소나무를 신격화시키며 시인은 강물보다 깊은 차원 높은 심연 속으로 침잠하게 된다.
일본 시인 이토오게이치는 그의 『서정시 입문』이라는 책 ‘시를 쓰기 위한 감상’ 편에서 한 그루의 나무를 보며 표현 단계를 여덟 가지를 제시하였다. 그중 박명자 시인이 나무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섯 번째 나무 속에 승화하고 있는 생명력과 여섯 번째 나무의 모양과 생명력의 상관관계를 보고 일곱 번째 나무의 생명력이 뜻하는 그 의미와 사상을 보며 여덟 번째 나무를 통해 나무 그늘에 쉬고 간 사람을 보다가 아홉 번째 나무를 매체로 하여 나무의 저쪽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즉 박명자 시인은 나무의 겉모습보다 보이지 않는 저쪽의 세계를 통해서 나무의 승화된 생명력을 마음의 눈인 심안(心眼)으로 바라본다. 그러다가 나무와 하나가 되어 냉정한 현실을 극복하며 삶의 출구를 향해 당당하게 걸어서 나간다.


아침 동산에 올랐다 / 나무와 나무 사이사이 걸어 다니며 / 오래 닫힌 나를 계속 열어 놓는다 // (중략) // 나무와 나는 하나가 되고 / 아침 동산을 둥글게 돌면서 / 세상을 송두리째 껴안고 천상의 춤을 풀어낸다.
— 「나무와 함께 춤을 추다」 중에서


시인은 남루하고 지쳐 있던 삶의 껍질을 벗어 던지고 이른 아침 맨발로 뚜벅뚜벅 나무들이 일렬횡대로 서 있는 숲으로 걸어 들어간다. 허난설헌이 고독하고 힘든 삶을 도피하기 위해 「유선사」 87수를 지어 선계(仙界)에서 신선(神仙)들과 노닐었듯이 박명자 시인 역시 힘들고 외로운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매일 아침 허난설헌이 바라보던 초당동 소나무를 바라보며 열락(悅樂)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겨울 동안 닫혀 있던 마음을 열어 놓고 아침 동산에서 빠른 스텝으로 나무와 혼연일체가 되어 영혼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천상의 춤을 풀어내면 서서히 생의 저쪽 피안의 세계에 젖어 든다.


눈 위를 맨발로 걸어가던 소나무들이 / 잔가지를 흔들어 스스로 눈꽃을 드날린다 // (중략) // 300년 침묵을 건너 온 아름드리 소나무들 / 그들 푸른 제복이 오늘 흰 눈 속에 더욱 빛난다.
— 「겨울 숲은 잠들지 않는다」 중에서


소나무는 혼자 영하의 밤을 보내며 / 결코 울지 않는다 // 눈보라 치는 날 / 눈사태에 가지가 찢겨 가는 수난도 / 결코 아파하지 않는다 // 겨울바람 속을 걸어가는 소나무는 / 저 혼자 몸 속의 더운 피를 주워 모아 // (중략) / 얼어붙은 강을 향하여 투망의 몸짓을 보인다.
— 「겨울 소나무의 그물망」 중에서


박명자 시인의 ‘소나무’를 주제로 쓴 시 중에서 유독 겨울 소나무에 애정 어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눈 위에서 눈꽃을 날리며 푸른 제복을 입고 서 있는 수령 300년 소나무를 눈이 부시도록 바라본다. 그러다가도 영하의 밤을 보내며 울지 않고 자신을 성찰하는 소나무를 생각하게 된다. 눈보라에 가지가 찢어지는 수난에도 아파하지 않는 겨울나무의 모습이 마치 추운 겨울을 꿋꿋이 견뎌온 시인 자신의 삶과 닮아 있음을 느낀다. 문득 잠들지 않는 겨울 소나무가 얼어붙은 강을 향하여 투망의 몸짓을 보이며 외연의 언덕을 향해 초극자(超克者)의 모습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삶의 에너지를 얻은 듯 시인은 감동을 받게 된다.


허우대 좋고 입성 훤하던 소나무들이
어느 날 우리 시야에서 사라지려고 한다


푸른 줄무늬 제복의 그들이 일렬횡대로
행진하던 4박자의
리듬이 요즘 들리지 않는다


(중략)
건장한 체구에 당당히 나이테 휘감고
귀족처럼 준수하게 빼어났던

금강송, 적송, 해송, 리기다소나무…
지구 어느 편에 꼭 꼭 몸을 숨겼을까


소나무들이 도망갔다면 모르스부호 같은 발자국을
점 점 점 지구 위에 떨구고 갔겠지


「포클레인이 실눈 뜨고 지나갔다 더라
도벌꾼들이 전기톱 들고 건너갔다 더라」


소나무는 제자리에 뿌리 굳게 내리고
강토를 지키려 하였지만
서녘 바람 크게 불어오고 천둥 번개 계속 치고
지하로 지하로 흐르는 젖줄은
천 리를 앞서 가며 비틀거린다.


— 「소나무의 DNA」 중에서


하늘을 찌를 듯이 당당하게 서 있던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일제히 잘려 나간다. 어깨에 번쩍이는 견장을 달고 일렬횡대로 서 있던 푸른 줄무늬 제복의 그들이, 7월 찰진 햇살 아래 대관령을 지키며 출렁출렁 온몸 흔들던 청산의 소나무들이 포클레인을 끌고 전기톱을 들고 온 도벌꾼들에 의해 무작위로 베어진다. 이렇듯 시야에 사라지는 자신의 분신 같은 소나무를 보고 못내 안타까워하며 시인은 발을 구른다.
작품 「소나무의 DNA」는 물질 만능시대에 생명을 경시하는 인간들의 이기심을 비판하는 차원 높은 작품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또한 파괴되어 가는 자연을 고발하는 생태문학차원에서도 연구되어야 한다. 박명자 시인한테 삶의 표상이고 영혼을 지배하던 성자(聖者)와도 같고 철인(哲人)과 도 같은 소나무가 문명의 이기 때문에 베어지고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시인은 삶의 이정표를 잃은 듯 비틀거리며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다.


(2) 설악산 대청봉에서 문학(文學)의 정기(精氣)를 이식받다.


공룡능선 뒤켠으로 아득히 솟은 대청봉이
손을 선뜻 들어 보인다
오늘따라 청포를 입고 온 몸 푸른 불을 켜는 산


천불동 계곡을 천천히 땀으로 밀고 오르다가
후미진 골 골 사이 무슨 보석 숨었나? 두리번 거려보면
산찔레 덩굴 속에 용담꽃 한 송이
외눈 뜨고 나를 내다보네


누구라도 대청봉 정상에 오르면
솟구치는 목숨의 초록불빛
마음 끝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겨울 헐벗고 굶주렸던 산
오늘 7월의 기를 모아 한 순간씩 올려 딛는
천 만 일 만 초록의 층층계…


계절 따라 전나무들은 훈련병들처럼
팽팽한 행열을 짓고 4박자 리듬으로
대청봉을 향하여 우우우우 걸어가고 있더라


. 「목숨의 불을 켜는 대청봉」 전문


아침의 청봉은 신비의 베일을 조금 열고 / 태고의 표정을 얼른 보인다 // 산 눈바람에 수 천 년 깎여온 봉우리 / 흘러가던 구름 한 자락이 걸리는데 / 온 세상 먼지를 거두어 마시는 // 설악산 훤한 날개 짓이여
— 「설악산」 중에서


박명자 시인에게 32여 년 동안 속초는 삶의 터전이었고 학교에 재직하면서 자신의 아이들을 키워 왔다. 또한 전쟁의 폐허인 속초에서 ‘설악문우회’를 창립했으며 46년 동안 전국 최장수 동인지인 『갈뫼』를 키워 왔다. 사람은 누구나 회귀본능(回歸本能)이 있듯이 속초는 박명자 시인의 제2의 고향이자 영혼의 안식처라고 말할 수가 있다. 대청봉 아래 속초는 박명자 시인의 고매한 문학의 산실이고 탯줄을 묻은 곳이다 보니 자신이 태어난 강릉으로 이사를 가서도 오매불망 속초를 잊지 못한다. 천불동 후미진 계곡에서 외눈 뜨고 시인을 바라보는 용담 꽃은 물론 ‘오늘따라 청포를 입고 온몸 푸른 불을 켜는 산’ ‘누구라도 대청봉 정상에 오르면 / 솟구치는 목숨의 초록 불빛 / 마음 끝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듯이 목숨의 불을 켜며 훤하게 날갯짓 하고 있는 설악산 대청봉한테서 박명자 시인은 문학의 정기를 이식받았다고 할 수가 있다.


설악에는 연 달포간 / 가을 산불이 마른 삭정이 사이사이로 / 붉은 혓바닥을 들이밀었다 / 빨강댕기 살랑 흔들며 // 오, 환장할 가을산의 불꽃놀이여!
— 「가을 설악산과 불꽃놀이」 중에서


가을 타는 천불동 계곡을 천천히 도보로 내리다가 / 선뜻 돌아보면 / 청봉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로세로 흔들린다 // (중략) // 청봉은 붉은 잉크 물 속에 / ‘엉덩이가 젖어 버렸다!
— 「대청봉은 붉은 잉크에 흔들린다」 중에서


설악산 시즌이 온통 불춤을 당길 때 / 어딘가 홀로 숨어 우는 여인의 머리채 / 흔들리며 보였다가 사라지네 // 가을 설악을 낄낄 거리며 돌아치던 붉은 춤사위가 / 설악권을 모두 사루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었나보다.
— 「설악권이 불춤을 당길 때」 중에서


설악의 사계절 중 시인은 불춤 추며 붉은 혓바닥을 내밀며 빨강 댕기를 흔드는 가을 설악을 제일 좋아한다. 특히 대청봉 단풍나무의 불타오르는 속성은 일편단심 문학을 향한 박명자 시인의 뜨거운 열정과도 닮아 있다. 설악산 대청봉의 정기를 이식받아 삶 속에 문학의 뿌리를 깊게 내린 박명자 시인의 몸속에는 원초적 본능이듯 속초와 설악산이 영원히 살아서 숨 쉬고 있다. 문득문득 낄낄거리며 돌아치던 붉은 춤사위, 생명의 불꽃으로 점화되던 가을 단풍나무를 추억하며 시인은 환희에 젖어 무희처럼 춤추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3) DMZ 나무들이 예사롭지 않다.


조심조심 발꿈치 들고 DMZ 근처로 건너가는 나무들…
밤이 이슥해지자 나무들의 호흡이 점차 빨라진다
62년 침묵의 늪 쪽으로 계속 페달을 밟고 가는 겨울나무들
모멸의 아픔을 딛고 눈물의 강을 맨발로 건너…
248km 빈 벌을 가로 질러 가는 나무들
자유의 마을 S지점까지 첫눈이 오기 전에 닿아야 한다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불똥이 설봉 아래 호외를 던지고 갈 때
반달가슴곰이 뒤따라 한 마리 외눈 뜨고 지나간다
대성동 자유의 마을까지 도보로 가다가 보면
낡은 철모 하나 탱탱한 시간 밑에 깜빡깜빡 삭아 내리네
그대 영혼 죽어서도 절규하는 스물한 살

코리아의 새내기 국군장병…
후미진 이 강토 DMZ 억새 숲에
피의 향기 번지어 젊은 혼을 울고 가는 멧새들…
여기는 하늘 아래 이색지대 DMZ
철새들이 100개의 백열등 같은 눈을 뜨고
천상의 운율을 감지하며 꽃가지 아래서
<철새 포럼>을 열고 있나니
사선을 넘어 DMZ 길 떠나는 나무들
그들의 호흡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 「DMZ 근처의 나무들」 전문


수복지구 속초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박명자 시인의 눈빛은 예사롭지가 않다. 시인의 관심사는 이산가족 상봉을 손꼽아 기다리며 청호동에서 모여 사는 함경도 실향민들의 삶을 보고 DMZ 근처에 서 있는 나무들 소식이 궁금해진다.


흰 구름도 팝콘처럼 흩어지는 5월 아침 / DMZ의 총총한 나무들은 빠른 걸음으로 / 155마일 사선을 허둥지둥 건너가더라 // (중략) // 이념의 경계를 지우고 / 유년의 반딧불이 반짝이는 / 둥근 길을 돌고 돌아 // 아픈 날개를 접은 나무들은 / 생솔가지 타는 옛 뜨락에 / 주검보다 무거운 겨울옷을 / 캄캄하게 풀어 놓는다.
— 「아픈 나무들」 중에서


낡은 철모 하나가 탱탱한 시간 밑에 깜빡깜빡 삭아 내리고 죽어서도 절규하는 스물한 살의 비명을 시인은 환청으로 듣고 있다. 이념의 경계를 지우고 유년의 반딧불이가 반짝이는 둥근 길을 돌아가고픈 통일에 대한 간곡한 염원이다. 아직 피의 향기가 살아 있는 분단 조국, 동족상잔의 비극 앞에서 시인은 스스로 DMZ 나무가 되어 남과 북의 경계에서 가슴을 치며 절규하고 있다.
박명자 시인은 13번째 시집 『떠도는 나무』 시인의 말 중에서 ‘보다 산뜻한 언어의 사물화 방향으로 저의 詩를 몰고 가며 사물의 본질에 육박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저는 저의 자산, 저의 온몸 저의 영혼 모든 것을 시의 제단 앞에 겸손하게 바치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피붙이들도 문밖에 세워 두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시를 즐기고 있습니다. 한편의 시를 탈고 하고 났을 때 마치 어깨에 날개 하나 솟구친 듯이 무한 청공을 날고 싶습니다. 세상은 빛으로 가득하고 아름다운 날들이 열려 오는 것 같습니다.’라고 썼다.
박명자 시인은 천상 시인이다.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듯 싱그러운 나무의 정기를 수혈 받고 나면 시적 영감(靈感)들이 시인의 몸속에서 콸콸 피돌기를 시작한다. 경포호숫가 소나무나 설악산 대청봉 단풍나무와 DMZ 근처의 나무들을 비롯하여 살아오면서 그 외에 수없이 만났던 나무들을 대상으로 한 편의 시를 써놓고 탈고를 하고 나면 빛으로 가득한 우주와 교감한 듯 시인은 강렬한 희열감에 젖게 된다.



5. 숲을 빠져나온 나무들이 동영상으로 움직이다.


(1) 멀티움을 통한 시어의 기호화와 낯설게 하기


박명자 시인은 『갈뫼』 36집 발간사에서 ‘21세기 정보화시대 첨단과학 미디어 문명을 접하면서 전달 매체의 혁명적 변화로 인하여 세상은 빠르게 회전하고 있다. 우리가 종래 가졌던 문학이라고 하는 신비하고 심오해 하던 카테고리의 가치도 변하고 있다. 일반적 문학창작의 실제 기교면에서도 서정적, 감성적 테크닉에서 실험정신 탈관념 사물성 접근 직관으로 사물 보기 쪽으로 사고의 틀이 깨어지고 있다. 그리고 멀티시대의 자연발생적 탄생을 예상하는 현대시의 형태로 등장한 멀티포엠이라는 장르에서는 영상과 문자음악의 표현 매체들이 서로 조화롭게 환상적 공간으로 독자를 매혹시키는 시대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첨단 과학 미디어 시대에 시인은 한 편의 시에서 이질적인 이미지를 창출하여 스스로 새로운 창작기법을 탐색하고 탈관념의 실험정신에 도전을 하고 있다. 즉 작품 속에서 고정되어 있던 사물이 동영상처럼 움직이는 멀티화를 시도했으며 사이버 공간과 실제 공간이 혼재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보다 새롭고도 절실한 예술형태를 인식시켜 주고 있다. 또한 박 시인은 첨단 과학시대 새로운 패러다임을 외치며 창작의 기교면에서도 서정성 탈피와 함께 다양한 시어를 통합과 분할, 반복 해체하며 시적(詩的) 대상을 종횡무진으로 멀티화시키는 새로운 기법을 창출하며 홀로 즐기고 있다.


호면을 45° 솟구치는 숭어의 주둥이가 / 뾰족한 꿈의 궁전을 앞서 열어 보이고 / 수초들은 알몸으로 일어나 / 꽃잎들은 하르르 하르르르 / 굳은살 박힌 앞길을 / 반쯤 밀고 당기고 있다.
— 「벚나무들의 Wedding 행진」 중에서


영하 18도 오늘 / 한파가 엉덩이를 흔들며 우체국 앞을 / 지나갔다 // 햇살 한 올이 또르르르 떡갈나무가지 / 사이에 주둥이를 숨긴다 / (중략) / 우체통에는 어제 꽂힌 bill이 / 늦은 녘까지 빌빌 거리고 있네
— 「우체통엔 bill이 빌빌거리며」 중에서


째깍째깍 / 나의 온몸의 볼트를 조여 주는 5월 아침 / 빗쭁 비비쭁 빗쭁 빗쭁 / 구름의 눈꺼풀 속에서 / 종달새는 거꾸로 떨어지다가 다시 / 투우스텝으로 하늘 계단을 칸칸이 올려 딛는다. // (중략) / 들찔레 넝쿨과 넝쿨 가지는 / 테러리스트처럼 성난 손톱을 세우며 / 촘촘한 생의 가운데로 새순을 뻗어나가고 있다.
— 「종달새의 Two step」 중에서


태양을 피하려고 오래된 웅덩이 앞에 다가 서 보면 / 내 스무 살 적 미루나무 한 그루가 먼저 와서 / 물속에 나 대신 거꾸로 벌 받고 서 있더라
— 「8월의 e-book 」 중에서


「벚나무들의 Wedding 행진」 「Green Premium」 「우체통엔 bill이 빌빌거리며」 「종달새의 Twostep」 「4월 햇살 Service」 「낯선 E-mail」 「8월의 e-book」 이상의 시들은 제목에 서정적 시어와 비시적인 영어 단어를 접목하여 낯설게 하기 기법인 하이퍼포엠(hyperpoem) 기법을 시도를 했다. 영국의 문예비평가 콜리지는 이미지나 비유를 설명할 때 이질적인 사물에 폭력적인 결합을 하여야 좋은 비유, 좋은 시라고 했다. 그러나 폭력적 이질적인 결합이라고 해도 ‘유사성’이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멀티포엠(multipoem)이나 혹은 하이퍼시(hyperpoem)도 고정관념을 탈피해야 한다. 하지만 각 연이나 행간에 전혀 엉뚱한 이미지나 내용을 접목하더라도 표현이나 내용에 있어 유사성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런 일관적인 중심 생각을 가지고 박명자 시인은 시의 제목이나 내용에 있어서도 의도적으로 멀티포엠(multipoem)이나 하이퍼포엠(hyperpoem) 기법으로 시적인 언어에 영어 단어나, 알파벳, 기호 같은 비시적인 언어로 충격적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싱그러운 아침 숲을 건너다보면 / 침엽수림 사이사이로 / 음이온이 꼬리 치며 돌아 다닌다 // 숲은 청어 비늘 같은 눈을 가늘게 뜨고 / 피톤치드 한 컵을 내 삶의 덤으로 얹어 주려는데 / (중략) / 그린 레이저들이 초록 지느러미를 흔들며 / 보석상자에 입질하는 모습이 보인다.
— 「Green Premium」 중에서


‘꽃잎들은 하르르 하르르르’ ‘째깍째깍’ ‘또르르르’ ‘빗쭁 비비쭁 빗쭁 빗쭁’ ‘파르르’ ‘출렁출렁’ 같은 의태어나 의성어로 현장감 있게 표기를 했다. 숲의 나무와 새, 꽃들 그리고 음이온 피톤치드들이 숲을 뛰쳐나와 마치 동영상처럼 종횡무진으로 움직이게 하는 동적(動的)인 느낌이 들도록 표현했다. 읽고 생각하게 하는 시보다 직관으로 보고 느끼는 언어의 감각화와 시각화 기법이 신선하게 와닿는다. 시의 행에도 Wedding, The man, Homo solitarius, E-mail 같은 영어 단어를 표기했다. 사고하는 것보다 사물화 즉 보여주는 시의 디지털(digital)화 기법을 시도한 작품들이다. 『갈뫼』 42집 시작 노트에서 박명자 시인은 이러한 새로운 기법에 도전하는 자신을 잘 구워진 항아리처럼 각고의 결실로 발효되어 솟구치는 시가 아니라 순간순간 변하는 질료의 유연성에 의하여 표출되는 퍼포먼스 같은 것이라고 했다.


사내가 주머니에서 부스럭 무엇을 꺼내더니 / 바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tttt. . . / 유리 조각들이 모자이크 무늬를 지으며
— 「해변의 상가」 중에서


나무 등걸에 톡 톡 튀던 물방울들이 / 표피에 붉은 발진을 b b b b 만들어 놓는다 // 먼길 떠나려는 가을이 동구 밖에 주춤거릴 때
— 「시큼한 가을비」 중에서


1만 4천평 A공장지대 입구부터 / 탄소 발자욱들이 K. K. K 지나갔는데 / 서둘러 헬멧을 쓰고 뛰어가는
— 「 탄소 발자국」 중에서


중생대의 조류들이 높고 낮은 상형문자를 / 산길에 m m m m 찍어 놓았다. — 「겨울 숲은 잠들지 않는다」 중에서
구만리 장천 우기의 하늘 구석에서 / 잠깐 줄바꾸기 할 즈음 / 갸우뚱 숨겨둔 저희들 애인에게 / S S S S… / T T T T …
— 「철새들의 퍼레이드」 중에서


단풍나무 머리에서 뿌리까지 ww www www / 사방연속 무늬로 번지며 불꽃의 꼬리와 꼬리를 잡는데
— 「가을 설악권이 불 춤을 당길 때」 중에서


단풍나무들은 일렬횡대로 우우우우… / 몇 칼로리 열량을 내 감성 위에 z z z z / 떨리우다가 꼬리 화안하게 쳐들고
— 「단풍나무의 호흡이 빨라진다」 중에서


소련 해안선을 따라 블라디보스톡을 거쳐 온 그들은 우리 뜨락에 방언을 zzz zzzz 떨구고 노린내 나는 루머를 흘리기도 하였다.
— 「 철새들의 분명한 시선」 중에서


낯선 기호들과 가슴 열고 / 풀밭에서 해종일 놀았다 // 기호 @ 기호 / 기호 F 기호 // 기호들과 놀다가 깜빡 넘어져서 / 중략 // 낯선 기호들과 가슴 포개이고 하나가되었다 // 기호 ! 기호 ? /기호 # 기호 +
— 「낯선 기호들」 중에서


박명자 시인은 근래 와서 서정성을 탈피하는 시의 디지털화를 주장하고 있다. 시를 찍고 염사 시키는 시각화 기법을 시도함으로서 작품 속 사물들을 움직이게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즉 기발한 상상력을 적용했다. 오감각을 통한 시각적, 청각적, 공감각적 이미지를 총동원하여 메타포와 낯설게 하기 기법으로 작품들을 형상화 시켰다.
‘tttt. . .’ ‘b b b b’ ‘K. K. K’ ‘S S S S…. T T T T…’ ‘ww www www’ ‘z z z z’ ‘zzz zzzz’ ‘m m m m’ ‘기호 @ 기호 F 기호 # 기호 +’ 시는 언어의 틀에만 갇혀 있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깨고 시인은 알파벳과 기호를 의도적으로 시 속에 사용하였다. 분할과 통합이라는 상징성이 돋보이는 탈관념, 멀티적 실험적 기법을 과감하게 시도했다. 위 작품들은 주로 가상현실을 바라보는 시의 디지털화 즉 하이퍼포엠(hyperpoem) 기법으로 상상력을 극대화시키는 한층 젊게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갈뫼』 42집 시작 노트에서 시인은 ‘나의 시는 다 자란 애벌레가 한잠 자고 나서 껍질을 벗듯이 낡은 허물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날개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러나 나는 시 작업에서 늘 자유롭고 신나는 게임을 즐기듯 혹은 굿판의 무당처럼 의식의 세계와 무의식의 세계를 종횡 넘나들면서 상상의 폭을 이중구조로 실타래처럼 엉키게 한다. 나의 시는 일종의 신들린 나비의 유희라고 생각하면서 독자 앞에 얼굴 붉힌다’라고 썼다. 마치 작품 속을 뛰쳐나온 사물들이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신들린 나비처럼 넘나들며 어지럽게 동영상처럼 움직이게 한다. 알파벳과 낯선 기호 같은 이질적인 문자와 기호를 엉뚱하게 시 속에 접목시켜 놓고 시인은 스스로 감동하며 도취해 있었다. 박명자 시인의 이런 도전적 앞서가는 창작기법은 매우 고무적이며 한국문단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고 연구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캡슐 속에서 나무가 눈 뜬다」 「첫 눈 바이러스」 「바이엘아스피린 분말 속에 먹히우는 메밀밭」 「죽은 나무를 위한 바이오리듬」 등은 오래 전에 쓴 시인데도 불구하고 그 시절 일흔이 넘은 시인은 자신의 건강에 적신호를 느꼈는지 시어에 약품 용어를 많이 대입하여 사용했다. 캡슐, 바이엘아스피린, 바이러스, 바이오리듬 같은 의학적 용어를 나무나 메밀밭 같은 식물성 언어에 충격적으로 접목을 시켰다. 고정관념의 틀을 깬 언어들이 서정적인 시어와 융합이 안 될 것 같은데 분할과 통합이 융합되어 하이퍼포엠 기법으로 신선하게 와 닿는다.


내 심장판막처럼 불규칙하게 떨리우는 / 저들 분분한 낙하 / 아무도 어쩌지 못하게 먹어치 우는 짹깍짹깍 / 보광리 180번 1번지 산비탈 메밀밭은 / 바이엘아스피린 분말 속에 벌써 반 이상 먹히우네
— 「바이엘아스피린분말 속에 먹히우는 메밀밭」 중에서


박명자 시인의 사인(死因)이 ‘대동맥 박리’로 심장 쪽 질환이 원인이 되어 갑자기 타계하였다. 평소에 건강해 보이던 시인이었지만 ‘내 심장판막처럼 불규칙하게 떨리운 저들 분분한 낙하’라고 쓴 표현을 보면 평소에 심장 쪽 질환을 앓고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며 시를 통해서 자신의 건강에 대해 암시를 한 듯한 생각이 든다.


이 강산 오늘 0시5분 마른가지 마다 / 바이엘아스피린 분말이 흩어 내리네 / 나는 갑자기 창을 닫고 / 하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 외딴 열병을 조용히 앓는다 // 어디론가 머 언 길 떠나야 할 것 같은 / 간이역에 서성이며 마음은 자꾸 바빠지고 // 건너갈 수 없는 아득한 강을 내려다보며
— 「첫눈 바이러스」 중에서


또한 위의 시를 읽어 보면 자신의 삶이 한계점에 와 있음을 예감이나 한 듯 먼 길 떠나야 될 것 같은 간이역에서 서성이고 있다. 건너갈 수 없는 아득한 강을 내려다 보고 있음은 마치 미리 써 놓은 유서 같은 느낌이 들어 독자들에게 적잖이 충격을 준다.


그해 늦여름 태풍 루사가 앙가슴 관통한 이후 / 말더듬이의 몸짓으로 세상을 건너오던 관음송은 // (중략) // 덩굴손은 드디어 시뻘건 나무의 간을 꺼내어/ 반석 위에 놓는다 // 죽어 600년 살아 600년 나무는 한 번 죽은 것이 아니라 / 또 다른 생의 에너지로 되살아나 / 바이오리듬을 계속 이어 나갔다.
— 「죽은 나무를 위한 바이오리듬」 중에서


죽어 600년 살아 600년 나무는 한 번 죽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생의 에너지로 되살아나 윤회의 사이클에서 새로운 몸을 받아 환생함을 귀띔해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박명자 시인은 그토록 좋아했던 나무의 몸을 받길 소원했는지도 모른다.



6. 詩에 새겨 놓은 시간의 흔적들


긴 긴 시간 동구 밖에 서있던 나무가
오늘 천천히 자리를 옮긴다


60년 고인 가래침을 뱉고
60년 쓰고 있던 그의 모자를 벗으며 걸어온다


나무의 머리카락은 실크바람에 날리고
검은 숲은 오늘 낯설고 더욱 멀다


나무가 모자를 벗고 하늘을 본 시각은
오전 11시 45분


백양목 잎새들은 하늘 가득히 종잇장처럼

팔랑팔랑 날아가고


모자를 벗은 나무는
나에게 가득히 걸어 왔다.


— 「 나무가 모자를 벗으며 걸어온다」 전문


박명자 시인의 작품 주제는 대부분 나무이다. 모자를 벗으며 걸어가는 나무는 동구 밖에 서 있던 소외된 나무로 시인 자신의 모습으로 환치된다. 60년 고여 있던 가래침과 열등의식의 상처를 벗어 버리고 낯선 숲에서 바라 본 하늘은 11시 45분이다. 태양은 중천을 향해 가고 있고 생명이 있는 모든 사물들은 무엇인가에 몰입해가는 시간대이다. 시인 스스로 모자 벗은 나무가 되어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내면 깊숙이 걸어 들어가 자신의 고차원의 정체성과 합일하는 시각을 암시해 놓았다.


강문 해변상가 새벽 2시 / 낯선 검은 그림자 하나 바다 심층에서 걸어 나온다 / 박쥐의 망토를 날리며 그는 비릿내를 거슬러 오른다 / 그가 유리조각을 밟고 지날 적 바다 저 쪽에서 / 금속성이 들려온다.
— 「해변의 상가」 중에서


박명자 시인의 시에 나타난 시간성의 주 무대는 주로 바닷가이다. 어스름한 새벽 2시 박쥐의 망토 같은 어둠을 뚫고 유리 조각처럼 빛나는 햇살의 금속성을 감지하며 신 새벽 하루를 맞이할 준비에 바쁘다.


<갈매기. 수평선. 아침노을 > / 먼 산문들이 캄캄하게 닫힌 새벽 5시 15분 / 동해는 먼저 깨이고 지구는 크게 뒤척이고 // (중략) // 아침노을도 해산 비릿내 질펀한 모래톱에 한 동이 선혈을 쏟아 부었다 / 수평선을 먼저 가르고 비상하는 바닷새들은 / 알파벳 문자로 의문의 암호를 빠르게 타전하네 / 바다 심층에서 누가 「쿵 쿵 쿵쿵」 올려 딛는 / 발자욱 소리가 들린다.
— 「혁명을 모의하는 아침바다 크로키(Croquis)」 중에서


금싸라기 햇살 속에 두 눈을 뜨면 / 넋의 속눈이 찌르르 아프네요 / 눈꺼풀 사이로 3월 빛살이 / 은회색 화살처럼 선뜻 들어오기 때문이지요 // (중략) // 금싸라기 3월 입김이 맨홀에 일제히 내려 꽂히자 / 애기똥풀 하나 / 손을 번쩍 들 것 같은 우리의 디 데이 (D-day) / 3월 에너지가 더욱 새초롬하지 않나요? / 햇살 메시지가 오늘 아침 6시 40분 / 더욱 뾰족합니다.
— 「 뾰족한 3월 에너지」 중에서


동해 비치 7월 어디선가 금싸라기들이 삐긋이 부서져 내려 / 더욱 투명한 7시 10분 // 바다의 뾰족한 모서리를 스쳐 / 낯선 풍경을 열어 보았을 때 // 파도의 흰 피톨 푸른 피톨이 / 서로 맞물려 교차하는 거품들이 / 백열등처럼 반짝반짝 눈을 떴다.
— 「파도의 한 페이지를 클릭하다」 중에서


경인년 새해 동해변 아침 7시 40분 / 뾰족한 시간의 첨탑위에 <강릉경포대> <2010년 새해맞이> / <140만 인파> 오늘따라 낯선 태양과 대칭을 이루는 시선들이 / 팽팽한 긴장감으로 승강기를 타고 천천히 수평선을 오른다 / 지구 저 반대편 눈부심을 슬쩍 걷어 올리는 지렛대는 / 햇덩이를 올리는 에너지로 표정을 바꾸었지 <평창올림픽 유치 염원> / 오색 애드벌룬 1018개가 꼬리 살랑 흔들며 / 하늘 꼭두로 곧게 솟구치기 전 아침을 열고 나온 저 얼굴! / 천지창조 이후 처음으로 사뭇 폭력적이네
— 「2010년 새해맞이 이벤트」 중에서


‘새벽 5시 15분 / 동해는 먼저 깨이고’ ‘햇살 메시지가 오늘 아침 6시 40분 / 더욱 뾰족합니다.’ ‘투명한 7시 10분 // 낯선 풍경을 열어 보았을 때’ ‘경인년 새해 동해변 아침 7시 40분 / 뾰족한 시간의 첨탑위에’ 순서대로 나타난 새벽 5시 15분, 아침 6시 40분, 투명한 7시 10분, 동해변 아침 7시 40분까지의 시간대는 삼라만상 우주에 있는 생명들에게 역동적인 삶의 에너지를 분출시키고 생성의 기(氣)를 전이 시켜주는 시간이다. 시인은 경포 호수를 비롯해 바다 쪽으로 아침 산책을 간다. 바다가 용트림 치며 선혈 낭자히 햇덩이를 밀어 올리는 모습을 보며 경이로움을 금치 못한다. 새벽 일출 바다는 모성의 이미지로 생명을 잉태하고 산고를 치르 듯 생명을 탄생시키는 절체절명의 순간으로 창조된 생명 즉 태양의 얼이 꿈틀거리는 시간대이다.


백두대간이 타고 있다 나뭇가지 마다 새순 고개 드는 / 2000년 4월 7일 오전 8시 25분 / 강원도 사천면 석교리 공원 묘지 앞 초속 0미0터 넘는 강풍은 / 횃불을 높이 들고 우리 산야를 미쳐서 이리저리 뛰어 다닌다 // (중략) // 다음에는 숲에 사는 눈이 순한 산토끼 관이 향그러운 사슴들을 / 새까맣게 쓸어뜨리고〈사라져라 몽땅 사라져〉/ 목청 높여 외치면서 기름진 산림에 횃불을 던졌다 / 산불은 노여움을 어금니에 지긋이 깨물고 화난 눈을 번뜩이며 / 천추에 맺힌 한을 불로 담금질 하고 있다.
— 「강릉 산불」 중에서


2000년 4월 5일 오전 8시 25분 강릉지방을 강타한 산불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다. 새벽 시간에 주로 산책길에서 바다 위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생성과 창조 즉 생명의 잉태를 예찬했다. 그러나 만물이 소생하는 4월 봄날 아침 오전 8시 25분 백두대간이 불에 타고 천추에 맺힌 한이 불로 담금질 당하는 생명들을 보고 안타까워하며 발을 구르며 미친 듯한 화마의 춤사위를 시인은 의식적으로 가슴의 통증과 함께 기록해 놓고 있다.


45도 비탈진 산 밭이랑을 건너가는 흰 구름 자락도
가로세로 펄럭이는 유월, 창끝 같이 예리한 햇살이
청보리 밭 두렁에 떨어진다.
유월의 해시계 아래 누가 이마에 방아쇠를 당기고 있나.


느닷없이 술렁이는 k씨네 청보리들…
2시15분의 청보리 밭두렁은 활시위처럼 팽창한다
놀란 보리이삭들은 시인의 말보다 빳빳하게 수염 세우고
긴장한다.
무성한 웅성거림은 사방 연속무늬로 풀어지며…


맨몸으로 눕는 금색 보릿단 사이로 누가 비척비척
걸어 나간다.
앗 반 고흐 !
뒤를 흘깃 돌아보는 수염 속 사나이


부서진 유월의 탱크는 녹이 슬고 멈춰버린 지뢰는 잡초 속에
돌이 되어 가지만 생전에 그가 쏟아내지 못한 말들이
끈적한 객혈로 보리밭 시간 위에 흘러 번지네.


— 「2시 15분의 청보리밭」 전문


유월이면 일 년 중 가장 한가운데 있는 달이며 2시 15분이면 하루 중 태양이 하늘 한가운데 정점에 있는 시간대로 6월 보리가 금빛으로 익어가는 절정의 시간이다. 낯설게 하기 기법으로 긴장감이 도는 한낮의 고요로움 속에서 여문 보리를 ‘수염 속 사나이 반 고흐’로 환치시키는 기발한 발상이 충격으로 와 닿는다. 6월 보리밭에서 시인은 민족상잔의 비극을 잠깐 회고한다. 한편 시인은 생명이 있는 모든 사물은 하루 중에서 삶의 에너지와 활력을 가장 많이 발산시키는 시간대가 오후 2시다. 오후 「2시 15분의 청보리 밭」 시에 있어 금색 보릿단은 문학인으로 생의 절정에서 횃불을 들고 우뚝 서 있는 무르익은 완숙된 시인의 모습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강문 바다에 안개비 내려 쌓여 / 하늘과 바다는 온통 몸을 하나로 섞어 끈끈하던 하오 3시 // 중략 // 난데없이 여류시인 함혜련 언니의 실루엣이 꽃무늬 원피스를 나풀거리며 모래톱으로 / 빠른 걸음 둥글게 지나가지 뭐예요? // 노시인의 긴 머리결 위에 꽃 한 송이 튕겨져 / 까닥거리며 앞서 가더라구요 // (중략) // 함 시인의 그림자 발자욱 두어개 / 모래톱에 움푹 자욱만 남기고 있었습니다.
— 「비창 소나타」 중에서


시인은 하루 중 오후 시간대에는 지나온 삶 속에서 가슴에 아픔으로 남아 있거나 설레게 했던 사람들이 기억나는 시간대이다. 하늘과 바다가 하나 된 하오 3시 느닷없이 함혜련 시인을 생각한다. 열정적으로 시를 쓰고 삶을 살아온 선배 함혜련 시인을 박명자 시인은 생전에 무던히 사랑했고 사후에도 무척 그리워했다. 긴 머릿결 위에 꽃을 꽂고 모래톱에 발자국을 남기고 걸어가는 함혜련 시인의 환영(幻影)을 강문 바다 안개비 내리는 날 만나게 된다. 하늘과 바다가 합일하는 오후 3시, 바다 저쪽을 바라보며 울컥 선배 함혜련 시인에 대한 그리움이 솟구치는 시간이다.


바다를 향한 내 마음 사립문이 덜컹거린다 / 4월의 오후 3시 육안으로 포착할 수 없는 낯선 기류가 / 꼬리를 스치고 갔다 // (중략) // <어디 한판 붙어 볼까> 오후 3시의 바다가 지구인을 노려보는 시각 / 유인원이 아닌 700만 년 전 인류의 얼굴이 컴퓨터로 복원되었다는 / 소식이 앞치마에 뚝 떨어졌다.
— 「지구인의 오후 3시」 중에서


먼 길 떠나려는 가을이 동구 밖에 주춤거릴 때 / 나즉이 더듬이를 내리는 // 가을비 말랑하게 익은 홍시 속살이 / 흘림체로 미끄러지는 오후 3시 20분 // 지구 저 편 더 맨(The Man)의 / 핸드폰 메시지가 빗살무늬로 떠도네 // 내 안의 사물들이 문득 깨어났다가 / 주르르륵 미끄러지는 오후
— 「시큼한 가을비」 중에서


700만 년 전 인류의 얼굴이 컴퓨터로 복원되었다는 소식에 시인의 오후 3시 시간대는 마음속 깊이 잠재되어 있던 상상력이 극에 달한다. (「지구인의 오후 3시」 중에서) 가을비 내리는 평범한 오후 3시 20분에는 더 맨(The Man)이 보내는 문자 메시지(「시큼한 가을비」 중에서)는 금방 사라지는 휘파람 소리처럼 잠깐 시인의 의식을 흔들었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박명자 시인의 시 속에는 더 맨(The Man)이 많이 등장한다. 그는 박 시인과 마음을 교류하는 동료 문인일 수도 있고 삶을 이야기하는 멘토일 수도 있다. 시인이 현실적인 인물을 노출시키지 않는 더 맨(The Man)은 가끔 작품 속에서나 삶에 있어서 박 시인의 삶과 문학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그림자 같은 존재로 상상적 인물로 각인 되기도 한다.


투명한 유리접시 같은 하늘 아래 가을 저녁 6시 20분 / 뜻밖에 신라 금관을 머리에 가득히 쓰신 / 처사 한분 황포를 입으시고 외연의 뜨락 배회 하시네 // (중략) // 그 분은 천천히 내 안의 캄캄한 벽을 노-크 하시며… // (중략) // 침묵의 깊은 눈으로 우리의 수화는 계속 이어지고 / 금관의 출자(出字)형 마다 천개의 빛살 되쏘여 / 수 만개 나비형 영락이 팔랑 팔랑 날갯짓을 보였다 // (중략) // 지구별에서 오신 가을 남자. 600년 수령의 은행나무… / 천천히 걸어 스르륵 나를 열고 깊숙이 침잠한 후 / 나와 완전히 합일을 이루게 되었다.
— 「지구별에 사는 가을 남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