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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2003년 [수필-이은자]너 였을 때, 나 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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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갈뫼
댓글 0건 조회 2,638회 작성일 05-03-2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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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선배 시인 한 사람은 매사에 호, 불호(好, 不好)가 분명
한 분이다. 내가 살아가는 일에 비틀대다가 그 선배에게 가서 쏟아 놓으
면 내 말을 경청하고는 즉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라고 명쾌하게 쩍
벌어지게 금을 그어주신다. 나는 이미 내 안에 두 가지 대답을 다 마련해
가지고 가지만 다만 정할 수 없어 갈등하고 있던 터라 곧 방향을 정하고
가벼운 걸음으로 돌아오곤 한다. 둘이서는 의기 투합이 잘 되는 편이다.
그런데 여태 한가지는 이견(異見)을 계속하고 있다. 장기기증, 장기이식에
관한 의견의 차이는 평행선에 마주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아직 반대론자 내지는 회의론자다. 선배는 사
후 시신 기증서를 가지고 있다. 20여년 넘게 보런티어 생활을 하면서도 헌
혈증서, 장기기증서 하나 못 만드는 나는 선배의 시선으로 볼 때 겁쟁이
요. 맨 입으로 사랑을 외쳐대는 위선자다.
내가 흔쾌히 그 선택을 못하고 갈등하는 데는 몇 가지 나름대로의 이유
가 있다.
나는 참 많은 세월 투병해 왔다. 내 몸 어딘들 성한 게 있어서 남 주겠
냐는 게 그 첫 번째 변명이었다. 그런데 그 변명은 설득력이 없음도 알았
다. 지난 여름, 나라 안 전체가 월드컵 신화의 불길 속에 달아오르고 있을
때 나는 차선생님 입원실에서 대퇴골 수술에 앞서 작성하는 서약서를 대
독 O.X를 치는 일을 했었다. 기증의 요체가 내 상식을 훨씬 넘고 있음에
새삼 놀랐다. 우리들 몸의 뼈, 피부, 치아, 혈관?

내 몸도 아직은 재활용 가능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는 걸 알았다. 장기
기증의 실제에 들어가서 본다면 내가 자발적으로 건강한 내 장기 중 어느
것을 끊어내서 꺼져 가는 한 생명에게 줌으로서 그를 살리는 행위이므로
선한 일임을 말할 나위 없다.
사람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게 이 세상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길은 내가 뇌사상태일 때 제 삼자의(가족) 결정에 의해
축출되는 행위일 것이다. 어느 것이건 몸에 칼을 대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
이다. 전신마취로 수술할 때 죽은 상태나 다름없다고들 말하지만 나는 매
번 그 깊은 잠 속에서도 정말 무섭고 힘든 꿈을 꾸곤 했다. 마취되지 못하
고 있는 또 다른 차원의 의식이 존재하는 건 아닐까? 내 육신은 비록 죽
은 거나 다름없어서 시술자들의 데이터대로 할 수 있어서 좋은 결론을 얻
어내지만, 내 의식 저 밑바닥엔 아픔이 또 다른 형태로 살아 있어도 그토
록 악몽을 주는 게 아닐까? 뇌사자에게 물어서 답을 들을 수는 없다. 답
을 대신할 어떤 조짐도 있다면 그는 뇌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뇌사자는
정말 그 도려내는 아픔을 모를까? 다만 반응할 수단을 잃은 건 아닐까?
나는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다. 아픈데 질려서 꿈에라도 육체가 가해지
는 아픔을 자초하기 싫기 때문에 망설인다. 그리고 더 근본적인 회의(懷
疑)는 꽤 오랫동안 생각해 봤고 남에게 터놓고 말하기는 무척 조심스러운
사안들이다.
일간신문마다 거의가 주간지를 만들던 때가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내 가
게에 배달된 그 주간지 첫 페이지에 실린 원색화보를 보고 온 몸에 소름
이 돋은 기억은 지울 수가 없다.
‘곰을 죽이지 않고도 웅담을 계속적으로 얻을 수 있는 프로젝트 드디어
성공’
철창 속 곰은 반쯤 누워있고 가슴엔 수술실에서 막 나올 때처럼 튜브가
꽂혀있다. 한번 쓸개쯤을 50∼80cc정도 빼고 나서 일주일쯤 지나면 그 만

큼 또 고이므로 그때 또 기계를 작동시켜 계속 채취할 수 있다고 설명까
지 적혀있었다. ‘곰을 죽이지 안고서’에 가장 초점을 맞춘 기사다. 피도
아닌 쓸개즙을 그것도 산 짐승을 철장에 묶어 두고, 몸에 튜브를 꽃아 두
고 동물이거나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의 자생적 치유 능력이 있다고 한다.
곰에게 그 치유능력의 한계가 일주일일까? 그것까지 강탈하고서 성공이라
말해도 되는가?
나는 7년 전에 췌장암 수술로 장기 중 여러 개가 없거나 반 잘려 나갔
다. 그래서 소화기 전반에 장애가 있다. 비유컨대 소화기 회로(回路)가 완
전히 바뀐 상태다. 정상인들은 일을 하려면 든든히 먹어 두고 한다. 그런
데 나는 그 반대로 먹지 않고 그 일을 다 해놓고서 먹어야 한다. 음식물을
소화시키기에 내 장기들은 온 몸의 힘을 다 빼앗는 모양이다.
겉으로 남은 수술창 부위는 실모리 같은 흔적만 있을 뿐 곱게 아물었다.
그런데 두어 시간 이상 앉아 있으면 명치 아래부터 배꼽사이가 너무 쓰리
고 아파서 힘들다. 아무 데서나 드러눕고 싶다. 누워야만 서서히 풀린다. 7
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곰에게 수술자리를 아물게 하지 않고 몇 차례씩이나 반복해서 고통을
주면서 웅담을 먹어야 할만큼 인간은 대단한 존잰가?
그 보다 더 충격적인 기사도 있었다. 일간지 외신면 구석에 실렸던 것
이다. 남미에 위치한 어느 나라 수상이‘장기 강탈자들과의 전쟁’이란 포
고령을 내렸다. 장기 밀매 조직에 의해 유괴돼서 장기를 도난 당하는 청
소년(특히 행려자)들을 보호하고자 내건 포고였다.
인간이 악마와 결탁하여 마음먹으면 못 저질을 일이 없다. ‘마루타’사
건을 연상해도 그런 일이 자행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
과거 우리 사회에서도 자기 피를 팔아서 가솔을 부양하거나 애인 학비
를 대준 일화가 있었다. 그건 어찌 보면 낭만일수도 있다. 지금의 생명 그
유기체를 유지하는데 절대 불가결한 하나 하나의 부속품이 아닌가? 그 중

하나라도 장애를 입으면 서서히 다른 장기까지 과부하(過負荷)에 걸릴 것
이다.
내가 반대론자로 기울고 있던 그 무렵 상담실 내 전화에 한 날에 걸려
온 두 통의 전화로 인해 나는 혼란스러웠다.
- 여기는 강원도 강릉이래요. 나는 금년 26세고 군대도 못 갔어요. 만화
가게를 해서 돈을 벌어요. 돈버는 목적은 콩팥 있지요. 잉, 그걸 사야 되걸
랑요. 나는 양쪽 신장 모두 다 병나서 빨리 한 쪽 거라도 건강한 것으로
바꿔 끼야 된데요. 정식으로 하면 난 죽을 때까지 벌어도 못 사지요. 좀
헐케 살순 없겠나 해서 전화 걸었어요. 도와주세요… -
<우리 주변에서도 물밑으로 장기매매가?>
- 서울 구파발 쪽 변두리에서 -
30대 초반의 아낙이 울며 울며 엮어내는 사연.
이 한달 동안 별 대책을 못 찾으며 월세 방과 연탄 가게는 채권자 손에
넘어갈 처지고 병이 깊은 남편과 아기는 길로 내 몰린다. 더 기막힌 일은
그 채권자 늙은이가 자기를 여자로 탐해서 조건부를 걸고 나선다는 것이
다. 그녀에게 있는 것은 건강한 몸뚱이 하나뿐이다.
장기도 좋고 안구도 좋고. 어느 것이건 팔아서 위기를 넘기게 꼭 좀 주
선해 달라, 기다리고 있겠다. 내 전화는 XXX다.
이튿날 나는 나의 상담지도교수이신 신 박사님을 찾았다.
병원장실을 찾아갔다. 내가 받은 두통의 전화 내용과 내가 온 의도, 그
길의 여부에 대해 다 들으시고 박사님은 연민의 눈길로 법의학에 관해 말
씀하셨다.
L·L의 규정상 내가 노출되어서도 안 된다. 장기 매매, 알선은 엄벌의
대상이다. 끝으로 박사님은 내게 잠시 상담을 쉬는 게 좋겠다 하셨다. 나
는 그 말씀에 따랐다. 정신과 전문인들도 주기적으로 스승 교수에게 체크
받고 케어(care)를 받는 거로 안다. 하물며 애송이 상담 봉사자 나임에야.

에덴을 쫓겨난 인간은 실로 사특해서 말리는 일은 더 하고자 하며 선한
의도로 시작한 일도 욕심으로 인해서 잔혹함에까지 끌고 간다. 강릉과 구
파발을 연결시켜 주고 싶던 내 생각이 어리석었다. 도덕과 법의학이 우위
에 있음이 마땅하고 다행임을 깨달았다. 지난 세기동안 인류는‘이데올로
기’의 대립으로 무참히 서로를 유린했다. 인간사 음지와 양지는 역사의 종
말까지 영속될 것이라 한다.
인간이 하나님께 받은 공평한 혜택이 많지만 그 중에 물과 공기와 대지
가 있다. 대지는 이미 서로 금 긋기 울타리 쌓고, 물과 공기만큼은 공유하
는 줄 알았다. 그러나 물도 차츰 분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김선달의 대동
강 물 팔아먹기는 해학적인 옛 이야기만은 아니다. 좋은 물, 건강한 물은
병에 포장돼서 팔리고 있다. 맑은 공기를 돈주고 사게 될지도 모른다. 공
기 청정기는 임시 방편일 뿐이다. 생계수단 때문에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
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시골 생활이 다 맑은 공기의 혜택을 받는 것
도 도시 사람이라고 모두가 탁한 공기, 오염된 물로 사는 건 아니다 소유
능력이 그것들을 극복하고 지배하는 방편이 되어 가고 있다고 본다.
개인적이고 소극적인 나의 견해로 인간이 그 누구의 개입 없이 그 어떤
처지에서도 평등하게 지닐 수 있는 것이라곤 오직 몸뚱이 하나. 그것만은
자기 몫으로 마지막까지 챙길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것마저도 돈
이 된다면 너무 가혹하다. 자기 불찰로서 건 타의 헤침이건 노쇠이건 간
에 한번뿐인 목숨에 한번으로 받은 것이다. 그것이 망가졌다면 섭리에 순
응하는 게 옳지 않을까? 남의 장기를 이식 받아 생명을 연장한다한들 영
생하는 건 아니다. 어느 시점에 가선 그도 죽는다.
전 생애를 바쳐서 이식(利殖)그 분야의 길을 열고 발전시키며 인간의
생명과 삶의 질을 높여 주는데 헌신한 많은 의료진, 연구진들의 수고와 업
적에 대하여 폄하하는 건 절대로 아니다. 두렵건대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수혜자들의 비 윤리와 반도덕적 죄악을 연민해서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

다. 그리고 장기 이식을 기다리고 있는 고통 중에 살고 있는 환우들에게
비정함으로 오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시 말하지만 인간의 이기심과
과욕에 대한 연민 때문에 나는 아직 갈등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내 태
도를 못 정하고 있는 중이다.
‘갈등하는 인간은 아름답다.’
책 한 권을 만나서 나는 위로 받고 혼란스럽던 사한들을 정리했다.
- J.디자코모. 지음, 박재순 옮김 -
원 제목은 Do The Right Thing A Guide To Christian Morality.
우리가 삶 속에서 직면하게 되고 선택할 수밖에 없는 예민한 사실에 관
해 정직(?)하게 써 놓은 글이다.
「4. 삶의 마지막에서」p52∼66
내 나름대로 몇 줄만 발췌해 보았다.
- 의학의 진보는 우리에게 수명연장을 선물로 주고 있다. 하지만 수명연장이
누구에게나 축복일 수는 없다고 본다. 죽음 앞에 다가가는 치명적인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고도로 발달된 기계와 약물을 이용해서 다만 생물학적 생존, 즉 숨쉬고
있다는 것만을 가지고 살아있다고 매달리는 것도 본인에게 과연 선한 일일까? -
중략 -
옛날 같으면 죽었을 사람들이 의학의 발달로 말미암아 심한 신체적, 정신적 고
통 가운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 중략 -
의사들이 생명을 보존하고 연장하는 일에 최선의 훈련된 기능은 고맙다. 그러
나 인간의 능력의 한계 또한 받아드리고 자연에 순응해야 할 때도 인정 되야 할
것 같다.
내가 자유로워진 대목은 p58 상단부에
-육체적 죽음이 우리의 모든 희망의 끝이 아니다. 우리는 죽음과 함께
초래되는 상실의 슬픔과 고통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상
을 보고 죽음이 하나님과 함께 누리는 더욱 충만한 삶에 이르는 문(門)임

을 믿는다.
<근데 엄마, 엄마가 사랑하는 딸, 내가 만약 장기 이식 아니면 죽게 된
다면, 그때도 엄만 반대할 꺼야?>
내 발목을 잡던 아이는 시집가서 외국에서 산다. 이젠 내 곁에 있는 내
며느리에게 어느 날 병원을 나오며 나는 유언처럼 말했다. 「약속해 주겠
니, 얘야」내 며느리는 눈시울이 빨게 가지고 끄덕여 주었다. 시집와서 줄
곧 나 때문에 많이 운 사람이다. 나는 얼마나 겁쟁이이고 이기적인가 ?
주 : L·L - 서울 생명의 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