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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2018년 [소설] 연민(憐憫)과 증오(憎惡)의 경계 / 강호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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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748회 작성일 18-12-29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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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번호를 차례대로 눌렸다. 발권기에서 항공권 티켓이 밀려 나왔다.
케네디 공항까지 열네 시간 동안의 비행시간은 너무 길다. 그동안 이코노미석만 고수했지만 이번만큼은 비즈니스석이다. 휴식이 필요했다. 탑승시간과 게이트와 좌석 등을 다시 확인한 뒤, 어깨에 멘 루이뷔통 여행 가방 포켓에 티켓을 찔러 넣었다.
다른 발권기 앞에서 한 무리의 중국인들이 가이드가 치켜든 빨간 깃발 앞에 모여 있다. 주위를 조금도 의식하지 않고 저마다 큰 소리로 떠든다.
이제 세계 어느 곳에서나 중국인들로 넘쳐난다.
저임금으로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은 벌어들인 막대한 외화로 항공모함까지 건조하는 나라가 되었다. 불과 이십 년 만에 군사대국으로 굴기해서 미국과 패권 경쟁을 하며 끊임없는 영토야욕으로 주변 국가를 위협하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방어를 위해 배치하겠다는 사드를 두고도 한국에 노골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치졸하게 한국으로 가는 관광객들을 막고 한국 상품의 수출과 판매를 금지시켰다. 한국은 중국과 결코 치유될 수 없는 아픈 역사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데이빗 리도 잘 알고 있다.
한반도는 거듭된 일본과 중국의 침략으로 굴욕을 당했다. 시대와 환경이 달라졌지만 그들의 끊임없는 영토 확장에 대한 야욕은 지금도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김일성이 6.25 전쟁을 일으킨 것도 중국의 사주와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합군이 압록강까지 진군해서 통일이 목전에 다가왔을 때 그들의 참전으로 한반도 통일의 꿈을 여지없이 뭉개져 버리고 말았다.
북한의 핵 개발을 암암리에 부추기는 것도 중국이다. 그들의 묵인이나 지원 없이 북한의 독자적인 핵 개발은 불가능하다. 겉으로는 핵 개발을 반대하는 제스처를 보이면서, 뒤로는 부추기고 있다. 미국과 맞서기 위한 세계 전략의 하나로 북한을 이용하려는 저급한 술책이 깔려 있다.
그들의 오랜 병법 가운데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것이 있다. 오랑캐를 이용해 오랑캐를 친다는 뜻이다. 이제, 대국이 된 그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약소국가를 상대로 치사하게 무역보복 같은 부끄러운 짓을 할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세계 인류에게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올 북한정권의 핵 개발부터 막는 일이다. 유사시 그들이 다시 6.25 때처럼 의용군이라는 명분으로 한반도를 침략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지형적으로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는 늘상, 외침에 시달려 왔다. 남쪽에는 일본이, 북쪽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태평양 건너편의 동맹국이라는 미국도 믿을 것이 못 된다.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 한국 같은 작은 나라를 내팽개칠 수 있다. 김정은이 자신의 왕조를 지키기 위한 핵 개발이 자칫하면 한반도의 공멸을 가져올 수 있는 위기 상황을 만들어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미국이 자국 영토가 핵 공격을 받게 된다면 한국의 동의 여부에 관계없이 즉각적으로 북한을 공격할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한반도의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하다.
데이빗 리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쉽사리 씁쓸한 기분을 떨쳐내지 못한다. 비록 자신은 미국 시민으로 살고 있지만 뿌리만은 어쩔 수 없다. 자꾸만 한국이라는 나라의 앞날이 참으로 막막하고 딱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미국에 살면서 외신으로 전해오는 한국 내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깊은 연민을 느낀 적이 한두 번 아니다. 한국은 36년간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노예처럼 살았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잠시 해방을 맞았으나 이내 강대국이 개입한 이데올로기 전쟁이 한반도에서 일어났다. 동족끼리 수백만 명이 죽이고 죽고 국토는 두 동강이로 갈라졌다. 그런 끔찍한 고통과 전쟁의 참화를 겪고도 한국인들은 왜 아직도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지 궁금했다. 군사독재정권의 오랜 강압적 통치로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데도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한국의 정치가라는 자들은 선거 때마다 오직 자신의 영달과 권력을 위해, 터무니없는 공약을 내세우고 ‘좌(左)니 우(右)니’ 해묵은 이념으로 국민들을 선동하면서 극단적인 대립도 마다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이빗 리는 자신의 정체성과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기 위해 대학에서 개설한 한국 근현대사 특강을 열심히 수강했다. 강의를 맡은 새뮤엘 교수는 파란 눈의 한국인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근현대 한국사에 정통한 인물이었다. 그는 하버드 대학에서 학위를 하고 다시 한국의 대학에서 한국사를 공부하고 학위를 받았다. 데이빗 리는 그의 강의내용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 한국의 현대사는 박○희라는 인물을 빼놓고 말할 수 없습니다.
기회주의자이며 친일파로 일본군의 관동군 장교였던 박0희는 해방 후에는 남한 정부의 군내 남로당 총책이 된 공산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여순군 반란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군 내부의 프락치를 검거하는데 협조함으로써 사형을 면하고 한국전쟁으로 전향, 박탈당한 군적을 되찾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내각제의 장면정부가 들어서면서 나라가 잠시 혼란한 틈을 타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한국인들은 이때부터 군사독재정권의 강압통치를 받게 됩니다. 헌법을 바꾸고 영구집권을 노린 박○희가 자신의 부하에게 총 맞아 죽으면서 국민들은 군사독재정권이 끝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열광했습니다.
그러나 박○희 아래서 일개 보안사령관직에 있던 전○환이라 자와 휴전선을 지키는 최전선 부대의 사단장으로 있던 노○우라는 자가 그들을 추종하는 일당들과 쿠데타를 모의하면서 노골적으로 정권야욕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들은 터무니없는 누명을 쉬워 자신의 직속 상관인 육군참모총장을 대낮에 총질을 하며 체포합니다. 이어 한밤중에 휴전선을 지키는 부대를 서울로 이동시키고 계엄령을 선포, 군인들을 투입해 광주에서 항거하는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200여 명이나 학살하는 악랄한 만행을 저지릅니다. 계속된 군사독재정권 30년, 이들이 국민들의 결사적인 저항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합니다. 비로소 한국에 민주주의가 시작되지만 유례없는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겉으로 숨죽이며 잠재해 있던 문제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군사독재정권이 자신의 정권연장과 정당성을 합리화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사실들을 왜곡하고 한국의 전통적인 모럴과 가치관을 훼손시키면서 국민대중을 폭압적으로 억눌러 왔던 것들입니다. 군사독재정권과 정권연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공산당으로 몰아 영장 없이 구금하고 거침없이 고문을 자행했습니다.
그 이면에는 한때 공산주의자였던 박○희의 트라우마가 작용했다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쿠데타가 성공하자 그가 재빠르게 내건 구호가 <반공을 국시>로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에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박○희는 오로지 정권을 연장을 위해 독재정권의 하수인일 수밖에 없었던 사법부를 위협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공산당으로 몰아 사형을 선고하고 형장으로 내몰았습니다.
죽음과 공포로 억압을 견뎌낸 국민들은 군사독재정권이 몰락하자 그동안 억눌렸던 자유에 대한 욕구가 각계각층에서 한꺼번에 분출되면서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지금의 한국 내 갈등은 아직도 군사독재정권 후유증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아집니다. 새삼 해묵은 사상논쟁과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가 극한의 투쟁을 하는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민주주의를 위한 과도기적인 현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


데이빗 리는 36년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도 가위에 눌러 식은땀을 흘리며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르고 잠을 깬다. 당시의 일이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기 때문이다. 공장이 휴업을 해서 모처럼 아버지도 집에 있는 날이었다. 저녁을 먹고 있었다. 밖에서는 하늘에 낮게 뜬 헬리콥터가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확성기 방송과 산발적인 총성도 함께 섞여서 들렸다.
누군가 다급하게 철제대문을 두드렸다. 어머니가 겁먹은 얼굴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잠깐 망설이는 표정을 짓다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이내 대문 따는 소리가 들리고 얼굴과 이마에 피가 낭자한 청년이 아버지와 함께 집안으로 뛰어들었다.
‘고맙습니다. 군인들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청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와장창- 대문 부서지는 소리와 동시에 살기등등한 군인 둘이 마당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어깨에 총을 메고 손에 곤봉을 들고 있었다. 구둣발 그대로 안방으로 거침없이 들어왔다. 청년과 아버지 어머니를 보자 무어라고 말할 사이도 없이 곤봉부터 휘둘렸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아버지와 어머니, 청년이 피를 흘리며 방바닥에 쓰려졌다. 어린 데이빗 리가 보는 앞에서 군인들의 곤봉과 군화 발길질이 계속되었다.


데이빗 리는 출국장 입구로 가면서 바로 옆 벽, 높은 위치의 탑승안내판을 쳐다보았다. 시카고, 뉴욕, 홍콩, 로스앤젤레스, 베이징, 파리 등으로 떠날 비행기가 탑승 수속 중이라는 노란 불이 들어와 깜박거렸다. 수속이 끝난 비행편의 안내 자판이 지워지고 새로 탑승 수속을 시작하는 자판이 나타났다. 시계를 보았다. 아직 탑승 시간까지 한참 여유가 있었다. 무언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인을 알아내고는 속으로 고소했다. 언제나 혜주가 운전하는 차로 공항에 와서 출국장으로 나갈 때까지 배웅을 받았지만 이번은 혼자다. 늘상, 혼자이면서도 혼자라는 것이 이렇게 쓸쓸할줄 미처 몰랐다. 하릴없이 저만큼 바라보이는 출국장 입구를 향해 걸었다. 더 이상 밖에서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미행자가 있다는 것을 감지한 것은 바로 그때부터다. 처음부터 미행이라든가 그보다 더한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두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한국의 정보수집 능력은 일류’라고 말하면서 미스터 배는 묘하게 웃었다. ‘국내의 반정부 인사들을 감시 고문하고 살해하는 과정에서 터득한 노하우가 아니겠느냐.’라고도 했다. 남북 대치라는 특수상황이 정보력을 높인 면도 없지 않지만 그보다는 군사독재정권의 정권 유지 목적이 정보력을 키웠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미스터 배의 이야기가 실제보다 다소 과장된 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데이빗 리는 도서관에서 당시의 기록을 찾아 읽으면서, 박○희 군사 독재정권은 정권연장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6.25전쟁을 겪은 국민들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이데올로기 문제였다. 이 점을 간파한 박○희 일당들이 악랄하게도 정적이나 정권연장에 걸림돌이 되는 인사들을 압박하는 무기로 삼았다. 없는 간첩죄를 뒤집어씌우고 간첩조직을 만들어 냈다. 고문과 협박으로 허위 자백을 받아내, 허수아비 사법조직의 형식적인 판결을 거처 합법을 가장한 사법 살인을 공공연히 자행했다.
“중앙정보부라는 조직은 태생부터 문제를 안고 출발했습니다. 처음부터 나라의 안보와 대간첩 임무를 띠고 조직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독재자가 자신의 만년 집권을 위해 국가의 삼권을 모두 장악하는 무소불위의 또 하나의 정부를 만든 겁니다.”
미스터 배는 데이빗 리가 자료조사를 위해 도서관을 드나들면서 우연히 알게 되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고 했다. 나이도 같은 데다 동향이고 80년 5월 광주라는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두 사람은 급속히 가까워졌다. 데이빗 리는 미스터 배야말로 한국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올 때마다 미스터 배에게 전화를 하고 서울에서 새로 부상한 강남이라는 곳에서 식사를 하거나 자신이 묵고 있는 호텔의 바에서 같이 술을 마시기도 했다. 자신이 미처 몰랐던 한국의 근현대사를 미스터 배로부터 많이 배웠다. 물론, 8.15 해방과 4.19나, 5.16 쿠데타 같은 것은 두 사람 모두 출생하기 훨씬 전에 일어난 일들이다. 한국의 근현대사와 주요 사건들을 알게 되면서부터 데이빗 리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던 5.18의 광주와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한적인 대립의 배경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데이빗 리가 묵고 있는 호텔은 강남의 버스 터미널과 같은 장소에 있다. 그가 아시아권을 아우르는 홍콩 지사의 책임자로 있을 때 이 호텔의 이 삼층 전체를 빌려서 한국의 000그룹의 회사 인수 작업을 했던 인연이 있다. 이후 서울에 올 때마다 그는 이 호텔에 투숙한다. 무엇보다, 서울은 물론이거니와 한국의 어느 곳이던 접근이 쉽고 교통편이 좋기 때문이다.
“이번엔 언제 출국하세요?”
혜주가 가슴에 두른 브래지어를 앞으로 돌려 고리를 끼우면서 물었다.
옷 하나 걸치지 않은 삼십 대 후반 여자의 탄력 있는 뽀얀 나신이 흰 대리석으로 잘 조각된 비너스처럼 아름답다. 봉긋 솟아 있는 젖가슴이 풍만하다 못해 터져 버릴 것 같다. 데이빗 리는 밤새 그 젖가슴에 얼굴을 묻고 어린애처럼 젖꼭지를 빨고 애무했다.
혜주가 팬티를 입으려고 오른쪽 다리를 약간 들면서 몸을 앞으로 숙이자 무성한 거웃이 보이고 거웃 아래 선홍색으로 상기된 소음순과 클리토스가 살짝 드러났다. 바로 조금 전까지 침대에서 발정 난 고양이처럼 서로를 학대하듯이 야단스럽게 난리를 피웠던 흔적이다. 데이빗 리의 아래 쪽에 다시 힘이 실렸다.
“글쎄, 봐가면서 출국할 작정입니다. 이번에는 공항에 배웅 나올 필요없습니다. 뉴욕에 도착해서 전화하겠습니다. 어쩌면 시간 내서 광주에라도 한 번 더 다녀올까 합니다. 뉴욕에 도착해서 전화겠습니다.”
“그래도 떠날 때 공항에서 전화주세요. 그러면 이제 뉴욕에서 보겠네요.”
“그래요. 뉴욕에서 봐요.”
그 사이 혜주는 옷을 모두 입었다. 짙은 자주색 투피스에 흰 블라우스의 정장 차림이 조금은 딱딱한 느낌이다. 조금 전까지 침대에서 흐느끼며 바튼 신음을 내지르던 혜주의 모습이 아니다. 시계를 보더니 서두르는 몸짓이다. 호텔에서 법원 근처에 있는 로펌 사무실까지는 불과 십 여분 거리지만 출근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혜주는 문으로 향하다 말고 돌아서서 그에게 다시 다가와 두 손으로 데이빗 리의 목을 감싸 안았다. 거침없이 그의 입속으로 달콤하고 한없이부드러운 혀를 디밀었다. 데이빗 리는 다시 뒹굴고 싶다는 욕망을 애써 참는다. 처음 만났을 때의 풋풋함이 그대로다. 혜주를 처음 만난 것은 학교 근처의 허드슨 강 강변공원 산책로에서였다. 꽁지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동양계 아가씨가 조깅을 하고 있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좌우로 흔들리던 귀여운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본격적으로 사랑을 키운 것은 캠퍼스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면서부터다.
컬럼비아대학은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였을 때 설립되었다. 미국을 움직이는 수많은 인재들이 이 대학을 졸업했다. 혜주는 국비 장학생으로 이 대학의 로스쿨에서 국제법을 전공했다. 변호사 자격을 딴 뒤 다시 한국에서 시법시험에 합격하고 판사 생활을 얼마간 하다가 지금은 로펌에서 일하고 있다. 보름 후에, 혜주의 국제법 연수 과정 일정이 뉴욕의 모교에서 잡혀 있다. 데이빗 리는 보름 후에 뉴욕에서 다시 혜주를 만나게 된다.


“이 친구 한번 살펴봐. 뭐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너무 출입국이 잦아. 서울을 제집처럼 드나들고 있어. 올해만도 벌써 일곱 번이나 입출국을 했어.”
차장은 상민을 불렀다. 서류가 든 파일을 내밀었다. 세계 각처의 사람들이 한국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대부분 순수 관광객이거나 비즈니스로 입국하는 사람들이지만 그중에는 IS 조직원 같은 테러분자들도 있고 탈북민으로 가장한 간첩도 있다. 국내 정치가 불안해지면서 어느 때부터 자생적인 좌익과 고정간첩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북한의 핵 개발로 한반도 점점 어려지고 있다. 000원은 군사독재 정권의 앞잡이 노릇을 한 원죄 때문에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구가 축소되고 손과 발이 잘리는 수난의 연속이다. 위축될 대로 위축된 정보 조직으로는 이들을 다 감당할 수 없다.
한국인들은 30년 동안 군홧발이 나라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는데 다시 그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군사독재 정권 밑에서 그토록 혹독한 억압을 당하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심지어 암흑과 억압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어리석은 국민들도 있다. 나라 전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톡홀름 신드롬에 빠져든 탓이다.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다.
탄핵 소용돌이에 휘말려 나라가 죽 끓듯 부글거리고 뒤숭숭하다. 독재자의 시녀 노릇으로 자기 것만 챙기던 소위 <법>한다는 자들이 이제 아전인수(我田引水)격인 요설(饒舌)로 불난 섶에 기름을 들이붓고 있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어쩌면 군사독재 정권에 빌붙어 나라를 망친 자들은 법했다는 자들인지도 모른다. 국회의원이다 장관이다 판검사다 변호사다 해서 온갖 기득권의 특혜를 누리고 새로운 귀족으로 군림한 자들이 다시 국회의원이 되고 그것도 부족해서 더 높은 곳을 향해 발광하고 있다.
장차, 이 나라가 어디로 갈 것인지 가장 예민한 정보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상민조차 예측이 되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다가 내부에서 자중지란이 일어나 나라를 홀랑 들어 김정은에게 갖다 바치고 위대한 수령으로 받들어 모시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생각조차 들 때가 있다.
상민은 파일을 받아들고 조사를 시작했으나 부장의 말처럼 별 특이점이 보이지 않았다. 출생지가 한국 광주의 계림동이었다. 전0환 일당들이 80년 5.18때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데이빗 리는 당시 여섯 살이었다. 부모가 계엄군의 곤봉에 맞아 죽어가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피투성이가 된 채 군용 트럭에 실려 간 부모를 찾아 최루탄이 터지고 총알이 빗발치는 거리를 맨발로 울면서 헤매고 다녔다. 그를 눈여겨 본 사람은 당시 광주 5.18사태를 취재하던 미국인 CBS 기자였다. 데이빗 리의 부모가 군인들의 손에 죽고 연고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기자는 그를 입양해서 미국으로 데려갔다.
데이빗 리는 양부모의 보살핌으로 중 고등학교를 거처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MBA 학위는 시카고대학에서 받았다. 졸업과 함께 세계적인 투자은행인 골드만 삭스에 스카우트 됐다. 승진을 거듭한 끝에 이십 대 후반에 홍콩지사장으로 승진했다. 여러 차례, 스톡옵션을 받아 그는 이미 수천만 달러의 현금과 주식을 소유한 재산가가 되었다.
출입국 기록의 자료를 보면 입양 후 데이빗 리가 처음으로 한국에 입국한 것은 IMF 위기로 흑자를 보면서도 도산 직전에 있던 한국의 어느 그룹인수 작업을 위해서다. 인수 작업이 성공적으로 끝났는데도 그는 한 달여를 더 한국에서 체류했다. 한국에 ○○대학의 동문인 여자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지만 여자와 같이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것으로만 보기에 분명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는 것은 확실했다.
기업 인수가 끝난 후에도 데이빗 리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입국해서 적게는 3일, 많게는 일주일씩 서울에서 체류했다. 의외인 것은 여자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 외, 한국에 올 때마다 광주로 여행했다는 점이다. 또한 가지 특이한 점은 도서관을 자주 찾았다는 사실이다. 그가 도서관에서 주로 열람한 자료는 80년대의 정기간행물이었다. 국회도서관까지 가서 5.18 이후의 재판기록과 판결문 같은 것들도 대여해서 열람한 것으로 밝혀졌다. 광주에서는 5.18과 관련된 지방신문의 기사를 열람하고 5.18단체를 접촉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상민은 그를 도서관에서 같은 열람자로 위장하고 접근했다. 나이도 비슷한 연대여서 호흡이 맞았다. 얼마 가지 않아 호텔로 그의 초대받아 술도 같이 마시는 사이가 되었다. 상민이 여러 각도로 데이빗 리를 조사했으나 대공용의점 같은 것은 전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5.18에 대한 관련 자료를 찾고 있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한 행동이라고 판단했다. 당시의 상황을 더욱 자세히 알고 싶어 하는 데이빗 리에게 상민은 비밀 해제된 국방부의 광주 때 계엄일지를 열람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그리고 ‘대공용의점 없음’으로 차장에게 보고했다.


막상 공항에서 자신을 좇고 있는 미행자를 확인하는 순간 데이빗 리는 낭패라는 생각보다 누군가 지금까지 그가 한 일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아연했다. 망치로 뒷머리를 호되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한동안 머릿속이 하얗게 표백된 것 같았다. 가까스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데이빗 리가 가까스로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이번 일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방치해 버렸던 왜곡된 사회정의의 어느 한 부분을 바로 잡는다는 믿음이었다. 자신의 행위가, 이 나라의 실정법을 어긴 건 분명하지만 누군가가 이미 했어야만 했던 일이라는 확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행자가 있다는 현실적 상황에 부딪히면서 그는 한순간이나마 몹시 당황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상보다는 현실이, 그리고 면밀 주도하게 계획했던 일이, 마지막 단계에서 설마했던 한 가닥 불안이 기어코 현실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하나하나 치밀하게 점검했고 마지막 결행 단계에서 데이빗 리는 그 자신에게, 한 번 더, 이 일의 정당성과 당위성에 대한 확신을 다짐했다. 일의 진행 중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회의와 마음의 동요, 위험 같은 것을 막기 위해, 오랜 버릇대로 미리 최선과 최악의 경우를 설정했다.
미래에 다가올 일을 알고 있다면 불안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인간의 불안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담보로 종교를 가지거나 종교가 아니더라도 그와 유사한 형태의 믿음을 가짐으로써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는 후천적 본능이 존재한다.
이번 일의 경우, 최선은 말할 것도 없이 데이빗 리가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뉴욕행 비행기를 탑승해서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그 계획은 한 치의 오차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토록 오랜 기간 면밀히 계획하고 준비한 것에 비하면 그 실행은 너무나 싱거울 정도였다.
그런데 마지막 단계에서 미행이라는 꼬리가 붙게 될 줄 몰랐다.
택시를 내려 공항 출국장 대합실에 들어설 때부터, 왠지 꼭 꼬집어 이유를 댈 수 없는 막연한 불안감 하나가 갑자기 전율처럼 엄습했었다. 시간 단위로 계산된 이번 일의 실행과정에서 너무 과민하고 긴장했던 탓이라고 치부하면서 일부러 그럴 개연성을 묵살해 버렸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식의 심리적 혼란과 경계 본능을 별수 없이 자신도 겪고 있는 것일 뿐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고 생각했다. 호텔을 나와 택시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가면서 혜주를 생각했다. 이번에야말로 연수차 혜주가 뉴욕으로 오면 그간의 모든 증오를 내려놓고 오래 미뤄 놨던 프러포즈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도 원하고 혜주가 더 간절히 바라는 일이었다.
처음, 언뜻 미행자로 보이는 사내가 데이빗 리와 시선이 부딪히고 얼굴을 돌려 사람들 사이로 급히 모습을 감추었을 때까지도 자신이 미행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사내는 일반 여행객 중 한 사람으로 우연히 그와 시선이 마주쳤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다른 볼일이 있어서 공항에 나온 사람일 수도 있었다. 하루 이용자 수십만 명을 넘는 국제공항이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미처 사내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 탓일 수도있다. 데이빗 리는 시선이 부딪힌 사내가 그냥 당황해서 얼굴을 돌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입출국 안내판을 보고 출국장을 향하던 데이빗리의 시선에,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이쪽을 보고 있는 사내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그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누군가로부터 미행을 당하고 있으리라는 전혀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객관적으로 보면 미행에 대한 충분한 개연성이 있었음에도 그는 한사코 부정했다.
이번 출국은 일부러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혜주에게마저 출국 일자를 얼버무렸다. 혜주를 제외하면 한국에서 유일하게 믿음이 가는 사람인 미스터 배에게도 이번 입국이나 출국을 알리지 않았다. 지난번 출국 때는 강남에서 그를 만나 저녁을 함께했다. 데이빗 리는 미스터 배를 만날 때마다 만신창이의 이 나라가 그래도 굴러가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했다. 한국에서 일어나고 상황은 매우 비관적이지만 그래도 미스터 배 같이 확고한 국가관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도대체 자신을 미행하고 있는 자가 누구란 말인가?’
데이빗 리는 그의 출국을 알 만한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하나하나 점검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데이빗 리의 출국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이 지피지 않았다. 어쩌면 사내가 자신을 미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신반의하면서 발걸음을 조금 빠르게 출국장 출입구 쪽을 향해 걸었다. 다시 사내가 그를 따라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빠른 걸음으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더 의심할 나위가 없었다. 이제 사내의 목표가 자신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갑자기 심장의 고동이 쿵쾅거리면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헛놓였다. 시선이 마주치는가 했는데 사내가 금방 사람들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살폈으나 사내의 모습은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사내가 자신을 미행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데이빗 리는 되도록 침착하게, 허둥거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저만큼 떨어진 출국장의 출입구를 향해 빠르게 걸었다. 불과 20여 미터의 출국장 입구까지의 거리가 20킬로미터만큼이나 아득하게 멀게 느껴졌다. 그대로 곧장 출국장으로 들어가서 비행기에 탑승하려 했지만 소금 기둥이 된 구약성서의 여인처럼 데이빗 리는 무심결에 얼굴을 뒤로 돌렸다. 불행하게도 데이빗 리는 자신의 우려와 직감이 정확히 들어맞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람들이 앉아 있는 의자들 뒤쪽을 빠르게 돌아 데이빗 리 쪽을 힐끗거리며 접근하는 사내를 다시 보았다. 오가는 사람들 때문에 아직 사내의 정확한 얼굴을 식별할 수 없었지만 분명 조금 전에 보았던 사내가 틀림없었다. 데리빗 리는 침착하려고 애썼지만 자신도 모르게 허둥거리며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사내는 이제 자신의 정체가 완전히 노출되었다고 생각했는지 더 이상 몸을 숨기지 않았다. 삼십여 미터의 거리를,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데이빗 리는 체념하고 돌아섰다. 사내의 얼굴을 보는 순간 데이빗 리의 온몸이 뻣뻣하게 경직되었다.
아! 비명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오기 전에 데이빗 리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입안이 바싹 말랐다. 본능적으로 사내의 시선을 피해 얼굴을 돌리고 걸음을 빨리해서 출국장 입구로 향했다. 발걸음이 자꾸만 헛놓여졌다. 사내가 뛰다시피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데이빗 리의 앞을 가로막았다.
데이빗 리는 대학에서 교양과목으로 강의받았던 철학개론이라는 책 속에 ‘아팔라치아 산맥 이쪽과 저쪽의 정의의 개념이 각각 다르다’라는 전제가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철학은 그런 전제로 시작된다. 아팔라치아 산맥은 미국 동부 쪽을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내린 산맥이다. 개척시대의, 정서가 다른 두 지역 간 정의의 개념을 그 책의 집필자는 그렇게 표현했던 것 같다. 정의의 개념이야 그렇다고 해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소속된 모든 사람들에 의해 승인된 법은 어떤 경우든 지켜져야 하는 것이 보편적인 법 이론이고 또 진리다. 대중은 그 보편적인 진리를 존중해 주기를 바라고 그것을 지킴으로서 모든 사람들이 안도한다.
지금, 데이빗 리에게 그까짓 철학이나 역사의 전개 과정이야 어떻게 되었건 알 바 아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는 자신이 행한 모든 행위에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당위성 밖을 일탈해 본 적이 없음을 자신해 왔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미행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그 자신이 그 보편적인 진리의 한 귀퉁이를 허물어트린 범법자라는 현실을 새삼 절실히 자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사내가 빠르게 다가와 자신의 어깨를 잡는다고 느낀 순간 데이빗 리는 모든 것을 체념했다. 오히려 담담한 마음으로 사내를 향해 돌아섰다. 설마 했으나 사내의 얼굴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 데이빗 리는 한꺼번에 맥이 탁 풀렸다.
“데이빗 리! 뭘 그렇게 바쁘게 서두르십니까? 이번엔 언제 입국했습니까. 입국해서 전화도 주지 않고 이렇게 출국도 몰래 하시깁니까?”
“아, 그게, 그게 말입니다. 이번엔 그것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미스터 배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이었다. 데이빗 리는 안도했으나 안도하는 마음은 잠시였다. 갑자기 마음속에서 극심한 혼란이 일어났다. 미스 터 배가 이 시간에 왜 공항에 갑자기 나타난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설마 그가…?’
데이빗 리는 속으로 몹시 당황했다. 지금 그는 이 나라에서 유일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미스터 배를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이 곤혹스러웠다. 그렇지 않다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 데이빗 리는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의구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미스터 배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았다. 태연하려고 했으나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다.
‘아니, 절대로 그럴 일은 없어.’
마음속으로 강하게 부인했으나 의문은 더욱 커다랗게 증폭되었다. 이렇게 이른 시간, 미스 터 배가 일부러 공항에 나왔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그를 미행까지 하고 있지 않았던가.
미스터 배가 공항까지 달려 나온 정확한 의도를 알아야만 했다. 긴장과 초조로 당황하고 있는 데이빗 리와는 달리 미스터 배의 얼굴은 여전히 밝고 쾌활해 보이기까지 했다. 시선이 마주치는 극히 짧은 순간, 뭔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표정이 잠깐 얼굴에 떠올리긴 했으나 이내 예사스러운 얼굴로 바꿨다.
어쩌면, 미스터 배는 지금까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 극심한 배신감이 엄습했으나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아무리 엄청난 것이어도 미스터 배는 이해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극단적으로 데이빗 리는 자신의 손목에 수갑을 채워지는 상황이 온다 해도 미스 터 배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억지로 태연을 가장하면서 물었다.
“여긴 어쩐 일입니까?”
“아! 공항에 누구 배웅할 사람이 좀 있어서요. 그런데 정말 언제 입국한겁니까? 그리고 어떻게 전화도 없이 살짝 출국합니까. 처음엔 데이빗인줄 몰랐습니다. 비슷하게 닮은 사람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저쪽에서 다시 얼굴을 보게 되면서 데이빗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미안합니다. 이번엔 일이 좀 그렇게 되었습니다.”
데이빗 리는 미스터 배의 속내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시계를 보았다. 비행기 탑승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미스터 배도 전광판을 올려다보았다.
“뉴욕행 10시 출발하는 항공편 같은데 커피 한 잔 같이 마실 시간도 없네요. 어서 가보십시오. 다음에 입국할 때는 꼭 전화 주시고요.”
데이빗 리는 혹시 말을 잘못 들은 것이 아닌지 귀를 의심했다. 미스 터배의 얼굴을 보았으나 역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심상하고 유쾌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언제 그가 표변해서 자신의 손목에 수갑을 채울지 모를 일이었다.
“탑승 시간 다 됐네요. 어서 가보십시오. 다음 입국할 때는 꼭 연락하시고.”
환하게 웃는 얼굴로 손을 잡으면서 데이빗 리를 재촉했다. 반신반의하며 데이빗 리는 미스터 배가 잡은 손을 놓고 돌아서서 출국장 입구로 향했다. 막 출국장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미스 터 배가 다가와서 다시 그를 불러 세웠다. 한쪽 손에 들고 있던 신문을 불쑥 내밀었다.
“이거 가져가서 비행기 안에서 심심할 때 읽어 보십시오.”
비행기가 대구 비행관제구역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태평양 항로로 기수를 잡고 있었다. 얼마 후 안전벨트를 풀어도 된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데이빗 리는 벨트를 풀면서 공항에서 미스터 배가 내민 신문에 생각이 미쳤다. 신문을 펼쳐 들었다. 사회면이었다. 5.18 당시 광주 계림동 일대에서 공수부대를 지휘했던 인물의 집에 강도가 침입해서 전치 3주간의 상해를 입히고 도주했다는 기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라진 귀중품은 없고 상해를 당한 당사자는 자세한 진술을 꺼리고 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오랫동안 조사한 기록을 하나하나 좁혀간 끝에 데이빗 리는 마침내 5.18 당시 계림동 일대에 투입된 병력과 지휘관을 찾아냈다. 놈이 살고 있는 집을 여러 차례 미리 답사하고 동선까지 파악한 후 집안으로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놈이 침대에 잠들어 있었다. 데이빗 리는 우선 놈의 입을 틀어막고 침대에서 끌어 내렸다. 느닷없이 전개된 상황을 판단하려는 듯 놈을 두 눈을 휘 번득거리며 앙상한 사지를 마구 버둥거렸다. 데이빗 리는 복사한 5.18 당시 광주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놈의 얼굴 앞으로 디밀었다. 사진을 본 놈의 동공이 커다랗게 열렸다. 놈은 사진에서 눈을 돌려 데이빗 리가 치켜든 칼을 올려다보았다.
놈이 무릎을 꿇었다. 두 손을 마주 비비며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아무리 보아도 당시 광주에서 곤봉과 총검을 마구 휘두르던 서슬 푸른 악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데이빗 리의 처음 계획은 놈들을 죽여서 어설픈 사법조치로 잃어버린 사회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여든이 넘어 늙고 초라한 모습으로 자신 앞에 무릎을 꿇고 목숨을 애걸하고 있는 놈을 보자 데이빗 리의 마음이 흔들렸다. 전혀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놈도 반란 수괴인 전○환과 노○우 일당의 하수인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데이빗 리는 의자 등받이를 뒤로 젖힌 뒤 몸을 눕혔다. 신문으로 얼굴을 덮고 눈을 감았다. 자신도 모르게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터져 나오려는 오열을 참느라 이를 악물었다. 비즈니스석이라 옆 좌석과 거리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미스터 배는 처음부터 자신의 한국 내 움직임을 손바닥 보듯 보고 있었음이 분명해졌다. 그럼에도 한 가지 의문으로 남는 것은 한국의 실정법을 위반한 데이빗 리를 왜, 공항에서 체포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어떻든 지금 데이빗 리는 무사히 비행기에 탑승해서 뉴욕으로 가고 있다. 극도의 긴장이 풀린 탓인지 졸음이 왔다. 이제 더 이상 가위에 눌리거나 악몽을 꾸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