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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2018년 [수필] 꽃보다 아름다운 그녀 외 1편 / 박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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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669회 작성일 18-12-3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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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가족들은 이제 그만 일을 벌였으면 좋겠다고 한다. 가정폭력상담과 학생상담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이제 나도 멈추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다.
글을 써야 하는데 못하고 있다. 또 핑계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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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아름다운 그녀


그녀를 왜 좋아할까? 가끔 생각해 본다. 한결같은 마음도 떠오르고, 단아한 이미지도 좋다.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누구의 말에도 귀 기울이는 모습. 무엇보다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과 맑은 영혼을 지니고 있어서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까.
그녀를 만난 지 이십오 년째다. 남편이 고양시로 발령받아 이사했을 때는 일산신도시 입주가 끝났고, 그녀는 화정 입주를 앞두고 있었다. 큰아이가 네 살 때, 미술학원에서 기○이를 만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다. 기○이는 종종 우리 집에 와서 놀이에 빠져서 어두워도 집에 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는 강제로 아들을 데려가지 않고 스스로 싫증날 때까지 기다렸다. 자신에게 아이를 맞추지 않는 모습을 보며 나도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난 기○이가 오래 놀길 바랐다. 낯선 도시에서 의지할 곳 없었는데 그녀가 유일한 벗이었다. 또한 아이들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동지였다. 똑같이 아들만 둘이어서 이야깃거리가 많아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또한 네 명의 아이들은 성향이 비슷했다. 레고로 무엇인가를 만든다든지 퍼즐놀이와 게임 이런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넷이 방에 있어도 소란스럽지 않았고 싸우는 일도 없었다.
그녀와 지내면서 이곳에 빨리 마음 붙일 수 있었고, 이 도시가 따뜻하게 인식되었다. 또한 그녀의 차분함이 여유를 갖도록 했다. 그녀가 이사하고도 수시로 연락했고, 놀러 가기도 했다.
어느 날 텔레비전이 고장 나서 서비스를 받게 된 사연을 말했다. 수리기사는 몇 시간을 이리저리 뜯고 조합하여도 문제점을 찾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자신이 미안해지더라는 것이다.
그때 들은 말이 지금까지 인상 깊다.
“은헌아(나를 부를 때는 아이들 이름으로 불렀다), 땀을 흘리며 몇 시간을 조립했다 뜯었다 그러는데, 언젠가 기○이도 저렇게 굶으면서 일하는 날이 올 수 있겠다 싶더라. 그래서 짜장면이라도 시키겠다고 했더니, 사양하는 거야. 그래도 내 마음은 짜장면이라도 먹여서 보내고 싶은 거야.
그러면 내 아들에게 저런 상황이 온다면 누군가는 밥은 주겠지 하는 마음.”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이 말이 떠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사람을 먼저 보고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 지금이나 그때나 변함없다. 그녀의 마음 덕에 계산적이었던 내가 베푼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낯선 사람에게도 베풀 줄 아는 그녀를 보면서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게 되었으니, 내 삶의 멘토이다.
지금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녀 덕분이다. 난 아이들에게 책을 제대로 읽히려고 한우리에 공부하러 다녔다. 4개월 과정이 끝나고 시험을 보기도 전에 기○이 친구들과 팀 짜서 지도해 달라고 했다. 또 둘째 친구들까지 수업하면서 일주일에 두 번씩 그녀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고, 30명만 수업하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은 수강생이 70명으로 늘었다. 독서지도사 공부할 때, 이것이 직업이 될 줄 몰랐다. 아는 사람이 없는 이 도시에서 그녀의 아이들을 가르치며 학생들이 나뭇가지처럼 뻗어 나갔다.
어느 날 만났을 때, 이혼했다고 했다. 왜 이혼했는지 묻지 않았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그런데 몇 년 전에는 기○이 아빠가 명퇴를 했다며 찾아왔는데 마음이 아파서 방 한 칸에서 지내도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인연을 끊은 사람과 한집에서 지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녀의 성품을 떠올리고 이해했다. 남편이었고, 여전히 아이들 아빠인 사람이 어깨가 축 처진 상태로 찾아왔으니 과거에 힘들게 했던 것은 잊었으리라. 남편은 1년 동안 이곳저곳 서류를 넣어 보았지만 연봉이 반 토막이라며 취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라는 곳도 없을 텐데, 절망할까 봐 걱정이라더니. 지금은 일을 시작하여 월급을 전부 준다고 말한다. 며칠 전에는 제주도에서 집을 짓고 있는데 갔다 왔다고 한다. 그녀를 누가 싫어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것을 따지지 않고, 늘 사람을 먼저 챙기는 그녀.
<소크라테스의 변론> 중에 ‘오로지 돈과 명성과 명예에만 관심을 쏟고 진리와 지혜와 영혼의 향상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부분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신이 자신에게 맡긴 임무가 사람들의 영혼을 최상의 상태로 이끄는 사명감을 주었고, 자신은 그 일에 매달려왔다고 했다.
이 부분에서 그녀가 떠오른다. 영혼을 맑게 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이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사람이 늘 그 모습, 그 마음을 갖기는 어렵다. 배려하고 나누고 용서하고.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진정 사람과 이야기한다는 느낌이 들면서 온기가 퍼진다. 만나고 돌아올 때면 마음에 빛이 난다. 단지 그녀와 내 근무 시간이 달라서 자주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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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일까? 메시지일까?


“여러분은 에너지를 어디에서 얻으세요? 저는 아이들인데…. 잠시 생각해 보고, 세 가지만 적어볼래요?”
가정폭력상담사 교육 중에 강사가 한 말이다.
내 옆에 앉은 선생님이 남편과 카톡으로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다. 자신의 생각은 접고 남편의 생각이 궁금했나 보다. ‘당신은 에너지 얻는 방법 세 가지가 뭐라고 생각해?’라고 보냈더니 ‘태양열, 풍력, 조력’이라고 보내왔다. 킥킥킥. 내용을 급하게 읽었나 보다. ‘당신은 하루 종일 일하면 힘들지 않아? 그 힘든 마음을 풀 곳이 있을 거 아냐? 그 지친 마음과 몸에 에너지를 주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상세하게 풀어서 보내니 그때야 ‘당연히 당신과 아이들이지.’라는 메시지가 왔다.
순간, ‘이십 년을 함께 살아서 얼굴 표정,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알 것 같은 사람도 자세히 표현하지 않으면 소통이 안 되는구나.’ 그런데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하는 사람들과 동아리라는 이름으로 만나서 소통이 원활하길 바라는 마음은 욕심이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점점 사람들과 만남도 줄이고 통화도 줄이고, 카톡을 통해 대부분 안부를 주고받았다. 학생들과도 마찬가지다. 수업 중에 전화는 받지 않아도 메시지 남겨 놓으면 간단하게 보낸다. 수업 중에 이모티콘도 없이 필요한 단어만 보냈더니 9년 동안 인연을 이어온 고3 아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선생님께 카톡 보내려면 몇 번씩 망설여요.”
‘응’, ‘늦지마’, ‘숙제해 와’, ‘보충 못 잡아’, ‘몇 문제 틀렸니’ 등 이렇게 간단간단하게 보내는 메시지 때문에 일이 생기고 아파도 문자 못 보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에게 부탁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내 문자를 받은 사람들이 불편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 후, 단체 문자를 보낼 때는 어쩔 수 없지만, 개개인에 관한 것들은 전화한다. 내 시간을 조금 더 빼앗기지만 문자보다는 좋은 점이 있다. 잠깐의 통화로 어머니가 걱정하는 것이나 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랫동안 대부분의 어머니들과 소통하지 않았다. 문자로 ‘책 잘 읽고 있어요. 어휘 숙제 안 했어요.’ 이런 문자를 받은 어머니들은 기분이 묘했겠다.
큰아들이 일곱 살 때가 떠오른다. 아들이 문방구 앞 미니 게임기에서 게임을 하고 어두워서 들어왔다. 아이를 혼내고 싶지 않아, 문밖으로 밀어내며 집에 들어오지 말고 게임이나 하라고 했다. 그때 내 마음은 조금만 있다 들어와 주길 바랐는데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기에 찾아 나서니 놀이터에 대자로 누워 있었다. 집으로 가자고 하니까 고아원에 가겠다고 했다. 기가 차서 그냥 서 있었더니 아이는 버스 타고 가야 하니 돈을 달라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데리고 왔다.
며칠 후, 아이는 물었다.
“엄마는 소중한 것이 있으면 어떻게 해.”
“어떻게 하긴, 꼭 잡아야지.”
“그런데, 엄마는 내가 소중하다고 말하면서 왜 내쫓은 거야.”
아차,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구나. 마음을 알 것이라고 생각한 내가 잘못이구나. 그 후, 어떠한 일에도 아이에게 회초리를 들지 않았고, 쫓아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화가 나면 내가 집을 나와서 공원 한 바퀴씩 돌고 들어갔다. 말을 하지 않으면 몇십 년을 함께 사는 가족도 모른다는 것을. 그래서 가족에게는 그때그때 말한다. 감정이 흐르고 있는 가족 사이에서도 말을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데, 문자 메시지나 카톡의 간단한 내용으로는 마음이 잘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읽는 사람 상황과 마음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다. 가족과 타인과는 다르게 소통하며 산 어리석음을 요즘 깨닫는다. 진정으로 소통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메시지로 안 되는 거다. 정감 어린 목소리를 통해 정성을 보여야 한다.
대화는 단순히 말이 아니다. 용건이 있어 말할 때도 상대의 상황을 먼저 묻는다. 그리고 상대가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면 용건을 말하지 않기도 한다. 대화는 상황에 따른 분위기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 문자는 일방적이라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요즘은 이어폰을 꽂고 전화를 한다.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
전선을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는 마음까지 전해오는 것 같아서 오래까지 여운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