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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2018년 [시] 개 짖는 소리 외 4편 / 장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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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882회 작성일 18-12-30 17:20

본문

낙관과 비관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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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짖는 소리


산사에 홀로 있으면
개 짖는 소리가 그리울 때가 있다
불 꺼진 작은 마을에서
들려오는 컹컹 개 짖는 소리
누군가 밤마실을 다녀가고 다녀오는
정적을 깨는 소리


외로운 이들은 안다
한 개가 짖으면 다시 한 개가 짖어
외로운 사람끼리 전류가 흐른다는 것을
그리하여 어둔 밤도
불 켜진 방처럼 환해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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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표 팬티


시골 옷가게 마네킹에
흘러내릴 듯한 꽃무늬 팬티
몇 년째 팔리지 않고
색깔만 바래간다
사람의 손은 닿지 않고
햇살이 질펀히 놀다 가고
별빛이 밤새워 주물렀다


이웃집 빨랫줄에 걸린
알록달록 노처녀 팬티
봄바람이 살랑살랑
여기저기 꽃망울 터뜨리자
시집 보내 달라고
앙탈 부리는 목련표 팬티
사랑받지 못하는 팬티는
팬티가 아닌가 보다
봄바람은 다시 재촉을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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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청 지역 라디오


산골 외딴집에는
라디오도 외로운지
구애를 한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면
볼륨이 점점 높아지고
내가 잠시 떨어지면
볼륨도 점차 낮아진다
이 산골에는 제어할 수 없는
사랑의 힘이 있나 보다


산새들도
라디오 소리에 취해
지저귀고
사슴들도
뿔을 안테나처럼 세우고
라디오 소리에 맞춰
뛰어다닌다


산속에 사는
우리 모두 외로워서
사랑을 주어야
제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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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총각 계추모임


읍내 여자란 여자는
씨가 말랐어도
노총각들 계추모임엔
어디선가 하나씩 데리고 온다
인근 시 지역까지 원정 가서
과부 이혼녀 다방 여자 불륜녀까지
하나씩 꿰차고 온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읍내 노처녀 달자다
얼굴에 참깨자국이 오돌도톨한
달자가
다방 여자 빰치는 건
매번 사내를 갈아치우는
선수라는 거다
달자는 자기가 수선화라도
된다고 하는데
우리는 여우 몇 마리가
그 속에 들어가 있는
야생화라고 부른다
어쩌다 달자가 눈물 흘릴 땐
우리도 읍내 생활이 뭔가 서글퍼서
흘러간 옛노래로 마음을 삭이는데
그런 밤이면 길고양이도 암수 싸제껴
교대로 갸르렁거린다
그렇게 또 읍내의 밤꽃 내음 퍼지는
하룻밤이 저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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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시(反詩)


시집이 안 팔린다고 아비규환이다
그럼 텔레비전에 광고를 내야 한다
광고비는 우호적인 시민의
불우시인돕기 성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검은 상복을 입고
엿가위로 쩔렁쩔렁 거리며
가마솥을 걸어 놓는 거다
광고는 멜로드라마 막간에
우아하게 커피와 차를 마시는
절세 미녀 탤런트 대신
돌아가신 노시인의 막걸리 마시는
풍경을 내보이는 거다
그리고 당신의 영혼은 안녕하십니까로
시작해서
당신의 영혼을 구해줍니다로 끝마친다
시를 읽으면 포만감이 느껴져
다이어트에 좋다고 하고
시를 읽다 보면 금방 잠이 와
불면증에도 효과가 있으며
배낭에 시집을 넣고 산에 가면
급할 때 휴지 대용으로 쓸 수 있다고
이구동성이다
찬란한 시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