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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2018년 [시] 달의 연못 외 9편 / 김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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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731회 작성일 18-12-30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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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 밭에 진눈개비처럼 횡설수설 가을비 내리는 저녁
밀린 숙제를 제출하는 마음이 촉촉해 진다.


酒不醉人人自醉
色不迷人人自迷


百忍達觀如峨山
喜聞子兒讀書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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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연못


달의 연못
오므린 龜燭


파란 동구리에 꽃게의 거품으로
별을 바라보듯 수련이 피었습니다.


구름 섶 귀뚜라미
바람을 호호 불어다 댑니다.


생밤 까며 노닐던 처녀의
하혈이 두근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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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갈이 배추밭


광활한 운무 속
영. 평. 정. 태백의 비탈밭
고랭지에선
칼자갈도 흙이다.


수백 명의 일용직 이국 아낙들이
돌무지를 요리조리 돌려놓으며
모종을 붙인다.


달구어진 석회암 비늘들이
눈물을 토해내는 밤이면
白露를 돌려 마시며
잔치를 벌인다.


똥구멍 째지게 가난한 농부도
올해는 졸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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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북부선


철로를 뜯어 빼돌린 건 퇴역 장교다.
모르는 일이다. 아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침목 있던 자리 게딱지 집을 짓고
위안소 기둥서방과
유두주 계곡주 나누던
금호동은 잘 잤느냐?


소 힘줄보다 강한 해당화는
기적소리가 그립다.


팽개쳐진 고도
아바이 마을의 설움은
가자미 젓갈로 곰삭았으므로
북행 열차를
탈 수 없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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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 없는 자식


애비 없는 자식을 키우는 어미는 죄인이었다.
귓속말에 음절마다 경악하며 살다 가셨다.


군함도 막장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동란에 다시 인민군으로 징용되어 모진 매질 끝에 돌아와
화전을 일구며 소 떼를 몰았으나
말기 폐암으로 서울대 의대에서 쫓겨났다.


가난은 태양처럼 떠오르고
터진 종아리에는 밤마다 된장떡이 발라졌다.
미제 페니실린을 쌀 두 말과 바꾸고
황옥 나물죽이 내장에서 서걱거렸다.


오 남매는 청계천 다락방 시다로 공돌이로 흩어져
몸으로 때우는 대물림 끊으려
아파트 한 채 장만하지 못하고
산동네 파먹으며 해마다 이사 다니던
동생이 재개발 사기극에 울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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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달의 반쪽이 차오른
두 눈과 치아가
백옥처럼 빛난다.


우현이 비틀어지는 소리를 치유하면서
대양 깊게 무지개 걸치고
초대된 검은 피부의 수장들
잔을 들어 부딪친다.


시황제 가라사대
굴기의 완성은
삼성의 반도체 하나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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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당


바라다보이는 의식의 촉수로
아무 데서나 까대고 싸대는 일은
동풍에 애실 떨어지면
초당 만 못하다.


사람의 집들은 껍질일 뿐이다.
속정이 사람다워야 고향이다.


한가위 별자리를 보려
사치스러운 가로등
스위치를 내린다.

이웃이 아름다워야
명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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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태의 춤


더듬이 세우고
까치발로 곤두박질하는
일탈의 함성이 들린다.


나무들이 演算을 즐기며
활강을 서두른다.


내장 사이로 숭숭 뚫린
뼈들의 세탁소


심장의 주인은
어디 있나요?


수마의 공극 속에서
목탁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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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


개장수 확성기가 지나가면
우- 우우— 우우응---
온 동네 개들이 야유한다.


개고기 맛있다. 물리지 않는다.
보리밥에 열무김치 말아 먹으면
환상의 궁합이다.


penis bone이 선물로 등장한다.
소주 한잔에 오도독 물렁뼈 한 점
와작와작 씹으며 추렴을 한다.


암캐 거시기는 도려내어 내동댕이치지만
쌍방울도 ##로 썰어 골고루 나눈다.


버덩의 성정이 상서롭다.
개×같은 정사를 위하여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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斜山人伏


곧추세운 암자를 향해
오체투지면 뭐하나?


茶로 망한 라싸의
말발굽 소리


룽따 앞에서
망혼으로 날리는 모래바람이여!
동충하초 채취의 노예여!
순례는 해탈의 수단이 될 수
없다.


달라이라마의 비폭력은
티베트 여인을 슬프게 한다.


탈무드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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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감을 품다


생명률의 숲에 들다.
잃어버린 신발을 찾아
떠나온 길에 나무를 심은
천상의 시선인지라


시인은 궁전이다.
강문의 해일을 지켜낸
폭포처럼 솟구치는


천진난만의 질문가다.
가곡을 부르며 춤추던 가인은


단감이 차다.
꽃단장하고 대숲을 가로질러
홀연 떠나버린
감잎 푸른 정원에
얼굴을 내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