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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2019년 [수필] 우리 동네 / 이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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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714회 작성일 19-12-2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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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 속초시 수협 동명활어센터
전망 좋은 모텔들과 횟집들을 지나면 자연산 회만 취급하는 회 센터가 나온다. 회 센터 2층은 수협에서 직접 운영한다. 1층에서 썰어 온 회나 쪄온 게를 먹고 매운탕과 밥, 물회 양념, 술과 음료를 파는 곳이다. 횟감을 직접 골라 썰어주는 곳에다 맡기는데 주의할 점은 회 써는 값과 초장, 와사비(고추냉이), 상추와 마늘, 고추 등은 따로 값을 치러야 한다. 횟감의 양에 따라 비용이 달라지는데 정확하진 않지만 회를 썰어주는 비용만 1kg에 1,000원 정도로 기억한다. 이런 시스템은 다른 활어 회 센터도 비슷하다. 모르고 가면 금액에 상관없이 기분이 나쁠 수도 있지만 알고 가면 큰 부담은 되지 않는다. 나는 물회를 여기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안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자연산 횟감으로 말아 낸 물회라니…. 물회만 먹으면 매상이 안 올라 눈치를 봐야 하니 바구니에 담겨 오는 회와 물회를 적절히 섞어 팔아주는 센스가 필요하다.
해돋이 정자 아래로 보이는 바다와 발아래서 바위에 닿아 철썩이는 파도 소리도 괜찮다. 1월 1일에는 들어 설 자리가 없을지도 모르니 주의하시라.
두 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날씨 좋은 일요일 아침이면 밥과 밑반찬, 상추와 초장, 돗자리를 준비한다. 그때는 천막으로 장사를 하던 이곳에서 회를 떠와서 온 가족이 둘러앉아 즐겁게 아침을 먹던 추억이 있다.
이곳의 상차림은 전채 요리가 없고 오로지 회와 매운탕, 젓가락이 가지 않는 두어 개의 밑반찬이 전부다. 그러나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회를 대접해야 할 손님이 오면 나는 이곳을 이용한다. 특별한 미각을 소유한 것도 아니고 가격을 생각해서도 아니다. 단지 회를 즐기기 위해서이다.
횟집에서 회를 손질하는 시간에 먼저 차려지는, 흔히 스끼다시라고 부르는 앞 상을 받으면 그 먹음직스러움에 이내 배가 부르다. 회를 맛있게 먹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매운탕은 아예 한 숟갈도 뜨지 못하고 나올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제 두 아들도 아이들 키우면서 직장 다니느라 여념이 없다. 나는 나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바쁘다. 누군가가 그리워도 이런저런 일들로 다들 만나기가 쉽지 않다. 삶이 팍팍해서 온전하게 만나기가 어려운 건지도 모르겠다. 온전한 만남을 설명하라고 하면 못한다. 그냥 그런 기분의 표현이다.
회 센터 바로 옆 계단을 오르면 수평선이 좍 펼쳐지는 긴 뚝방(방파제)이 있다. 낚시하는 사람, 낚시로 잡은 물고기를 구경하는 사람, 먼 바다를 보는 사람, 바닷속을 들여다보는 사람, 단체로 어울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다. 그 옆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서로 포즈를 잡아주며 웃고 있는 연인들 모습이 참 예쁘다.


◎ 명물
유료 주차장으로 들어가기 전 주차 공간이 보이면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주차를 해도 되지만, 주차비가 비싸지 않으므로 큰 부담 갖지않고 주차장으로 들어가서 차를 세우면 안전하다.
주차장에서 회 센터로 들어가기 바로 전 입구에서 연세가 많은 할머니 해녀 두 분이 직접 잡은 해산물을 파는 자리가 있다. 물질로 잡은 해산물을 뚝방 뒤에 마련된 보관 장소에 모았다가 주말에 나와서 파는 것이다. 바다에 나가면 바다와 육지의 경계를 이루는 거대한 콘크리트 더미 같은 벽(방파제)이 많은데 나는 그것을 그냥 바다뚝방이라 부른다.
어떤 날은 성게를 팔고 멍게와 전복, 조개 등을 파는데 바로 앞에서 시야를 가리고 서 있는 걸 조심해야 한다.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욕을 옴팡지게 얻어먹을 수 있다. 제주도 욕이리라 짐작만 한다. 얼마 전에 알아낸 일이지만 할머니들의 고향은 제주도라고 한다. 젊은 시절 제주도에서 물질을 하던 해녀가 속초 앞바다로 일터를 바꾼 것이다. 할머니에게서 해산물을 살 때도 마찬가지다. 성게나 조개, 홍합을 깔 때 한쪽으로 살짝 비켜서서 기다려야 한다. 급한 것이 없는 할머니의 페이스대로 작업해도 절대 토를 달면 안 된다. 밤송이 같은 성게를 손으로 잡아 끝이 뾰족하고 나무 손잡이가 달린 작은 칼로 두 쪽으로 가른 후, 역시 작은 숟가락으로 알맹이를 파낸다. 서두르는 법이 없다. 한없이 부드럽고 말랑해서 입에 닿으면 녹아내리는 고소한 바다 조각을 다치지 않게 노랗게 파내는 것이다. 안경도 없이 이물질을 잘도 골라낸다.
나는 이 두 분 중 연세도 많아 보이고 욕도 잘하시는, 그러나 목소리는 크지 않은 한 분을 영금정의 명물로 추천하고 싶다. 옆자리의 할머니가 후딱 팔아 치우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도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다. 기다리는 손님에게 담아 줄 알맞은 크기의 통을 찾을 때도, 낡은 시장바구니 속을 뒤져 재활용을 하는 것 같은 쭈글쭈글 주름진 비닐봉지를 찾아낼 때도 느림은 한결같다.
이 내용을 보시면 할머니가 내게 조금 큰 소리로 욕을 하실 것 같다.
‘아 이 어멍이 시간 도라짱!’ - 이 여자가 시간이 남아 미쳤나!


◎ 장천마을
“언니 장천마을에 관한 이야기 좀 해주세요.”
“음….”
“그럼 자랑거리 찾아봐요.”
“우리 동네는 노인들이 많지.”
“도서관이 많네요.”
“그리고 정이 많아.”
“그건 당연하죠.”
“아니, 노인정이 많다구.”
“하하….”
영랑호로 흘러드는 장천천 상류가 마을 앞을 지나고 장천천 양쪽으로 논밭이 많은 곳이 장천마을이다. 고속도로 속초 IC와 연결되고 미시령을 넘는 미시로 초입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가 나온다.
미끄럼을 타는 것처럼 쑥 내려가면 눈앞이 훤해지며 논과 밭들 뒤편으로 아담한 마을이 나타난다. 이 마을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농사를 많이 짓는다. 개발의 몸살을 드세게 앓고 있는 속초시에서 몇 곳 남지 않은,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그러다 보니 인심도 넉넉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정취가 남아 있다.
2002년 8월 30일 전국을 강타한 태풍 ‘루사’로 강원 영동의 많은 지역이 초토화가 된 일이 있었다. 그때 장천마을의 논과 밭이 모두 물에 잠기고 쓸려 내려가는 아픔을 겪었다. 인근 군부대에서 나온 장병들이 힘을 합쳐 두 달이 넘게 고생한 끝에 간신히 복구가 되었지만 농사는 다음 해가 되어서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당시 현장에서 지휘하던 책임자가 남편이었다. 그런 인연으로 마을 어르신들은 아직도 그때의 일을 잊지 않으시고 손을 잡으며 반겨 준다.
고령 인구가 많은 것은 시골이나 도시나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독거노인이라고 불리며 혼자 쓸쓸히 살아가는 도시의 노인들과 공동체 의식이 살아 있는 시골의 노인들과는 주변 환경이 다르다. 어느 집 어느 날에 몇 대 조상의 제사가 있고 남아 있는 숟가락 수가 몇 개나 되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이 정이다. 예전과 같지 않은 인심이라고는 하지만 도시 한복판에 있는 사람들과는 차이가 난다.
살림살이도 넉넉한 마을이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 했는데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과의 김장 나눔 행사에 해마다 이 마을 분이 농사지은 배추 몇백 포기를 무료로 주셔서 고맙게 받아 쓴다.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가 생기면 상차림이나 사람들의 일하는 모습이 우리 집 주위에서 보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다. 서로가 온전히 한마을 사람들이니 스스럼이 없고 편해 보인다. 마을 식구라도 된 양 함께 어울리다 보면 이것저것 배불리 먹은 후 돌아가라고 살뜰하게 챙겨 주신다.


※잔인한 4월
우리 지역의 4월은 양간지풍(강원도 양양과 간성 사이의 바람)이 온다.
초속 30m 가까운 강풍이 사흘째 몰아치던 2019년 4월 5일 저녁, 강원도 고성의 전봇대에서 발화된 불꽃이 산불로 번졌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한전 측의 관리부실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있다. 이 불로 속초와 고성의 산림과 주택, 점포들이 소실되고 사망자까지 나왔다. 장천마을을 비롯한 우리 동네도 많은 곳들이 불에 타서 훼손되고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들도 있다. 이재민들은 뿔뿔이 흩어져 시내의 아파트나 연수원, 리조트 등 임시거처에 몸을 의탁하고 있다. 전국에서 답지하는 성금과 구호품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삶의 터전을 잃고 언제 마을로 돌아갈지 기약 없는 나날이다. 그동안 많은 산불을 견딘 이력이 있지만 참혹한 현장이 아프다. 잔인한 4월, 두 손 모은다!


◎ 장사항
영랑호와 바다가 만나는 곳을 가로질러 다리가 놓여 있다. 다리를 건너면 바로 오른쪽에 회 센터 간판이 나오는데 우회전해서 바다 쪽으로 돌면 횟집들이 나온다.
바다와 횟집 사이 도로를 가다 보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줄인 ‘우소통’ 회 센터가 있다. 아무리 자연산이라도 앞에서 말한 영금정 회 센터가 너무 복잡하고 시끄럽다면 이곳도 괜찮다. 규모가 아담해서 사람들이 들어차도 크게 시끄럽지 않고 전 좌석에서 바다를 보면서 회를 즐길 수 있다. 어촌계 회원들이 직접 운영하니 값도 비싸지 않다. 인심 좋은 주인을 만나면 자연산 미역도 얹어주고 해삼이나 멍게가 서비스로 나올 수도 있다.
회 센터 앞으로 주차장으로 쓰는 너른 공터가 있다. 여름이면 ‘오징어맨손잡기축제’가 열리는 마당도 붙어 있다. 뒤쪽은 역시 바다 가운데를 걷는 뚝방 길이다. 뚝방의 북쪽은 모래사장과 바위가 함께 있어 경치가 좋다. 여름이면 동네 사람들이 나와 텐트를 치고 음식 추렴도 하며 더위와 함께 논다.
바로 옆에 있는 산 아래는 정식 양식장은 아니지만 어린 전복을 뿌려놓은 곳이라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해서 물도 깨끗하다. 텐트를 챙겨 오면 이곳의 자연을 무료로 즐기며 쉴 수 있다.
오징어맨손잡기축제는 장사항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요즘은 같은 축제가 이곳저곳에서 열린다. 나는 대한민국 축제에 선점을 인정해줘서 똑같은 이름이나 내용의 축제를 방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제도가 이미 있다면 여러분께서 알려주길 바란다) 전국 어디에서도 같은 이름이나 같은 내용의 축제가 없이 각각의 특징만으로 채워지는 축제라면 규모와는 상관없이 가볼 만하지 않은가?
이곳 장사항에서는 해맞이 손님을 위해 해마다 맛있는 떡국을 준비한다. 아쉽게도 식당 문을 일찍 열어서 올해는 못 먹었다. 해맞이가 끝나면 원하는 사람들은 어선을 태워 가까운 바다를 한 바퀴 돌고 들어오는 서비스도 있었는데 요즘은 없어졌는지 모르겠다. 물론 모두 무료다.
식당을 열기 전 낚시에 빠져서 거의 매일 물고기들을 한 바구니씩 건져 가던 곳이 바로 이 바닷가다. 꿈틀꿈틀 지렁이를 낚싯바늘에 끼우는 일도 거리낌이 없었던 그때, 비가 오면 바닷가 구멍가게에서 친구와 눈을 맞추며 컵라면을 먹던 곳. 이제는 그때처럼 물고기가 많이 나오지 않는다. 미역이나 다시마가 파도에 밀려 올라오면 건져 말려서 미역국도 끓여 먹고 튀각도 튀겨 먹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완벽한 자연산이었다.
낚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잡히는 순간 손맛으로 즐긴다. 우리도 그랬다. 생선 손질이 어렵고 서툴러 직접 잡은 고기를 내가 손질해서 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기도 하지만 남은 생선이 냉동실로 들어가면 언제 먹을지 기약이 없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바닷가에서 먹고 들어가는 것이다. 바구니가 찰 때를 맞춰 동네 친구들이 초장과 도마, 칼을 챙겨 바닷가로 나온다. 그 자리에서 회를 떠서 나눠 먹으면 바구니가 홀가분해진다. 술을 좋아하는 친구가 끼면 소주도 한 잔 곁들인다.
바다의 지형도 많이 바뀌어 메워진 만큼 모래사장도 깎여 없어지고 콘크리트 벽이 세워진다. 벽 아래는 삼발이(tetrapod)라고 부르는 콘크리트 구조물을 이중삼중으로 쌓아 올린다.
38선 이북인 속초나 고성 바닷가에는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었다. 남북 분단의 상징 중 하나였던 철조망이 걷히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해변을 이용하게 되자 놀던 자리에 쓰레기를 두고 간다. 파도가 치는 날은 가까운 바다 위를 떠다니던 쓰레기도 함께 올라온다. 모래사장을 점령한 비닐과 술병 등 갖가지 쓰레기들이 미처 치울 겨를도 없이 파도에 쓸려 바다로 다시 들어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오염되는 바다의 면적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거대 담론은 접어두더라도 그 피해가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오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바다가 아니었다면 가난하고 허기졌던 내 젊은 날을 속초에서 온전히 보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삶이 황량해져서 길을 잃거나 마음이 들끓어 어쩌지 못할 때 바다로 달려 나갔다. 그 곁에 앉아 마음을 모두 꺼내 펼쳐놓는다. 더는 갈 데 없어 바위를 들이받고 있던 파도가 철썩철썩 말을 걸어온다. 동해바다가 오롯이 내 벗이 되어 주는 순간이다.
바다를 다시 찾을 때 그 모습 그대로 있어 주기를 바란다면 우리들 작은 실천이라도 보태자. 쓰레기를 모래밭에 버리는 일 따위는 하지 말자.
바다를 좋아하는 그대들, 진정 좋아한다면 함께 바다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