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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2019년 [시] 천일홍 꽃에 바치는 詩 외 4편 / 이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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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1,338회 작성일 19-12-3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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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이 풀린다는 의미를 당해보니

아 이런 의미구나 실감케 했다.


시가 도무지 세워지지 않아

곤혹스럽기도 했다.

내가 시인이었던가 싶은 자괴감에다

노년의 무기력함까지 더해 그러했다.

그래도

<갈뵈>는 동지해(?)로 몇 편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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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홍 꽃에 바치는 詩



대문 기둥 밑 콘크리트 아스콘 바른 틈서리로
씨앗 한 톨 움터 쑥쑥 자라
붉은 꽃송이 가득 매달고
올망졸망 피어 어찌나 기특던지
오가며 눈으로 쓰다듬었다
이름값 한다더니 석달 실히 피었다 싶은
천 일 홍!
사람씨나 풀씨나 제 식솔 늘이려
안간힘 다해 바락바락 용을 쓰는
본능적 강인함 어찌나 기특던지
저 하잘것없는 풀씨 한 톨
나름 한 생을 꽃피웠으니
그대 한 살이도 갸륵했다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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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한 모의 유추



새벽 시장에서 두부 한 모 더 사
대문 밑으로 밀어넣고 오고 싶은
그 마음 건너와
채송화 꽃이 피었다


이쁘기도 해라
벼게모에 수놓인 꽃들이
피어올라 꽃 세상일 적에
이런 호사 몇 겁의 인연이었을까를


살면서 받은 위안 흘리며 지낸 일
뒤적여 뉘우치는 노년의 한가가
법구경 같기도 한 이런 무욕을


마음이 건너와 양식이 되는 이치를
골똘히 궁리하다
그만 나도
꽃으로 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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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국에 대한 한 소절



1980년대 중반쯤 강릉명륜고등학교 학생백일장
심사로 오신 조병화 선생님과 안목 죽도봉을
돌아가다 바위틈에 늘어져 핀 보랏빛 꽃을 가리키며
꽃이름을 물으셨고 동행한 시인 아무도
모른다 대답드렸더니
그 고장에 사는 시인은 그 고장
꽃 이름은 알고 있어야 한다셨고
나는 그 말씀에 적잖이 무안했었다


까마득 잊고 있던 그 얼마 후 어느 식품회사
홍보지 뒷 표지에 환하게 핀 그 꽃 해국!
울릉도가 원산지라는 해설까지
소상히 알게 되었다
바람에 실려온 꽃씨가 여기 동해 바닷가
바위틈에 뿌리내리고 일가를 이룬
해마다 꽃피워 세상을 밝혀 놓는
맑은 보랏빛 해국만 보면 고인이 되신
시인 한 분 맞는 듯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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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금동대향로를 친견하다



백제고도 부여박물관에서
동아시아 금속공예 최고 걸작품
국보 287호 백제금동대향로를 친견하는
깊은 인연을 합장으로 받는다
세상의 숨결이 멎는 듯 싶은 오묘한 솜씨며
백제 예술혼의 극치를 여실히 증거한 듯 싶은
향로의 향내음이 은은히 퍼지는 환상이며
천상의 기품이지 싶은 착각에 빠져들게 하는
이 당당한 경지의 향로는 무진한 이야기를
연상케 하는 장강의 흐름 같은
십이지간 만백성을 동참시킨 장인의 심성하며
대서사시를 줄줄이 풀어내는 두루마리 같은
백제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거룩하기도 한 예의 극치를 정중히 모신 장중함이
절로 감탄사를 불러들이는 백제금동대향로를
친견하는 내내 무명옷의 선한 백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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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프다



詩로 쓰려 벼르던 게
무엇이었던가 도무지 모르겠는
이 참담한 노년의 나를 두고
당연한 수순이라 위로해도 서글프다
며칠을 고심하다 그도 버리고
영혼이 가출한 폐인처럼
시인은 무슨 시인 놀~고 있네
내가 나를 못믿겠는 세월을 사는
나는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밥만 축내는 식충이지 싶은
자괴감으로 실실 웃음을 흘리다
그도 까마득 흘리고 아닌보살인척
해도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