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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2019년 [추모특집] 故 윤홍렬 선생 작품 「야전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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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564회 작성일 19-12-3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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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용



윤 홍 렬


이 지방 개인 업체에서 공급하는 전기가 끔벅거린다. 그렇다면 밤 한 시다.
송달현은 준비 돼 있는 양초에 불을 붙였다. 문을 닫은 지도 한참 되었고 솥 가시는 소리도 그쳤다.
남녀 종업원들― 식모 둘, 홀에서 심부름하는 남자 아이 한 명, 여자 아이 셋―들의 댕갈거리는 소리도 콧노래도 안 들린다. 모두 잠자리에 들었나보다. 아내는 아직 방엘 들어오지 않았지만 송달현은 아내가 방에 있고 없고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담배만 뻐끔거리며 집안이 고요해지기를 기다리느라 홀과 부엌 쪽에 신경을 쓰다가 이제는 되었다는 듯이 타는 담배 끝을 재떨이 갓에 대고 눌러, 타던 부분만 살짝 떨어내어서는 꽁초 끝을 훅 불어 불티가 완전히 꺼졌음을 확인하고서 재떨이 구석에 단정히 놓는다.
사과 상자만한 돈 궤짝의 뚜껑을 연다. 별로 무겁지도 않은 것을 두 손으로 정중히 들어 방바닥에 조용히 놓는다. 돈이 수북이 담겨 있다. 그리고는 단정히 고쳐 앉아 돈 궤짝에 대고 합장 배례를 한다.
‘금고님. 오늘도 많은 돈이 들어올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신 점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고 옆에 누가 있을지라도 알아듣기 어려웠을 정도로 웅얼거렸다. 이것은 송달현이 이 음식점을 시작하고서부터 생긴 신앙적인 습관이었다. 송달현은 두 손으로 돈 궤짝에서 돈을 뭉턱뭉턱 움켜 낸다. 돈 궤짝에는 칸막이가 있어서 큰돈과 작은 돈은 구분이 되어 있었다.
방바닥에 수북이 쌓여 있는 큰돈 작은 돈 더미를 보며 송달현은 히죽이 웃었다. 지폐 한 장 한 장이 살아서 춤을 추는 듯 했다. 천 환짜리 지폐의 세종대왕 모습도 백 환짜리 지폐의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화도 싱글벙글거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송달현의 계획이 착착 맞아 들어가는데 대한 기쁨과 그 계획이 곧 실현되리라는 흐뭇함에서 오는 희열에서였다. 마음과 같아서는 돈을 하늘 높이 훌훌 뿌리며 춤을 추고 싶었다. 겨울 하늘에 함박눈 내리듯 하고 싶었다. 그 밑에서 춤을 출 때 머리 위에 어깨 위에 돈 더미가 쌓이게 하고 싶었다. 이렇게 돈이 흔할 줄은 아니 이렇게 돈 벌기가 쉬울 줄은 그야말로 예상 밖이었다.
밤은 깊었는데…. 내일 새벽 아니 오늘 새벽이 곧 시작될 판이고 그러노라면 빨리 돈을 정리하여 넣고 한잠을 자야 한다. 송달현은 같은 액면의 지폐를 백 장씩 묶기 시작했다.
신 끄는 소리가 나더니 미닫이가 열리며 아내가 들어왔다. 좋게 평하자면 항상 씩씩하고 부지런한 여자요, 반대로 평하자면 수선스러운 말괄량이였다. 무슨 일이든지 종업원에게 시켰다가 뜻에 맞지 않으면 군말 없이 자신이 처리하여 버리곤 하였다. 무슨 일이든지 신속하고 여물게 처리하였다. 손님을 응대하는데도 신선한 여자라고 평이 나 있었다. 이 ‘전우식당’엘 드나드는 손님들은 대부분이 군인들이었다. 민간인이 간혹 있기는 있으나 그들도 국군과 미군부대에 무엇으론가 관계하는 사람들이었다. 문관 군속 또는 군수물자를 유출시키는 소개꾼, 구두닦이 소년들, 몸을 파는 매춘부들 등이었다. 그러니 이 전우식당엘 드나드는 손님들은 대개가 젊은이들이었다. 어쩌다가 이곳에 주둔한 부대에 소속된 아들을 만나러 오는 부모들이 나이 먹은 손님일 정도다. 그런데 그 손님들에게서 ‘서근서근하고 좋은 아줌마’라는 평을 받는 아내를 송달현은 ‘야전용’이라고 생각하여 왔다. 왜 그런가 하니 자신의 가문으로 본다면 ‘이런 여자’를 아내로 데리고 살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송달현의 증조부가 고향 고을에서 이방을 지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송달현 집은 고향에서 ‘이방댁’으로 불러 오다가 8. 15 해방을 전후하여 그 택호가 사라져 버리긴 했다. 그러나 송달현은 자신의 가문이 굉장한 양반집으로 자처하고 있었다. 이방을 지냈다는 증조할아버지가 장만해 놓은 농터가 오붓하게 있어서 8. 15전에 서울에 가서 삼 년제 중학을 마쳤다. 그 당시는 비록 을종 삼 년제 중학이었지만 송달현의 해석으로는 오늘날의 웬만한 대학출신들보다는 자신의 학력이 충실하다고 믿고 있었다. 키가 좀 작고 조그마한 얼굴이 검기는 하지만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송달현의 광대뼈가 나오고 눈꼬리가 찢어진 게 암상궂게 생겼다고 하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그것은 담차고 재치 있음을 나타내는 남자다운 용모라고 굳게 자부하였고 또한 자신을 암상스럽다고 평한 자들은 인물을 볼 줄 모르는 무식한 견해라고 굳게 믿어 왔다. 거제도 피난민 수용소에서 체력이 약하여 노동은 못하고 막연하나마 남한 어딘가에 있을 처남을 기다리며 고향사람들 덕분으로 놀고먹으며 빈둥거리고 있었을 때 헌 신문 쪼가리들을 읽고 나서는 낮에는 부녀자들에게 밤에는 노 장년들에게 국군의 전과가 어떻고 맥아더사령부의 작전방침이 어떻다든가 때로는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가능성의 여부 등을 구수하게 엮어대었다. 그 내용의 대부분이 보도된 내용에 송달현의 추측이 많이 보태어진 것도 사실이다. 이래서 언변 좋은 사람이라는 칭호가 붙었었다. 또 하나 요즘의 대학 출신들보다 학력이 낫다고 자부하는 것은 오로지 한문의 독해력을 가지고 하는 생각이었다.
이것은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자부심이다. 그의 아버지 성화에 한문 공부는 좀 하였다. 서울에서 중학과정을 마치고 고향에 가 빈둥거릴 때 아버지께 한문을 좀 배웠는데 그것도 경서에 까지는 미치지 못하였고 통감을 떼고 소학을 끄적거리다 그쳤다. 그러나 부산의 거리에서나 서울의 거리에서 부딪쳐 본 대학생들의 한문 실력이 예상외로 미약한대서 얻은 새로운 자부심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일상생활의 범위에서는 한자로 인한 불편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그의 주변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고 또 고향에서 면사무소 호적계 서기를 지낸 바 있듯이 필력도 괜찮았다. 그의 생긴 용모와는 판이하게 글씨 또한 누구나 수긍이 갈 정도로 시원스레 쓰는 정도였다.
그런데 한 가지 통탄스러운 것이 있다. 영어를 모르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의 영어 실력에는 감탄할 정도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송달현 자신도 비록 삼 년제 중학을 다니었지만 구색은 맞춰서 배운 덕으로 영어를 배우긴 배웠는데 면서기 생활 십여 년에 그 알량한 영어 실력이 남아 있을 리가 없다.
‘내가 영어만 한문만큼 통달했다면 전 세계를 쥐고 흔들 텐데….’
정말 분한 일이라고 탄식을 하였다. 그래서 영어공부를 하겠다고 설쳐보았는데 우선은 머리에 제대로 들어박히질 않는데다가 콘사이스 한 권 조차도 살 돈도 없고 하여 이래저래 영어공부는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세계를 쥐고 흔들 큰 야심도 포기하고 말았다.
거듭거듭 통분한 일이라고 생각하였지만 별수 없다고 체념하였다.
뻗어가는 칡도 한이 있다더니 송달현의 눈칫밥 신세를 면할 수 있는 구원의 손길이 뻗쳐 왔던 것이다. 처남을 만난 것이다. 육군 중령으로 일선 공병대의 대대장이라고 하였다. 송달현의 아내와 처남의 댁 하고는 한 마을에서 함께 자라난 친구사이다. 송달현의 아내가 중신을 서다시피 하여 처남의 댁이 된 것이다. 처남의 집에 안내되어 왔을 때 세 사람은 많이 울었다. 통일이 되었다는 기쁨으로 북한 땅 온 겨레가 거리에서 들판에서 술을 빚어 춤을 추고 떡을 쳐서 나눴건만 중공군의 참전 소식에 춤이 멎고 웃음이 그쳤었다. 이어 국군의 후퇴소식, 삼 일이면 다시 돌아 올 수 있다는 소문과 함께 피난민이 길을 메우기 시작했다. 송달현도 처자를 데리고 떠날까 하다가 삼 일 후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데, 빨갱이들이 아무리 악독하기로서니 삼 일 사이에 그것도 부녀자들을 어찌하겠는가 생각에 처자를 떼어 놓고 잠깐 이웃마을에 다니러 가듯 단출한 차림으로 나섰던 것이 일 년이 넘어갔다. 그동안 단 하루도 한숨 없이 잠들어 본 날이 없고 탄식 없이 밥 먹어 본 적이 없었다. 용당포 해변에서 부산 송도 해변에서 서울 남산 공원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다. 그러나 이렇듯 목 놓아 울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속이 좀 후련하다.
며칠이 지나 처남이 알선해 주는 제재소에 사무원으로 취직이 되었다. 처남댁 집과는 거리가 멀어 제재소에서 자고 뒷골목에 있는 판잣집에서 밥을 대놓고 먹었다. 순댓국집이었다. 송달현이 제 밥을 제가 벌어먹기는 피난 이후 처음인 것이다. 오래간만에 마음 편하게 기름진 음식을 먹으니 코딱지처럼 까맣게 찌들었던 얼굴에 제법 생기가 돌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육체의 본능이 되살아났다.
그러나 비록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기는 하나 어쩌면 국군이 9.28 수복 때처럼 다시 힘차게 북진할는지도 모른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어떤 여자와도 정식 결혼은 싫었고 그저 적당히 즐길 수 있는 여자를 물색하는 원의 손길이 뻗쳐 왔던 것이다. 처남을 만난 것이다. 육군 중령으로 일선 공병대의 대대장이라고 하였다. 송달현의 아내와 처남의 댁 하고는 한 마을에서 함께 자라난 친구사이다. 송달현의 아내가 중신을 서다시피 하여 처남의 댁이 된 것이다. 처남의 집에 안내되어 왔을 때 세 사람은 많이 울었다. 통일이 되었다는 기쁨으로 북한 땅 온 겨레가 거리에서 들판에서 술을 빚어 춤을 추고 떡을 쳐서 나눴건만 중공군의 참전 소식에 춤이 멎고 웃음이 그쳤었다. 이어 국군의 후퇴소식, 삼 일이면 다시 돌아 올 수 있다는 소문과 함께 피난민이 길을 메우기 시작했다. 송달현도 처자를 데리고 떠날까 하다가 삼 일 후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데, 빨갱이들이 아무리 악독하기로서니 삼 일 사이에 그것도 부녀자들을 어찌하겠는가 생각에 처자를 떼어 놓고 잠깐 이웃마을에 다니러 가듯 단출한 차림으로 나섰던 것이 일 년이 넘어갔다. 그동안 단 하루도 한숨 없이 잠들어 본 날이 없고 탄식 없이 밥 먹어 본 적이 없었다. 용당포 해변에서 부산 송도 해변에서 서울 남산 공원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다. 그러나 이렇듯 목 놓아 울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속이 좀 후련하다.
며칠이 지나 처남이 알선해 주는 제재소에 사무원으로 취직이 되었다. 처남댁 집과는 거리가 멀어 제재소에서 자고 뒷골목에 있는 판잣집에서 밥을 대놓고 먹었다. 순댓국집이었다. 송달현이 제 밥을 제가 벌어먹기는 피난 이후 처음인 것이다. 오래간만에 마음 편하게 기름진 음식을 먹으니 코딱지처럼 까맣게 찌들었던 얼굴에 제법 생기가 돌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육체의 본능이 되살아났다.
그러나 비록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기는 하나 어쩌면 국군이 9.28 수복 때처럼 다시 힘차게 북진할는지도 모른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어떤 여자와도 정식 결혼은 싫었고 그저 적당히 즐길 수 있는 여자를 물색하는데 우선 가까운 데서부터 보자니 밥집 여자가 첫 번째 지목 대상이었다.
서른을 조금 넘어선 과분데 얼굴은 우묵주묵한 것이 아무리 곱게 보려 해도 고와 보이지는 않지만 그까짓 얼굴이 대상이 아니고 육체가 그것도 임시방편으로 소용되는 여자일진대 아무려면 어떠냐고 접어놓고 전략을 세워 본격적으로 공세를 취하였다. 그런데 의외로 쉽게 떨어졌다. 허전할 정도로 쉽게 떨어졌다. 의심스러울 정도로 쉬웠다. ‘정조관념이 없는 싸구려 계집’이라고 송달현은 내심으로 멸시를 하였다. 이것이 그릇된 판단이었다.
당장 그 이튿날 아침 밥상이 제법 푸짐해졌고 해장술까지 내놓으면서 빨래거리를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김 마담 얼굴에 화장이 되어 있었다.
그 집에서 심부름하는 갑순에게는 ‘이제부터 이 쥔아저씨 진짓상은 반찬을 갖추어 방으로 차려오라.’고 지시하는 것이었다.
송달현은 속으로 냉소를 하였다. ‘네가 놀기는 잘 논다만 아무리 피난살이기로소니 내가 네까짓 것하고야 살겠느냐?’면서도 겉으로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그저 돼지갈비 구운 것만 실컷 먹고 아무 말도 없이 사무실로 왔다. 다시는 김 마담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였다. 그 근처에 마땅할 밥집도 없고 하여 할 수 없이 당분간은 김 마담네 집엘 드나들며 밥만 먹었다. 그런데 소문이 파다하게 번졌다. 최소한도 송달현의 주위의 사람들은 골고루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농담과 진담을 섞어 축하와 격려를 하는 것이었다. 김 마담이 묻는 사람들마다에게 다 공개하였다는 것이었다. 당장 직장을 옮겨 김 마담의 꼴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전쟁으로 인하여 모든 산업시설이 파괴 또는 마비되어 있는 판국에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하니 더럽게 재수 없이 걸려들었다고 후회와 한탄을 하며 지내는 며칠 후 처남이 왔다. 김 마담에게서 연락을 받고 왔다면서 그리고 김 마담을 만나고 오는 길이라면서 결혼을 극구 종용하는 것이었다.
‘여자가 얼굴도 복성스럽게 생겼고 생활력도 강하고 한데 더 바랄게 무엇이냐?’면서 또 ‘설사 낼 모래 통일이 된다 할지라도 누님이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면서 거의 강압적으로 서두르는 서슬에 어쩔 수 없이 같이 살게 되었다.
송달현은 절대로 결혼이라는 말은 안 썼다. 속담에 ‘깊은 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더니 그렇듯 썩은 나무처럼 쓰러지던 여자의 속셈이 이렇게 치밀하고 굳을 줄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아무리 피난살이라고는 하나 그리고 임시방편이라고는 하나 송달현의 가문과 인격으로 보아서는 창피하기 비길 데 없는 노릇이지만 구세주 같은 처남의 성화로 이루어진 것이니 참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왜 그런가하니 서울에도 고향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고향 사람들 보다는 타향 사람들이 훨씬 더 많으니 말하자면 송달현의 근본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 순댓국집 주인 정도로 밖에 대우를 안 하며 사뭇 멸시하려 드는 경향의 손님들조차도 있다. 그렇다고 순댓국 장사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없다. 제재소에서 받는 송달현의 월급이 살림을 꾸리기에는 언 발에 오줌 누기고 또 밭을 팔아 논을 살 때는 이밥 먹자는 격이라고, 어차피 마음에 없는 여자를 주위 압력에 못 이겨 데리고 살 바에는 돈벌이나 시키자는 속셈이었다. 말하자면 ‘야전용’으로써 먹자는 것이다.
‘속초로 뜨자.’
속초에는 고향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거기라면 송달현 자신의 근본을 알아 줄 사람들도 많을 것이기에 마누라를 내세워 순댓국 장사를 한다더라도 깔볼 사람이 없을 성 싶어서였다.

처남의 부대에서 나와 후생사업을 한다는 군용트럭 편으로 속초로 이사를 갔다. 과연 고향사람들이 많았다. 김 마담이 벌어놓은 자금이 있는지라 일구라는 마을에 요지를 골라 판잣집을 짓고 순댓국 장사를 시작하였다. 간판을 걸었다. 손님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송달현은 창피한 생각이 들어 장사하는 데는 별로 거들지를 않았다. 비교적 여유 있는 용돈을 가지고 고향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자기 아내의 가문도 천하고 인물도 못났다는 험담과 그런 여자하고 같이 살게 된 유래를 해명하러 다녔다. 그러다가 때로는 고향사람들의 핀잔도 받고 충고를 받은 적도 있지만 송달현은 자신의 위신을 위하여서는 불가피한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집에 자주 드나들어 친숙해진 손님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도 자기의 내력과 아울러 아내의 내력도 공개하는 것이었다.
장사를 시작한지 한 달도 못 되어 집을 배로 늘렸다. 장마철에 오이 자라듯 하는 장사가 일 년이 좀 넘어설 무렵에는 집이 거의 다섯 배로 확장되었다.
송달현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고 긁어모으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과연 야전용이 전투는 잘 한다고 생각하였다.
“얼마나 되우.”
아내는 송달현의 무릎 밑에 손을 밀어 넣고 엎드리며 물었다.
“지금 세고 있는 중인데 낸들 어찌 아니.”
송달현은 대꾸하느라 헷갈렸음인지 손을 들고 세던 돈 다발을 처음부터 다시 센다.
“어제보담 좀 많은 것 같은데….”
아내는 혼잣말로 중얼 거렸다.
“좀 가만 있거라. 사람이 정신이 통일 돼야 돈을 세지비?”

송달현은 들고 있던 돈을 방바닥에 내동댕이치면서 버럭 소릴 질렀다.
“아이 깜짝이야, 거 그렇게 화낼 게 뭐 있우.”
아내는 흩어진 돈을 거둬 모은다.
“내가 뭐 당신더러 그랬우? 나 혼자 하는 말인데.”
여전히 부드럽게 남편을 이해시키려 한다.
“그래도 그 주둥아리는 까져서 나발을 부니?”
송달현은 사뭇 주먹을 얼러맨다.
“그만 두슈. 내가 잘못했우. 어서 거둬 넣고 잡시다.”
아내는 돈을 한 장 한 장 구김살을 펴 왼손에 차곡차곡 포갠다.
송달현은 아내의 여유 있고 너그러운 태도를 유들유들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대 쥐어박을까 하다가 참았다. 지난날에도 손찌검을 안 한 바는 아니지만 이제부터 당분간은 참아야 한다고 거듭거듭 내심으로 다짐한다.
알 낳은 오리를 잡지 말라는 속담이 있는데 돈 잘 버는 야전용을 당분간은 가만히 놔두자고 참는 것이다.
앞으로 일 년간 쯤은 참아야 한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휴전이 된 지금 고향에 가기에는 그 시기를 예측할 수 없는 지금 그리고 ‘마타오 무역’을 하기는 아직 자본금이 약하다. 충분한 자금이 마련되었을 때 또한 야전용과 이혼을 해야 할 때 아니 이혼이 아니라 헤어져야 할 때에 부지런히 때리자. 타협적으로 헤어지자면 우선 떨어져 나가려 들지 않을 것이고 둘째는 위자료니 뭐니 하여 상당히 귀찮게 굴 것이다. 그러한 번잡을 피하기 위하여 예비하고 있는 방침이 폭력의 계속적인 행사다. 매가 무서워 야전용이 자진하여 헤어지자고 제의 하게 한다든가 또는 도망을 가게 하자는 계획이다.

신문 등의 보도를 보면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정신적 학대니 육체적 학대니 하며 남편을 상대로 고소를 제기하였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은 있다. 그러나 아직 한국 여성으로서는 그런 정도로써 고소를 제기하였다는 말은 못 들었다. 송달현은 자못 참기 어려운 분노를 애써 참는 것처럼 재떨이의 꽁초를 집어 크게 빨아 길게 내뿜는다.
아내는 돈을 백 장씩 묶어 놓으며 남편의 표정을 흘깃 보고는 또 남편을 달랜다.
“내가 잘못 했다는데 뭘 그러우. 맘을 돌리시구 어서 이거 거둬 넣읍시다.”
송달현은 타는 담배 끝만 지켜 볼뿐 말이 없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반성도 한다.
‘이게 조금만 배운 여자라면 조금만 얼굴이 보기 좋게 생겼더라면…. 내가 한평생 데리고, 아니 통일될 때까지는 데리고 살겠는데, 너무 무식하고 너무 못 생겼다. 만일에 내가 이 야전용을 못 만났더라면, 지금까지 나는 그 제재소의 서사에 불과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이 들다가도 고개를 설레설레 휘젓는 것이다.
‘아니다. 내가 타고난 복이다. 영웅이 탄생하면 용마도 태어난다는 식으로 내 복이 있으니까 야전용이 걸려 든 것이다.’ 그렇다. 야전용이 나를 못 만났다면 지금도 청계천변의 오막살이 순댓국장수 이었을 것이다.
나를 만났기에 속초엘 왔고 속초에 와서도 내가 자리를 잘 잡았기에 이렇듯 장사가 잘 되는 것이다. 내가 작전 계획을 잘 세우고 용병을 잘 했기 때문에 저 야전용은 전투를 잘 하는 것이다. 나는 훌륭한 야전군 사령관이다.
그리고 보니 지난날이 다시금 후회 되는구나. 내가 좀 더 일찍 남한엘 왔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영어를 부지런히 익혔더라면 나의 이 천재적인 두뇌로 지금쯤은 국제무대에서 전 세계를 쥐고 흔들었을 텐데…. 아니면 군대엘 들어갔어도, 나의 이 치밀하고 명석한 머리로 6.25 사변에 지휘권을 쥐었더라면, 휴전선이 무슨 놈의 휴전선이냐 지금쯤엔 김일성이란 놈을 서대문 형무소에 집어넣고, 아니 동물원의 원숭이 우리 속에 가둬 놓고 비스킷이나 하나씩 던져 주면 받아먹는 꼴을 어린이들에게 보여 줄 것을…. 이렇게 되었다면 휴전선이란 게 생겼을 리도 없고 또 내가 야전용을 데리고 순댓국 장사가 뭐냐, 내가 영어공부만 하였더라면 또는 군대엘 들어갔더라면 이런 야전용 쯤은 내 앞에 와서 인사도 못 하였을 텐데, 참 그렇게 되었더라면 고향에 있는 아내도 이혼해 버렸을 것이다. 그렇지 그래 가지고는 양귀비 같은 여자와 재혼하였으리라.
그러니 저러니 뮈니 뭐니 해도 그놈의 38선이 원수다. 그렇다 그놈의 38선이 원수다. 그렇지! 하며 무릎을 탁 쳤다.
“뭘 그러우?”
아내가 의아한 얼굴로 묻는다.
송달현은 자신이 환상의 세계에서 헤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간 차돌 같이 단단하고 까무잡잡하고 조그마한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번졌다.
“왜 무릎을 탁 치며 그러우?”
아내가 돈다발을 빙그르르 돌려 끈을 조르며 묻는다.
“아이다.”
송달현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더 묻지 못하게 하고는 아내가 세어 묶어 놓은 돈 뭉치를 훑어보았다.
“구만 오천 환하고 잔돈이 조금 남았에요.”

송달현은 아무 말 없이 일어서며 아내에게 엎드리라는 손짓을 했다.
아내는 아랫목으로 돌아 앉아 무릎을 꿇고 두발로 방바닥을 짚고 엎드렸다.
송달현은 벽을 짚으며 슬며시 아내의 등에 올라섰다. 얼핏 보아서는 천장의 찢어진 곳을 헌 신문지 두 장으로 아무렇게나 붙여 막은 것처럼 보이는데 실은 위장이었다.
아내 등에 올라선 송달현이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듯 하더니 신문지 반장 바른 속이 벌어진다. 또 한 번 손을 쓰니 다른 한 장이. 또한 벌어진다. 미군부대에서 나온 레이선 상자를 뜯어서 신문지 안쪽에다 단단히 붙여 놓았고 그것을 다시 헌 밀가루 부대를 뜯어서 천장의 쫄 대에 이어 덧붙여 놓은 것이다. 애당초 집을 지을 때에 계획적으로 지은 것이어서 천정의 쫄 대가 기와집 서까래 만큼씩이나 굵다.
아내는 남이 행상하는 화장품 장수와 흥정하는 것 구경하는 시골 여자처럼 말없이 앉아 남편이 여는 레이선 상자를 멍청히 들여다본다. 그 까닭은 밤마다 한 번씩은 꼭 있는 일인지라 신기로울 것도 없으려니와 섣불리 한마디 하였다간 또 어떤 윽박지름이 쏟아질지도 모르니 잠자코 있기로 한 것이다.
상자 속에는 천 환짜리 지폐 묶음이 두 켜 반 깔려 있다.
송달현은 제켜진 상자 뚜껑 안쪽에 기록된 누계를 살펴본다. 어제까지의 누계 그러니까 현재 그 상자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사백육십팔만 환이었다. 송달현은 팔만 환을 그 상자 속에 줄을 맞춰 집어넣고 안쪽에다 연필로 기록을 하고 누계를 고쳐 놨다. 사백육십팔만 환.
‘아직도 삼십…이만 환을 더 넣어야 하는구나.…’
한 상자에 오백만 환씩으로 채우기다. 모두 열 상자가 목표인데 이제 다섯 개가 찼다. 여섯 개째 채우자면 넉넉잡고 일주일이면 되리라고 예측을 하며 뚜껑을 다시 정성스레 여며 닫는다.
사뭇 경건한 자세로 들고 일어섰다. 아내는 곡마단의 잘 훈련된 말처럼 넙죽 엎드린다. 송달현은 지긋이 아내의 등에 올라서서는 돈 상자를 천청 속에 조용히 얹어 놓은 다음 소리 없는 손질로 벌어졌던 천정을 감쪽같이 아물려 놓고는 내려선다. 그래도 미심쩍었음인지 천정을 다시 한 번 살펴본다. 특히 이음매에 틈이 있나 없나를 각별히 세밀하게 살폈다. 이상이 없다.
“자리 펴라.”
마치 하녀에게 명령하듯 하고는 아랫목을 비켜선다. 그리고 언제나의 버릇처럼 방문 고리가 걸렸나를 점검하고 또한 문짝 하나하나를 훑어본다.
“응?”
송달현은 머리끝이 치솟는 듯한 공포를 느끼면서 얼어붙은 듯 우뚝 섰다.
“뭘 그러우?”
‘…’
송달현은 북쪽으로 내놓은 창문을 분노와 의혹으로 가득 찬 눈초리로 응시한다. 미심쩍게 생각한 아내가 벽장에서 내리던 이불을 힘없이 놓고 남편이 쏘아보는 곳을 본다.
“어머나!”
아내도 소스라치게 놀란다. 떤다.
누군가 밖에서 손가락에 침을 묻혀 창문을 뚫어 놓은 것이다. 그 침이 마르지도 않은 것으로 보아 금방 뚫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즉, 조금 전에 송달현 부부가 돈을 간수하는 것을 모조리 보았을 것이다.

옆에서 벌벌 떠는 아내와 창구멍과 관련이 있으리라고 추측하기 시작한 송달현은 서서히 고개를 돌려 아내를 노려본다. 까만 얼굴의 실 같은 눈이 살기를 머금었다.
“왜 그러우. 경찰서에 연락해봅시다.”
아내는 남편의 눈초리에서 또 한 번 오싹함을 느끼면서도 항변 한 마디 못하고 수습책만 제의하는 것이다.
송달현의 얄팍한 입술이 벌름거리며 독기 서린 반문이 새어나왔다. 삼년 가까이 부부생활을 해오는 과정에서 송달현의 이런 표정이 다음에는 어떤 형태로 폭발한다는 것을 아내는 잘 안다.
“아니 당신은 저 창 구멍을 뚫은 놈을 찾을 생각은 안 하고 나를 또 때리려고 그러우?”
아내는 또 하나의 두려움으로 떨며 남편의 반응을 더듬는다.
“구멍을 뚫은 놈?”
“…?”
“그러면 이 간나야, 니는 어떤 놈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지비?”
“아니 이이가 무슨 소리야.”
“무시기 소리라니. 니는 창구멍을 뚫은 놈이라고 했지비?”
송달현은 싸늘한 눈초리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한 발 다가선다.
아내는 반사적으로 한 발 물러선다.
“어떤 놈인가 뚫은 놈이 있을 것 아뉴?”
어떻게 하여서든 매를 피해보려고 아내는 치밀어 오르는 분함을 억누르며 나지막이 부드럽게 항변을 했다.
“아니 이 간나야. 이 세상엔 놈만 있니? 간나도 있지비? 그런데 니는 으찌 놈, 놈 하니. 그 걸로 봐서 니는 어떤 놈인지를 안다는 증거가 아이겠니?”
송달현도 독기는 서렸으나 나지막한 음성으로 공박을 하며 다가선다. 아내는 새삼 놀랐다. 무슨 뜻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추측컨대 자기와 어떤 남자와 결탁을 하여 돈을 빼내려고 한 것이 아니냐는 말투로 해석을 하였다. 말 같지 않은 소리였지만 참았다. 주먹이 무서워서였다. 자신의 신세가 슬퍼 엉엉 소리를 내어 실컷 울어나 보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울지도 못한다.
“아이, 여보, 제발 그런 뚱딴지같은 소리 하지 말고 어서 마음을 돌려요. 그리고 빨리 경찰에 연락을 합시다.”
사뭇 울먹이며 호소를 하였다. 그러나 독사처럼 차갑고 매서운 냉소를 머금은 송달현의 입술에서는 차분히 가라앉은 음성에 또렷또렷한 말이 미끄러져 나온다.
“니, 아까 무시거 하다가 늦게 들어 왔지비?”
“언제?”
김 여인은 창에 구멍이 뚫린 공포보다는 당장 눈앞에서 얼씬거리는 송달현의 주먹이 더욱 무서워 문을 박차고 피신할 자세를 취하며 반문을 하는데 이 기미를 알아차린 송달현이 서서히 막을 동작을 취하며 차근히 설명을 한다.
“오나조 영업을 끝냈을 때 니는 어딜 갔다가 한참 있다가 들어 왔느냐 말이다.”
“…참 당신두, 그래 그걸 가지고 나를 의심했단 말유?”
김 여인은 한 고비를 넘기듯한 안도감을 느꼈다. 해명할 충분한 근거가 있기에 말이다.
“그래, 말해 봐라.” 여전히 차갑다.

“그동안 당신은 전혀 몰랐우?”
“…?”
송달현은 내심으로 놀랐다. ‘그동안’이라는 말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조금도 반갑지가 않다. 반갑지가 않다기보다는 차라리 저주스럽기까지 한 것이다.
‘이까짓 간나한테 씨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자기의 짐작이 잘못된 것이기를 기대하면서 가래가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무시길 몰랐다는 거냐.”
아내는 그동안 어쩐지 부끄러워 말하지 못했다. 또 두어 달 정도로서는 긴가민가 하였을 뿐더러 충분히 눈치를 채었을 남편이라는 게, 묻지도 않은 게 얄밉기도 하고… 하여 그럭저럭 지나왔는데 석 달째로 접어들면서는 확실해졌다. 할 수 없는 입장이지만 오히려 송달현의 주먹을 피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경도가 끊어진지 석 달이 됐에요. 며칠간은 밥이 먹기 싫으면서도 뭔가를 좀… 뿌듯한 것, 시원한 것이 먹고 싶습디다. 어제부터 육회가 몹시 먹고 싶은데, 우리 집엔 돼지고기밖에 없고, 좀 사다 먹으려니 돈이 있어야지. 당신에게 실토를 하려니 돼지처럼 처먹기만 한다고 또 핀잔을 주겠고 하여 당신을 속인 건 안됐지만 오늘 점심때 손님들이 북적거리다 나갈 때 말유, 국밥 서너 그릇 값을 내 치마허리에 넣었었지유. 아까 저녁에 나가 쇠고길 사다 놨다가 나 혼자 그것도 당신 몰래 먹으려니 어떡하우. 다른 사람들 다 잠들은 후에….”
김 여인 목소리가 젖기 시작하더니 양쪽 코 옆으로 눈물이 미끄러진다. 그동안 실컷 울고라도 싶었던 심정이 좋은 기회를 잡은 듯하여 쌓이고 뭉쳤던 사연을 모조리 털어놓을 판인가 보다.

치마폭을 끌어올려 코를 풀고는 말을 계속한다.
“방엘 좀 들어와 쉬었다가 나갈까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그렇게 되면 당신은 또 내가 마치 항상 빤스 끈을 풀어 놓고 다니는 계집인양 의심을 할 것 같고 그래서 변소에 가서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일하는 사람들이 다 잠든 기미를 보고서야 부엌에 가서 썰어서 무쳐 먹고 들어오느라고 늦었우. 그래, 그땐 왜 안 물어 보더니 이제야 묻는 거요. 저 구멍 뚫은 놈하고 무슨 꿍꿍이수작을 하느라고 늦게 들어 왔다 이거지.”
김 여인은 또 코를 푼다. 우선 가슴이 후련해짐을 느꼈다. 이제는 매도 무서운 생각이 사라졌다. 내친김에 송두리째 털어 놓기로 하였다.
송달현의 눈빛의 살기가 더 짙어지는 듯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당신은 날더러 툭하면 야전용, 야전용 하는데 그럴 수가 있우? 엉? 당신 말마따나 하도 무식한 년이 첨엔 그게 무슨 말인 줄 몰랐었우… 그러다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좋은 뜻인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미심쩍어 단골손님인 김 대위에게 물어 봤었우. 뭐? 산이나 들에서 전쟁하는 데 쓰는 사람이라는 뜻이라지? 막 부려먹는 머슴꾼이라는 뜻이라지요? 그래 나는 머슴꾼이고 당신은 상전이구. 그렇게 돼야만 당신 속이 시원하겠소? 그것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자랑삼아 떠벌려 가면서 말유.”
김 여인은 또 치맛자락으로 코를 닦는다. 송달현은 아내가 제 멋대로 지껄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런 무식하고 못난 간나에게서 자식을 얻어서는 안 된다. 또 이 간나를 정리하는데 방해가 된다. 벌어진 김에 자락에서 끝장을 내자.’
이웃집의 닭들이 홰를 치면서 운다. 바람이 또 일어나나 보다. 전선이 약하게 우는 소리가 들린다.
“본시가 서방질하는 간나가 말이 많다더니 니 정말 말이 많다이.”

침착하고 낮은 음성이었다. 순간 차돌 같은 주먹이 김 여인의 왼쪽 눈 밑을 후려쳤다.
“아가리를 또 벌려 봐라. 무시기 우찌고 우째? 이 개간나야.”
말이 끝나는 찰라 이번에는 오른쪽 볼을 후려친다. 김 여인은 비틀하다가 그 자리에 나무토막처럼 쓰러진다. 먼저 맞은 왼쪽 눈 밑에서는 피가 흐른다. 한 마디도 못한다. 얼굴을 잔뜩 찡그린 것으로 보아 심한 통증을 애써 참는 모양이다.
송달현은 발길질을 할까 하다가 참았다. 금방 부어오른 왼쪽 눈두덩 밑에서 흐르는 피를 보니 가슴이 섬뜩하여서였다. 창구멍을 봤다. 침은 거의 말랐다.
“불야!”
“…?”
송달현의 가슴이 덜컹하였다. ‘불얏!’ 소리와 함께 이웃집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불얏!’ 소리는 연거푸 난다. 바로 송달현네 맞은 편 찐빵집인 것 같다. 사람들 뛰는 발자국 소리가 난다. 휘발유 타는 냄새도 풍겨 온다. 우선은 안심을 하면서도 송달현은 추리를 한다.
‘어떤 놈이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우리 집이 아닌 건너편집에다 지른 것은 그 집을 태우자는 게 목적이 아니고 그 불을 끄기 위하여 송달현네 집이 비워졌을 때 이 천정 속에 돈을 가져가자는 것일 것’이 틀림없다고 판단하였다. 종업원들이 우르르 뛰쳐나가는 기척을 들으며 송달현은 차게 웃었다.
‘이 세상의 어떤 놈이라도 내 머리는 못 당한다. 판단은 정확하다. 나를 이웃집의 화재로 유도하여 이끌어 내놓고 고 틈에 내 재산을 털리는 그런 바보는 아니다.’

찐빵 집 아내의 통곡소리가 들린다. 양동이 부딪히는 소리도 들린다. 누군가가 후다닥 뛰어 들어온다. 홀에서 심부름을 하는 바우의 당황한 목소리였다.
“쥔아저씨 주무세요?”
“…”
“쥔아저씨!” 하며 바우가 문을 열려고 한다. 걸려 있는 문이 털커덩 소리만 낸다.
“쥔아저씨! 쥔아주머니!” 바우는 방문을 두드리며 다급하게 소리친다. 송달현은 망설였다.
대답을 할까 자는 척할까. 하다가 응답을 했다.
“으찌 그리니?”
“앞집에 불이 났에요.”
“안다.”
“…?”
바우는 의아한 모양이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오다시피 했고 이웃집에서 우물 두레박질, 펌프 물 지기는 소리 등이 소란한데 그리고 바로 자기네 앞집에 불이 나서 소란 법석인데도 알고 있으면서 꼼짝도 아니하는 송달현을 매정스럽고 독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바우는 더 할 말이 없다는 듯이 나가 버린 모양이다.
강렬한 주먹질에 정신을 잃고 누웠던 김 여인도 이 소린 들었다. 먼 나라에서 들리는 듯 꿈결에 들리는 듯 어렴풋하였다. 그러나 하도 놀라운 소란이기에 애써 정신을 가다듬어 간신히 몸을 뒤쳐 허우적거리며 팔로 방바닥을 짚고 끙끙거리며 일어섰다. 그런데 머리가 띵하고 핑 돌아 다시 쓰러질 뻔하였다. 벽을 의지하고 서서 안개 낀 들판에서 방황하는 것처럼 뿌연 시력으로 송달현을 찾았다. 차츰 맑아지는 눈으로 보니 그의 손에는 다듬이 방망이가 들려 있었다. 그 방망이를 본 김 여인은 평소에 ‘때려 죽일 간나’라고 입버릇처럼 뇌까려 오던 그가 진짜로 이제는 때려 죽이려나보다라고 생각하였다. 돈을 내려서 어디론가 불길이 먼 곳으로 옮기자는 의논을 할까 하는데 말이 안 나온다. 방망이도, 송달현도, 아니 죽는 것조차도 두렵지가 않다.
“아저씨, 우리 지붕에 불이 붙었에요.” 공포감이 뒤섞인 음성으로 울먹이며 달려와서 문을 두드리는 바우의 전갈이다.
“무시기?”
송달현은 까딱도 않고 서 있다. “벌써 타기 시작 했에요. 좀 나오세요. 여러 집이 탔에요.”
송달현은 태연히 응답한다.
“알았다. 니들은 다른 집 불은 끄지 말고 우리 집 지붕에 붙은 불만 죽여라. 알겠니?”
“아니 아저씬 안 나오세요?” 바우의 음성에는 울음기가 가시고 노기가 섞여 있었다.
“나는 여기서 볼일이 있어 그런다. 날래 나가봐라.”
바우는 무엇인가를 투덜거리며 나갔다.
송달현도 초조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창구멍을 뚫은 놈이 이 방안의 동정만을 잔뜩 노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방을 비울 수가 없고 또한 밖에서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것이 이 집에 강도나 도둑이 드는 것을 방비해 주는 역할도 된다고 생각하였다. 여러 집이 탄댔자 모두 오막살이 판잣집들인데 그까짓 것들 몇 채 탔댔자 손해라는 게 몇 푼이나 되겠는가. 오직 내 집만 안타면 되겠는데 이미 불이 붙었다니 완전 무사는 바랄 수 없고 어떻게 하여서든지 집 한 채가 다 타는 수가 있더라도 이 방만 타지 않으면 된다고 허망한 기대를 거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타는 소리가 화드득거리며 들어왔다. 호올로 향한 쪽의 방문에 불빛이 환히 물들어 온다. 덧문을 닫고 그 안에 미닫이를 닫은 것인데 그 미닫이에 환하게 불빛이 어른거린다. 밖에서는 송달현을 부르는 소리와 욕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할 수 없이 김 여인이 입을 연다.
“여보, 위험해지는구료. 어서 돈 상자들을 꺼내 불길이 먼데로 옮겨 놉시다. 이렇게 하고 있으면 어떡하우!”
“개소리 말아. 니가 나를 멍청이로 아는 모양이지만 내가 너 꾀에 넘어가겠냐? 돈 상자를 내가? 어림도 없지비. 내가 왜 이 방멩이를 들고 있는지 아니? 어떤 놈이든지 뻔쩍만 하면 대갈통을 박살 낼라는 기다. 알겠니?”
송달현의 독기는 여전하다. 그러나 그 방망이의 용도가 밝혀지자 김 여인은 적이 안심이 되었다. 두려워했던 것도 아닌데 안심이 되는 게 야릇하여 머리를 벽에 기댄 채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남녀 종업원들과 이웃사람들이 송달현 부부를 위험하니 빨리 나오라고 소리를 지른다. c 레이선 상자 쪼가리로 이은 지붕이 가랑잎 타듯 하리라. 방 안에 연기가 밀려들어 온다고 생각하는 찰라 호올의 지붕이 내려앉는 소리와 함께 안방 창호지에 금방 불이 붙었다. 김 여인은 빨딱 일어섰다.
“여보 나갑시다.”
“안 나간다. 나는 돈이 생명이다. 생명을 두고 어디를 간단 말이냐 니나 나가겠음 나가라.”
김 여인은 머리가 울리는 고통을 이를 악물고 참아가며 남편을 타이른다.

“여보. 그게 무슨 소리유. 번데기에서 아니 나온 나방이 어딨우? 모든 나비들은 다 번데기에서 나온 게 아뉴? 사람 있음 돈 있는 거고 벌면 또 모이는 건데 어서 나갑시다.” 하며 송달현의 손을 잡아당기려 하였다. 송달현이 야멸차게 뿌리친다. 눈에서는 사뭇 불이 이는 것 같다.
“놔라! 니나 나가라. 난 안 나간다.”
밀려드는 바람으로 촛불이 꺼졌다. 그러나 밝기는 촛불이 꺼진 것을 인식치 못할 정도다. 연기가 자욱하게 끼어든 방안에서 부부는 기침을 콜록거린다.
심한 기침을 하면서 윗목의 방문 고리를 벗기는 김 여인이 기침을 하는 틈틈이 말을 한다.
“그럼 나 먼저 나가겠우. 그러나 당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우. 지금까지 당신은 나를 야전용이라고 말해 왔었우. 그런데 당신은 돈의 야전용이 되려는 거요? 한 아내가 남편의 야전용이라해도 괜찮은 거유. 그러나 하나의 인간이 돈의 야전용이 돼서야 어떻게 하겠우? 낼서부터 벌면 돈은 또 모일 텐데 어서 나와요.”
송달현은 아내가 예상외로 유식하게 말한다고 생각되었다. 공감이 되었다.
그러나 창구멍을 뚫은 놈이 밖에서 틈을 노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죽는 한이 있어도 나갈 수 없다고 다짐한다.
“니나 나가. 죽어도 난 아이 나간다.”
강한 바람에 밀린 불길이 안방 천장을 모조리 핥기 시작한다. 송달현의 궁둥이에 불이 붙었다. 불이 탄 천장에서 돈 상자 두 개가 연거푸 떨어진다.
송달현이 돈 상자 하나에 머리를 맞아 푹 쓰러진다.
『갈뫼』 3집 게재 (1971년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