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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2020년 [평론] 윤홍렬 소설 「쭉정이」를 통하여 살펴본 민족의 수난과 민초들의 굴곡진 삶 / 권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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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284회 작성일 20-12-18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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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폐허 황무지에 첫 삽을 뜨셔서 『갈뫼』 나무를 심으신 윤홍렬 회장님!

그리고 박명자 선생님! 그 나무 이파리 무성하게 자라 많은 사람들이 쉬어 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50살 『갈뫼』를 위해 축배의 잔을 올립니다.

소설 「쭉정이」를 통해 인간의 천성이 선(善)한지 악(惡)한지에 대하여 윤 회장님께서 숨은 그림 찾듯 의문을 던져 주셨습니다.

정답을 못 찾았습니다.

윤홍렬 회장님 부끄러운 글 옹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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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렬 소설 「쭉정이」를 통하여 살펴본
민족의 수난과 민초들의 굴곡진 삶




1. 들어가는 말
시대적 격랑기는 때론 사회를 변화시키고 사람들의 마음과 삶을 변화시킨다. 어느 민족이든 수난기를 통해 국가관이 정립되고 민초들의 힘든 삶이 더욱 견고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도 일제 식민지와 6.25 같은 민족의 수난사를 많은 작가들이 글로 써왔다. 민족의 아픔과 민초들의 굴곡진 삶을 작가 윤홍렬은 미완의 장편소설 「쭉정이」와 「역풍은 불어도 강물은 흐른다」로 집필하였다.
윤홍렬 소설가는 1923년 2월 경기도 시흥에서 출생하였고 2014년에 타계하였다. 경기, 서울 지역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으며 동국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1969년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수복지구 속초에서 교직에 몸담고 있었으며 문학단체인 ‘설악문우회’를 창립하였고 이듬해 동인지 『갈뫼』 창간호를 발간하였다. 속초예총 초대 회장과 한국문인협회 초대 속초지부장을 역임하여 지역 문학의 초석을 다졌다. 작품으로는 단편소설 11편과 중편소설 3편, 그리고 장편소설 2편, 오페라 대본 1편으로 총 17편을 집필하였다.
장편소설 「쭉정이」는 1985년부터 1993년까지 속초 설악문우회 동인지인 『갈뫼』에 발표했으며 또한 1996년부터 2010년까지 『갈뫼』에 「역풍은 불어도 강물은 흐른다」 장편 소설을 발표했다. 주제는 우리 민족의 수난기였던 일제 식민지, 해방 후 38도선을 경계로 나누어진 남북 분단 현실과 혼란했던 사회상을 대하소설 형식으로 썼다. 두 소설 모두 안타깝게도 미완성 작품으로 남아 있어 독자들은 아쉬움이 크다.
한편 소설 「쭉정이」는 작품의 치밀한 구성과 다양한 캐릭터들의 개성 있는 묘사로 긴장감과 함께 읽는 재미를 더 해 준다. 한 시대의 사회상과 밀접한 관계로 맺어진 다양한 역사 속 삶의 현장과 인간 심리를 작가는 세필로 그려냈다. 즉 현재나 미래 삶에 대하여 독자들에게 방향 제시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은 사실이나 체험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통하여 산문으로 표현한 문학 양식으로 인간에 대한 구원과 삶의 탐구라고도 할 수 있다.
윤홍렬 작가의 단편 소설 중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쓴 소설은 「백합꽃」이 있으며 6.25 전쟁과 피난, 이산가족을 소재로 쓴 소설은 「늦기 전에」와 「갈매기집」 「야전용」이 있다. 일제 식민지와 분단 조국의 수난사를 소재로 쓴 미완의 장편소설은 「쭉정이」와 「역풍은 불어도 강물은 흐른다」가 있다. 소설 「쭉정이」를 통하여 민족의 수난과 민초들의 굴곡진 삶을 살펴보기로 한다.


2. 물질을 통한 신분 상승과 양심과 비양심의 갈등
우리나라 근대 농촌사회는 주로 지주와 머슴으로 신분이 양분화가 되어 있으며 대부분 전통적인 관습에 따라 신분은 세습이 되었다.
소설 「쭉정이」의 시대적 배경은 일제 식민지이고 소설 첫 부분에 나오는 장소적 배경은 인천 제물포항 근처 옥류면 옥돌골 갑부 공 씨네 집이다. 그리고 중반부터 결말까지는 공 씨네 집 심부름꾼이었던 김봉기와 동일 캐릭터인 홍기봉이 사는 갈벌시 갈벌리가 장소적 배경으로 설정이 되었다.


공길한의 증조모는 날마다 떡함지를 이고 제물포엘 드나들었다는 것이다. (중략) 그러면서 공 씨네 재산이 여름철에 오이 자라듯 했다는 것이다. 반드시 토지를 담보로 돈을 빌려주고는 그 기한이 단 하루만 넘어가도 가차 없이 농토를 빼앗곤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쌓여진 재력으로 길한 씨의 증조부는 ‘나라’에다 돈을 바치고는 능참봉 벼슬을 샀다는 말이 전하여 온다. 그래서 공 씨네는 옥류면에 있는 옥류 참봉으로 앉게 되었다는 것이고,


김봉기 아버지는 공길한네 집 하인이었고 김봉기는 그 집 심부름꾼이었다. 공길한의 증조모가 떡 장사를 하며 담보로 받은 토지 때문에 옥류면 일대의 재력가가 되었다. 그의 증조부는 나라에 돈을 바치고 능참봉 벼슬을 샀다. 공 씨네는 옥돌골 참봉으로 신분 상승 되어 대를 이어 하인을 두고 살았다. 그 시대 때만 해도 돈이면 벼슬도 살 수 있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아무리 그런 세상이라고 해도 양심을 벗어난 비도덕적인 행동은 그 대가를 어떤 방법이든 치르게 된다.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이 살아가는데 보이지 않는 규율은 존재하고 있다.


김봉기는 경 씨의 검은 외투가 눈에 많이 가리어진 것을 한참 내려다봤다. 이윽고 조용히 앉으며 떨리는 손으로 경 씨의 허리춤을 더듬어 봤다. 있다. 전대를 허리에 둘렀는데 분명히 몇 뭉치의 돈다발이 있다. 그는 또 심호흡을 하면서 생각해 본다. ‘이 돈을 이대로 놔둔다고 반드시 온전하게 있으리라고 누가 장담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중략) 다만 먼저 가져가느냐 나중에 가져가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로 결론을 내린 김봉기는 다시 화닥닥 두 팔을 뻗어 경 씨의 허리에서 전대를 풀었다. 제법 묵직하다.


인간 사회에서는 물질과 명예는 물론 사회적 지위를 염원하는 것은 사람들의 본능이며 로망이다. 그로 인해 때론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소설 속 주인공 김봉기도 예외는 아니다. 폭설이 내린 날 쌀을 팔고 오다가 솔개미재를 넘던 김봉기는 떡바위 쪽에 경 씨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경 씨의 허리춤에서 전대를 풀어 눈먼 돈을 획득한 김봉기는 스스로 양심과 비양심, 진실과 위선 사이에서 갈등을 하며 불안해하다가 아내와 이혼하고 결국 고향을 떠나게 된다. 청량리 중랑천 주막에서 당나귀 꾼인 일본 헌병 끄나풀이인 변칠성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그 자리에서 이름을 홍기봉이라며 바꾸고 변칠성을 경계하며 거처를 밝히지 않는다. 작가는 소설 발단부터 변칠성을 등장시키며 작품을 전개해 나간다. 눈먼 돈을 습득한 김봉기는 홍기봉으로 개명하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갈벌면 갈벌시로 거처를 옮긴다. 땅을 사고 부를 축적한 후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키며 지역 유지 행세를 하며 살아간다. 공길한과 김봉기(홍기봉)는 양심을 팽개친 채 자기 실체를 숨기고 돈으로 신분 세탁을 한다. 돈이면 무(無)에서 유(有)를 창출해내는 시대적 상항을 작가는 예리하게 짚어 냈다.


3. 운명적인 만남과 진실(眞實)의 맨얼굴
소설의 주제는 작가가 작품을 통하여 하고 싶은 말이다. 작가의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이 담겨 있는 작품의 중심 사상을 풀어내는 일이다. 소설에서 주제는 대개 암시적으로 등장인물을 통하여 표출이 된다. 홍기봉과 변칠성의 운명적인 만남에서 위기와 절정이 장치되고 작품의 주제가 선명하게 부각된다.
나라가 혼란하고 삶이 불안정할수록 서로 속고 속이면서 진실을 왜곡한 채 살아가는 것이 민초들의 삶이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듯이 애초부터 세상에는 비밀이 존재하지 않음을 작가는 명시하고 있다.


“옥돌골의 공 서방네 가택 수색을 하는 과정에서 여럿이 함께 찍은 사진이 한 장 나왔는데 공교롭게도 당신이 그 틈에 끼어 있더구먼.” 그 헌병 끄나플이라는 바로 그 변칠성이다. 그런데 가택 수색을 하였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중략) .“당신을 찾는 데 20여 년이 걸렸어.” 칠성은 자못 대견한 듯하며 다시 홍기봉을 바라본다. 찰나 제정신이 번쩍 들은 홍기봉은 무릎을 탁 칠 뻔하였다. 이제 알았다. 변칠성이다.


홍기봉 집에 나타난 낯선 남자는 20년 전 경 씨의 돈뭉치가 든 전대를 품에 차고 옥돌골 고향을 떠나오던 날 중랑천 주막에서 처음 만난 변칠성이다. 변칠성이 옥돌골 공참봉 집에서 일본 경찰 수사를 도와주다가 홍기봉이 어릴 때 공참봉네 가족하고 찍은 사진을 보고 20년 동안 홍기봉을 추적하며 찾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대전 시장에서 만난다. 갈벌리 갑부인 홍기봉이 옥류골을 떠날 때 그때 죽은 경 씨의 돈뭉치가 든 전대를 가지고 옥돌골을 떠난 김봉기라는 걸 확신한다.
변칠성은 일본 경찰 심부름인 양 위장하고 사진 속 김봉기가 홍기봉과 동일 인물로 인정하며 홍기봉한테 범행을 추궁한다. 하지만 그는 한사코 부인한다. 이 부분은 「쭉정이」 소설의 구성상 위기이며 우연이 필연으로 연결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하늘땅 다 뒤진다 해도 솔개미재에서 죽은 쌀장수 경 씨의 돈뭉치가 든 전대를 누가 가져갔는지를 아무도 모른다. 홍기봉은 자기가 저지른 죄를 숨기려고 이름까지 바꾸고 가면을 쓴 채 위선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은 옥돌골 사람이 아니라고 잡아떼며 하늘까지 속이지만 그런 속내를 알고 변칠성은 더 자주 찾아와 그를 괴롭히며 경제적인 모든 지원을 받게 된다. 홍기봉은 진실을 왜곡하며 변명하지만 변칠성의 올가미에 걸려들어 그 진실은 드러나기가 마련이다. 작가 윤홍렬은 인간 삶에 대한 평가를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하려고 했다. 양심을 저버리고 살아가는 위선적인 두 사람의 행동에서 선과 악의 기준을 독자들에게 맡기게 된다.


4. 민족의 수난과 변절자들의 만행
― 일본의 발악과 소년 항공대 가미카제 특공대 및 징병 징용 착출
사람들의 마음속에 선과 악은 어디까지 내재되어 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들도 선한 사람 보다 악행을 저지르는 캐릭터들의 장면이 소설이나 희곡에 있어서 극적인 흥미를 더해 준다. 그리고 사람들을 속인 완벽한 위장도 언젠가는 그 진실이 확연히 밝혀지기 마련이다.
미메시스(mimesis)는 문학에서의 모방은 리얼리즘 정신에 입각하여 대상을 그리는 것을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은 리얼리즘 정신에 입각하여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사실적인 묘사에 입각하여 재구성 재해석하였으며 또한 대상을 재현하고 재구성하는 창조적인 능력으로 인정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진실을 목표로 하는 소설은 산문이라는 일상어를 사용한다고 했다. 그렇듯이 대동아전쟁이 한창이고 2차 세계대전과 식민지 체재가 끝나갈 무렵 일제의 만행은 더욱 악랄해지고 있었다.


주인공 김봉기(홍기봉)가 옥돌골을 떠나던 날 주막에서 우연히 만난 변칠성과 운명적인 인연은 악연으로 연결이 된다.


일본이 밀리고 있다는 전쟁 소식과 더불어 조선사람을 들볶아대는 일본의 정책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갔다. 미혼 여자들은 정신대라는 명목으로 일본군의 위안부로 끌어가기 시작한 지도 일 년이 넘었다. 식량 공출도 상식화된 정책이었지만 그 훑어가는 정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가혹하였다.


한때 일본 경찰 앞잡이 노릇을 하던 변칠성이 지금까지 동족들을 괴롭히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솔개미재에서 죽은 경 씨의 돈뭉치를 몰래 가지고 온 홍기봉의 죄를 이용하여 그를 괴롭히며 돈과 쌀을 뜯어내고 있다. 그런데 홍기봉이 변호사한테 의뢰해본 결과 죄가 이십 년이 지나면 소멸됨을 알게 되었다. 그는 홍기봉을 이용하여 물질과 돈을 뺏으려고 했는데 실망을 하게 된다. 그리고 돈 만 원을 꿔 달라고 하였으나 거절당한 데 대한 앙심을 품게 된다. 여기서 홍기봉은 끊을 수 없는 운명적인 악순환의 고리에 말려든다. 어쩌면 아무도 몰래 홍기봉이 솔개미재에서 저지른 죄의 대가가 인과응보(因果應報)이듯 악행을 일삼는 변칠성의 농간에 끝없이 말려 들어 간다. 그러다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을 당하게 된다.


(상략) “야마모도가 아니라 가시모도일 것이다. 가시모도인 즉슨 변칠성이다. 그놈이 나에게 앙심을 품고, 가짜 성을 대고 허위 전갈을 한 것이다” (중략) “그렇다. 아버지는 야마모도고 기시모도고 간에, 도대체 누구에게도 그런 심부름을 시킨 사실이 없다.”
‘이놈을 싸움터에 내보내다니 …… 싸움터라기 보다는 불구덩이다. 이름이 좋아 하늘타리라고 말이 소년 항공병이지 실은 특공대다. 목표를 향하여 날아갈 기름만 넣고 가는 그런 특공대 …… 뭐 가미카제 …… 라고도 한다던가? 어쨌던 죽음의 불구덩이다. 아니 그거보다도 우선 일본으로 건너갈 때에 현해탄에서 모조리 죽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현해탄 온 바다에는 미국의 잠수함들이 우글거리기 때문에 일본의 배들은 얼씬도 못 한다고들 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일본엘 간다는 것은 이래저래 반드시 죽게 되어 있다. 내 자식을 그런 죽음의 구렁텅이에 집어넣다니 ……


가미카제(Kamikaze) 뜻은 신풍(神風) 즉 신의 바람을 뜻하며 세계 제2차 대전시 일본 공군의 자살 특공대다. 변칠성은 홍기봉의 아들 영선이 학교에 가서 아버지 심부름으로 왔다고 하며 영선이를 가미카제 특공대, 즉 소년 항공대에 지원한다고 신청했다. 교장을 비롯하여 경찰서장 등 천왕을 위해 전쟁에 나가는 영선이를 영웅으로 대접했다. 변칠성의 소행임을 알고 홍기봉은 학교에 가서 취소를 원했지만 안 되었다.
중학생으로 영특하고 인정받는 아들이 4개월 훈련받고 인간 폭탄이라는 소년 항공대 가미카제 특공대로 내보내야 된다. 변절자 변칠성과 그런 일본의 만행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는 현실이었다. 영선이는 일본과 일본 천왕을 위해 태평양 한가운데서 연합군 배를 침몰시키기 위해 자살폭탄을 비행기에 싣고 출전했다. 악순환의 고리는 더욱 잔인하게 연결되어졌고 진실과 양심은 어디로 갔는지 애꿎은 영선이만 희생양이 된 참혹한 만행이다. 정신대를 비롯하여 징병, 징용 등 이런 잔인한 만행을 저지른 일본은 세월이 흘렀지만 전 세계에 고발하여 용서를 받고 보상을 받아야 한다. 영선이의 죽음으로 인한 윤홍렬 작가의 끓어오르는 분노와 목소리가 담겨 있다. 작가는 이 부분에서 클라이맥스를 제시하였다. 소설은 흥미 안에서 교훈이나 감정의 정화가 빛난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은 그저 인간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면 되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소설이 간접적인 이야기를 통해 인간 구원을 지향한다는 말과 동일하다.


홍영선이 항공병학교에 입교한 지 4개월쯤인 6월 초순에 ‘호국의 수호신으로 승천하였다.’라는 통지서가 왔고 그 며칠 후에 유골이라면서 손톱, 발톱을 담았다고 알려진 조그마한 오동나무 상자가 왔다. 두 명의 일본 군인이 그 유골상자를 가슴에 안고 마을에 나타났을 때, 온 마을 사람들이 통곡을 하다시피 하였다 …… 얼굴도 잘생겼고 공부도 잘하던 아이, 인사성도 밝고, 불쌍한 사람에게 동정심도 많던 학생이었는데 …… 등으로 찬사를 늘어놓으며 온 동네가 울었다.


소설의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진실과 선의 대상이었던 영선이가 변칠성의 농간으로 징병이 되어 끝내 태평양 한가운데서 한 줌 재로 산화했다. ‘호국의 수호신으로 승천’했다는 글이 적힌 통지서와 함께 유골함이 집에 도착하자 온 마을 사람들이 비통해했다. 영리한 아들이 일본의 재물이 된 데 대한 분을 삭일 수가 없었다. 「쭉정이」 소설 중 이 대목이 클라이맥스다.
A. 벡커는 소설이란 산문체로 가공한 이야기에 의한 인생의 재해석이라고 했다. 작가 윤홍렬은 일본의 식민지 하에 있는 우리 민족의 고통과 소년 항공대 가미카제 특공대에서 한 줌 재가 된 영선이의 죽음을 독자들에게 각인시켰다. 인간이 어디까지 악랄할 수 있는가를 보여 줬다. 나라와 민족을 배반한 변칠성에 의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처참하게 희생된 영선이 모습에서 힘없는 우리 민족을 상징했다고 볼 수 있다.


복남이의 유골이 집에 오는 날 동회사무소에서 보내온 것이라는 것인데 그 쪽지를 훑어본 변칠성은 한숨을 쉬었다. (중략) 다만 무슨 명목인지는 모르겠는데 一金貳百圓也라는 글자만은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눈이 번쩍 뜨였다. (중략) “동회사무소에서 장사 지내는데 보태 쓰라고 광목 한 통하고 돈 이백 원에 쌀 닷 말을 줬어요.”라고 밝히고 큰며느리는 계속해서 흐느낀다.


변칠성의 만행은 그뿐이 아니었다. 자신의 큰아들인 변복남이를 아버지가 다섯째 부인에 대한 성적 욕망 때문에 아들을 징용으로 신청했다. 복남은 기선을 타고 일본으로 가다가 미국 함대의 폭격으로 사망하게 된다. 영선이나 복남이나 변칠성 때문에 조국보다는 일본을 위해 어이없는 죽음을 당했다. 변칠성은 악의 축이 되었다.
전쟁이 기울어 가는 2차 대전 말기에 일본은 태평양 한가운데서 연합군들과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전세가 기울어지자 일본의 앞잡이가 된 변절자들과 일본인들의 잔인한 만행은 끝이 없었다. 가미카제 특공대에 영선이 출전과 공중에서 산화한 장면은 이 소설의 절정이다. 세계를 제패하려는 야욕으로 인간의 목숨을 경시하는 일본의 잔악무도한 실상을 작가는 「쭉정이」를 통해 고발했다.
젊은 청년들이 징병으로 전쟁에 차출되어 남양군도나 일본군 진지에서 비행장을 닦거나 북해도, 구주지방 탄광에 징용으로 끌려간 수많은 사람들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또한 상해를 비롯해서 만주나 연해주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수많은 독립군들이 일본군에 의해 희생되었다. 우리 글과 우리말을 말살하는 정책은 물론 처녀들은 위안부로 끌고 갔다.
식민지 사회 민초들의 삶은 말이 아니었다. 일본을 찬양하고 협조하는 변절자들은 그 와중에도 부를 축적하며 살아남았다. 작가 윤홍렬도 일제 치하에서 학교를 다녔으며 청년기를 보냈다. 제2차 세계 대전은 물론 6.25 같은 민족상잔의 비극 등 우리 역사의 격동기를 겪었으므로 식민지 사회에서 일본인들의 잔혹한 만행을 실제 눈으로 확인하고 귀로 들었던 것이다. 소설을 허구라고 하지만 작가의 리얼한 체험이 바탕이 되어 그 속에 진액처럼 녹아 있다.


- 해방 후 분단 조국의 좌우익 이념 갈등


이제는 공산당이 어떤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것을 대강은 알고 있는 홍기봉이다. 노동자와 농민들만이 인간 대접을 받을 수 있고 지주와 기업가들은 모조리 ‘미국 놈의 간첩, 제국주의 놈들의 앞잡이 ……’라고 몰아붙인다는 것. (중략) ‘도둑놈 위에 날강도가 있다더니 공산당 놈들이야말로 날강도 같은 것들 ……’이라고 단정을 하면서 홍기봉은 공산당이라는 말만 들어도 눈살이 찌푸려지곤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런데 집에서 부리는 머슴들의 행동이 차츰 수상해지는 것이 몹시 불안하였다.(중략) 해방 전에는 전연 없었던 현상이었다.


전국 곳곳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며 36년의 일제 식민지 생활이 청산되고 민초들은 이제 평안을 찾고 살아간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민초들의 행복도 잠시였다. 38도선을 경계로 나라가 두 동강이 나고 이남은 미군이 민주주의 즉 자본주의를 가지고 왔고 이북은 아라사 (러시아) 군대가 공산주의 정부를 가지고 와서 난관에 부딪치게 되었다. 좌익이 무엇이고 우익이 무엇인지 모르는 저희끼리 으르렁거렸으며 친구와 형제간에도 이념 때문에 서로 적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지주들은 소작인들에게 재산을 분배해야 하는 불분명한 경우가 생겼다. 질풍노도의 시대가 온 것이다.
홍기봉이 날벼락을 맞은 것은 ‘농지개혁법’이 생겨 지주와 소작인의 70대 30이 50대 50으로 바뀐 것이다. 갈벌면에도 ‘조선 공산당 지부’ 간판이 걸렸다. 그들은 유산자 계급을 없애고 재산을 뺏으려는 계획이었다.
홍기봉은 머슴들의 행동이 수상해짐을 느꼈다. 그럴 때마다 그들에게 배신감을 느끼며 불안했다. 변절자들이다. 시대가 바뀌니 사유 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공산당 쪽으로 머슴들이 쏠리는 것이었다. 지주 홍기봉을 친일파로 몰아가며 없애 버리겠다고 벼르고 있다. 공산당이 싫어서 남으로 온 천인복만은 그렇지가 않다. 일제 식민지를 겪고 전쟁을 치른 민족의 수난기에 좌익이니 우익이니 좌충우돌 민초들의 삶은 더욱 혼란에 빠졌다.
작가 윤홍렬은 일제 만행을 비롯하여 6.25 이후 38선 분단의 혼란을 역사적 흐름으로 서술하였으나 개성 있는 캐릭터들을 선정하여 좌우익 이념을 구분하여 기록하였다. 「쭉정이」는 미완의 소설이지만 민족의 역사적인 자료로 후대 독자들한테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인간사회 세계 역사에 대한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문제 인식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 윤홍렬의 작품 세계는 수난기 시대 역사의식에 관한 문제와 주제가 진지하게 각인되고 있다.



5. 후손에 대한 집착과 불분명한 가계도(家計圖)
소설 속 배경이 일제 식민지 시대인 만큼 사회 구조는 대부분 유교 사상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주인공 홍기봉은 대를 잇기 위해 다섯 명의 아내를 거느렸다.
소설에 의하면 지금의 홍기봉(김봉기)의 아버지 김복산은 돌 지난 봉기를 공 씨 집에 맡기고 행방불명이 되었다. 40년 전 옥류면 옥돌골을 떠나 갈벌리에서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 홍기봉은 많은 재산을 물려줄 후손을 얻기 위해 장가를 네 번 가고 다섯 번째는 첩을 얻게 된다. 첫 번째 아내는 정간난이고 두 번째는 차언년, 세 번째는 방서분, 네 번째는 손정숙, 다섯 번째는 이연화다. 아이들은 석철, 영팔, 영선, 준배 네 명의 서로 배다른 아들이지만 영팔과 준배만 생존해 있는 아들로 등장하고 석철과 영선은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소설 제목이 ‘쭉정이’인 만큼 주인공 홍기봉이 대 이을 후손에 대한 집착이 크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석철이나 준배의 출생에 관해서는 소설에서 자세히 언급이 되었는데 소설의 초반과 중반에 등장하는 영팔과 영선의 출생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이 없어 의구심을 갖게 된다.
첫 번째 아들 석철은 간난이하고 첫 결혼에서 태어났으나 석철이가 네 살 때 홍역으로 잃어버렸다. 아내 탓이라고 괴로워하던 김봉기는 이혼하고 솔개미재에서 죽은 경 씨의 돈뭉치가 든 전대를 가지고 옥돌골을 떠난다.
「쭉정이」 소설에서 위기와 절정 부분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인물은 영선이다. 일제 징병 소년 항공대 가미카제 특공대에 출전하였다가 산화한 영선이는 영리하고 똑똑해서 두 번째 아내한테서 태어났다고 작품 속에서 작가는 말했지만 소설 내용과 일치되지 않는 의문점을 갖게 되었다.


재혼한 지 2년 만에 차언년이 딸을 낳았는데 학질 비슷한 열병을 앓다가 3살 되던 봄에 죽었다. 그리고는 이어서 또 임신을 하였고 난산 끝에 아들을 낳기는 낳는데 사산이었다.
모처럼의 아들을 사산한 데서 받은 충격이었는지 아내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재혼 5년째가 되는 봄에 죽고 말았다. 홍기봉의 나이 30도 못되어 생이별과 사별로 두 아내를 잃은 것이다.


소설은 그 시대의 사회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또한 소설은 역사 속에 변형하면서 존재하는 산문 형식으로 인간의 유형만큼이나 다양한 삶의 현장과 인간의 심리를 그려낸다고 할 수 있다.
홍기봉은 옥류골을 떠나 갈벌시 갈벌면에서 두 번째 아내 차언년을 만나 딸은 학질로 아들은 난산 끝에 사산이라 차언년도 앓다가 죽었다고 설명이 되어 있다. 그런데 소설 중반쯤에서 가미카제 특공대 출전했다가 사망한 영선이가 두 번째 아내한테 태어났다고 기록이 되어 있다. 영선이의 출생에 관해서 이 부분이 논리상 맞지 않아 작가의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작가 윤홍렬은 후반부에서 반전하듯 영선이 출생에 관해서 명확히 밝히려고 영선이를 등장시켰는지도 모른다. 결론을 마무리 짓지 않은 미완성 소설이라 독자들에게 궁금증이 증폭되고 아쉬움이 크다.


홍기봉은 많은 재산을 물려줄 후손을 기다렸지만 아들 영팔은 천치로 결혼 5년이 되어도 자식이 없어 검사해본 결과 남자 기능을 못 하는 쭉정이었다. (중략) 그리고 …… 영팔이가 열네 살 적이었으니까 11년 전에 죽은 세 번째의 아내 유수의 모습들이 순서도 없이 나타났다 스러졌다 한다.
(상략) ‘영팔이란 놈은 정말 쭉정인가, 벌써 장가를 든 지가 4년이 넘어 5년째에 접어드는데 도대체 며느리에게는 태기의 소식이 없으니 …… (중략) 홍영감은 또 긴 한숨을 쉰다. 도대체 이 엄청난 재산을 누구에게 넘긴단 말인가. 내 나이도 80보다는 90이 더 가까운 86세다. “이쪽으로 오기는 잘 왔는데, 무슨 놈의 팔자가 돈복만 있고 손복은 없단 말인가. 도대체 이게 무슨 팔자란 말인가” (중략)
그러니 방서분은 집에서 퍼낸 쌀의 4분지 1을 친정으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태기도 없이 가뜩이나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차에, 핑계 삼아 방 서분을 쫓아냈다.


소설 맨 첫 부분과 중간 대목에 모자라는 천치 아들 영팔이가 등장한다. 14살 때 죽은 세 번째 부인 유수의한테서 출생하였다고 홍기봉은 독백으로 말한다. 그런데 소설에는 세 번째 부인은 유수의가 아니고 전 남편의 아이 둘을 위해 쌀을 퍼내다가 쫓겨난 방서분이다. 이 대목에서도 소설 맨 앞부분의 설명과 셋째 아내에 대한 설명이 모순이 된다. 세 번째 아내가 유수의인지 방서분인지에 대해서도 독자들은 혼란을 겪게 되는 부분이다.


그 전갈에 홍 영감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과 충격으로 넋을 잃다시피 하였다. (중략) 아들이 쭉정이라면 아들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며느리에게 결함이 없다면, 영팔이가 쭉정이라는 것은 거의 분명하여졌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걸고 아들도 그 대학 병원엘 보내 봤었다. 결과는 꺼렸던 대로 영팔이가 쭉정이라는 것이었다. 쭉정이 정도가 아니라 거의 남자의 기능을 갖추지 못하였고 설령 앞으로 남자의 기능이 살아난다 할지라도 정자가 없기 때문에 완전한 쭉정이라는 것이었다.


영팔이가 결혼 5년이 지났는데도 태기가 없어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본 결과 영팔이가 남자 노릇을 못 하는 쪽으로 결과가 나타났다. 쭉정이인 아들로 인해 아버지인 홍기봉은 속이 탄다. 그런 이유로 홍기봉은 다섯 번 째 첩을 얻는다. 이 소설 첫 부분에 등장하는 영팔이가 끝내 대를 잇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소설 제목을 ‘쭉정이’로 하지 않았나 유추해 본다. 그럼 쭉정이 영팔이가 중심인물이 아닌가, 소설이 미완성으로 끝났지만 작가는 결말 부분에 영팔이를 등장시켜서 소설 제목과 영팔이의 관계를 작가는 의도적으로 장치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본다. 하지만 영선이 출생과 영팔이 출생의 가계도가 불분명하게 설정이 된 것은 분명하다.


본처의 몸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는데 이연화의 몸매는 눈에 띄게 점점 달라져 갔다. 그 이듬해 봄 4월에 연화는 아들을 낳았다. (중략) 득남의 축하 인사를 겸하여 6명이 모여들었다. (중략) 점점 자라 갈수록에 “즈이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라는 말이 돌 정도로 홍기봉 자신이 보아도 아닌 게 아니라 “나를 고대로 닮았다”라고 무척 기뻐하였다.
(중략)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결과 석철과는 전연 관련이 없는 ‘준배’라고 고쳤다. 준배만은 절대로 실패를 하여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면서 준배를 감싸고 돌았다.


홍기봉은 대 이을 아들이 없어 안타까워한다. 네 번째 아내한테 태기가 없어서 다섯 번째 아내인 첩 이연화를 맞아 아들 준배를 얻게 된다. 석철이는 어릴 때 홍역으로 죽고 공부 잘하고 똑똑했던 영선이 마저 인간 폭탄이 되어 가미카제 특공대에서 산화한다. 아들로서 유일하게 살아 남아있는 천치 영팔이와 막내 준배에 관해서는 소설에서 더 이상의 언급이 되지 않았다.
소설 「쭉정이」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작가 윤홍렬은 등장인물의 배경과 사건을 통해 캐릭터들을 상세히 묘사했다. 그런데 홍기봉은 자신의 후손에 관해서만은 영선이 외에는 다른 아들의 성장 과정을 설명하지 않았다. 작가가 마무리 짓지 않은 미완성 소설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추측해 보지만 의혹이 풀리지 않는다.
특히 영선이가 두 번째 아내 차언년한테 태어났다는 근거와 영팔이가 세 번째 아내 유수의한테 태어났다고 하는 근거는 불분명하다. 작가가 「쭉정이」 소설을 완성했다면 그 부분까지 쾌히 마무리 지어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를 증폭시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여 독자들의 의혹을 풀어 주었으리라 믿는다.
작가 윤홍렬은 역사의 격랑기 중심에서 겪어야 했던 민초들의 굴곡진 삶을 대하소설 형식으로 써나갔다. 즉 수난기시대 민초들의 혼란했던 삶을 통하여 역사를 재평가하고 인식하도록 독자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생각한다.



나가기
소설은 이야기라는 기본적인 요소로 인간에 대한 새로운 탐구라고도 할 수 있다. 소설 「쭉정이」는 식민지 시대 일본의 만행과 분단 조국의 수난기에 민초들이 겪어야 하는 힘든 삶이 그 주제다. 시대적 격랑기는 사회를 변화시키고 사람들의 마음과 삶을 변화시킨다. 즉 소설이 아픔을 드러낸다고 해서 역사 속 삶의 기구한 운명이 소설화되지는 않는다. 고통에 대한 인식과 각성을 토대로 현재와 미래 삶에 대한 구원의 문제가 제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양심을 저버린 캐릭터들을 등장시킴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하여 독자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민초들은 일제 강점기와 6.25 같은 힘든 시대일수록 물질이 삶의 주제다. 작품 속 지주들은 물질로 신분 상승하고 일부다처를 두고 머슴을 부리며 후손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명예와 물질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소설 「쭉정이」는 작품의 치밀한 구성과 다양한 캐릭터들의 묘사로 읽는 재미를 더 해 준다. 민족의 수난기를 주제로 한 소설 중 압권이라고 볼 수 있다.
단편소설에 나타난 윤홍렬의 작가 정신은 주로 인간 위주 휴머니즘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소설 「쭉정이」는 혼란한 시기에 양심과 비양심, 진실과 위선, 선과 악의 야누스적인 인간의 원색적인 본성을 그대로 노출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물질을 통한 신분 상승과 진실과 거짓에서 캐릭터 간의 갈등이 이 소설의 쟁점이라고 할 수 있다. 돈은 신분 상승의 징검다리이다. 김봉기는 자신의 양심을 져버리고 죽은 경 씨의 전대 속 돈뭉치를 가지고 갈벌리에 가서 이름도 홍기봉으로 개명하고 돈의 위력으로 신분 상승하여 평생 유지 행세를 하며 산다.
운명적인 만남과 진실에 드러난 맨 얼굴에서 홍기봉은 위선의 탈을 쓴 채 두 얼굴로 살아간다. 지은 죄와 양심을 속이고 진실을 왜곡하는 것은 언젠가는 그 진실이 밝혀진다. 애초부터 세상에는 비밀이 존재하지 않는다. 혼란하고 삶이 불안정할 때 속고 속이면서 살아가는 것이 민초들의 삶이지만 운명은 항상 진실 쪽으로 손을 들어 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대동아전쟁이 한창이었고 식민지가 끝나갈 그 무렵 일제의 만행은 점점 더 악랄해지고 민초들의 삶은 좌충우돌한다.


민족의 수난 속에 변절자들의 끝없는 만행이야말로 사람들 마음속에 선과 악이 어디까지 내재되어 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구절이다. 등장인물도 선한 캐릭터보다 악행을 저지르는 캐릭터들의 극적인 장면이 더 흥미를 갖게 한다. 거짓 행동과 완벽한 위장이 계속 또 다른 죄를 잉태하게하고 악순환의 고리가 반복이 된다.
홍기봉이 지은 죄가 20년이 지나면 상실되고 효력이 없게 됨을 알자 변절자 변칠성의 잔인한 만행은 끝이 없었다. 아무도 몰래 홍기봉이 솔개미재에서 저지른 죄의 대가가 인과응보이듯 악행을 일삼는 변칠성의 농간에 끝없이 시달린다. 그러다가 엄청난 일을 당한다. 결국은 홍기봉의 아들 영선이를 소년 항공대 가미카제 특공대에 출전시켜 태평양 상공에서 산화해버리게 한다. 징병과 징용 제도를 만들어 식민지 국민들의 목숨을 경시하며 세계를 제패하려는 일본의 야욕과 잔악무도한 행동을 윤홍렬 작가는 독자들에게 고발했다.
문학에서의 모방은 리얼리즘 정신에 입각하여 대상을 그리는 것을 말한다. 즉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대상을 재현하고 재구성하는 창조적인 능력으로 보았다.
해방 후 분단 조국의 좌ㆍ우익 이념과 갈등에서 민초들의 삶은 더 혼란해진다. 광복이 되고 일제 치하 식민지 생활이 청산되어 민초들은 평안을 찾고 희망에 부풀었지만 나라는 38선으로 두 동강이 났다. 이념 분쟁과 함께 농지개혁법으로 지주들은 소작인들에게 재산을 분배해야 되는 질풍노도의 시대가 온 것이다. 작가 윤홍렬은 소설 「쭉정이」의 등장인물들로 하여금 민족의 수난사를 역사적 흐름에 준하여 서사적으로 기록하였으며 대하소설로서 의미를 부여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홍기봉의 후손에 대한 집착과 불분명한 가계도(家計圖)는 독자들로 하여금 의혹을 갖게 한다. 또한 작가는 주인공 홍기봉의 네 명 아들 중 석철이와 준배의 출생에 관해서만 언급하였다. 하지만 영팔이와 영선이의 불분명한 출생에 관해서 언급하지 않아 독자들은 의구심을 갖게 된다. 소설이 결론 부분을 마무리 짓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유추해 본다. 하지만 작가가 홍기봉의 불분명한 가계도를 체계적으로 기록하며 마무리 지었다면 민족의 수난기에 민초들이 겪어야 하는 굴곡진 삶이 독자들에게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전달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소설 「쭉정이」는 미완의 소설이라서 더 미련이 남고 아쉽다. 윤홍렬 작가는 못다 쓴 원고를 가슴에 안고 천국에 가셨으리라. 거기서 주인공들과 대화 하시며 소설을 마무리 지으셨겠지. 윤홍렬 작가가 작고하기 전에 진작 소설을 읽고 거기에 관하여 여쭈어보았으면 몇 가지 의문이 풀렸을 텐데 후회가 남는다. 소설 「쭉정이」는 산 증인이듯 우리 민족의 격동기를 직접 체험한 작가의 고발로 강한 캐릭터들을 등장시켜서 쓴 대하소설이다. 민족의 수난기를 겪으며 살아온 민초들의 굴곡진 삶이 생채기가 되어 독자들 가슴에 무늬져 온다. 어쩌면 마무리 짓지 못한 미완의 소설이기 때문에 결말에 있어 독자들은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 그래서 완성보다 더욱 아쉬움이 남는 아름다운 미완성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