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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2020년 [수필] 잘난 척 외 1편 / 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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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421회 작성일 20-12-1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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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내게 가을이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것들이 멈추었다.

그 아름다웠던 미시령을 매일 보아도 감각이 없다.

가을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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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척



사람들은 다들 나름 자기 자신의 잘남에 대해 굉장한 자부를 갖고 산다. 때로는 아무리 봐도 예쁘지 않은데 엄청 자신은 예쁘다고 한다. 그림을 아주 잘 그린다거나 노래를 아주 잘한다거나 정말 아주 예쁘다거나 춤을 아주 잘 춘다거나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인정해 줄 때 그때 즈음에 우리는 평상적으로 예쁘다, 잘한다 한다. 그러나 간혹 자기에 취해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왜 그렇게 자신이 있는가 보니 여러 가지 사정으로 보나, 물질적으로도 좀 풍족하게 살아왔거나 늘 사랑 속에 살아온 이들이다.
아이들을 지도 하다 보면 늘 부정적인 아이가 있다. 그런 아이들을 들여다보면 사랑이 많이 부족한 아이들이다. 사랑받지 못하고 소외된 아이들은 유독 매사가 부정적이다. 물론 그렇게 자라 어른이 되어서도 그 어른은 매사가 부정적이다.
가끔은 잘나지도 예쁘지도 않은데 자신이 엄청 예쁘다고 하고 다니는 이나 명품 백 하나 걸머지고 어울리지 않게 어깨에 뽕을 하늘만치 넣고 고개는 어느 누구가 와도 숙일 줄 모르는 안하무인 격인 사람들을 가끔 접한다. 잘난 맛에, 경제적으로 풍요함 때문에 그저 떵떵거리고 사는 물질의 자랑질에 사는 이들. 정말 어울리지도 않은 우스꽝스러운 품새에 자랑질 하고 다니는 사람들 많다. 뒤에서 혀를 끌끌 차도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너희는 있어 봤어? 난 있잖아 이렇게 ……
사람들이 뒷말로 수군거리고 말질들을 해댈 때 가끔 나도 그 뒷말에 보태며 인정한다. 그러나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들은 자신이 그냥 잘난 것이다. 남의 평가를 받고 잘 난 것에 기준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신이 보기에 잘난 것이다. 난 그의 용기에 한 표를 준다. 그래 그렇게 사시오.
그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모든 게 긍정적이다. 남들을 그리 비판하지도 않고 남 말을 입에 올리지도 않는다. 자기 잘난 맛에 살기도 바쁘니 쓸데없는 입방아 질에 시간을 허비할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것에 주목을 두고 살아야 할 앞으로의 세상이다. 자신이 보는 것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시대는 엄청난 누를 범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잘난 사람 속에서 가끔은 상대를 범하며 선을 넘는다. 자신의 기준 잣대로 상대를 무시하는 언어를 사용하며 평가 절하 해버리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난 이렇게 잘났어, 넌 잘나지 않았지, 그러니 내가 너를 무시해도 돼’라는 식으로 가끔 상대를 힘들게 하고 슬프게 한다. 그것은 어린아이들 사이에서도 큰 문제로도 되고 있다.
“야, 엄마도 없는 게, 야 그지야, 너 엄마 있어?” 하는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아이들의 언어는 “야, 당신 너 돈 있어? 나 돈 있어, 너는 없잖아.” 식이다.
친구 중 하나가 명품 백만 들고 다니는 이가 있었다. 그저 가방 자랑 옷 자랑, 집안의 살림살이 자랑들이 그의 하루 일과다. 그렇다고 대놓고 자랑은 안 하지만 일부러 보이게 식탁에 올려놓거나 은근히 시선이 갈만한 곳에 보이게 둔다. 그러면 나는 못이기는 척, “어 가방 예쁘네” 하면 “응, 하나 장만했어. 예쁘니?” 한다. 그러면서 그 가방에 대해 엄청난 설명을 한다. 사실 제가 산 것도 아니다. 시댁이 부자이다 보니 시누가 사서 보내는 걸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화장품도 예전에 유행했던( 요즘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일제 시세이도라는 콤팩트를 썼다. 나도 서울에서 그거랑 랑콤이라는 메이커를 썼다. 자기만 쓰는 척 자랑을 한다. 그러면서 일본 다녀오는 이에게 부탁해서 산 거라고 나도 사려면 같이 부탁하란다. 매번 그런 식이다.
어느 날 서울 사는 동생이 ◯찌 가방을 하나 보냈다. 아무 생각 없이 들고 나갔다. 그 친구 왈 “어머 ◯찌네, 응 어디서 났어?” “동생이 줬어,” “진짜야?” “응, 왜?” “에이, 이게 뭐 진짜야?” “뭐래? 우리 동생 서울 55평 아파트에 살거든, 그리고 그 시댁도 서초동에 사는 부자야,” “그래?” “그리고 우리 친정집도 강남이야,” “정말이야?” 참내 어이가 없었다.
“왜 내가 명품 들고 다니면 안 되니?”
왜 자기만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내가 좀 어렵다 했더니 우리 가족까지 다 어렵게 사는 줄 아나. 기껏 지네 시댁은 강북에 살면서 어디서 …… 짜증이 확 났다. 이런저런 이야길 퍼부어 대고 나니 나도 참 유치했다. 그런데 화가 났다.
내가 명품 옷, 명품 백 들면 안 되나? 그래 난 명품 백 들 형편은 아니야, 아니 돈이 있어도 안 산다. 수없이 많은 가방들, 아마도 네가 가진 것보다 더 내가 많을 것이다. 내가 손수 만든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방들이다.
얼굴이 벌게졌다. 미안한지 고개도 들지 못했다.
늘상 말 한마디로 나를 화나게 하는 친구다. 밥이라도 같이 먹고 오면 신경질이 나는 친구다. 몇 번이고 안 만나려고 하면 미안하다며 다신 안그런다 해서 그냥 이해하자 하며 만났다. 만나고 와 속상해하면서도 난 계속 그 친구와 어울렸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문득 남의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람, 남의 절박한 상황을 이해해 주는 사람, 남의 사정을 봐주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내 곁에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쯤, 그 친구는 서울로 이사를 갔다. 갑작스런 부도로 밤사이 빈 몸으로 떠났다. 갈 때 연락은 물론 받지도 못했고 지금도 연락 두절이다. 그이의 사정을 알고 싶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저 다른 이들을 통해서 알았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의 잘난 맛에 산다고들 많이 이야기한다. 나도 그 멋에 산다. 그러나 정말 자신의 주제를 알고 자신이 정말 잘났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니 정말 잘난 사람들은 그렇게 잘난 척하지 않는다. 있어도 티 내지 않고 고상하고 아름답게 살아간다. 내가 드러내지 않아도 보이기 때문이다. 멋스럽다고 자랑하지 않아도 그 멋스러움이 보인다.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시대에 살아가면서 우리는 정말 사람에 대한 민주주의를 보이고 있는가? 제발 우리 모두가 평등한 사람, 다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뼛속 깊숙이 인정해주면 살아갔으면 졸겠다.
네가 잘났으면 상대도 잘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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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인연



인연은 참 소중하다.
요번 코로나19 사태를 보면서 인연하나 잘못 엮인 관계로 온 세상은 풍비박살이 났다. 신천지 사람들 …… 문득 나에도 좋은 인연은 누구일까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사태로 모든 일들이 중단되어 쉬어야 하는 상황에 젊은 후배들 사이에서 냉파로 견디어야 한다는 소리들을 했다. 그것이 무엇이냐고 하니 ‘냉장고 파먹기’라는 거란다.
그래 나도 한동안 냉파를 하였다. 그동안 냉장고를 파먹으면서 난 얼마나 많은 것들로 냉장고를 가득 채워 넣었는지, 불필요한 것들을 끄집어내면서 많은 반성도 했다. 나의 욕심들로 가득 찬 냉장고로 보였다.
그러나 바보스럽게도 정작 준비해야만 했던 손 소독제, 마스크 이런 것들은 준비하지 못했다. 이런 갑작스런 코로나19 사태가 올지도 몰랐지만 …… 상황에 적절한 마스크를 준비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저 안일하게 난 학교에 가면 소독제가 항상 배치되어 있고 학교에서 마스크를 주겠다 싶어 준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모든 학교 등교도 멈추었고 마스크가 동이 나고 손 소독제며 모든 소독제가 품절이 되어 난리 통이 되었다.
음식을 하다 손을 데어 약국에 소독약을 사러 가서야 소독제도 동이 난걸 알았다. 그래 그럼 손 소독제 만들면 되지, 뭐 나는 뭐든 사는 것 보다 만드는 것을 좋아해 만들어야겠다고 하고 알콜 등 부수 물품을 사려고 인터넷을 뒤졌다. 세상에 다 품절이다. 겨우 한 군데를 뒤져서 샀다. 손 소독제를 만들어 성당 신부님과 수녀님을 만들어 드리고 나서 여기저기 더 필요한 거 같아서 더 사려고 했지만 더 이상 사지는 못했다.
소독제 대란이다. 마스크가 대란이다. 그래도 난 다행히 아들이 군대 다니던 시절에 두고 갔던 밀리터리 천 마스크가 있어서 그걸 쓰기로 했다. 예쁘기도 하고 패션에 민감한 나로서는 만족스럽게 하고 다녔다. 그러나 천 마스크는 안 된다. K98 등등을 써야 한다. 난리가 났다. 세상이 전쟁터 같았다. 바이러스 전쟁 속에서 약삭빠른 사람들은 마스크와 손 소독제들을 이미 사재기를 했다.
걱정스러웠다. 고민을 하다가 옷을 만들려고 사놓은 천들로 천 마스크를 만들기 위해 미싱을 돌리기 시작했다. 일회용 마스크는 살 수 없으니 세 겹으로 만들어 빨아서 쓰면 되겠다 싶고, 혹여 필터를 살 수 있으면 끼워서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만들기 시작했다. 그 무렵 천을 대신할 수밖에 없는 나라의 사정이 되다 보니 여기저기 천 마스크라도 달라고 손을 벌리기 시작했다. 한 백오십장도 만들어 지인들을 나눠 주었다.
여기저기 막 나눠 주다 보니 한 후배가 그러는 것이다. 혹여 마스크 만들어 다 나눠 주고 선생님 쓸 것이 없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요번은 심각하니 선생님 것은 남기고 나눠 주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았다. 늘 무언가를 만들어 여기저기 나누어 주는 맛에 살았다. 그동안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그렇게 쓸데없이 원단을 구매해 자선사업가도 아니면서 마구 돌렸다.
막상 수입이 끊긴 상태에서 말려오는 지출을 막자니 다음 달에 결재해야 할 카드 값에 덜컥 겁이 나면서 압박감이 밀려왔다. 마스크도 한 장도 사지 않았던 준비성 없는 한심한 나 자신이 지금 남을 생각할 때가 아닌데 …… 어리석은 나를 탓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배의 말을 듣지 못했다면 더 돌릴 생각이었는데 마침 서울에 사는 아들도 마스크를 살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는 내가 지인들을 챙길 일이 아니다 싶어 남겨 두었던 마스크를 다 풀어 아들, 친정 식구들에게 보냈다.
그러나 식구들을 챙기고 나니 못 나눠준 지인들이 맘에 걸려 결국 남겨 놓았다. 여기저기 줄 것 들을 표시해 놓고 보니 마스크 안감이 떨어졌다. 안감을 다시 사야 하는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너 뭐 하는 짓이야?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지금 한 푼이 아쉬운데 또 사서 남을 줄 생각을 해? 문득 내가 병든 것 같았다. 그래서 냉정하게 장바구니를 비웠다.
그런데 속이 너무 상했다. 그래서 친한 동생한테 코로나19는 나를 이기적으로 만든다 했더니, 그건 당연한 것이라고 이기적인 것이 절대 아니라고 정신 차리라고 충고를 하는 것이었다. 요번 마스크도 절대 그냥 퍼주지 말고 팔으라고 제발 ……
그래 물물 교환을 했다. 처음으로 이기적인 마음을 먹고 마스크를 달라고 하는 후배들에게 마스크 줄 테니 넌 돼지고기 사 오고 넌 만두 사 오라고 등등했다. 그런데 그 물물 교환을 한 것들로 저녁을 해먹었는데 목이 메었다. 자식들 잘 먹이려고 바둥바둥 열심히 사는 후배인데 나한테 줄 고기를 안 줬으면 지 새끼들 풍족하게 먹였을 텐데 가슴이 아려왔다. 그냥 나눠줄 걸 후회스러웠다. 그 마스크가 뭐길래 잠깐의 이기적인 욕심에 이리 불편하고 힘든 것을 마음이 아파왔다. 그건 욕심이 아니라고, 당연한 것이라고, 그들은 나보다 더 잘살고 넉넉하다고 나를 합리화 시켜도 그 불편함에 힘이 들었다.
난 없이 살아도 나눔에 행복했던 것일까? 내가 힘들어도 주고 싶었던 건가? 왜 이리 마음이 불편한 것인지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코로나19로 인한 사재기로 유럽의 마트들이 식자재 등 공산품들이 동이 나자, 어떤 간호사가 제발 그만들 사가라고, 좀 나눠주라고 울면서 동영상을 올리는 것을 보았다.
마스크 사재기나 알콜 사재기나 모두 마찬가지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손 소독제 만들 정제수가 있으면서 더 사려고 했다가 없어서 결국 못 샀지만 어떤 이가 블로그에 소독약 만드는 정제수를 그만 사가라고 호소 글을 올린 걸 보았다. 그 정제수로 심장병 아이들 관을 소독하는데 써야 한다고, 아이들은 그것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고 해서 나도 정제수를 사려고 검색하는 것조차 그만두고 말았다. 나 하나라도 안 사야 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멈추고 말았다.
손을 데어 소독약 구하기 힘들었던 그 처지를 생각하면 나도 가끔 이기적이어야 하는 건 맞다. 그리고 마스크랑 물물 교환한 음식들도 당연하게 먹는 나의 마음을 키우며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결국 그런 마음의 실천은 하지 못했다.
요번 사태를 겪으면서 사람들이 걸러졌다. 내가 이렇게 힘들 때 나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 사람은 누구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 마스크 물물 교환에 마음이 울적했던 내 마음을 아는지, 괜찮다며 이것저것 더 사 들고 방문한 후배들, 혹여 굶어 죽을까 봐 자주 전화해서 뭐 먹고 싶냐 하며 평소보다 방문이 잦았던 그 후배들을 난 나의 지인 보물 1호로 정했다. 고맙고 감사하고 정이 많은 친구들. 나도 많이 나눠 주었지만 참 좋은 인연이라 생각했다. 그 친구들이 나눠 준 맛난 고기들로 단백질을 보충하면서 영양분을 많이 축적했다. 힘들지만 세상 살맛 나는 마음을 느끼게 해 준그 후배들에게만은 다시는 물물 교환 하지 말자 다짐을 했다.
그냥 내가 힘들어도 나눠 줄 만한 소중한 친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