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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2020년 [시] 고향 풍경 외 1편 / 이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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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551회 작성일 20-12-18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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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갈뫼』

그 앞에 환한 등 걸어 드리고 싶습니다

굽이굽이 비단길만 있었으랴...


오래

밝고 환하시길 두 손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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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풍경
―12월 18일 옆집 마구간 소가 울어 짠한 밤



그의 몸속 슬픔 고여 있는 우물 있어
길어 올릴 때마다
마을을 점령한 적막 속으로
뿌려지는 눈물
흠씬 젖은 어둠도 더는 어쩌지 못해
잠든 사람들 베갯머리까지 실어다 놓는다.


저노므 소가 와 울어쌌노
새끼 젖을 뗏다카네요
퉁퉁 불은 젖이 동굴처럼 울자
가둬놓은 외양간 벽 너머로 새끼 울음소리 건너간다


빠른 잉태를 위해 앞선 연(緣)을 끊어 낸다는데
슬픔을 팔아 대처로 나가 유학하고
짝짓기에 새끼 치고 문패를 달아
논밭 대출금도 갚았는데
그마저도 이제 전설이 되어
기름진 이름만 남았구나


지글거리는 불판 앞에서
그렁그렁 눈망울 지우는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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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덩어리,



그의 주검이 자루에 담겨 치워진 일을 안 것은 붐비는 점심시간이었다.


새끼들을 모으던 그의 울음을 밟고 집에 다다른 여자
찬밥 한 덩어리 상에 올린 뒤
손으로 뜯어 밀어 넣는다.
슬픈 것이 겨울 햇살인가
밥그릇 앞에서 간절했던 그의 눈빛인가
볼을 붉힌 듯 웅크린 낮고 순한 등인가
새끼들이 매달렸던 목덜미인가
소리 없이 달리고 달리던 발자국인가
젖은 새끼를 쓰다듬던 까슬한 혀인가
볕 바라기 하며 뒹굴던 그의 그림자인가


목에 걸리는 밥 한 덩어리 슬픔이라 부를까
쓰디쓴 목구멍 하나 슬픔이라 부르자